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4)
프리데 시.
영의는 프리데에 처음 와 보는 것이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도시라는 것을 직감했다.
‘무슨 공장 지역도 아니고…….’
집집마다 높은 굴뚝이 달려 있는 것은 연기가 멀리 날아가도록 설치했다 쳐도, 거기에서 심상찮은 색의 연기들이 올라오고 있다면 누구라도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어떤 집은 디젤엔진에서 나오는 희미한 푸른 연기가 나오고, 어떤 집은 안에서 불이라도 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주 그냥 다채롭네, 다채로워……. 색깔 나는 연기가 나오는 장작 뭐 그런 게 있을 리도 없고.”
[그러한 물품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연금술의 산물이며, 실제 난방용보다는 유희 및 여흥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입니다만.]
다채로운 연기들의 색깔에 무심코 그런 말을 했지만, 알림이가 그 말에 대답해 주자 깜짝 놀라는 영의.
“그런 게 있어?! 잠깐, 생각해 보면 신호탄이나 연막탄도 색깔 있는 연막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현대 기술로도 만든 것인데, 마법과 연금술로 못 만들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러려니 넘어가는 영의.
“아무튼, 지도에 따르면 저쪽인데…… 저긴가?”
프리데의 북쪽 구역은 다른 구역의 집들과 달리 형형색색의 연기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뭔가 큰 집들이 많은 걸 보면…… 부자 동네인가 보네.”
영의는 비교적 깨끗한 거리와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행색과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며 지도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영의는 한 저택 앞에 도착했으나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음…… 이거 원래 이런 건가?”
베키의 집처럼 황야 주변에 덩그러니 있지도 않았고, 마탑처럼 존재만으로도 눈에 띄는 집도 아니었지만 일단 저택이라고 부를 정도로 크고 화려하긴 했다.
다만, 집 앞에 수도 없이 쌓여 있는 편지들과 이런저런 자루들 빼고는.
“……이것들은 뭐야?”
[연구에 집중할 때가 있으니, 편지는 아래의 보관함에 넣어 두길 바랍니다.]
문 앞에 써진 팻말을 살펴보고, 보관함을 쳐다보았지만 보관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보관함을 덮어 버릴 정도로 많은 편지와 이런저런 물건들이 놓여 있었던 것이지만.
“뭐지? 편지 확인을 안 하나…….”
‘그냥 확인하기 싫은 건가? 무슨 협박 편지나 스팸 같은 거라도 오나?’
영의는 실례인 것을 알면서도 편지들 중 오래 방치된 나머지 봉인이 뜯어진 것을 하나 집어 들고는 살짝 살펴보았다.
[호엔하임 고객님, 귀하께서는 저희 상단에서 빌려 가신 연구 자금에 대해…….]
예의 바르고 정중한 말투로 써져 있었지만, 누가 봐도 빌려 간 돈 갚으라는 이야기가 써진 편지에 영의는 읽는 것을 그만두었다.
“……빚 독촉 편지?”
편지를 놓여 있던 그 모양 그대로 다시 놔두고는 쌓인 우편물들을 바라보는 영의.
“이게 다 독촉장인가? 아니지, 다는 아니겠지. 이게 다 독촉장이었으면 진작 빚 받으러 온 사람이 있었겠지…….”
혹시나 싶은 희망을 가지고 편지들을 뒤적거리던 영의는 베키의 이름과 일라이저의 이름이 적힌 편지도 한두 개쯤 발견하였다.
“음, 그냥 우편물 자체를 확인을 안 하는 성격인가 보네.”
베키는 몰라도 친구 관계인 것으로 보이는 일라이저의 편지까지 방치된 것으로 보아, 그냥 편지를 신경 안 쓰는 듯 보였다.
‘그래, 뭐.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써서 그런 건가 보지.’
영의는 편지들을 다시 원래대로 정리하려다 순간 머릿속에 예전에 봤던 한 뉴스 기사가 떠올랐다.
[독거노인들의 고독사, 근래 들어 증가해…… 무관심과 복지의 미비함이 초래한 참사인가?]
방치된 우편물들, 일라이저의 친구라고 불릴 만한 나이, 그리고 혼자 사는 생활환경.
“설마…….”
말로는 설마를 중얼거리며 아닐 거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다리와 몸은 이미 저택의 담을 뛰어넘고 있었다.
* * *
희뿌연 연기가 들어찬 방 안.
방 안에는 무언가가 회전하는 듯한 웅웅거리는 소리와 누군가의 신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웅웅웅-
“으윽…… 큭.”
환기장치는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으나 발생하는 연기의 양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신음 소리의 주인은,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꾸물거리면서 앞으로 기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는 팔을 들어 바닥에 놓인 한 유리병에 손을 뻗었고, 병은 미세한 차이로 손에 닿기 직전이었다.
“으……윽!”
탁, 탁!
마지막 힘을 짜내어 팔을 뻗어 유리병에 손이 닿게 하는 데에 성공했다.
“잡았…….”
하지만 힘을 과하게 짜낸 탓일까, 손에 힘을 꽉 준 탓에 둥근 유리병이 그대로 회전해 손에서 멀어져 갔다.
툭.
“아아…….”
손안에 들어왔으나, 자신의 실수로 다시 멀어져 가는 희망을 보며 절망에 빠지기 시작했다.
“크흑…… 심장이…….”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가장 뛰어난 연금술사로 칭송받고 있는 현인 호엔하임.
그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발작으로 인해 쓰러져 있었다.
‘이런…… 일생일대의 연구가 이제야 끝났거늘, 다스렸다고 생각한 병이 다시 나를 죽이러 오는구나…….’
그렇게 죽음을 예감한 호엔하임은 마음속 한구석에 다 풀지 못한 미련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하, 삶을 어떻게 살았기에 주마등 대신에 미련들이 떠오르는지…….’
쥐어짜이는 듯한 심장의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도, 그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콰앙!
그러나 그때, 갑작스럽게 연구실의 문이 부서지며 누군가가 들이닥쳤다.
“어디라고?! 안쪽? 어디?”
‘남자 목소리……? 누구지?’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바라보려 하는 호엔하임.
“어! 찾았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누군가는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복잡한 내부의 길을 알고 있다는 듯 곧바로 자신에게 다가왔다.
호엔하임은 방금 전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이라 판단하고 모든 걸 내려놓았었지만, 눈앞에 다시 살 방도가 보이자 살고 싶은 마음이 급격히 샘솟았다.
‘거기 있는 병, 그 안에 있는 약을 내게 주게!’
자신이 살 방법을 곧바로 눈앞의 남자에게 말하려 했지만,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몸은 죽음이 다가온 것을 거부하지 못하는지 말이 뜻대로 나오지 않았다.
“으어……브어……야아…….”
호엔하임 본인이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를 것 같은 말이었지만, 어째선지 눈앞의 청년은 그 말을 뒤늦게나마 알아들었다는 듯 반 박자쯤 늦게 병을 집어 들고 안에 든 약을 꺼냈다.
“이거, 맞나? 물은…… 물…….”
‘그냥, 줘!’
지금이 비상 상황이란 것을 잊은 것인지, 주위를 둘러보며 물을 찾는 청년의 태도에 화를 내고 싶은 호엔하임.
“일단 먹여? 목에 막히면…… 아, 몰라.”
청년은 정말로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약을 곧바로 입에 넣어 주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몸은 살 희망이 보이는 듯하자 기적적으로 입에 들어온 약을 삼키는 데에 협조해 주었다.
“후우…….”
호엔하임이 고비를 넘기고 숨을 내쉬고 있을 때, 어디에서 구해 온 건지 몰라도 물이 입 안으로 천천히 흘러들어 왔고, 자신의 목을 축이는 물의 감각을 느끼던 호엔하임은 안도감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 * *
“와, 진짜 급했네. 아니. 어째 내가 만나는 인물들이 시간이 갈수록 특이해? 처음엔 그냥 사는 세계가 특이하다가 나중에는 정신세계가 특이하고,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도 특이하기도 하고…… 특이한 병까지 있네.”
영의는 바닥에 누워 고른 숨을 내쉬고 있는 한 중년인을 쳐다보며 반쯤 푸념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죄송합니다만, 어디가 특이하다는 것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알림이는 영의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특이한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냥, 무림이라든가…… 숙적이나 기계에 집착한다든가…… 말하는 동물이라든가…… 들어 본 적도 없는 병 같은 거. 물론 다른 세계이니만큼 우리 세계랑 같을 거라고는 생각을 안 하는데, 적어도 사람 사는 곳이 뭐라도 비슷한 게 있어야 하지 않아?”
애초에 다른 세계인 만큼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너무 특이한 것들만 만나 온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가진 영의.
[각 세계 기준으로는 대부분 표준적인 상식 범주 내의 것들입니다만…… 확실히, 사용자가 말한 병에 대해서는 상식의 범주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수정이 필요하겠군요.]
대부분의 것은 정상의 범위 내지만 병에 대해서는 확실히 일반적인 게 아닌 듯 보였다.
“음…… 그런가? 아무튼, 내 생에 이렇게 급하게 누구를 살려 본 적이 또 있을까 싶다.”
영의가 그렇게 말하며 호엔하임을 바라보자, 그의 시선을 의식한 건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 건지 눈꺼풀을 움찔거리기 시작하는 호엔하임.
“으음…….”
“아, 일어나나 보네.”
호엔하임이 깨어나려는 기색을 보이자, 영의는 자세를 낮춰 호엔하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끄음…… 어떻게든, 살아는 있나 보군.”
호엔하임은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상체를 일으키더니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후읍!”
타악!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위로 점프를 하더니 팔을 위로 쭉 뻗거나 다리를 굽혔다 펴는 등의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하는 호엔하임.
“흐음…… 다행이군. 다른 병은 아직인가.”
중년으로 보이던 외모에서부터 짐작을 하긴 했지만, 영의는 호엔하임이 일라이저의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 신체 능력을 보여 주자 상당히 놀랐다.
‘연구만 하는 연구직이 보여 줄 수 있는 몸놀림이 아닌데……?’
베키나 발표회 때 보았던 마공학자들의 예를 생각해 보면, 대부분 골방에 틀어박혀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 주듯 깡마르거나 살이 쪄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근육? 그런 거 만들 시간에 엔진을 만들겠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근육이 없었던 그들.
“흐읍, 차앗!”
하지만 눈앞의 호엔하임은 영의가 보기에도 착실히 관리를 하거나 몸을 쓰는 것에 취미가 있어야만 만들어질 정도로 잘 만들어진 몸이었다.
“오오…….”
그렇게 무심코 감탄의 말을 내뱉는 영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의 존재를 눈치챈 듯, 고개를 돌리는 호엔하임.
“자네는, 누구인가?”
자신의 정체를 묻는 호엔하임의 반응에, 잠깐 당황하였으나 이내 호엔하임이 죽기 직전의 상태였던 걸 떠올린 영의.
“어…… 기억 못 하시나? 아까 약 먹여 드렸는데요.”
영의의 말에 호엔하임은 바닥에 놓인 약병과 영의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상황이 파악된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과연 그렇군. 이제 알겠군. 이해했어.”
호엔하임이 상황의 재구성을 머릿속으로 끝내는 듯 보이자, 영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그래도 최소한 이성적인 판단은 할 줄 아시는 것 같네. 그래, 목숨 구해 준 은인인데 적어도 문전 박대는 안 하겠지.’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드릴 게 있는데-”
“그럼 이제 나가게.”
영의가 일라이저의 소개장을 꺼내 호엔하임에게 건네주기 위해 재킷 주머니에 손을 갖다 대려던 그 순간, 호엔하임은 영의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네?”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되묻는 영의.
‘알림아, 방금 내가 잘못 들었나? 이 아저씨가 나가라는데? 혹시 이 지역 사투리나 뭐 그런 걸 잘못 번역했니?’
[사용자의 청력과 언어 번역 체계는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개체명 호엔하임은 사용자에게 ‘그럼 이제 나가게’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잘못 들었나 싶어 알림이에게까지 물어보았지만, 알림이는 영의가 제대로 들었다고 긍정해 주었다.
“나가게. 내 말 듣지 못했나? 나가 주게.”
호엔하임은 이내 잘 단련된 그의 몸으로 영의를 직접 밀어내며 바깥으로 내보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영의는 그대로 집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예? 어어, 어어어?”
쾅!
저택의 문이 세차게 닫히고, 멍하니 저택의 정문 쪽을 바라보다 문득 정신을 차린 영의.
“……역시, 또다시 특이하고 이상한 인간이잖아. 이성적인 판단은 개뿔이.”
영의는 저택의 계단참에 앉아 또 다른 특이 인물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