#제167화 (18)
사실 패트리어트가 방문하기 전, 한국 측에 미리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해 두긴 했었다.
미 정부와 국방부에서는 국가적 중요 인물인 패트리어트이니만큼 공식적으로 연락하려 했으나, 패트리어트가 그것을 만류했다.
‘이미 부관이 보내 놨다고 했으니, 문제 될 건 없어 보입니다.’
패트리어트의 부관인 패터슨이 연락했다는 말에, 그의 깐깐한 일 처리를 기억하는 국방부는 납득했고 정부 쪽도 국방부가 순순히 물러가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다만, 부관인 패터슨이 패트리어트가 행사 차원의 주역이 아닌 취재에 동원된 객이란 걸 너무 명확히 알고 있어서 문제가 생겼다.
인터뷰라는 목적상 주체는 기자였고, 패트리어트는 우선권과 인터뷰 내역의 혹시 모를 보안을 위해 동행하는 것이니 길드 측에만 연락을 취한 패터슨.
신화 길드 측도 그걸 모르고 있었다.
인터뷰 수락 후, 인터뷰를 할 일시와 장소만 알지 기자가 언제 입국할 거란 이야기 같은 건 없었으니까.
길드 측은 정부가 어련히 알겠거니 싶었고, 정부도 신화 길드에서 별말이 없자 패트리어트가 올 거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착오는 의외로 큰일을 불러일으켰다.
입국 심사에서 패트리어트가 도착하자 곧바로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정부는 패닉에 빠졌고, 재빨리 국빈 대우를 준비하였으나 패트리어트는 하필 추적하기 힘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거기서 정부는 2차 패닉에 빠졌다.
보통 패트리어트 정도 되는 중요 인사가 방문하면 기본적으로 전용기를 통해 공항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환영 인파와 현수막, 군악대가 맞이한다.
그런 다음 이어지는 대통령 및 정부 고위 인사와의 악수와 포토 타임 이후, 리무진 등을 타고 경찰들의 에스코트를 통해 행진을 하는 그런 정도가 관례다.
하지만 전용기는커녕 민항기를 이용했고, 고위 인사와의 악수와 포토 타임 대신 관광 안내소 직원의 안내 시간, 리무진과 경찰의 에스코트 대신 공항 철도와 만원 지하철을 이용한 패트리어트.
당연히 그런 걸 상당히 신경 쓰는 정부였으니, 패닉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패트리어트를 직접 맞이하게 된 신화 길드 측.
이곳은 사전에 이야기를 전해 듣긴 했지만, 패트리어트가 직접 오는 쪽이었기에 만만찮은 긴장을 하고 있었으나 분위기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직 화연의 인터뷰가 한창 진행 중일 때, 회의실 바깥에서 한 남자가 다 먹은 과자 봉지를 들어 올렸다.
“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과자 혹시 조금 더 얻을 수 있을까요?”
제법 예의 바르게 소파에 앉아 과자를 우물거리며 직원에게 과자를 추가 요청하는 패트리어트.
“아, 네! 갖다 드릴게요!”
길드의 직원은 패트리어트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인 뒤, 탕비실로 곧바로 달려갔다.
패트리어트는 직원이 재빠르게 자신의 요청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이자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친절한 직원분.”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작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른 직원들이 있었다.
“……미국 1위 각성자라고 해서 되게 긴장했는데, 엄청 사람 좋은 아저씨 느낌인데?”
“그러게. 급하게 마련한 다른 비싼 다과들은 조금 먹다가 말더니 왜 그냥 파는 과자에는 저렇게 관심을 보이지?”
길드에서는 패트리어트가 왔다는 소식에 급히 주변에서 공수해 온 고급 다과와 차를 대접했지만 의외로 차는 한 잔만 마시고, 고급 수제 과자가 아닌 구색 맞추기로 넣은 공산품 과자를 맛있게 먹기 시작한 패트리어트.
“여, 여기요!”
직원은 패트리어트가 과자를 요청한 것에 마음이 급해졌는지, 포장을 뜯지도 않고 상자째로 과자를 들고 왔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그런 행동에 경악했다.
‘쟤 지금 뭐 하는 거야?!’
‘과자를 달라곤 했지만, 그만큼 달라고 하진 않았어!’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패트리어트는 웃으면서 과자 상자를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깨작거리는 게 성미에 안 맞았는데.”
그리고 일반적인 과자 봉지를 뜯듯 상자를 잡고 양쪽으로 잡아당겨 뜯었다.
“오, 마음에 드네요. 부스러기가 좀 흐르긴 하지만…… 한입에 들어갈 크기니까.”
얇고 부서지기 쉬운 바삭한 껍질 안에 달콤한 초콜릿이 들어 있는 긴 막대기형 과자에 매우 큰 관심과 애호를 보이고 있는 패트리어트.
“상자의 모양도 알았으니, 귀국할 때 사 가야겠네.”
입맛에 맞는 맛있는 과자를 찾은 것이, 인터뷰의 흥행보다 중요한 듯 보이는 패트리어트.
물론 미공략 게이트 소멸에 대한 건 걱정스러웠지만, 그는 제법 이성적이었기에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단 걸 알았다.
‘연구 팀은 나중에 정해지면 파견되겠고, 뭐가 소멸될 게이트인지 알 방법도 없으니…… 인터뷰 정도로 그걸 알아낼 방법도 없고.’
그는 각성자이기 이전에 군인이었기에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인터뷰가 자신의 역할이니 나가 달라는 한스의 조금 무례한 요청도 받아들였던 것이고.
‘이미 인터뷰는 시작했으니, 나의 역할은 이걸로 끝났지.’
그렇게 과자를 즐기던 패트리어트는 인터뷰를 끝낸 한스를 보내 주고는, 한국을 조금 구경하다 가려고 마음먹었다.
‘……주한 미군 부대로 가 보면, 더 맛있는 걸 잘 아는 병사들도 있겠지?’
그는 이제 용건이 끝났으니 빌딩을 떠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탑승했다.
‘……그러고 보니 돈이 없는데, 주변에 은행이나 국제 ATM이 있을까?’
1층 버튼을 누른 뒤, 잠깐 한국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던 패트리어트.
그런 그의 고민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 끝이 났다.
탁-
“자, 잠깐만요!”
누군가가 급히 엘리베이터의 문을 붙잡고 멈춰 세웠던 것이다.
“아, 이런.”
끼임 방지 장치로 인해 닫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으나, 패트리어트는 반사적으로 열림 버튼을 눌러 주었다.
“감사합니다.”
한 여성이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인터뷰 대상, 신화연이라고 했던가? 흐음, 속성계라고 했음에도 몸이 잘 단련되어 있군?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고.’
패트리어트는 신화연을 보며 잠깐 흥미로운 느낌을 받았으나 세계 각지에 신체 단련에 매진하는 속성계 각성자가 한둘이 아니었으므로 그냥 넘겼다.
그렇게 1층에 도착했을 때, 패트리어트는 조금 특이한 광경을 보았다.
로비의 구석에서, 얌전히 앉아 있는 한 남자와 그 남자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진짜 부길드장님 애인이려나?”
“애인 있다는 말 들어 본 적 없었는데.”
“근데, 진짜 애인이면 그동안 다른 남자들 찼던 게 이해가 가긴 해…….”
패트리어트는 뛰어난 청력으로 그들의 말을 듣긴 했지만, 번역기는 그 대화들을 듣지 못했기에 그 뜻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분위기만큼은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기에, 남자에게 자연스레 관심이 가게 되었다.
‘흐음, 미남이긴 한데 저렇게 곱상하게 생긴 것보다 남자는 근육이……. 응?’
패트리어트는 남자를 쳐다보다 문득, 그의 몸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화계는 아닌 것 같은데, 전신의 근육이 저만큼 발달해 있다고? 그리고, 중심이 전부 안정되어 있다니?’
그렇게 남자를 제법 오랫동안 주시하기 시작한 패트리어트.
그는 남자를 주시하느라 그의 옆에 있던 화연이 사라지는 것을 못 봤고, 이내 화연이 남자에게 다가가서 함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지인인가? 아니면, 애인? 외모와 분위기로 봐서는 후자겠군.’
패트리어트는 잠시 흥미가 생긴 상대가 사라졌다는 것에 조금 아쉬워졌지만, 어디까지나 흥미였지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이내 이곳에 계속 있는 것이 실례가 된다고 생각한 패트리어트는 로비의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 했다.
“그럼, 실례가 많았습니다.”
옆구리에 먹다가 남은 과자 상자를 끼고 로비를 떠나려던 패트리어트.
그리고 그때, 길드 빌딩의 정문에 여러 대의 검은 차량이 급히 멈춰 서더니 거기서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급하게 내렸다.
차량의 앞뒤로 태극기가 달려 있지 않았다면 습격으로 오인할 것만 같은 상황.
패트리어트는 갑자기 나타난 양복 차림의 사내들에 잠시 당황했지만, 문득 자신의 신분과 미국과 한국의 관계, 한국의 의전들이 떠올랐다.
‘아, 그렇지. 생각해 보니 별다른 말을 안 했던 것 같군.’
신화 길드 쪽에는 연락이 되었단 걸 알았지만, 정부 쪽에 따로 연락했단 말을 듣거나 하지 않았던 패트리어트.
그렇게 방문한 것이 결국 한국의 입장에서는 기습적인 깜짝 방문에 가까웠으니 저렇게 다급하게 대응하러 온 것일 거라 생각했다.
“……한국 정부에서 온 사람들입니까?”
패트리어트의 질문에, 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선두에 선 중년의 양복 사내.
“네, 그렇습니다. 패트리어트 님. 혹시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의전은 못 하더라도, 적어도 식사나 숙소에 관한 대접만큼은…….”
때마침 돈이나 이동 수단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던 패트리어트였고, 눈앞의 사내들은 그걸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차에 타면 됩니까?”
돈을 받을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환전이 가능한 곳으로 데려가 줄 거라는 생각과 그렇게 된다면 택시를 타고 이동할 생각을 하고 있는 패트리어트.
“네, 모시겠습니다.”
패트리어트는 그렇게 정부의 차량을 타고 이동했고, 로비에서 그걸 지켜보던 길드원들은 어리둥절해했다.
“……방금 납치당한 거 아니야?”
“납치였으면 저렇게 순순히 끌려갔을까?”
검은 차량에 검은 양복과 함께 따라가는 광경은 잘못 본다면 납치와도 같은 풍경이었다.
“그, 아저씨가 사탕 줄 테니까 같이 갈래? 같은 유괴의 느낌으로…….”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당사자가 세계에서 유명한 각성자이자 미국의 군인인 것만 뺐다면 보이는 모습이 거의 유괴였다.
“뭐, 그건 그렇지…….”
“차에 태극기도 있었고…… 아마 정부에서 보낸 거겠지? 같이 사진 찍거나 뭐 국위 선양 그런 거 하려고. 알잖아. 흔하게 보이는 그런 거.”
로비의 직원들과 길드원들은 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순서가 잘못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했다.
“잠깐, 근데 보통 저런 건 입국하고 나서 바로 하는 거 아냐?”
보통 국가 의전이나 환영식은 입국 당시에 하지, 입국해서 뭔가를 하던 도중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어리둥절해하는 직원들.
“그렇네? 그러고 보니, 패트리어트 올 때 뭐 타고 왔는지 본 사람?”
“……걸어왔지 않아?”
“어…….”
신화 길드의 직원들은 그 이야기들로부터 정부 쪽이 패트리어트의 방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결과를 도출해 냈고, 이내 그것을 영석에게 보고했다.
“아이고…… 일 진짜 대충 처리하네……. 그보다, 본인이 알리지 않았으면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굳이 찾아와서 모셔 가려고 하다니. 예나 지금이나…….”
영석은 패트리어트가 길드에서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싫어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정부 측의 연락에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아니, 가만히 앉아서 과자나 까먹다가 그냥 갔다고! 뭘 또 알아내려고 그래!”
짜증과 분노가 섞인 외침을 공중으로 토해 내며, 영석은 창의력과 분석력을 최대한 발휘해 답변 메일을 작성했다.
* * *
파도치는 바다에 햇살이 비쳐 수없이 쪼개진 빛들이 아름답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촤아아-
귓가에 묘하게 들려오는, 육지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
“으음…… 정말 좋은 풍경이야…….”
소녀는 바다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 들기 시작했으나,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이 있었다.
붉은색으로 맛있게 익은 대게의 짭조름한 향기, 반으로 꺾인 다리 속에서 튀어나오는 킹크랩의 두툼한 게살.
그리고 그것들을 맛있게 먹으며 권유하는 길드원들의 목소리.
“진짜 맛있다, 다이카! 너도 와서 먹어 봐!”
“크어, 술맛 죽인다!”
<부시도 스피리츠>의 간부, 다이카는 옆에서 주책을 떠는 다른 간부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결국 여행을 와서까지도 이렇게 다 모여 다니고 있잖아!”
하오다와 함께 한국으로 온 6명의 간부들 중 하오다를 따라간 시즈카와 호텔방 안에 틀어박힌 료를 제외한 4명이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아아, 짜증 나! 게는 일본에서도 먹을 수 있는 건데!”
다이카는 여행까지 왔음에도 일본과 다를 바 없는 환경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안 먹을 거야? 이 엄청난 킹크랩을 보고도?”
그리고 그런 그녀를 달래려는 듯 킹크랩의 다리를 보여 주며 도발하듯 눈앞에서 살살 흔드는 겐지.
“……먹을 거야! 이리 내!”
다이카는 그런 겐지의 손에 들린 킹크랩을 빼앗은 뒤, 곧바로 입에 넣었다.
“하하, 잘 먹네.”
“우음…… 근데 이거 먹고 어디 갈 거야?”
킹크랩의 다리 속살을 우물거리며 다음 행선지를 묻는 다이카.
술에 취한 나머지 둘은 믿을 게 못 됐으니, 그나마 말이 통하는 겐지에게 물었다.
“부산이라던데?”
“으음…… 부산…… 갈…… 예정……. 우물…….”
다이카는 하오다에게 현재 위치와 이동할 목적지를 보고했고, 이내 다시 게를 먹는 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