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2)
신화 길드의 공략대 인원들과 화연의 게이트 탈출 시간에는 서로 간의 공백이 크게 없었지만, 현장의 인원들이 낙담하거나 절망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장영석 길드장님? 현장에 빠르게 나와 계셨던데, 이번 게이트 소멸 사건에 대해서 미리 알고 계셨던 겁니까?”
게이트가 사라졌던 현장의 주변에는 질서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기자들이 몰리며 생긴 난장판이 벌어져 있었다.
“나중에 답변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무겁고 예민한 분위기에 지쳐 보이는 길드원들을 건드릴 간 큰 기자들은 없었고, 가장 인터뷰를 해 볼 법한 대상인 영석에게 달려드는 기자들.
“장영석 길드장님? 사건이 퍼지지 않게 보도를 통제하려 하셨다는 소리가 있던데, 사실입니까?”
영석은 기자들을 일관되게 무시하며 길드원들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차라리 자신이 모든 기자들을 끌고 나가는 게 현명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답변하겠다고 했습니다.”
“국민들에게는 알 권리가 있습니다!”
우뚝.
기자 중 한 명이 외친 소리에, 영석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방금, 알 권리라고 했습니까?”
“예! 그러니, 답을 해 주십시오!”
계속 걸어가던 영석이 멈추자 기사를 하나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건지 안색이 밝아지는 기자들.
“알 권리라…….”
하지만 영석은 천천히 걸어가던 아까와 달리 기자들을 힘으로 밀쳐 내기 시작했다.
“알 권리?! 너희 기자라는 것들은 언제나 그랬었지, 사람 목숨이 달려도 기사 쓰기에 바빠서 우리 발목이나 부여잡던 놈들!”
영석은 소방관 출신이었기에, 기자들이 얼마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지 아는 인물 중 하나였다.
화재 진압과 인명 구출을 해야 하는 소방관을 붙잡고 질문을 던져서 시간을 지체시킬 때도 있었고, 차량을 치우지 않아 소방차가 못 들어올 때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딸 같으면서도 후계자로 점찍어 둔 화연이 소멸한 게이트 내부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에 심란했던 마음이 과거에 쌓였던 악감정과 합쳐져 영석을 폭발하게 하였다.
“어? 어어?”
영석이 기자들을 거칠게 밀어내며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바닥에 늘어져 진이 빠진 몸을 달래거나 화연을 걱정하고 있던 길드원들이 소란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기, 길드장님?!”
그런 그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이 바로 정훈.
정훈은 지친 몸을 이끌고 영석을 말리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부길드장님이 안 계신 지금, 길드장님마저 문제가 생기면 길드의 존속 자체가 위태롭다……!’
서울 지부장과 부길드장을 모두 해 본 그였기에, 길드 내에 있는 비각성자 인원들에 대해서 아는 정훈.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더라도 길드는 그들을 필요로 하고, 그들도 길드를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그였기에 정훈은 영석을 말리기 위해 달려 나갔다.
‘지금이라면 단순히 신체 능력 차이로 인한 밀려남 정도로 변명할 수 있다……!’
합의금이야 조금 깨지겠지만, 누구 하나가 다치거나 피가 나진 않았으니 수습할 수 있을 거라 믿는 정훈.
그러나 그가 기자들과 영석 사이에 끼어들기 전에, 이미 그곳에 난입하여 영석을 말리는 인물이 있었다.
“아저씨! 진정하세요!”
정훈보다 빠르게 뛰쳐나와 영석을 말리려 다가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뒤에서 목을 조르기 시작하는 화연.
찰칵- 찰칵-
화연이 영석을 무력으로 제압하기 시작하자 기자들은 급히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대기 시작했다.
“……화, 컥! 컥! 연……아?”
“부길드장님?”
영석과 정훈은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화연이 갑자기 나타나자 당황하여 그 자리에 굳었지만, 이내 그들의 눈앞에 다시 돌아왔단 걸 깨닫자 안도했다.
“후우…… 다행이네.”
정훈은 길드가 망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영석에게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턱. 턱.
“화여나, 이어…… 이어 좀 나즈…….”
한편, 영석은 지금도 화연에게 목이 졸리고 있었다.
그러한 상태로 놔 달라고 말하는 영석이었지만, 화연은 아직도 앞으로 걸어 나가려는 기세를 유지하고 있는 영석의 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쓰읍, 안 돼요. 지금도 몸은 앞으로 가려고 하시잖아요. 조금만 참아요. 대동맥은 금방 기절하니까.”
영석은 중간부터 힘이 풀리기는커녕 더 꽉 조이기 시작하는 화연의 태도에 당황했지만, 그녀를 믿어 보기로 하고 어울려 주었다.
“이거……는…… 살려…….”
턱…… 투욱.
찰칵- 차차차차찰칵-
화연의 팔을 툭툭 치던 영석의 손이 바닥으로 축 늘어지자, 그제야 조르고 있던 목을 풀고 영석을 들쳐 메는 화연.
그리고 기절하는 모습이 보이자 카메라의 셔터음이 더 늘었다.
“제가 들겠습니다.”
그때 정훈이 눈치 빠르게 다가와서 영석을 업으려 했고, 화연은 흔쾌히 영석을 넘겨주었다.
“그래, 잘 모셔. 길드원들도 다 지쳤는데. 버스 불렀지?”
“네.”
화연은 정훈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하기 시작했고, 정훈은 모든 지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맨 앞자리에 벨트 채워서 잘 눕혀 드리고. 깨어나면 냉커피 한 잔 드리고. 길드원들은…… 음, 오늘 여기서 잘 사람들은 자고 집에 갈 사람들은 가라고 그래.”
정훈에게 지시를 끝낸 화연은 작게 혼잣말을 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음, 그리고…… 순서라고?”
그리고 혼잣말을 하지 않은 척하며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짓고는 기자들을 바라보는 화연.
“에헴. 거기, 기자분들? 인터뷰할 거면 저하고 하시죠. 그리고, 방금 전에 찍은 사진이랑 영상들 다 지워 주세요. 안 그러면 인터뷰가 좋지 못할 수 있으니까.”
그녀는 분명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에서 묘한 살기가 흘러나왔고 그러한 살기는 사진에 담기는 종류가 아니었기에 기자들은 모두 군말 없이 사진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포기하더라도, 기사만큼은 바로 써서 보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던 기자들.
하지만 그들의 타오르는 의지는 다른 방향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화연의 한마디 말 때문에.
“음, 좋아요. 그럼 일단 서로 순서부터 정해 주실래요? 저도 사람이라 질문이 몇 개씩 들어오면 곤란해서.”
전체적인 속도 경쟁에서, 개별 순위 경쟁으로 바뀌자 기자들의 눈빛이 변하고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정훈은 길드원들을 빠르게 통솔해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고 그런 그들을 가로막으려는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잘 정리되기 시작한 상황을 보며, 화연은 만족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알림…… 양? 덕분에 상황을 잘 마무리한 것 같네요.’
[흔히 사용되는 표현을 빌리자면, 과찬의 말씀입니다. 저 또한 사용자의 지시에 온 것이기에, 감사를 표할 필요는 없습니다.]
화연은 지금까지 알림이의 조언에 따라 행동했고, 그로 인해 신화 길드가 최소한의 손해를 입으면서 상황을 매끄럽게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으음, 근데 적응은 안 되네요. 마음속으로 말을 거는데 대답해 주는 상대가 있다는 게……. 선배는 되게 익숙하던데. 아무튼, 도움을 받았으니 고맙단 표시를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다시 표현을 빌려 보자면…… 신화연 양.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화연은 알림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혹여나 싶어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네, 잘 가요. 혹시 인터뷰 질문도 조언이 가능할까요?’
[그런 것은, 힘듭니다만.]
‘음, 네.’
이제 상황을 완전히 자신이 통제해야 하자, 기자들을 데리고 어디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까 고민을 하던 그때 알림이가 다시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신화연 양?]
갑작스럽게 먼저 말을 걸어온 알림이에게 놀라며 답하는 화연.
‘네?’
[부디, 몸조심하기를.]
느닷없는 인사였지만, 화연은 똑같이 대답해 주기로 했다.
‘……네, 당신도요. 몸…….’
“……이-”
무심코 하려던 생각을 급히 전환하다 말로 꺼내 버린 화연.
“……이 인원들이 들어갈 장소가 주변에 있을지가 모르겠네. 그냥 여기서 하죠. 마땅한 장소 찾기가 힘드니까. 자, 그럼 순서는 정했나요?”
몸이 있을진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을 내뱉으려다가 급히 말을 바꾼 화연은 그렇게 기자 무리들을 이끌고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 * *
하늘에서 지상, 그것도 사람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우글우글 모인 곳을 내려다보는 영의.
-우진일보, 박기동 기자입니다! 게이트가 소멸하게 된 이번 사건의, 과정이 어떻게 된 겁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안에서 갑자기 보니까 깜빡거리고 있어서…….”
-그래도 뭐라도 아시는 게 있다면…….
“질문은 하나까지! 자, 다음!”
-어어, 어? 이것까지만…….
-끝났으면 나와요. 각성자 투데이의 최진우 기자입니다! 오랜 기간 내근직에 있다 현장으로 나오셨는데…….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여기저기서 던져지는 질문에 있는 사실 없는 사실 만들어 내고 쥐어짜며 대답하는 화연의 모습이 보였다.
“……참, 고생이 많네. 나도 나중에 정체 까발려지면 저렇게 몰려들겠지? 으으, 싫다.”
영의가 지상에 있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몸서리를 치던 그때 그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용자, 개체명 신화연에게 가장 적절한 조언을 해 주고 왔습니다.]
“음, 그래. 수고했어. 화연이도 고생이 참 많네. 그보다, 목 졸라서 기절시키는 게 너무 익숙하던데…… 평소에도 그러는 건가?”
영석의 목을 졸라 기절시키는 것이야 알림이의 조언에 따른 결과물이었겠지만, 그녀의 접근과 기술이 너무 능숙했다.
[……개체명 장영석에게는 해당되지 않지만, 개체명 신화연이 비살상 제압에 능숙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어우, 쟤가 진심으로 나한테 저걸 쓸 일은 없겠지만…… 조심은 해야겠지?”
[본 개체가 추천하는 방안으로는, 근육 마비를 유발할 정도의 전기 충격이 가장 적합합니다.]
알림이의 섬뜩한 말에, 영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내가 저렇게 되지 않게 조심해서 살면 되는 거지…….”
영의는 본래 화연을 집이나 길드 건물에 보내 주려 했으나, 화연이 영의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길드원들한테 가 봐야겠어요. 제가 없으니 걱정도 할 거고…… 또, 제가 나오는 걸 확인하고 나가려던 대원들도 있었으니까.
부길드장이라는 자리의 책임감을 느끼는 건지, 아니면 타인을 걱정해 주는 건지는 몰라도 화연의 태도에 영의 또한 수긍했다.
그렇게 그녀를 산에서 내려 주고, 곧바로 공중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던 영의.
“그래, 그럼 지금 그 영원의 숲인지 뭔지로 가면 되는 거야?”
영의는 알림이가 이야기했던 것을 빠르게 처리하려 했다.
[아닙니다, 영원의 숲으로 가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지금 사용자에게 더욱 적합한 것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알림이의 말에 의문을 표하는 영의.
“더 적합?”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배해 둔 것보다 더욱 적합한 게 또 뭐가 있을 거란 말인가.
[사용자, 혹시 호엔하임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알림이가 호엔하임이란 이름을 언급하자, 영의는 방금 전 베키에게 들은 내용이 기억났다.
“아, 그 베키가 말했던…….”
[맞습니다. 개체명 일라이저에게 소개장과 지난번의 보상을 받은 뒤, 개체명 호엔하임에게 방문할 것을 추천합니다.]
영의는 알림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일라이저에게 가려 했으나, 그때 오랜만에 보는 알림 창이 나타났다.
[주문인 : 현인(賢人) 호엔하임]
[주소지 : 프리데 북부 구역]
“우와, 간만에 보네. 근데, 왜 이것밖에 없어?”
영의는 배달 물품이라든가 보상에 대한 부분이 없자 의문을 표했다.
‘물론 물건이 없으니 보상도 없는 법이겠지만…….’
[본 개체가 직접적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인물의 소개로 가는 것이기에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보상이 없는 것은 물품이 없기에 계산에 필요한 값을 얻어 낼 수 없었습니다.]
알림이가 직접 소개하는 게 아니어서 그렇다는 말에 납득하고 수긍하는 영의.
“음, 하긴 그렇지. 베키랑 일라이저 영감님이 소개해 줘서 가는 거니까.”
[표현을 빌리자면, 사용자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본 개체를 믿으십시오.]
“난 늘 너를 믿고 있어. 가끔 그 믿음이 약해질 때도 있지만…….”
영의의 믿는다는 말에 잠깐이지만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 바뀌는 알림이.
[……저에 대한 그 믿음에 감사합니다, 사용자.]
“응. 그럼, 일라이저 영감님한테 뭐라도 하나 사 가야 할 텐데…… 뭐가 좋으려나?”
[본 개체는, 식사류 대신 음료류를 추천합니다.]
하지만 알림이가 순간적으로 자신을 지칭할 때 쓴 표현을 눈치채지 못한 영의였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했다.
원래, 남자들은 생물학적으로 청각적 정보가 시각적 정보보다 덜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종종 뭔가에 집중할 때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까먹는 것이기도 하고……. 절대 영의의 머리가 나빠서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