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11)
숲요정들의 마을에 구속되고 대략 2시간이 지나자, 영의는 엄청난 적응력을 보여 주었다.
“이봐, 보초 친구. 하나 먹을래?”
“…….”
“싫으면 말고.”
감옥 안에서 느긋하게 과자와 음료수를 까먹고 있는 영의.
감옥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그런 허락되지 않은 물건들을 빼앗기 위해 시도했지만, 영의의 몸놀림을 이겨 내진 못했다.
지금 여기 잡혀 있는 것도 적당히 협조를 하기 위해서일 뿐, 소소한 즐거움까지 빼앗기진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경비병들이 감당하지 못하자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다른 숲요정이나 시라를 닮은 소녀까지 영의에게서 과자를 빼앗으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아…… 하아……!”
체력이 한계에 달한 듯, 숨을 몰아쉬는 소녀.
“그러니까, 너희 엄마 불러오라니까? 불러만 오면 아는데 거참. 안 되면 타이가 아재라도 불러 달라고.”
소녀는 영의의 여유 만만한 태도에 짜증이 솟구친 듯, 소리를 빼액 지르고는 감옥을 발로 걷어찼다.
“시끄러워! 거기 가만히 갇혀나 있어!”
“참 나, 그냥 보기만 하면 금방 끝날 텐데. 어쩌다가 저런 딸을 낳았을까…….”
영의는 시라의 딸로 추정되는 소녀를 보며 혼잣말을 하다가 문득 그 해답을 곧바로 얻어 냈다.
“맞다, 생각해 보니까 시라랑 성격이 똑같네.”
감옥의 한복판에서 여유롭게 과자를 씹는 영의.
“휘로로, 휘윳(그건 그렇다 쳐도, 이래도 돼요)?”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의문스럽다는 듯 작게 우는 뇌영이 있었다.
“뭐가? 시라야 뭐 좀 기다리면 오겠지. 높은 자리에 있는 모양인데.”
사실, 영의가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곳의 시간 흐름이 지구보다 명백히 차이가 나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한 일주일 있다가 가도 하루 정도 지나는데 뭘.’
두 번째,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자신의 힘으로 대처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딱히 강한 사람은 없는 것 같고…… 그때 봤던 돌 쏘는 그 이상한 것만 조금 조심하면 알아서 나갈 수 있겠지. 여차하면 지구로 가면 될 거고.’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알림이가 딱히 아무런 조언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흐음…… 그보다, 너무 늦어지면 나도 집에 좀 다녀와야 하는데. 일주일이 1일이면…… 7시간이 1시간이란 거니까…… 7분 정도 안에 다 해결을 해야 하는 건가?”
혹여나 체류가 길어지면 집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을까 봐 이곳과 지구의 시간 차이를 계산하던 그때, 마을 한구석이 소란스러워졌다.
“응?”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영의는 저 멀리서 위풍당당하게 걸어오고 있는 인파들을 보았다.
“여왕님!”
“여왕님이 돌아오셨다!”
여왕이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자,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바닥에 앉는 영의.
“좋아, 동문이나 만나 볼까.”
그는 그렇게 여유로운 표정과 자세로 시라로 추정되는 여왕을 기다렸고, 이내 그의 생각대로 인파는 감옥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라고 사칭을 했다니까요? 대체 왜 제 말을 안 믿어 주시는 거죠? 어머님!”
시라의 딸로 보이는 소녀가 옆에 있는 숲요정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미딜, 이곳은 공적인 자리예요. 아무리 당신이 제 딸이라지만 그래도 공사는 가려야……. 어머.”
그리고 자신의 딸, 미딜의 언행에 주의를 주며 마을에 침입한 자를 확인하기 위해 감옥으로 왔다가 전혀 뜻하지 않은 인물을 만나게 된 시라.
“너…… 너……?”
예전과 크게 달라진 모습은 아니었지만, 긴 머리를 땋아 내리고 이런저런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는 시라의 얼굴에서 당황이 드러나자 작게 미소 짓는 영의.
여기까지 걸어오던 그녀의 얼굴은 근엄하고 굳어 있었지만, 옛 인연을 만나자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랜만이야, 시라. 전에 비해 좀 늙은 것 같지만, 뭐 거기서 거긴 것 같기도 하고.”
표정 그대로, 시라는 수십 년 만에 만난 옛 인연에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당황했다.
함께 수행을 하고 마을에서 잠깐이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동문이자 유일한 인간 친구였던 영의.
하지만 그녀마저도 시간이 제법 흘렀다고 생각할 만큼의 세월이 지났으나 그녀의 친구는 모습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너…… 뭐야?”
“음, 이래저래 설명할 게 많은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거든? 네가 얘기해 주는 게 조금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시라는 영의의 말을 듣지 못했다.
‘뭐지? 틀림없이 인간인데? 왜 안 늙었지? 뭔가 다른 건가? 물론 인간 같지 않은 면모가 많긴 했는데…….’
갑자기 옛 모습 그대로의 친구가 헤어질 때의 복장 그대로 나타났기에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음, 나 죽일 거 아니면 풀어 주지 않을래? 솔직히, 나도 옛날에 너 풀어 준 적 있잖아. 타이가 아재 밑에서 같이 수련할 ㄸ…….”
영의는 시라가 자신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듯하자 말을 계속 이어 나갔고,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시라는 급하게 정신을 차리고 대처했다.
“으와아아아! 거기까지! 알았어!”
다급히 소리치며 영의의 입을 직접 틀어막으려 하는 시라.
“여왕님……?”
“여왕님이, 저런 모습을…….”
그리고 그런 시라의 모습을 본 몇몇 숲요정과 병사들은 당황했다.
“크흠, 큼. 내 옛 친우가 방문했구나. 가도록 하지. 그동안 밀린 담소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으니.”
시라는 영의의 입을 막기 위해 빠르게 감옥에서 그를 풀어 준 뒤, 곧바로 자리를 떴다.
그렇게 자신의 집으로 영의를 데려온 시라.
“너, 어떻게 안 늙은 거야?”
“네가 너무 늙은 걸 수도 있지.”
시라는 일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딸인 미딜에게 차를 타 오게 했고, 미딜은 당혹스러움과 불만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영의를 쳐다보며 차를 내려놓았다.
탁.
“먹어.”
“미딜!”
“……요.”
자신에게 틱틱대는 미딜과 그런 미딜을 나무라는 시라를 보며 영의는 작게 웃었다.
“하하, 딸이 아주 성깔 있네. 사춘기인가 봐?”
“농담하지 말고, 왜 옛 모습 그대로야? 외모야 그렇다 쳐도, 그 옷은…….”
시라는 영의가 입은 옷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물었지만, 영의는 거기에 답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정보가 충분하지 못했다.
“음, 뭐. 나도 몰라. 여기에 다시 와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러 있던걸.”
“흐음…….”
시라는 영의의 말을 듣고 뭔가 생각하기 시작했고, 영의는 테이블에서 멀리 떨어져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시선을 알아챘다.
“그보다, 딸이 생겼더라? 의외인데.”
“그래, 유일한 가족이지.”
“…….”
가볍게 분위기 환기용으로 던진 말이었으나, 분위기가 오히려 무거워지자 침묵하는 영의.
“유일이라면, 남편은…….”
“죽었어.”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남편과 사별했다는 말에 영의는 표정을 굳혔고, 미딜의 인간 혐오가 혹시 거기서 비롯된 건가 싶은 생각을 했다.
“네가 뭘 생각하고 있든 간에, 생각하고 있는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병으로 죽은 거지…….”
그리고 그런 영의의 생각은 얼굴 표정에서도 드러났는지, 시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구나……. 그럼 인간에 대한 악감정은 대체 왜……?”
“다만, 그 병이 인간에 의해 생겨난 것이 문제였을 뿐이지.”
시라는 그 내용에 대해서 더 말하기 싫은 듯, 주제를 바꾸었다.
“그보다, 그 옷도 간만이네…….”
“왜?”
‘그러고 보니 전통 복장이긴 하지만 지금의 양식과는 다르다는 말을 들었는데.’
영의는 그것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만 시라가 추억을 떠올리며 말하자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아냐, 엄마랑 내가 함께 만든 거였거든. 너도 만났었지? 우리 엄마.”
“……그랬지.”
영의는, 시라를 보면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라 생각했다.
외모나 머리를 보면 크게 늙었단 생각이 안 되지만 여왕이란 자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자리인지 이마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ꈰ고, 어째…… 마을 분위기도 좋지는 않은 것 같고.’
그녀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의 복장이나 낯선 이를 경계하는 모습을 봐서 일단 좋은 얘기를 기대하긴 힘들 것 같았다.
‘얘기를 들어 보니 부모님도, 남편도 병으로 잃은 것 같은데……. 조금 이기적일지는 몰라도 내 가족만큼은 무사해서 다행이야.’
영의는 시라의 딸, 미딜을 슬쩍 곁눈질하며 지구에 있는 동생 수연을 생각했다.
‘걔는 잘 지내려나? 같이 온 애들 잘 대접해서 보내긴 했는데……. 괴롭힘 같은 거 안 당하겠지? 에이, 나이가 몇인데…….’
* * *
각성자 아카데미.
아카데미가 아니라 학교생활을 하더라도 대략적으로 2주 정도 지나면 아이들이 각자가 각자를 선별하고, 스스로 분류를 한다.
“언니, 이번에 친 쪽지 시험 마지막 문제 답 뭐로 했어요?”
“응? 나 4번. [게이트의 변동성은 사실 확정된 것이 없다].”
“네에? 왜? 3번 아닌가요? [아직 분류된 것을 제외하고는 알 수 없다].”
“수업 시간에 지나가듯이 말한 건데, 분류된 것도 정확히 같은 건 없었다고 했어.”
“아…… 그랬었나……?”
문무 겸비, 그야말로 우등생의 표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하는 유형들.
보통 이런 쪽은 아이들의 중심에 서거나 교사들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많다.
마치 피라미드의 꼭대기와도 같달까.
그리고 그 바로 아래, 특출 나진 않아도 중상에서 상쯤 위치하며 뭐든 간에 그럭저럭 하며 원하는 것까지 추구하는 유형들.
보통 이런 아이들이 학교생활 중에 무리를 이끌고 다 같이 놀거나 다 같이 사고를 친다.
방금까지 말한 쪽이 우등형과 자기 계발형이라면, 그 아래에 다른 이들이 있다.
“크어어…… 푸후…….”
“이걸 옆으로 돌리면……. 아냐, 다른 쪽으로…….”
교실 한군데에서 늘 잠만 자거나 혼자만의 무언가에 몰두하는 아이들.
관심 가지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놀라운 성과를 보여 주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걸 보여 주지 않는 일점 집중형.
의외로 이런 아이들이 사회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
동창회에서 ‘한 우물만 파더니 결국 성공했구나?’라는 소리를 듣는 타입.
물론, 그 우물이 마른 우물일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 다른 인물들은…… 대기권형이라고 하는 게 적합할 듯하다.
“……교실에서 공기를 보는 것이 전부이거나…… 숨만 쉬는 것이 인생의 목적 같은 그런 타입들.”
“……그런 애들이 보통 성적의 밑바닥을 깔아 주…….”
누군가의 내레이션과도 같은 말은 거기서 끊어졌다.
따악!
“아악! 왜 때려요?”
“애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그런 헛소리 하지 마.”
오늘도 뜬금없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선우의 이마에 딱밤을 날리는 수연.
“아니, 왜요? 틀린 거 하나 없는데…….”
“그래…… 맞는 말만 하는구나.”
수연은 선우의 말에 긍정하는 듯 보였다.
“진짜요?”
“두 대만 더 맞자.”
긍정하는 듯 보이기만 했지, 긍정하진 않았다.
“아아, 누님! 제발! 얘들아! 학우들아! 친구들! 날 도와줘!”
선우는 수연의 손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며 도망치려 했고, 그 와중에 다른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모두가 선우의 시선을 피했다.
이미 이곳의 실세이자 비공식 최강자인 수연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선우의 헛소리가 맞을 소리라는 것에 동의한 아이들도 제법 많기도 했지만.
“아악, 악! 살려 줘요!”
“아직 안 때렸는데?”
선우는 수연에게 정중한 표정과 말투, 그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비굴한 자세로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안 때렸으니까 살려 달란 겁니다. 때렸으면 전 죽었을 테니 말을 못하겠죠? 그러니 살인자가 되기 싫으시다면 절 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괜찮아, 안 죽어.”
“으아아…….”
영의의 생각과는 달리, 오늘도 각성자 아카데미는 연공 서열과 무력 서열이 둘 다 강한 누군가의 아래에서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