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17)
오후의 한강 공원.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이곳은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 등,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일정한 호흡을 내쉬며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외에 한가로이 나와 강가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는 노인이나 느긋하게 주위를 걸어 다니며 산책을 하는 사람들까지.
그리고 그런 이들 중 조금 눈에 띄는 남녀가 있었다.
“사 준 옷, 그대로 입고 나왔네요?”
“네가 제일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서 입었는데…… 싫어?”
“아뇨, 오히려 좋죠.”
데이트 복장으로는 충분히 고급지고 세련된 옷을 입은 남녀였지만, 그 장소가 공원이라면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 있다면 더더욱.
물론 커플끼리 여유롭고 화기애애하게 자전거를 타는 게 뭐가 문제인가 싶겠지만, 둘이 탄 자전거의 속도가 어지간한 전력 질주를 넘어서는 속도라면 문제가 된다.
촤악, 촤악, 촥-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엄청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자전거의 체인.
그리고 그런 급박하고 정신없는 자전거와 달리, 두 남녀는 매우 평온했다.
“그보다, 왜 여기서 보자고 한 거야?”
“데이트는 하고 싶지만, 지금 업무 때문에 그럴 여건이 안 되니까요?”
마치 선수들이 1등을 두고 서로 경쟁하듯 속도를 올리는 둘이었지만, 나누는 대화는 한가롭고 정겹기 그지없었다.
“휴가는, 결국 못 받은 거네?”
“받기는 받겠죠. 근데 제가 이래 보여도……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이 있는 입장이니까.”
그러던 그때, 여자 쪽의 휴대폰이 울렸다.
띵-
“아, 잠깐만요.”
데이트(?) 중에 연락이 올 경우에 어지간해서는 확인하지 않거나 대충 보고 넘기겠지만, 여자는 그러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
촤아아아악.
급격한 브레이크에 땅에 쓸리며 타이어 자국을 남기는 자전거.
“으…… 조금 천천히 타야겠는데?”
남자는 자전거를 손상시켰단 생각에 표정을 찌푸렸고, 그사이에 여자는 자신에게 온 연락을 확인했다.
“으음…… 선배, 잠깐 가 봐야겠어요. 나중에 오기로 한 사람이 지금 왔다네요.”
상당히 귀찮은 일을 마주한 듯, 미간 사이를 찌푸리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여자.
“그럼 같이 가자, 화연아.”
“……괜찮겠어요?”
한강에서 자전거 데이트(?)를 하고 있던 것은 영의와 화연이었다.
오늘 잡혀 있던 인터뷰 일정 탓에 복장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고, 어디론가 멀리 가기도 힘들었기에 여기서 데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이고.
둘은 각성하기 이전부터 체력과 운동 능력에는 자신 있었기에, 불편한 옷을 입은 채로도 주행 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뭐 어때? 내 정체가 까발려지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그것만 끝나면 자유라며? 빨리 끝내고 저녁에 야경이나 보러 가자.”
“그렇기는 하지만……. 네, 그냥 가죠.”
영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길드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던 화연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잠시 멈췄다.
“아, 자전거만 좀 반납하고 와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지금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알겠어. 금방 따라갈게.”
영의에게 자전거의 반납을 맡긴 뒤, 주차장에 주차해 둔 차를 타고 길드로 돌아가는 화연.
약간의 교통 체증과 복잡한 도로로 인해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복귀한 화연.
그런 그녀가 급히 길드 건물로 뛰어 들어갈 때, 먼저 와 있던 영의가 그녀를 반겨 주었다.
“조금 늦었네?”
“차가 막히더라고요.”
영의는 화연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냥 내가 데려다줄 걸 그랬나?”
“눈에 띄니까, 그런 짓 하지 마요. 요즘 은색 헬멧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그때, 건물 내부에서 한 여직원이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부길드장님! 오셨으면 빨리 와 주세요! 제발!”
화연을 향한 여직원의 간곡한 외침에, 화연은 영의에게 차 키를 넘겨주었다.
“네, 잠깐 차 좀 부탁드려요.”
이내 키를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이는 영의.
“알았어. 얼른 들어가 봐.”
“고마워요!”
화연은 영의에게 감사를 표하며 여직원을 따라 급히 이동했고, 로비에서 이미 엘리베이터를 잡아 두고 있는 직원에게 갔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6시쯤에 오기로 했는데, 벌써 왔다니?”
약속 시간보다 네 시간이나 빨리 온 손님의 횡포(?)에 당황하여 직원에게 상황을 묻는 화연.
“그게, 저도 몰라요. 패트리어트랑 동행한 기자분이 이것저것 설명하고 말리긴 했는데…… 그냥 왔다고…….”
“아이, 진짜. 그 사람은 왜 그렇게 기분파야?”
“제 말이요…….”
미국의 1위이자 세계 최정상급 각성자이니만큼 패트리어트는 유명했고, 국가 소속인 만큼 인터뷰에도 흔쾌히 응하고 외부 노출이 많았다.
그 때문에 그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설마 공식적인 약속에서까지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할 줄은 알지 못했던 신화 길드의 직원들.
“그, 그래도 실례라는 건 알았는지 조용히 대기하고 있더라고요.”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실례야! 시찰한다고 온 군대 사단장이나 고위 공무원들처럼! 그냥 불편해!”
여직원은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려 했지만, 엘리베이터를 잡아 둔 남자 직원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렇게 나름의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침묵을 유지하는 화연.
띵-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목표한 층수에 도착했고, 화연은 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바깥으로 나왔다.
“어디에 있어?”
“2번 회의실요.”
화연은 길드원의 말을 듣고, 곧바로 2번 회의실 쪽으로 걸어가며 머릿속으로 예상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좋아, 사생활 질문은 다 넘기고…… 게이트에 대해서는 영석 아저씨가 말해 준 대로만. 할 수 있다, 신화연. 미국 1위라고 해도 질문은 기자가 할 거야.’
똑똑.
회의실의 앞에 도착한 그녀는 이내 회의실 문을 두드렸고, 안에서 그에 대답하듯 번역기를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들어오셔도 됩니다.”
물론 인터뷰를 하러 온 것이 패트리어트와 기자고, 주체는 화연이었기에 주객전도가 된 게 아닐까 싶었지만 정작 인터뷰 대상자가 먼저 자리를 떴기에 누가 잘못인가를 따지기에는 애매했다.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의외로 다소곳하게 의자에 앉아 있던 가벼운 옷차림의 한 미국인이 머그컵을 들어 올렸다.
“음료는 더 이상 안 주셔도…….”
“실례합니다. 오늘 인터뷰를 하러 온 미국의…….”
서로 각자의 말을 동시에 내뱉어 버려 잠시 어색함에 멈추는 둘.
그리고 그때, 동양 혼혈로 보이는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반갑습니다, 신화연 씨. 오늘 인터뷰를 담당하게 될 한스 기자입니다.”
어색함을 깨고 들어오는 눈치 빠른 기자, 한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하던 화연은 기자 본인의 이름만 듣고 언론사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 네. 그…… 혹시 어디 언론사인지……?”
“아, 제가 취재할 내용은 각 언론사에서 선별하여 뽑아 온 질문들이 공통이기 때문에 공동 취재입니다. 그 때문에 소속은 말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공동 취재인 만큼, 단순히 질문하는 기계 정도로 생각하라는 농담과 함께 화연에게 자리를 권하는 한스.
“앉으시죠. 혹시, 인터뷰 전 요청 사항이나 필요하신 것은 없으신가요?”
“아, 아뇨. 그보다…… 왜 이렇게 일찍 오신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화연의 질문에 한스는 작게 웃었다.
“하하, 인터뷰 대상은 제가 아니지만 대답해 드리죠. 패트리어트 님이…… 약속 장소에 빨리 나가는 것이 미덕이라며 공항에서 이곳으로 곧바로 왔습니다. 그 때문에 이 시각에 도착한 것이고요.”
“늦게 도착하면 손해가 되지만, 일찍 도착하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법이지!”
패트리어트는 머그컵을 홀짝이며 호쾌하게 웃었지만, 한스는 표정을 굳혔다.
“저는 그 일찍의 기준이 진심으로 평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네.”
한스의 말에 대놓고 동의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이는 화연.
“크흠, 그럼 지금부터 인터뷰를 시작…….”
호록.
“……패트리어트?”
한스는 패트리어트가 음료를 마시는 소리에 뭔가 거슬렸는지, 고개를 조금 비틀었다.
“왜 그러나, 한스?”
“나가서 드셔 주시겠습니까? 촬영은 못 해도 녹음은 할 수 있는 만큼 기기를 좋은 걸 가져와서 말입니다.”
정중하게 근거를 대며 패트리어트의 퇴실을 요구하는 한스.
“소리를 안 내고 먹으면 되잖나?”
“정중한 부탁입니다. 저는 기자로서 제 일을 하러 여기 온 거고,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만 그것이 방해를 받는다면 제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일리가 있어.”
한스의 논리 정연한 말에, 패트리어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머그컵을 든 채로 회의실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바깥에서 안쪽 상황을 구경하려는 듯한 직원들과 마주친 건지, 놀라는 소리와 웃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회의실의 방음문이 닫히자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다.
“후우…… 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네, 그러죠.”
한숨을 내쉬며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하는 한스와 패트리어트가 나간 것이 내심 마음에 드는 듯 미소 짓는 화연.
“그럼, 첫 번째 질문입니다. 게이트 소멸 사건 당시, 혹시 주변의 환경이나 게이트 내부의 환경 등 평소와 달랐던 것이…….”
한스의 질문은 확실히 엄선되고 여러 언론사 중 선별된 것만 모아 온 만큼, 정교하거나 제법 전문적인 질문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질문에 하나하나 성실히 대답해 주는 화연.
사생활에 대해 묻거나 개인적 의견이 아닌, 명확하고 객관적인 것들만을 물어보니 화연도 질문에 대답할 의욕이 제법 생겼다.
“자, 그럼 모든 질문이 끝났는데…… 개인적으로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가능하겠습니까?”
질문할 것이 전부 끝났는지 녹음기를 끈 뒤, 한스는 화연에게 개인적인 요청을 하나 하려는 듯 보였다.
“……사생활이나 제 개인적 견해에 관한 것만 아니라면 뭐든지요.”
화연은 질문 하나 정도야 괜찮겠지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솔직히, 모두가 미공략 게이트 소멸에 집중할 때 저는 다른 것에 집중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이 나라에 있었던 각성자 아카데미 습격 사건.”
한스의 질문에 묘한 불안감이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한 화연.
“그 습격 사건 때, 돌연 나타난 히어로 같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은색 헬멧을 쓰고 있었죠. 그리고, 미공략 게이트 소멸 사건 당시에 은색 헬멧의 남자가 또 나타났다는 걸 압니다. 이것도 알고 계시겠죠?”
이미 퍼진 사실이었기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화연.
“네……에.”
“저는, 그 은색 헬멧의 남자가 매우 궁금합니다. 대체 뭘 하는 사람일까? 아니, 어떤 인물이길래 홀연히 히어로처럼 나타나고 사라지는 걸까?”
화연은 한스의 말이 계속 이어지려 하자, 질문받는 것을 멈추려 했다.
“저기, 이야기가…….”
하지만 그녀는 이어지는 한스의 말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야말로 정체를 숨긴 히어로! 어릴 적부터 보던 코믹스에서 나오는 히어로 같지 않습니까! 물론 현대에서야 각성자들이 히어로처럼 있지만 정체를 숨기고! 위기 상황에 나오는!”
히어로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빛내기 시작한 한스.
화연은 그런 한스를 보며 자신의 감이 조금 틀렸다고 생각했다.
‘뭐야, 그냥 히어로물 팬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일본이나 미국에서 선배를 히어로로 본다는 그런 여론도 있다고 들었었지.’
그렇게 한스의 히어로 예찬론과 혹시 그의 정체가 짐작 가는 게 있냐는 한스의 사소한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는 끝이 났다.
“오, 끝났나?”
바깥에서 길드 직원들이 가져다준 다과를 하나씩 까먹으며 기다리던 패트리어트가 한스를 보고 화색을 띠었다.
“네, 패트리어트. 이제 돌아가실 겁니까?”
“아니, 나는 조금 여행이나 하다가 갈까 하네. 자네는?”
패트리어트는 명령으로 한국에 오긴 했으나, 별문제가 없는 한 이곳에 잠시 머무르다 가고 싶은 듯 보였다.
“이제 인터뷰를 땄으니, 가서 최대한 빨리 기사로 써야죠. 제 손에 미국의 모든 언론사가 주목을 할 겁니다.”
“하하하, 그래. 조심해서 가게.”
“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뜻밖의 이른 방문에도 친절히 맞아 주시고 응대해 준 직원분들도요.”
그렇게 신화 길드 인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빌딩을 떠나는 한스.
“택시!”
그는 택시를 잡고 올라탔다.
“어이구, 외국 손님이네?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 기사는 번역기를 켜고 말을 건넸지만, 한스의 입에서 나온 것은 유창한 한국말이었다.
“인천공항으로 갑시다, 기사님. 따블로 드릴게요.”
번역기를 거친 게 아닌, 목소리로 직접 들려오는 한국말의 끝에 붙은 따블이란 말에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지는 택시 기사.
“이야, 한국 분이셨나 보네? 꽉 잡아요! 금방 갑니다!”
이내 공항으로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하는 택시.
그 안에서 한스…… 아니, 선지자는 방금 전 인터뷰에서 화연의 반응을 떠올리고 있었다.
‘은색 헬멧에 대한 언급을 했을 때 잠깐 놀라 박동이 빨라졌고, 정체를 물으려 하자 경계심이 생겨났다……. 그리고 주제가 히어로 쪽으로 넘어가자 안도한 듯 체온이 올라갔지. 확실하다. 뭔가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선지자는 화연이 뭔가 알고 있다는 확신을 품으며, 그의 부하가 한국에서 난동을 일으킬 때 조금의 변화를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