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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61화 (161/325)

#제161화 (12)

영의와 시라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퍼진 전염병이 있었고, 그 병을 고칠 약초를 찾기 위해 영원의 숲까지 들어온 인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중 가족을 치료하러 온 이도 있었지만 본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온 환자까지 있었고, 숲요정들에게도 병이 퍼졌다.

물론 지금은 지나간 일이지만, 숲요정들에게 있어 그때의 일들은 재앙에 가까웠다.

“……그래서 인간들을 그렇게 배척하는 거야? 병을 퍼트려서?”

“그것 말고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단순히 약초만 찾아서 오는 인간들이야 적당히 돌려보내면 그만이었다.

안 가겠다고 버티는 경우에는 찾는 약초를 적당히 갖다 주거나 위치를 알려 주면 알아서 돌아갔고.

하지만 숲에 오는 인간들이 약초만 찾으러 오는 것은 아니었다.

작정하고 숲요정들을 노리고 오는 인간들도 있었고, 숲요정들에게 약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이런저런 혼란도 빚어졌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숲요정들도 병에 걸려 사상자가 나왔으며 그중에 한 명이 시라의 남편이자 미딜의 부친이었다.

“그리고 또 어디서 알아 온 건지는 몰라도 네가 입은 옷과 똑같이 차려입고 접근해 오는 인간들도 있었어. 물론 우리들이야 분간이 가능하지만, 몇몇 어리숙한 아이들은 그걸 몰라 납치되는 일이 있었지.”

영의는 자신이 입고 온 숲요정들의 옷을 내려다보았고, 시라는 옛이야기들을 하자 좋지 않은 기억들도 함께 떠올랐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런 거구나. 너희도 참…… 고생이 많았어.”

영의가 위로의 말을 건네자, 작게 미소 짓는 시라.

“그래, 하지만 모든 인간이 나쁜 건 아니었어. 병을 퍼트린 것도 인간이긴 했지만, 역으로 병을 치료할 약을 전해 주러 온 것도 인간이었고.”

비록 병 주고 약 주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인간들이 모두 악하고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만 있다는 게 아니란 걸 그들도 알고 있었기에 침입자를 사살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인간들 쪽도 숲에 들어가는 것은 금지하기로 약조했지만…… 뭐 세상이 다 시키는 대로 되진 않으니까.”

이제 시라의 근황에 대해 대략적으로 들을 만큼 들었다고 생각한 영의는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수호자, 그 양반이 남긴 게 있다고 했는데…… 그게 뭐야?”

“아, 그래. 네가 오면 전해 주라고 한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할 게 있어.”

시라는 수호자가 남긴 전언이 무엇인지 아는 듯했지만,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듯했다.

“할…… 것?”

“그래, 수호자님이 남긴 것을 그냥 전해 주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세월이 지나 그것에 대해 알아 갈수록 더더욱 그냥 주면 안 될 것 같더라고.”

수호자가 무엇을 남긴 건지는 몰라도 시라가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아 위험하거나, 특이하거나, 괴상한 것일 게 틀림없었다.

어쩌면 그 셋 모두가 다 해당되든가.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주지 않자 답답해진 영의는 시라에게 재차 물어보았고, 시라는 제대로 대답해 주었다.

“정령.”

“정령?”

머릿속에 판타지 지식들과 지금까지 읽었던 여러 소설들이 스쳐 지나가는 영의.

‘정령? 그, 흔히 엘프들이 다루는 그런 거?’

뭐, 눈앞의 시라나 미딜 같은 숲요정들이라면 이미지상 제법 어울리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 자연과의 소통에 대해 실마리를 잡은 지 하루 만에 해낸 너라면 금방 할 거라 생각해. 어렵지도 않을 거고. 정령술의 기초 정도는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가자.”

수호자가 무엇을 남기고 간 건지는 몰라도, 드루이드에 가까웠던 숲요정들을 정말 엘프처럼 만들어 버린 것을 보니 그 힘이 보통은 아닌 듯싶었다.

“지금 밤인데……?”

영의도 정령술을 배우고 싶었으나, 바깥을 내다보자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

“아, 맞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네……. 옛날처럼, 자고 갈래?”

시라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영의에게 자고 갈 것을 권했다.

그리고 인간을 집에 들인 것까지는 어떻게든 참아도, 잠까지 자고 가게 한다는 건 참지 못한 건지 소리치는 미딜.

“어머님!”

“아니, 괜찮아. 예전에야 뭐 머물 곳도 없고 친구 집에 묵는 느낌으로 있었지만…… 아무래도 실례잖아.”

예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고, 시라의 부모님도 계셨기에 친구 집에 잠시 신세 진다는 느낌으로 머물렀다.

하지만 지금의 시라는 딸까지 있는 상태였고, 더군다나 남편도 없지 않은가.

“그래, 그렇긴 하네.”

“내일 다시 찾아올게. 아마 그 난리를 쳐 놨으니 내 얼굴을 기억 못 할 사람은 없지 싶은데…….”

영의가 내일 오겠다고 하자, 시라는 그가 다시 마을로 들어올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걱정 마, 혹시라도 누가 막으면 내 이름이나 타이가 원로님의 이름을 대면 될 거야.”

“글쎄, 그 두 이름을 댔어도 날 끌고 온 애가 있긴 한데…….”

영의는 미딜을 살짝 쳐다보며 그런 말을 했고, 시라가 그 시선을 따라 자신의 딸을 쳐다보았다.

모친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움찔하는 미딜.

“뭐, 귀엽게 봐줘. 거꾸로 말하면 마을을 그만큼 지키고 싶었다는 걸 테니까. 난 갈게.”

영의는 미딜과 시라를 향해 웃어 주고는 집 밖으로 나섰고, 바깥에서 그를 기다리던 뇌영과 함께 숲속으로 사라졌다.

“……어머님?”

집에 단둘이 남게 되자, 혼날 것을 염려한 미딜이 시라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응, 왜 그러니?”

집 안에서도 어느 정도 여왕의 모습을 보였던 시라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당황하는 미딜.

평소에는 집에서도 그녀에게 가끔 웃어 줄 때 외에는 늘 업무를 할 때처럼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다녔던 시라.

하지만 친구라는 남자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의 시라는 전에 없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니, 그게…… 음.”

그리고 그런 모친의 모습이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미딜.

“아, 너는 이런 내 모습을 처음 보는 거겠지. 그저…… 옛 추억이 조금 떠올랐을 뿐이란다.”

미딜은 시라의 말에 뜻밖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님의 추억이라고……? 저 인간이랑?’

“옛, 추억 말씀이신가요?”

“그래, 힘들고 고생은 많았지만 인생에서 두 번째…… 아니, 세 번째로 즐겁고 행복했던 때였어.”

비록 기절할 것 같고(기절했었다) 눈물이 날 것만도 같았던(눈물 흘렸다. 그것도 아주 많이) 타이가와의 일주일이었지만.

그래도 옆에서 자신을 은근히 챙겨 줬던 동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의 수행은 별로 좋은 추억이 아니었지만, 마을에서의 시간은 제법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던 그녀.

“번개를 불러오며 하늘을 날고, 인간들의 이야기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신기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는 친구였었지.”

“네……?”

번개를 부른단 말에 문득, 영의를 감옥에 집어넣던 때에 그가 줄을 풀어내던 과정을 떠올린 미딜.

“그런데, 하늘을 날 수 있었으면 왜 우리에게 잡혀 준 거죠……?”

시라는 미딜의 말에 웃으면서 답해 주었다.

“그거야, 네가 나랑 꼭 닮았으니 그런 거겠지. 그 친구는 지금 너와 똑같을 때의 나를 만났었거든.”

“네에?”

미딜은 지금 머릿속이 상당히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머님이 아버님을 만나기 직전의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20년 이상. 2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아직 젊다고……?’

“후후, 생각이 많아 보이는구나. 뭐…… 그 친구의 대단함을 보면 너도 알게 될 거란다. 간만에, 같이 자겠니?”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어 든 시라는 오랜만에 여왕으로서가 아닌, 엄마로서 미딜을 대하기 시작했다.

“……네.”

* * *

미국 JFK 국제공항.

한국의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보잉 747기의 1등석에 몸을 싣는 두 사내가 있었다.

“흐음, 원래대로라면 군용기나 전용기로 갈 텐데. 회사에서 허가를 안 해 줬나 보군?”

기내에서 굳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티셔츠 차림의 근육질 남자가 자신의 옆자리에 있는 양복 입은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저는 솔직히 전용기라는 거에 한 번쯤 타 보고 싶었습니다만, 뭔가의 사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전 1등석을 탄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쁩니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 공손히 대답하며,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 가방을 끌어안고 있는 양복 차림의 남자.

“혹시라도 다음에 나랑 또 어딘가 갈 일이 있다면 그땐 전용기를…….”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내에게 승무원들 일부와 기장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하듯, 기장은 자신의 모자를 벗어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게 예를 표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이송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패트리어트.”

패트리어트는 기장이 자신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 의문이라는 듯 선글라스를 벗고 물어보았다.

“으음? 이거, 민항기 아니었나? 군용기가 아니라면 굳이 나에게 예를 표할 필요가 없을 텐데?”

군 소속이며, 계급상 대령에 위치한 패트리어트였으니만큼 군인들에게는 경례를 받았고 최강의 각성자인 만큼 종종 그에게 예우를 표해 오는 군인들도 있었다.

“아,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각성자 수송 부대의 공군 출신에다 당신 덕분에 가족이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면 예를 표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음, 전우였군? 내가 구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기억은 못 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구했다는 자네 가족이 지금 잘 살고 있길 바라지.”

패트리어트는 붙임성이 제법 있는지, 넉살 좋게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매우 잘 살고 있습니다. 다음 달에 결혼까지 할 정도로요.”

기장은 패트리어트의 말에 공손히 답했고, 그 말을 들은 패트리어트는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그거 멋지군! 초대장을 보낸다면 휴가를 내서라도 가도록 하지!”

“와 주신다면, 정말 영광이겠습니다.”

기장 이후로 여러 승무원들이 그에게 악수나 사인, 사진 등을 요청하였고 패트리어트는 웃으면서 모두 받아 주었다.

“자, 그럼 이제 각자 할 일을 해야지. 나 말고 보살핌이 필요한 승객들에게 가 볼 수 있도록, 친구들.”

“아, 네!”

패트리어트는 사람들을 다루는 것에 능숙한 듯, 승무원들을 각자의 자리로 돌려보낸 뒤 그의 좌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이것 참. 의외의 장소에서 전우를 만났군.”

한때 자신이나 자신의 동료들을 태워다 주었을 파일럿을 만나고 좋은 소식까지 듣게 되자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짓는 패트리어트.

“……결혼식, 가실 겁니까?”

그리고 그런 패트리어트에게 질문하는 양복 차림의 남자.

“물론이지, 한스. 자네는 군에 입대한 적 없나?”

“하하, 보시다시피 제 체격이 왜소한 데다 천식이 조금 있어서.”

양복 차림의 남자는 조금 마른 편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건강한 몸이었다.

다만 옆에 있는 패트리어트의 몸에 비하면 허약해 보였을 뿐.

“으음, 국가를 위한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군인이 될 수 있겠지만…… 천식은 조금 힘들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패트리어트는 지금 한국에서 일어났다는 미공략 게이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실 그가 갈 이유는 없었지만, 각국에서도 정보를 얻기 위해 사람을 보내고 있는 만큼 가장 잘 먹히는 카드가 필요했다.

그리고 미국의 최강자이자 세계에서도 최정상급인 그가 직접 면담을 요청한다면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자인 한스와 동행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난 한국말은 물론이고 다른 외국어도 못하지만 자네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한스. 5개 국어를 한다고? 혼혈인 건 외모로 봐도 알겠지만 5개나 할 줄은 몰랐네.”

“네.”

“요즘처럼 번역기가 잘 나오는 시대에도 굳이 외국어를 배우려 한다니…… 좋은 자세야. 물론 그런 만큼 자네가 나와 함께 오게 된 것 같지만.”

“하하, 과찬이십니다.”

한스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웃었고, 패트리어트는 한스의 그런 겸손함이 그리 싫지는 않은지 그에게 웃어 보였다.

“그럼 나는 식사 시간 전까지 조금 자도록 하겠네.”

시트 옆의 버튼을 눌러 의자를 젖히고는 거기에 눕는 패트리어트.

“네, 편히 주무십시오.”

패트리어트는 한스의 말을 듣지도 못한 채, 곧바로 수면에 빠져들었다.

“쿠으으…….”

그리고 패트리어트가 잠든 것을 확인한 한스는 슬쩍 그를 쳐다본 뒤, 서류 가방을 열고 안에 든 것을 꺼냈다.

거기서 나온 것은 노트북과 태블릿, 헤드셋에 과자 봉지 하나.

“은색 헬멧…….”

한스는 헤드셋을 쓰고는 과자 봉지를 열어 과자를 먹으며 태블릿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부스러기들은 모두 그의 셔츠에 떨어졌으나 신경쓰지 않는것인지, 아니면 모르는것인지 한스는 과자 부스러기를 치우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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