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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52화 (152/325)

#제152화 (3)

호찬의 가게에서, 영의는 호찬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야! 너는 진짜 사람이 말이야……!”

“아니, 아저씨. 이번만 좀 어떻게 안 돼요?”

몸으로 하면 당연히 호찬이 깔끔한 패배를 당하니, 말싸움으로 실랑이를 벌이는 둘.

“하, 참 나. 너는 진짜. 야, 햄버거집 들어와서 커피만 달랑 두 잔 테이크아웃해 달라는 게 말이 되냐?”

영의가 방금 한 커피 두 잔의 주문에 어이가 없어져 그만 실랑이를 벌이게 된 호찬과 영의.

“아니, 저기 다른 프랜차이즈도 그런 주문 되잖아요?”

“그거야 그쪽 사정이고, 너는 적어도 그러면 안 되지 않겠냐? 요즘 자주 오지도 않더만! 어디서 사고가 또 나 가지고 죽은 게 아닐까 싶었어!”

반쯤 그렇게 될 뻔하긴 했던 영의는 순간 주춤했지만 이내 호찬이 자신을 걱정했다는 걸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아저씨. 요즘 여기 올 일이 없다 보니까…….”

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호찬이었고, 예전에는 딱히 들를 일이 없어도 종종 들르곤 했던 그의 가게였으나 근래 들어 별로 오지 못했었다.

‘마지막으로 왔던 게 베키한테 배달 갈 때였나…….’

그때도 안부를 묻거나 하는 것 없이 급히 음식 포장만 해서 갔었던 영의.

호찬은 영의가 사과를 해 오자 한숨을 쉬며 커피 머신 앞으로 다가갔다.

“에휴…… 올 일이 없어도 가끔씩은 연락이라도 하고 그래. 그리고, 커피라도 사러 와 줘서 고맙다.”

그래도 지인 가게라고 매상을 올려 주기 위해 찾아온 듯한 영의의 마음씨에 조금 감동한 건지, 웃으면서 작동 버튼을 누르려던 그 순간.

“예? 아뇨, 커피는 그냥 여기가 싸서 온 건데…….”

영의의 대답에 호찬은 몸을 그대로 돌려서 버튼을 누르려던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나가, 인마.”

“에이, 아저씨. 농담이죠?”

영의는 호찬이 짓궂은 농담을 했다는 듯 그를 쳐다보며 작게 웃었지만 호찬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나가라고. 너 인마, 내가 너 요만할 때부터 챙겨 줬는데……!”

영의를 보며 손바닥을 낮춰 자신의 가슴팍쯤 되는 높이에서 흔드는 호찬.

하지만 영의는 거기에 일일이 대답을 했다.

“저 키는 고등학교 때랑 별 차이 없는데요?”

영의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할 말이 없어진 호찬은 가슴팍에서 흔들던 손까지 동원해 양손으로 문을 가리키며 외쳤다.

“나가!”

그 꼴이 퍽 우스웠으나, 매장에는 호찬과 영의 단둘밖에 없었기에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아, 하하. 진정하시고. 제일 비싼 스페셜 버거 세트로 하나 포장해 주세요.”

이제 슬슬 서로 간의 장난도 멈출 겸, 호찬을 달래 줄 의도로 주문을 하는 영의.

“그래도 나가.”

하지만 호찬은 상당히 마음이 상했는지, 영의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문을 가리키는 양 검지손가락에는 변화가 없었다.

“……사, 사이드 메뉴도 포장돼요?”

“……나가.”

그렇게 세 개의 햄버거 세트와 사이드 메뉴인 치킨 텐더 등을 주문하게 된 영의.

“아저씨, 진짜 죄송해요. 간만에 봐서 너무 장난이 심했었나 봐요.”

영의의 진심 어린 사과가 금융 치료와 함께 이어지자 호찬은 문을 향하던 두 검지를 위로 올린 자세로 바꾸었다.

“좋아, 받아 줄게.”

엄지와 검지를 직각으로 편 상태로 손바닥 부분을 영의에게 보이며 미소 짓는 호찬.

“……으음, 혹시 제가 여기서 주문 하나라도 취소하면 탈모가 될 거라는 저주 뭐 그런 건 아니죠?”

어디선가 본 듯한 묘한 자세에 호찬에게 숨은 의도를 묻는 영의.

“나 탈모 아니야 인마!”

그리고 호찬은 뭔가 마음속에 걸리는 게 있다는 듯, 갑작스럽게 흥분했다.

“네? 아저씨, 설마…….”

영의의 의심과 동정, 그리고 혹시나 싶은 불안감이 섞인 눈빛에 급히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가는 호찬.

“나, 나이 먹으면 다 이렇게 돼! 너도 나이 먹어 봐, 인마! 아무튼, 주문은 아까 말한 그대로 맞지?”

호찬은 주문을 핑계로 예민한 주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급히 식재들을 꺼내 조리를 시작했고, 영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에 앉았다.

“어어, 네.”

그러고는 무심코 자신의 머리를 스윽 쓸어 보는 영의.

“……!”

머리를 쓸었던 손의 손가락 사이에 머리카락이 두어 가닥 걸려 나오자, 그는 무심코 중얼거리고 말았다.

“탈모 방지 샴푸라도, 알아봐야 하나……?”

[사용자, 모발은 사용자의 세계만큼 기술이 발달한 곳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신체 부위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만.]

“……넌 내 맘 몰라.”

[본 개체는 사용자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자들은 한 번쯤 가져 보게 되는 고민을 마음속에 품은 영의는 호찬이 그를 부르기 전까지 휴대폰으로 이런저런 탈모 방지 제품들을 살펴보았다.

잠시 뒤, 호찬이 주문받은 것들을 모두 내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쓰읍, 이거…… 내가 홧김에 한 거긴 한데…… 네가 먹기에도 너무 많지 않아? 물론 네 식성을 알고는 있는데 그래도 이건…….”

그냥 햄버거 세 개라면 모를까, 가장 비싼 만큼 크기도 큰 스페셜 버거 세트를 세 개나 시킨 데다 거기에 사이드 메뉴까지 있었으니 혹여나 음식을 버리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은 걱정을 하는 호찬이었다.

하지만 영의는 호찬의 말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지, 보온 박스를 카운터에 올렸다.

“아, 뭐…… 괜찮아요. 방법이야 있으니까.”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들을 보온 박스에 넣기 시작한 영의를 본 호찬은 그에게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싶어 안도했다.

‘그래, 뭐…… 쟤가 친구가 좀 없긴 해도 아예 없진 않으니까 나눠 먹을 사람도 있을 거고…… 정 안 되면 식더라도 두 끼 동안 먹을 수도 있는 거고…….’

나눠 먹거나 뒀다가 먹을 거라고 생각한 호찬은 이내 자신이 생각한 게 맞을 거라 스스로 납득했다.

“예. 그럼 아저씨, 다음에 또 올게요.”

“그래, 다음에도 커피만 먹으러 오지는 말고.”

“에이, 그럴 리-”

그러진 않을 거라고 말하려 했던 영의는 혹시라도 다음번에 또 같은 용건으로 똑같이 행동할까 봐 은근슬쩍 시선을 옆을 돌렸다.

“……새, 생각은 해 볼게요.”

“생각만 하지 말고!”

“저 갑니다!”

황급히 가게에서 뛰쳐나온 영의는 바이크를 타고 재빨리 하늘로 도망쳤다.

“앞으로 커피는 잘 생각해 보고 사야겠어…….”

아주 작은 다짐과 함께.

* * *

일라이저의 집무실.

영의는 일라이저와 대면한 채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흐음, 괜찮은 음료군. 나처럼 나이 든 사람에겐 쓴 음료가 좋을 때도 있지. 무슨 약초인가?”

알림이의 조언대로, 영의가 찾아왔을 때에 일라이저는 이미 식사를 마친 직후였다.

그것을 본 영의가 곧바로 커피를 주어 식후의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일라이저.

물론 티(tea)가 아닌 커피였지만, 똑같이 음료 아닌가.

“음, 약초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피곤할 때 좋은 거예요.”

“쓴맛에 졸음이 확 달아나긴 하겠군. 어쨌거나 때마침 좋을 때 잘 왔네. 자네에게 주려던 보답을 할 때가 왔으니.”

일라이저는 커피를 홀짝이며 집무실의 구석을 가리켰고, 거기에는 상자 하나와 함께 밀랍으로 잘 봉인된 스크롤이 얹어져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내가 걸어 준 공간 확장 마법은 쓸 만했나?”

영의가 그 물품들을 흘끗거리며 살펴보기 시작하자, 일라이저가 영의의 재킷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아, 네. 유용하게 쓰고 있죠.”

“잘됐군. 임시로 해 준 것인데 쓸 만하다니. 잘 쓰고 있다니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던 것 같군……. 잠깐, 그 옷 좀 줘 보겠나?”

“뭐에 쓰시게요?”

영의의 물음에 일라이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냥, 임시를 임시가 아니게 만들어 주려고 하는 거지. 지난번의 감사에 이어…… 내 친우, 호엔하임을 좀 잘 부탁하는 겸 주는 보답이라 생각하게.”

“아, 네.”

영의는 재킷을 벗어 일라이저에게 건네주었고, 일라이저는 지난번 그가 새긴 마법진이 정확히 있던 곳에 손을 얹고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으흠, 그렇지. 지난번 이스데에서 열린 발표회 때 일어난 사건 말인데…… 뒷이야기가 궁금하다거나 하진 않은가?”

일라이저는 마법진을 새기는 작업이 별것 아니라는 듯, 마법진을 새기면서도 영의와 눈을 마주하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어…… 말하면서 해도 되는 작업이에요?”

“아, 별것 아니지. 이미 새겨져 있는 것을 조금 고치고 보강하는 수준이니. 식사를 하면서도 가능한 수준이야.”

과연 대마도사란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구나란 생각을 한 영의는 일라이저의 대화를 듣기로 했다.

“네, 그럼 얘기 좀 해 주세요.”

일라이저에게 발표회 이후, 신 마도 협회와 마법 협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영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짓을 해도…… 잘리질 않았네요. 뭐 뇌물이라도 썼대요?”

“아니,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위해를 끼칠 목적이 없었던 거지. 연구를 망치거나 목숨을 위협할 용도가 아니었으니까. 잠에 빠지게 하면 그날에야 조금 수치스럽고 평판도 살짝 떨어지겠지만, 연구 성과만 있다면 큰 문제가 안 되네.”

수면제 하나를 먹이려고 경비 매수에 상인 매수에 요리사 매수 등 수많은 공작을 펼친 신 마도 협회가 이해되지 않은 영의.

“겨우 그런 걸 하려고 뒷공작을 한다고요?”

영의는 단순하게 처벌받은 것만 생각하고 이야기했지만, 일라이저는 그 일이 일어났다면 더 큰 손해가 있었을 거라고 얘기했다.

“그거야 협회 내부에서 한 징계 심사에서야 그렇고…… 실제로 그 계획이 성공했으면 마도 협회가 입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 당장 신 마도 협회도 제명되거나 죽은 이가 없음에도 휘청이고 있으니.”

“으음, 네.”

작업이 모두 완료된 건지, 영의의 재킷에서 손을 떼고 들어서 건네주는 일라이저.

“자, 다 됐네. 소개장은 써 둔 게 있으니 그 친구가 보게만 한다면 어떻게든 될 걸세.”

“아, 네. 감사합……. 네? 보게만 하라고요?”

재킷을 받아 들다 일라이저의 말에 이상함을 느끼고 되묻는 영의.

‘보게만 하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일라이저는 턱을 손으로 매만지며 호엔하임의 성격을 떠올리는 듯했다.

“으음, 조금 괴팍하고…… 이상하고…… 사람을 잘 안 믿는 성격의 친구인 데다 으흠, 또 뭐가 있더라……. 아무튼, 친해지면 참 좋은 친구일세. 허허허.”

허허 웃으면서 별것 아니라는 듯 내뱉는 일라이저의 말에, 영의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갔다.

‘친해지기까지의 과정이 문제잖아요.’

경력이 없으니 회사에서 안 받아 주는데 어디서 경력을 쌓아야 하는 건가에 대한 것과 비슷한 모순을 순간 마음속으로 느낀 영의.

“하아…… 어째서 이 동네는 죄다 이상한 사람밖에 없는 걸까…….”

영의의 혼잣말에 일라이저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 프리데에 괴짜들이 조금 많긴 하지! 그래서 거기가 연금술이 발달한 거고!”

처음에 일라이저에게 가졌던 근엄한 대마도사의 이미지가 점점 피자 좋아하는 영감님으로 바뀌다, 이젠 그냥 이상한 제자에 이상한 스승으로 바뀌려 하고 있었다.

“아니, 네. 음. 일단 물건부터 받아 갈게요…….”

“음, 그래야지. 속성 마정석을 아주 든든히 챙겨 뒀네! 신 마도 협회랑 할 계약을 우리와 맺은 곳들도 많아서 말이야. 재정이 아주 좋아졌어.”

영의는 일라이저에게 뇌 속성을 비롯한 여러 속성 마정석을 받다가, 문득 마력 주입기에도 생각이 닿았다.

“맞다, 영감님. 마력 주입기로 마력을 주입하다가 근육통이 올 수도 있나요?”

“으음? 근육통? 아, 가끔 과하게 주입되면 그럴 때가 있지. 속성이 안 맞는다거나…….”

일라이저의 말에 영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많이 하진 않았는데? 아니, 그렇게 따지면 지연이가 더 많이 주입되지 않았나? 등급의 차이인가?’

A급인 수연과 달리 지연은 센스는 있었으나 마력량으로 따지면 C에서 D급 사이였기에, 영의는 조금 더 물어보기로 했다.

“일반…… 아니, 전마석으로 주입을 해도요?”

“전마석으로 부작용이라…… 그건 아마 전마석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적합한 속성이 따로 있거나……. 사실 나도 잘 모르겠네. 귀한 전마석으로 굳이 마력 주입을 한다는 건 너무 낭비라…….”

일라이저는 그러한 사례에 대해서는 들어 본 바가 없는지,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모르겠단 대답을 내놓았다.

“으음, 속성이 심하게 안 맞거나 남용하지만 않으면 부작용은 없는 거죠?”

“그렇지. 평생 불과 열기에만 집착해 온 이가 갑작스럽게 냉기를 띤 마석을 주입받는다고 생각해 보게. 당연히 문제가 생기겠지.”

영의는 더 이상 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킷 주머니에서 마정석을 한 움큼 꺼내어 탁자에 올려 두었다.

“개별적 성의이기도 하고, 혹시 모르니까 실험 한 번만 부탁드려 볼게요.”

“음, 고맙네. 아, 그리고 호엔하임 그 친구가 병이 조금 있으니 어딘가 아파 보여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아, 네. 그 정도야 뭐…….”

영의는 일라이저의 조언과 보상을 받은 뒤, 바이크를 몰고 지도에 표시되는 목적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프리데라…… 뭔 놈의 도시 이름들이 왜 죄다 대충 지은 것 같지? 뒤에 데가 공통적으로 붙는 걸 봐서 뭔가 규칙은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일라이저가 있는 도비데를 떠나 호엔하임이 있는 프리데를 향해 가는 영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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