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13)
시라와 함께하는 정령술 수업 2일 차.
숲요정 마을 외곽의 한 숲속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타닥, 타다닥-
한 나무가 드릴로 뚫은 듯 움푹 파여 있었다.
그리고 파인 부분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불과 타들어가 숯이 되기 시작한 내부.
다른 부분은 멀쩡한 나무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유독 한 부분만 타오르고 있었다.
“아, 또 불이네…….”
시라는 불이 붙은 나무를 향해 손짓했고, 그러자 그녀의 옆에서 작은 물방울들이 날아가 불을 끄기 시작했다.
칫, 치익-
불이 조금씩 꺼져 가고는 있었지만, 타오르는 기세가 그리 쉽게 꺼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때, 불이 난 곳으로 뿌려지는 물줄기.
촤악-
“여기, 물 가져왔어요. 급해 보여서 바로 붓긴 했는데…….”
시라의 딸, 미딜이 물을 부어서 불을 끈 것.
“고맙구나. 아무리 적응이 안 돼도 그렇지, 숲을 다 태워 먹을 셈이야? 조심해.”
불을 낸 장본인에게 소리치며 경고하는 시라.
“미안하다니까……. 근데 아차 하면 이미 튀어 나가 있다고. 그렇다고 튀어 나가는 번개를 조종하려면 정작 정령술이 안 되잖아.”
정령술의 연습 중 뇌기의 통제를 번번이 실패한 영의.
그 탓에 주위의 나무들 중 멀쩡한 게 별로 없었다.
사실 시도할 때 단번에 성공한 사람이 없는 정령술이었고, 수호자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시라조차도 가르치는 데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으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파직, 팟!
그렇게 시라가 교육방식을 고민하고 있던 그때, 또다시 뇌기가 튀어 나갔다.
다만 이번엔 방금 전을 의식해서인지 뇌기가 약했고, 영의가 금방 다시 거두어들였다.
“아, 진짜! 엄청 힘드네!”
“바로 될 거란 생각은 나도 안 했어. 천천히 여유를 갖고 해 봐. 그 왜, 자연의 시험도 금방은 안 됐잖아?”
숲요정들 중에서도 정령을 제대로 다룬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나도 처음부터 되진 않았지. 다시 차근차근 해 보자.”
사실, 영의가 생각한 정령은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원소들 비슷한 개념이 많다.
불을 다루는 불의 정령이라든가, 생각할 줄 알고 각자의 의지를 가진 물이나 돌 같은 것들.
그런 정령들과 대화를 나누고 힘을 빌려 쓰는 것이 영의가 가지고 있던 정령술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지금 영의가 배우는 것은 그런 자연 속의 어떠한 의지와 소통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호자님이 말하기를, 알아서 공격하고 움직이도록 우리가 전부 명령을 하고 짜 둬야 한다고 하셨어.
-말 그대로 아무런 의지가 없는 자연에 우리가 의지를 부여하는 거지.
시라는 정령술에 대해 설명해 주며 자연에 본인의 의지를 깃들게 한다는 것이 매우 낭만적이고 멋진 일이라는 듯이 설명했다.
그리고, 미딜은 평소에 듣지 못했던 정령술의 상세한 이야기를 매우 관심 있게 경청했고.
하지만 영의는 시라가 한 이야기를 듣고 정령술에 대해 대략적인 감이 잡혔다.
‘……내가 자세히는 몰라도, 그거 프로그램 짜는 그런 거 아닌가……?’
학창 시절, 정보 시간에 게임만 하지 않고 가끔 수업도 들었던 영의.
그런 그의 기억 한구석에서 시라가 말했던 것과 비슷한, 정보 시간의 수업 내용이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근데, 그걸 어떻게 하는지가 문제지…….’
대략적인 기억만 났을 뿐, 방식이나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영의.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정보 시간에 했던 고전 게임들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 다닐 때 시험공부라도 해 볼걸……!’
어차피 수업을 안 들었으니 공부를 해 봤자 아는 게 없을 거란 판단에 공부를 안 한 영의는 과거의 자신을 자책했다.
결국 최소한의 접근 방식과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만 잡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숲요정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우위에 있었고, 어떻게 되든 작동만 하게 만들면 된다는 장점 또한 있었지만 영의에겐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결국, 중간 과정을 모르는 건 똑같잖아.’
육체와 머리가 밸런스 있게 타고난 동생과 달리 육체에만 밸런스가 쏠린 영의.
무식한 건 아니지만 어렴풋이 배운 걸 응용하고 쓸 정도로 똑똑하지 않았던 그에게 이번 과제는 상당히 난해했다.
그렇게 1일 차를 무의미하게 넘기고, 2일 차에 접어든 영의.
“그러니까, 공격을 하게 하는 것과 공격을 자제하게 하는 것을 동시에 해야 해! 예를 들어 달리는 것과 멈추는 걸 둘 다 할 수 있게! 생각을 해, 영의! 생각!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 내야 한다고!”
영의는 시라와 함께 정령이란 이름의 자동 공격 프로그램(?) 만들기를 열심히 시도하고 있었지만, 설명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걸 뭐 어떻게 하란 건데?!”
한편 영의가 삽질을 하는 동안, 시라의 설명을 옆에서 들었던 미딜은 상당한 성과를 보여 주었다.
“짠!”
손바닥 위에서 물방울을 이리저리 옮기며 모양을 만들어 내는 미딜.
“휘요(멋지다)!”
그런 미딜의 묘기를 구경하며 감탄하고 있는 뇌영.
둘은 영의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알 바 아니라는 듯,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 조금만 더 해 보면 되겠지. 조금만 더…….”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연발한 것이 결국 일주일째가 되었다.
중간에 시라와의 말다툼도 있었고, 미딜이 과자에 조련당한(?) 일도 있었지만 수련 일주일 경과, 영의는 일단 무언가를 만들어 내긴 했다.
“돼, 됐다!”
파직, 팟-
그의 주변을 맴돌며 지속적으로 스파크를 튀기고 있는 밝은 물체.
영의는 비로소 정령 같아 보이는 뭔가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소리쳤다.
“내가 해냈다! 으아아!”
하지만, 그를 지켜보는 두 숲요정 모녀는 영의의 정령(?)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전혀 다른 물건을 마주했을 때 인지 부조화가 온 듯이.
“으음……?”
“어, 저런 게…… 있었나?”
성공했단 기쁨에 하늘을 보며 양팔을 벌리고 있던 영의는 두 모녀의 반응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뭐?! 이게 아니야?”
영의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하며 영의의 정령(?)을 쳐다보는 모녀.
“아니, 그게 아니라…….”
“뭐랄까,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정확하게 말 좀 해 봐. 어떤 건데?”
시라는 자신의 손 위로 바람을 일으켜 나뭇잎을 띄워 올렸다.
“글쎄, 사실 우리들도 정령을 만들 때 구체적으로 명확한 걸 쓰거든. 돌이라든가 나무, 바람 같은 거.”
그중 돌이 영의가 마을에 왔을 때 그를 공격해 온 것일 테고, 나무가 그를 가두는 데 썼던 감옥이었다.
“정령술은 감각만 익히면 다른 사람이 발달시켜 둔 것도 이어받아서 쓸 수 있기 때문에 잘 쓰는 건 시간이 갈수록 잘 쓰게 되는데……. 사실, 우리도 불이나 번개 같은 건 안 해 봐서 잘 몰라.”
형태나 구조 자체는 다른 정령들과 유사하지만, 과거에 같은 것을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시라.
“으음…… 그래?”
그러나 그때, 문득 뭔가 생각난 건지 손뼉을 치는 미딜.
“아, 어머님. 혹시 수호자님이 남기신 것에 삼촌을 위한 조언이라도 있지 않을까요?”
미딜은 영의를 삼촌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첫 만남이야 별로 좋지 않았지만, 함께 붙어 다니고 또 영의 특유의 성격과 과자 덕분에 금방 친해졌던 둘.
오빠라고 부르라고 할 정도로 영의가 양심이 없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저씨라고 불리기에는 자신은 아직 20대라는 속마음이 있었기에 삼촌 정도로 타협을 봤다.
“흠, 뭐 일단 정령을 만들긴 했으니까…… 나쁘진 않겠네.”
시라는 미딜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미딜은 그것을 그리 싫다고 생각하진 않는 듯 몸을 빼거나 하진 않았다.
“그럼, 따라와. 그 장소는 조금 더 깊은 곳에 있으니까.”
본인이 가지고 있거나 숲요정 마을의 어딘가에 숨겨 뒀을 줄 알았지만, 수호자가 남겨 둔 것은 숲요정들의 마을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너무 멀리 가는 것 같은데?”
뭔가를 숨길 때는 아무래도 비밀스럽게 할수록 더 좋다지만 은닉을 해도 너무 과하게 은닉한 게 아닐까 싶었다.
돌아가는 길도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나무를 거치고 돌아서 왔으니까.
“멀리 있어야 할 만큼, 위험한 물건이었으니까.”
시라는 이렇게 멀리 숨겨 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말했고, 이내 그들의 앞에 바위로 된 벽과 그 아래에 위치한 한 작은 동굴이 보였다.
“동굴……?”
“그래, 멀리 돌아와서 잘 모르겠지만 우린 절벽 아래로 왔어. 여기서 조금만 가면 너와 만났던 장소가 나오지.”
영의는 시라의 말에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 회의인가 뭔가를 하던 그 장소?”
“그래, 거긴 아직도 그렇게 쓰이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누군가를 부를 일이 없지. 이젠 시험도 정식으로 치러지지 않으니.”
“마을의 경비 때문에?”
“그렇지. 사실, 경비를 서다 보면 어느새 알음알음 배워 시험을 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게 더 정답이지만.”
시라는 앞장서서 동굴로 들어갔고, 영의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조금 어둡긴 하지만, 그래도 네 정령이 있으면…….”
팟-
느닷없이 나타난 환한 빛이 그들의 앞을 밝혀 주기 시작했다.
“많이 어두워서 불을 좀 켰는데, 괜찮지?”
그리고 그 빛의 근원지는 영의가 들고 있는 휴대폰의 카메라 쪽 LED 조명.
“……그래, 좋네.”
시라는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미딜은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에 눈을 반짝였다.
“삼촌, 그건 뭔가요?”
사실 어지간하면 현대 문물을 잘 꺼내 들지 않는 영의였으나, 숲요정들의 폐쇄적인 성향을 알았고 미딜과 시라를 믿고 있기도 했기에 조명을 켰다.
“음, 나중에 가르쳐 줄게.”
그렇게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 영의는 문득 앞에서 느껴지는 강한 뇌기에 멈칫했다.
“방금…….”
뒤에서 규칙적으로 흔들리던 밝은 빛이 갑자기 멈추자 뒤를 돌아보는 시라.
“아, 너는 여기서부터 느낄 수 있는 거야?”
“네? 뭐가요?”
“아니, 일단 가 보자.”
발걸음을 옮길수록 느껴지는 강한 뇌기에 영의가 걷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수호자라는 양반,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긴 했는데…… 내가 뇌기를 다루는 것도 알고 있었나? 아니, 생각해 보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긴 했는데.’
타이가와 수행을 하기 전, 그는 수호자와 술래잡기를 하듯 숲속에서 추격전을 벌이며 뇌기를 잔뜩 사용했다.
물론 공격용으로 쓴 것이야 없었지만 불을 피울 때라든가 이동할 때 기본적으로 뇌기를 썼던 영의.
이내 뇌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곳으로 도착하자, 그곳에는 작은 공동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동의 중앙,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강렬한 뇌기의 덩어리.
마치 영의의 주변에서 회전하는 정령이 극에 달하면 저렇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처럼 보였다.
“……저게, 나한테 남겨진 거라고?”
뇌기의 덩어리를 보며 시라에게 재차 확인하듯 물어보는 영의.
“그래. 직접 주지도 않았어. 그냥 이 장소를 가르쳐 줬었지. 그리고, 전언도 있어.”
“전언이라…… 그러고 보니 그랬지.”
영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언까지 들어 보기로 했다.
“음, 뒷부분이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최대한 기억하는 대로 얘기할게.”
“그래.”
“잠깐 지켜봤지만, 이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미 외부에서의 개입이 시작되었으니 살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더 마련하는 게 좋을 거다. 차원 간의 이동을 너무 맹신하지 말고.”
시라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멈췄다.
영의는 이 말을 듣고, 수호자가 의문의 남자라는 것을 눈치챘다.
‘차원 간의 이동……. 그 남자구나. 그보다,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이 부분까지는 나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 무슨 소린지 모르는 내용이긴 했어도 최소한 아는 말이니까. 하지만 다음 부분은 나도 모르는 말로 했어. 최대한 기억하는 대로 말해 줄게.”
이윽고 다시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하는 시라.
미딜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영의에게는 그 말이 제대로 번역되어 들렸다.
물론, 일부는 제대로 번역되지 않는 듯했지만 뜻 자체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네 모습을 보니 충분히 보였다. 무기는 선호하지 않는 모양. 하지만 방어구는 이야기가 다름. 산과 골방에 틀어박혀 사는 작고 단단한 장인들을 소개해 주겠다. 너에게 조언을 해 주는 인형에게 묻는다면 대답해 주겠지. 그리고 정령에게 먹이 많이 금지.”
전언이 끝나고, 시라는 한숨을 내쉬며 마음속 짐을 하나 덜어 버린 듯한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휴, 이제 여기까지 오는 길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보다 저건 어쩔 거야?”
시라는 뇌기의 덩어리를 가리키며 그것의 처우에 대해 물어봤지만, 영의는 그런 것 따위 관심 없었다.
‘산과 골방에 틀어박혀 사는 작고 단단한 장인……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히 드워프 아닌가?!’
앞에 경고와 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의는 또, 새로운 판타지 쪽에 묘한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