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8)
국제 각성자 출입국 관리처.
한국에서 해외로 출국하거나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고위 각성자들에 대한 심사를 진행하고 출입국 허가를 내려 주는 기관이다.
그리고 여기, 출근한 지 막 5개월 차에 들어선 파릇파릇한 신입 직원 이세아 씨.
“으음…… 이건, 이렇게 하고……. 어어? 이게 왜 이래? 뒤로, 뒤로……!”
5개월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지 서류를 앞에 두고서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여 주는 세아였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 가득한 색색깔의 메모지와 거기 적힌 업무 방법 및 팁들이 그녀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 됐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서 혼자 힘으로 업무를 끝냈다는 만족감도 잠시, 그녀가 처리할 업무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한국을 하루 정도 머물다 다른 나라로 가는 각성자들의 입국 허가에 대한 승인을 통과시킨 뒤, 다음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하는 세아.
“으으…… 이건 뭐야…….”
하지만 5개월 차인 그녀에겐 매번 난감한 서류가 나타날 때마다 늘 새롭고 대뇌의 전두엽을 관통하는 짜릿함이 연속으로 작렬했다.
“으음…… 으응?”
한참을 서류와 눈싸움 및 기세 싸움을 하던 그녀의 시선에 문득 서류의 안건이 들어왔다.
“어어…… 대규모 인원……? 몇 명이야? 하나, 둘……. 윽.”
척 보기에도 말단인 자신이 건드렸다간 월급이 죽거나 그녀의 직장이 죽거나 둘 중 하나의 결말을 맞이할 것이란 판단이 선 세아.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녀보다 훨씬 업무에 익숙한 상급자를 호출하기로 했다.
“선배님, 이것 좀 도와주세요…….”
그녀의 자리 옆, 2년 차인 사수 최승원은 세아의 도움 요청에 살짝 싫증을 냈다.
“뭐야, 지난번에 어지간한 건 다 가르쳐 줬잖아?”
아무리 본인이 열심히 하려고 한다지만, 매번 도움을 요청하는 건 아무래도…… 조금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본인이 감당하지 못할 안건이라 생각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니, 혹시 모를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승원은 세아에게 도움을 주기로 했다.
“뭔데? 지난번처럼 처음 보는 거라고 다짜고짜 물어보는 건 아니지?”
승원은 일전의 예시를 들어 얘기했고, 이번에도 그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사안이었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죠? 처음 보는데요…….”
‘그럼 그렇지……. 뭐, 그래도 배웠던 걸 다시 묻는 건 아니니까…….’
승원은 마우스를 잡아챈 뒤, 세아의 옆에서 자신 있게 서류를 확대해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휴, 넌 이것도 모르냐? 도대체 뭘 배운……. 응? 이거 뭐야.”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사안이 그에게도 적응되는 게 문제였다.
“그러니까요……. 본 적 없는 게…….”
“음? 이런 게…… 있었던가?”
2년 차인 승원에게도 눈앞의 서류 양식은 처음 보는 형태의 것이었다.
“뭐야, 이게? 군사 협조랑 민간 협조랑 공항 검색대 검사 통과?”
지금까지 해 봐야 대규모 인원의 입국이나 전과자의 입국 신청 또는 이민 신청들이나 봐 왔던 그로서는 제대로 된 판단이 힘들었다.
“쓰읍…… 이거 뭐지……?”
그리고 그때, 종이컵에 믹스 커피 봉지를 넣어 휘휘 저으며 걸어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뭔데? 무슨 일인데 그렇게 둘이 오붓하게 붙어 있냐?”
나름 베테랑이라 부를 수 있는 7년 차의 조영식 과장이었다.
“아, 과장님. 이거 뭔지 아십니까? 본 적이 없는데…….”
승원은 답답한지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고, 세아 또한 비슷한 게 없는지 옛 파일들을 뒤져 보고 있었다.
영식은 커피를 홀짝이며 모니터 앞으로 몸을 기울였고, 화면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감탄했다.
“이야~ 이거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네.”
“예?”
“와.”
역시 과장이란 직함은 괜히 단 게 아닌지, 영식은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는 듯했다.
“이거, 대규모 입국 요청서야. 대충 20인 이상이면 나오는 건데. 너 지난번에 한 번 정도 해 보지 않았나?”
영식은 승원이 이 요청서에 대해 모르는 게 의문이라는 듯 물어보았지만, 승원은 정말로 이런 요청서를 본 적이 없었다.
“20인 이상이야 몇 번 보고 직접 해 본 적도 있죠. 근데, 여기 적힌 게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승원은 요청서에 적힌 군사 협조 등에 대해 물었고, 영식은 다시 커피를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건 무장으로 들어올 때 받는 거야. 보통 외교 관계가 별로라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을 법한 나라에 가거나 길드 단위로 타국 원정 할 때나 쓰는 건데……. 여기 목적 뭐라고 써져 있냐?”
영식은 마우스 휠을 돌려 입국 목적에 대해 살펴보았고, 거기에는 휴가라는 단어가 써져 있을 뿐이었다.
“오, <부시도 스피리츠> 길드네? 거기는 진짜 사무라이 분위기가 있어서 멋지던데.”
<부시도 스피리츠>의 한국 입국에 대한 요청서를 보며 잠시 고민하기 시작하는 영식.
“쓰읍, 근데…… 휴가인데 무장 입국이라…….”
승원도 무장 입국을 허가해도 되는지 의문을 품는 영식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했다.
“이거, 허가해도 되는 겁니까? 규정을 찾아봐야…….”
세아는 눈치 빠르게 확실한 규정을 알고 있을 법한 곳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
“아, 그럼 관련 부처에 전화를…….”
“내가 할게. 줘 봐. 이런 건 빠르게 해야 하는 법이니까.”
영식은 그렇게 전화를 걸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어. 고맙다. 나중에 밥 한번 살게. 응.”
영식이 전화를 끊자, 결과가 궁금해진 승원과 세아가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휴가라는 명목으로는 무장 입국이 불가능하다고 돼 있다는데? 다시 한번 봐 봐. 입국 신청자 명단 중에 휴가가 아닌 사람이 있는지.”
영식은 혹여나 도중에 착오가 있었던가, 휴가를 가는 것이 대표자 하나인 경우여서 전체 방문 목적이 휴가라고 써진 것인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요청서를 제대로 살펴보려 했다.
뚜벅. 뚜벅.
그러나 그때,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구둣발 소리가 있었다.
“거기 뭐 해?”
“아, 부장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지금 여기…….”
이름만 걸어 두고 실무는 잘 보지 않는 처장과 달리,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관리처의 최종필 부장이었다.
“<부시도 스피리츠>지?”
종필은 미리 들은 게 있는지, 그들이 모여 있는 이유를 대번에 짐작해 낸 듯 보였다.
“네. 근데 전원 휴가인데 무장 입국이라 이거 지금 막 반려시키려고…….”
“통과시켜.”
“네?”
분명히 영식이 문의해 본 결과, 규정과 맞지 않는 입국 요청이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통과시키라며 손짓하는 종필.
“통과시키라고. 이미 얘기 듣고 오는 길이니까.”
“아니, 방금 전화해 봤는데 안 된다고…….”
영식은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정도 재차 확인하려 했지만, 종필은 단호했다.
“내가 그쪽에서 얘기 듣고 온 거야. 안 할 거야?”
“……네. 근데, 이유 정도는…….”
종필은 영식의 말에 한숨을 쉬며 옆자리에 있던 승원의 의자를 끌어당겨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나도 몰라, 일본 정부 쪽에서도 그냥 부시도 쪽이 밀어붙이니까 그러는 거라던데. 외교부가 뭔 힘이 있겠냐. 들어줄 수밖에. 그리고 나도 뭔 힘이 있겠냐? 괜히 처장한테 싫은 소리 듣고 피곤해지기 싫으면 통과시켜.”
규정상 어긋난 입국이었지만, 외교부 선에서 이야기가 오갔다면 작은 부처에 불과한 그들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에휴…… 네. 잘 봐. 이거 어떻게 처리하는지.”
“아, 네!”
영식은 요청서를 이리저리 넘기면서 대략적인 설명을 하기 시작했고, 그걸 지켜보던 종필은 스트레스를 받는지 바깥으로 나갔다.
“와, 끝났다.”
“봤지? 다음에 이런 거 오면 이렇게 하면 돼. 또 올지는 모르겠는데…….”
사실, 몸 자체가 무기에 가까운 각성자들이 난동을 부리는 건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
마력 검사 장치나 감지 장치를 달지 않는 이상 각성자임을 구별할 방법이 없기에 겉모습만큼은 일반인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각성자들은 각성자들을 알아보기도 하지만…… 출입국 심사를 담당하는 이들을 전부 각성자들로 앉힐 수도 없고 만약에 알아보더라도 강한 각성자라면 제지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출입국에 제한을 걸어 버리자니 자국에 오는 타국 각성자를 데려오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니까 이렇게 장비에서라도 제한을 걸어 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큼은 제약을 걸려고 하는 것이다.
세아는 그렇게 <부시도 스피리츠>의 입국 허가를 승인한 뒤, 다음 서류로 넘어갔다.
“응? <쇼군즈>도 있네요? 그것도 똑같은 양식으로?”
승원은 옆자리에서 본인의 일을 하던 중, 세아의 목소리를 듣자 귀찮음을 가득 담은 투덜거림을 내뱉었다.
“걔네도 다 똑같겠지, 뭐. 그냥 통과시켜. 에이, 귀찮게……. 어차피 윗선에서 다 얘기 오갈 거면 우리한테 서류는 왜 보내는 거야?”
“아, 네.”
“그리고, 그 자식들 자존심 세우겠다고 무장 입국 하는 거 아냐? 부시도 놈들 일본에서 하는 짓거리 봐. 완전 깡패라니까? 무슨 야쿠자처럼 입고 다닌다고.”
“어어, 네에…….”
세아는 승원의 말에 영혼 없는 맞장구를 쳐 주며 <쇼군즈>의 입국 허가 또한 승인했고, 그렇게 메모장에 새로운 내용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다.
* * *
녹색이 무성하다 못해, 너무 많은 나무들과 그 그림자로 검게 보일 정도로 울창하고 거대한 숲.
콰릉-
영원의 숲이라는 명칭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닌 듯, 수많은 세월을 버텨 온 나무들이 가득한 이곳에 느닷없는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콰앙-
“그게 아니야! 너무 힘에 의존하지 말고!”
백금발의 긴 머리를 땋아 내린 뾰족한 귀의 여성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뭐 어떻게 하라는 건데?!”
그리고 거기에 맞받아치고 있는 재킷 차림의 한 청년.
빠지직, 타악!
청년의 손에서는 스파크가 위협적으로 튀고 있었고, 그때 또다시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쳤다.
콰릉-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오듯 청년의 손으로 바로 향하는 번개.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니까?”
청년은 번개를 맞았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여성과 말싸움을 이어 나갔다.
“그게 아니란 게 대체 무슨 뜻인지를 말하라고!”
여성은 청년의 행동이 뭔가 답답한 듯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우, 답답해! 영의 넌 어떻게 바뀐 게 하나도 없냐?! 생각을 좀 해 봐!”
“네가 너무 바뀐 거겠지! 땅에 묻혀서 화장실 가고 싶다고 울던 그 풋사과 같은 시라는 어디로 간 거야?”
지금, 영의는 영원의 숲으로 와서 오랜만에 만난 시라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둘을 편하게 앉아서 구경하는 두 마리 새와 한 소녀.
“……어머님이, 그런 의외의 모습도 있으셨구나.”
소녀는 영의와 말다툼을 하고 있는 시라와 닮은 외모였지만, 머리칼이 금발인 것이 차이점이었다.
그리고 소녀에게 말을 걸듯 작게 우는 새들.
“휘로옥. 휘익. 휘햑햑(그때 되게 재밌었는데. 울음 참던 그 모습이 진짜 장관이었지. 하하하).”
“후요. 후우욱(그만하지. 저래 보여도 숲요정의 수장 중 한 명인 것을).”
두 마리의 새 중 한 마리는 뇌영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영의가 예전에 만났던 시라의 파트너였다.
다만 어리숙하고 작았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어지간한 사람 한 명을 낚아챌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계산 실수입니다. 사용자의 적성……을 고려했어야 하는데, 계산 과정에서 그러한 변수를 누락하였습니다.]
알림이는 영의의 귓가로 나지막하게 말했지만, 그 목소리 속에는 묘한 한숨 소리가 섞인 듯했다.
“너 방금 그 말 나 멍청하다고 한 소리 아니야?”
[아닙니다. 다만, 지능적이나 이성적 부분보다는 다른 부분이 더 우세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뼈를 때리다 못해 사골국 재료로 만들려 하는 알림이의 묵직한 팩트 공격.
“멍청하다는 말 맞네!”
영의는 알림이의 말에 마음에 상처가 조금 났고, 옆에서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래, 너 멍청한 거 아니까 그런 말 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다시 해 봐! 정령 만들기는 쉬운 게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갈피를 못 잡을 수 가 있나?”
지금까지 대부분 몸으로 해결하면 되는 문제였기에 잘 풀렸던 영의는, 처음으로 머리를 쓰는 과제를 맞이해 고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