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7)
서울.
용산의 옥션에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낮은 등급의 각성자와 소규모 상인들은 쓸 만한 장비나 마정석을 오늘은 더 싼값에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식사마저 참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가 하면, 그나마 돈에 여유가 있는 이들은 자신의 예산 한도 안에서 최대한 좋은 것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런 옥션 건물 내부에 있는 매입상 철관의 가게.
예전에도 그럭저럭 장사를 잘한다는 평이 있었지만, 대량의 게이트 외부 문명의 금화라는 대박 건수를 어디선가 물어 온 뒤부터 큰손들과 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어유, 사장님. 아시잖습니까. 제가 아무리 팔고 싶어도 물건이 안 들어오면 못 드리는 거……. 예, 예. 저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네. 들어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사장님. 네. 먼저 끊으십시오. 네. 휴우…….”
방금, 큰손 중 하나와 전화 통화를 끝낸 철관.
철관은 통화 내내 상대방이 직접 눈앞에 있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허리를 숙이며 과한 예를 갖추었다.
말투나 대화 내용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런 철관을 바라보던 그의 친구, 지석은 철관이 걱정되었다.
“꼭 그렇게 해야 해? 그냥 없다고 하면 될 것을…….”
지석의 말을 듣고 지석을 쳐다보며 손짓하는 철관.
“야, 네가 그러니까 사업 재능이 없는 거야……. 나한테 돈 가져다주는 사람들은 무조건 윗사람이야. 그것도 많은 돈이면 더욱더.”
지석은 돈에 저렇게 과하게 집착하는 듯한 철관의 모습이 약간 안쓰러웠다.
“무덤에 싸 들고 갈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집착해?”
“돈 많은 사람이 죽으면 무덤까지 가는 길이 편하고, 돈 없는 사람은 무덤까지 가는 길도 힘든 법이야.”
“너무 돈만……. 음.”
철관에게 인생을 너무 물질적으로만 바라본다고 말하려 했던 지석.
그러나 자신도 돈 때문에 이런저런 고생을 겪어 보고 자식들에게도 의도치 않게 고생을 시켰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 최소한 가족들을 먹여 살릴 정도만큼은 집착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네 말이 맞…….”
지석은 자신이 깨달은 바를 말하려 했지만 철관이 곧바로 또 다른 통화를 시작했기에 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어유, 네. 박 교수님. 네. 연구는 잘되어 가십니까? 어후, 그것참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지금 들어온 새로운 게이트 외부 문명 부산물 같은 거…….”
철관의 통화가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 같아 보이자, 지석은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자신이 하고 있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를 위해 새로 마련한 간이 작업대 위에는, 이런저런 전선들과 배터리, 그리고 몇몇 괴수 소재들과 금속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한 소재와 금속들에 전기 테스터기를 갖다 대며 일일이 수치를 기록하는 지석.
그는 종이에 적힌 수치들을 보며 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흐음…… 으음.”
가만히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지석은 이내 고개를 젓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적합한 게 없네.”
지금 그는 의뢰받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선별하고 있었지만, 그의 기준에 맞는 재료가 없었다.
“강도는 최대한으로, 그러면서 전기 저항이 거의 없어야 한다라…….”
사실 그렇게 만들려면 못 만들 건 없었다.
도금을 한다든가, 하다못해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을 본다든가 하면 어떻게든 만들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의뢰 대상이 그의 은인이다.
그만 살려 줬다면 모를까, 그의 자식들까지 살려 준 은인.
물론 철관도 은인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의 아들과 딸이 굶지 않도록 해 준 것은 자신이 만든 장비를 사 준 젊은 청년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청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다른 장비를 의뢰하기까지 했으니 보답을 겸해 지금까지 만들었던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난 장비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소재 중에 쓸 만한 게 없으니 원…….”
다른 형태야 어떻게 되든 문제가 없지만 강도와 전기 저항에 대한 부분에서만큼은 꼭 신경 써 달라는 말을 들었다.
-탱크가 밟고 지나가도 멀쩡할 만큼 튼튼하고, 전봇대에 던져 놔도 불타거나 터지지 않을 그런 게 필요해요.
의뢰인인 영의란 청년은 그렇게 말했고, 철관은 약간의 허세를 보태서 그럴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 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명에 불법 개조로 잠깐 옥살이까지 하고 왔더라도 장인인 지석은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그러한 스펙을 요구하는 장비를 필요로 하고, 어디에 쓸지는 몰라도 확실히 쓸 것이라는 걸.
‘그렇지만…… 명확히 이거다! 싶은 소재가…….’
게이트 내부의 괴수에게서 나온 부산물들 중에는 확실히 무슨 짓을 해도 부서지지 않을 것만 같은 강도를 자랑하는 소재도 있었다.
또한, 전도성이 높아 공학계에서 러브 콜을 받는 그런 소재들도 있었고.
하지만 그 두 가지 장점을 동시에 지닌 소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혼합 소재라고, 몇몇 장인들이 직접 합성해서 만드는 소재들이 있었지만…… 완벽한 비율이 맞춰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비율이 그나마 비슷한 재료를 찾아서 본인이 가공하는 길이었지만…… 정작 그런 재료는 찾기가 힘들었다.
‘있더라도, 첨단산업이나 연구원 쪽에서 쓸어 가겠지…….’
오늘도 새벽부터 일어나 여기저기 발품 팔며 가져온 재료들이었으나, 지석이 원하는 수준의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
“후우…… 쉽지 않네.”
눈가를 꾹꾹 눌러 대며 한숨을 쉬는 지석에게 다가오는 철관.
“왜 그래, 뭐가 안 돼?”
“아니, 그냥. 쓸 만한 재료가 없으니까 일을 시작도 못 해서…….”
“음, 힘들긴 하겠지. 그, 뭐냐. 화가나 작가들도 자기들 하는 게 쉬워 보여도 때로는 엄청나게 어렵다고 하잖아? 그래도 일단 시작만 한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철관은 친구인 지석을 위로해 주려는 듯, 이런저런 말을 했다.
“그래, 내일은 또 쓸 만한 소재가 있을지도 모르지.”
철관의 위로에 조금 위안을 얻은 듯, 지석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일은 지방 옥션에 잠깐 갈 일이 있는데 그때 나랑 같이…….”
딸랑-
“어서 오세요!”
오랜 장사로 인한 습관 탓에 문의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곧바로 웃으며 인사를 하는 철관.
그의 반사적이고 기계적인 웃음은 가게에 찾아온 사람을 보자 함박웃음으로 바뀌었다.
“어이쿠, 우리 귀한 손님 오셨네!”
“아, 네. 안녕하세요.”
가게에 찾아온 것은 철관의 장사에 전성기를 맞이하게 해 준 영의였다.
영의를 보자마자 곧바로 빠르게 걸어가서 직접 맞이하는 철관과 달리, 지석은 영의가 내심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못했다.
마치 마감 기한이 코앞인데 해야 할 일을 다 끝마치지 못한 세상 모든 학생과 직장인과 기타 창작자들의 마음을 느끼고 있는 지석.
‘벌써 장비를 재촉하러 온 건 아니겠지…….’
물론 영의가 그럴 인물이 아니란 걸 은연중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모르지 않는가.
장비를 만들 때 강도와 전기 저항에 대해서만큼은 한 치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았던 면이 그런 쪽에서 발휘될지?
하지만 지석의 걱정과는 달리 영의는 철관과 바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매입을 부탁할 게 조금 있어서 왔는데요…….”
이번에 찾아온 영의는 확실히 무언가 판매할 게 있는 듯 보이자, 철관은 어깨에 힘을 주며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유, 말만 해! 내가 못 사는 것 빼고는 다 살 수 있어!”
그러는 동시에, 작게 자신의 희망 사항을 덧붙이는 철관.
“그리고 가능하면 지난번 같은 게 좋은데…….”
‘지난번 같은 대박 물품인 금화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본 적 없는 게이트 외부 문명의 부산물이나 하다못해 큰손들에게 어필할 만한 물건이기만 하면…….’
철관은 장사를 하며 이런 일 저런 일 죄다 겪어 봤기에 매번 같은 품질이 보증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 혹시 속성 마정석도 매입 가능한가요?”
그리고 그 생각은 이번에도 정확히 적중했다.
“그럼, 되지! 당연하지!”
그것도 매우 좋은 방향으로.
영의가 철관과 물건 매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지석은 슬그머니 철관의 가게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물론 마감 기한을 확실히 정하지도 않았고, 오래 걸릴 수 있다고도 했지만 아무래도 껄끄럽지 않은가.
“대충, 이 정도인데…….”
“이야! 이 정도면 옥션 주인공은 바로……!”
다행스럽게도 영의와 철관의 관심은 속성 마정석에 쏠린 듯 보였기에, 지석은 재빨리 가게를 나서려고 했다.
“아, 잠깐만요. 그러고 보니…….”
그러나 지석이 아무리 빠르게 움직이려 해도 영의의 눈을 속일 수 없었던 건지, 아니면 속성 마정석에 정신이 팔린 것은 철관뿐이었던 건지 지석은 카운터를 지나기도 전에 영의에게 불려서 멈춰 섰다.
“아, 네. 무슨…… 일로……?”
제출 기한은 많이 남았지만 리포트 작성을 시작도 못 한 대학생의 기분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지석.
영의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지석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영의가 준 것은 묵직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크게 무겁지는 않은 금속 주괴였다.
크기로 따지면 골드바 두 개를 붙인 정도였기에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 정도 크기의 금속이라기엔 조금 가벼운 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금속을 만져 봤지만 지금 손에 들린 금속은 전혀 기억에 없는 금속이었기에 의문을 표하는 지석.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쓸 만해 보이는 재료? 제가 뭐 잘은 모르지만…… 일단 아는 분한테 구해 온 거거든요. 더 적합한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모르니까…….”
영의는 지석에게 금속을 설명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그 자신도 그 금속이 정확히 뭔지 몰랐으니까.
‘아, 씨. 호엔하임 그 아저씨가 설명할 때 조금이라도 기억해 놓을 걸 그랬나……? 괜히 딴 거 생각하고 있어 가지고…….’
영의가 호엔하임에게 원하는 게 있어서 그에게 간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목숨을 구해 줬으니 그 대가로 받아 온 물건이었다.
‘그보다, 베키는 이런 금속을 대체 뭐 얼마나 주문을 했길래 그 아저씨가 질색을 한 거지…….’
지석은 처음 보는 소재에 잠시 홀려 있다가, 자신이 새로운 금속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급히 작업대 쪽으로 향했다.
“잠깐, 잠깐만 시험 좀 해 보겠습니다.”
작업대 위에 금속을 올려 둔 뒤, 테스터기를 갖다 대고 측정을 해 보는 지석.
“……세상에.”
지금까지 사용했던 모든 재료에 비교해 봐도 영의가 가져온 의문의 금속은 월등한 수준의 전도성을 보이고 있었다.
“대체, 대체 이런 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시중에 있는 어떤 혼합 소재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지석은 열의가 가득한 눈으로 금속과 영의를 번갈아 쳐다보았고, 그런 지석의 반응에 철관 또한 속성 마정석에 대해 계산하던 것을 멈추고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게…… 저도 잘……. 그냥 얻어 온 거라서요.”
영의가 말을 얼버무리자, 철관은 살짝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지석은 재료의 출처를 굳이 알 필요가 없는 듯 보였다.
“이 정도면, 일단 작업에는 곧바로 착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장비를요? 바로?”
영의는 지석의 말에 자신이 가져온 금속이 그렇게 유용한 것인가 싶은 생각을 했다.
‘그냥, 베키가 쓰는 거라고 들어서 받아 온 건데…….’
“네, 베이스가 될 재료를 못 찾아서 헤매고 있었는데 이렇게 해결을 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어, 네.”
지석은 그 후에 곧바로 작업대 위에서 금속과 다른 재료들이 잘 조화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준비했던 다른 소재들을 꺼내어 한참 무엇인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지석을 바라보던 철관은 영의에게 몸을 돌려 테이블 쪽으로 천천히 영의를 데려가기 시작했다.
“흐음, 이제 열중하기 시작했네. 그럼, 우리는 우리끼리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는 게?”
“네, 그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