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5)
한 중년인과 청년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쫓기고 있었다.
“거, 생명의 은인한테 너무한 거 아닙니까? 예?”
“그것은 내가 따로 보상을 하겠다고 했네. 잠깐 나가 달라는 말이 그리 무리한 부탁이었나?”
큰 저택 내부에서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걸어 나가는 중년인과 그것을 뒤따라가는 청년이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잠깐 나갔다 왔잖아요, 한 30분.”
“한 끼 식사도 못 할 시간이 잠깐이란 말인가?”
청년은 중년인의 말에 일일이 대답해 주며 손에 들린 종이를 건네주려 했으나, 중년인은 필사적으로 그것을 무시하고 있었다.
“30분이면 세 끼는 먹겠구만, 아무튼 진짜 신사적으로 말로 하는데 정말 이렇게 나올 겁니까?”
“세상 어디에 이렇게 귀신처럼 집요하게 따라오는 신사가 있겠나? 있다면 보고 싶군.”
사실 둘의 체력 차이를 고려해 보면, 청년 쪽이 이기고도 남았겠지만 청년은 강압적 수단을 사용하고 싶지 않은지 중년인의 속도에 맞춰 주고 있었다.
대략 40분 전, 저택 앞 층계참에 앉아 있었던 영의.
“후우…….”
호엔하임은 영의가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일단 밖으로 쫓아낸 것만으로 만족한 듯 문을 걸어 잠그고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문을 닫고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영의가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뜻이었다.
[사용자, 개체명 호엔하임은 현재 상당한 경계심을 발하고 있으므로 시간을 두고 다시 오는 것을…….]
알림이는 층계참에 가만히 앉아 있는 영의에게 조언을 해 주었지만, 영의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계속 그 자리에 앉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으음…… 흠…….”
그렇게 한참 앉아 있던 영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고, 그것은 그가 고민을 시작한 지 30여 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좋아, 정했다.”
[무엇을 정했다는 말입니까?]
알림이 또한 30분 동안 고민한 영의의 생각이 궁금한 듯 물어보았고, 영의는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대답해 주었다.
“그냥 들어갈 거야. 어떻게든 소개장을 읽게만 하면 되겠지.”
[그것을 결정하기 위해, 30분간 고민하신 겁니까?]
“아니, 다른 것도 많이 생각했지. 일단 들어간 다음, 말로 설득해서 소개장만 보여 주면 되겠지.”
그렇게 말한 영의는 손에 뇌기를 일으킨 뒤, 문의 잠금장치에 갖다 댔다.
열쇠 구멍에 손가락을 대고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움직이는 영의.
틱.
틱.
“아, 이건가.”
영의는 뭔가 감을 잡은 듯 확신에 찬 움직임으로 손을 돌렸고, 그의 움직임에 맞춰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이게 되네? 진짜 될 줄은 몰랐는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신기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영의.
[사용자, 전자기장을 사용하신 겁니까?]
“응. 인터넷에서 본 건데 이게 진짜 되네.”
자신의 몸에 뇌기를 둘러 일종의 전자석을 만들거나 자성을 띠게 만든 물체를 움직이는 영상을 지연의 소개로 봤었던 영의.
그리고 그 지식은 여기에서 도움이 되었다.
“자, 그럼 들어가 볼까.”
[지금까지 관찰된 사용자의 행동 패턴상, 이쪽이 더욱 사용자답다고 볼 수 있겠지요…….]
알림이도 영의를 딱히 말릴 생각이 없는 듯, 작게 푸념하는 듯한 한마디를 남겼다.
그렇게 영의는 호엔하임의 저택에 무단 침입을 했고, 그때부터 호엔하임과 영의의 추격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추격전이 시작된 지 15분쯤 되었을 때, 마침내 호엔하임이 포기하려는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여기까지. 내가 왜 내 집에서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그럼…… 이 소개장 좀 읽어 주시죠?”
영의는 호엔하임이 항복을 하려는 듯 보이자 소개장을 앞으로 내밀려 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밀던 도중 다시 거둬들였다.
촤악-
호엔하임이 갑작스럽게 입을 막으며 품에서 무언가 담긴 병을 꺼내 뿌렸던 것이다.
“윽!”
소개장은 지켜 냈지만, 병에 담긴 액체는 피하지 못한 영의.
“뭐야, 이건?”
“간단한…… 수면약일세. 생명의 은인에게 이런 대접을 하긴 싫지만 지금 나에게 그럴 여유가 없어서 말이지.”
호엔하임은 수면약의 성능을 믿는 듯, 영의가 곧 쓰러질 거라 생각하고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잠에 들지 않는 영의를 보고 의아해하는 호엔하임.
그리고 수면약이란 말에 갑자기 잠들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려던 영의 또한 호엔하임이 의아해하자 자신도 의문을 표했다.
“흐음……?”
“……응?”
호엔하임은 자신이 급한 나머지 다른 용액이나 약을 잘못 뿌린 게 아닐까 싶어 품을 뒤적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만든 지 오래됐나……?”
영의는 호엔하임이 의문을 표하고 있을 그때가 최선의 타이밍이라고 판단하고는, 소개장을 재빨리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진짜, 이것만 딱 읽어 보시라니까요? 예?”
이쯤 되면 정성을 봐서라도 한 번쯤 봐줄 만하건만, 호엔하임은 고개를 저었다.
“아오, 진짜! 왜 이렇게 답답해! 일라이저 영감님이 쓴 거라고요!”
짜증을 참다 못해 소리를 치는 영의.
“누구?”
줄곧 영의가 들이미는 소개장을 매몰차게 거절했던 호엔하임이었지만, 친우의 이름이 나오자 반응을 보였다.
“그, 뭐냐. 커다란 탑에서 틀어박혀 가지고 맨날 연구만 하는 영감님 있잖아요. 그 제자도 똑같이 틀어박혀서 마공학만 파는.”
영의는 호엔하임이 반응을 보이자 다급히 그를 설득하기 위해 기억하고 있는 것을 최대한 빠르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베키까지 아는가 보군.”
호엔하임이 베키에 대한 것까지 아는 눈치이자 반쯤 성공했다고 생각한 영의는 소개장을 다시 건넸고, 호엔하임은 그제야 소개장을 받아 들었다.
“아, 진짜. 그거 읽어 주기 전까지 저 안 나갑니다. 여기 드러누울 거예요.”
일단 소개장을 받아 들고 안 읽겠다고 나올까 봐 급히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호엔하임을 쳐다보는 영의.
[사용자, 흔히 사용되는 표현을 빌려 말해 보자면…… 꼴사납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