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20)
신화 길드 베이스캠프.
화연은 이곳에서 정찰대의 복귀를 기다리며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진짜로, 이상하네. 왜 아무런 기척도, 흔적도 없는 거지?”
게이트 내부에 뭔가 생물이란 게 있다면 적어도 그 생물이 지나다니거나 살았던 흔적이 보여야 할 게 아닌가.
하지만 이 게이트는 새로운 타입에 변형이 일어난 걸 감안하더라도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다.
‘뭔가, 느낌이 불길한데?’
“안 되겠어, 아무래도 철수하고 바깥에서 대기를 해야…….”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에 철수를 결심하는 화연.
그리고 그때, 정찰대로 출발했던 지원 팀원 중 한 명이 베이스캠프의 지휘소로 뛰어 들어왔다.
“비상입니다!”
지원 팀의 비상이란 말에 안색이 변하는 화연과 정훈.
“비상? 무슨 일인데?”
지원 팀원은 정훈의 물음에 급하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사막하고 숲 경계선에서 처음 보는 괴수? 그, 그걸 괴수라고 하기엔…… 아무튼 이상한 게 나타났습니다!”
중간에 본인 스스로도 괴수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에 정훈은 잠시 의문을 가졌으나 시간을 지체하는 행위는 자제하기로 했다.
“그래, 알겠다. 공격 1팀과 지원 1팀이 현장으로 함께 출발하기로 하지.”
“좋아, 서두르자고.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말이야.”
화연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문과 의심을 했었으나, 때마침 무언가 나타났단 보고를 듣자 철수하려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변형된 게이트잖아.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겠지.’
이내 지휘소 텐트에서 나와 큰 소리로 외치는 화연.
“공격 1팀! 지원 1팀! 모두 정찰대를 지원하러 간다! 거리는 가까우니까 최대한 신속하고 가볍게 챙겨!”
“예!”
정찰대를 지원하기 위한 두 팀은 곧바로 가진 무장과 최소한의 보급품만 챙겨 정찰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너무 의외의 상황에 할 말을 잃은 화연과 얼빠진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는 정훈.
“Oh, 뎨쟝림! 신기한 거 찾았어요! Come and look!”
현장에서 앉아서 쉬고 있던 앨런이 그들을 발견하고는 해맑은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었다.
사막과 숲의 경계선 한복판에 널려 있는 큰 회색 덩어리와 다양한 크기와 길이를 보여 주는 회색빛 팔과 다리들.
그리고 그런 팔다리와 덩어리들에는, 붉은색을 띠는 부분이 있는 것도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햇볕에 고추나 생선, 해조류 같은 뭔가를 건조하는 것과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이게, 다 뭐야?”
화연이 앨런에게 묻자, 앨런은 일단 한숨으로 답했다.
“어후, 진짜 힘들었지. 뎨쟝림은 못 봐서 모르겠지만, 진짜 괴물이었어. This thing.”
앨런은 바닥에 널린 조각들을 가리켰고, 그런 그의 설명을 못 들어 주겠다는 듯 지원 2팀장이 화연에게 걸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놈이었는데, 두 발로 걷는 주제에 다리는 세 개였고 몸통은 더럽게 크고 튼튼해서는…….”
“뭐야? 좀 제대로 설명해 줘 봐.”
정훈이 제대로 된 설명을 요구했지만 지원 2팀장은 자신이 할 말을 계속 이어 갔다.
“어후, 사진을 못 찍어서 제대로 말은 못 하겠는데. 팔이 열몇 개가 달리고 머리는 괴상한 곳에 달려 있고 그 와중에 몸은 더럽게 단단해 가지고 답이 없었죠.”
끄덕끄덕.
거기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앨런.
“아니, 뭐 어떤 식으로 덤벼 왔고 어떤 식으로 싸웠고 그런 걸 얘기해 보라고!”
화연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소리치자, 지원 2팀장은 고개를 돌려 어딘가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뭐?”
두 동강 난 바위 파편과 이런저런 잡동사니 같은 게 널브러져 있는 모래밭을 보자 의문을 표하는 화연.
그녀는 저것이 원래 이 게이트 안에 있던 물건인 줄로만 알았다.
종종 게이트 내부에 있는 타 문명의 흔적 같은 그런 것들 말이다.
“저거, 전부 다 저 괴물 놈한테 집어 던지거나 때려 박아서 박살 난 무기들입니다.”
지원 2팀장의 말에 잡동사니 무더기를 쳐다보는 화연.
저기 있는 것들 중의 절반만 각성자용 장비라고 쳐도 어지간한 차 한 대 값은 나올 것이다.
“저게 전부?”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이 주변에서 쉬고 있는 정찰대 인원들 중 장비가 없는 몇 명이 눈에 보였다.
“진짜, 네?”
“어휴, 근데 저놈 특이한 게 뭔지 아십니까?”
지원 2팀장의 말에, 주변을 살펴보던 정훈이 답을 해 주었다.
“어, 그건 알 것 같은데. 왜 마정석이 안 나오지?”
“그렇죠? 진짜 뭐 저기 있는 저 괴상하게 튼튼한 몸뚱이에 마력이 집중됐다고 쳐도, 최소한 나머지 부분은 사라지면서 마정석이 나와야 하는데 저놈은 그런 게 없어요. 어쩌면 전부 집중된 걸지도?”
몇몇 괴수들은 특정 신체 부위에 마력이 집중되어 있었고, 그런 신체 부위는 엄청난 강도를 보여 주거나 특이 특성을 가진 소재들이 되어 각성자들의 장비 재료가 되거나 첨단산업용 신소재가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이언 버팔로의 가죽으로, 그 튼튼함으로 인해 사냥이 힘들지만 사냥만 끝나고 나면 그 튼튼하던 가죽이 든든한 방어구 또는 든든한 통장 잔고가 되는 것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마력이 덜 집중된 뿔이나 고기는 절대 부산물로 남지 않았기에 시장에는 가죽만이 넘쳐흘렀다.
그런 이유로 정찰대가 방금 전 마주쳤던 괴생물체는 괴수의 범위 안에는 없는 듯했다.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 부위 중 그 어떤 부분도 사라지지 않고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뭐라도 없어지면 확인해 보려고 온몸을 저렇게 다 잘라서 놔둔 거야? 분해도처럼?”
“그렇죠. 그리고, 어쩌면 아까 말한 것처럼 저 몸 전체가 죄다 마력이 집중된 타입일 수도 있고.”
“그게 말이 돼?”
정훈의 물음에 지원 2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일단 무기가 다 박살 날 정도로 튼튼하단 것만큼은 알겠더라고요.”
모든 무기가 부서질 정도로 강도와 경도가 높다면, 어쩌면 정말로 모든 신체 부위가 부산물이 될 수도……?
그런 생각을 품던 그때, 문득 화연은 그럼 저 괴생물체를 어떻게 죽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무기가 안 들어갈 정도로 튼튼한 몸인데 저걸 어떻게 잡아서 저렇게 일일이 사지를…… 아니, 몇 개야? 아무튼 몸을 저렇게 분해를 시켜 놓은 거지?”
화연의 물음에 답을 해 준 것은 직접 몸을 부딪쳐서 싸워 봤던 앨런이었다.
“뎨쟝림, 그건 내가 답해 줄게요. 저 녀석, 이상하게 팔다리 관절은 약했다. 무슨 본드로 붙여 놓은 것처럼 세게 잡아당기면 뜯겼어요.”
뽑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몸이 뜯겼다는 말에 의문을 품는 화연과 정훈.
“뭐? 팔이 뜯겨?”
“네, 얘가 말한 대로입니다. 저놈 저거 느려 터진 주제에 더럽게 힘이 세 가지고, 뭐 하나 잡은 건 절대 안 놓더라고요.”
지원 2팀장은 화연과 정훈이 오기 전, 괴생물체와 대치할 때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수비 팀원 중 한 명이 괴생물체의 손에 붙잡혔고,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으나 마치 바이스나 유압프레스기 사이에 끼인 것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고.
“그걸 본 지원 팀 한 명이 돕다가 안 돼서 두 명이 붙어서 잡아당겼더니, 뚝! 하고…….”
“뚝, 하고 팔이 뜯겨 나왔다…… 이거지?”
“네. 저놈 몸이 회색이긴 해도, 뜯겨 나온 부분 안쪽은 붉더라고요.”
“거기에는, 칼 찔러 봤어?”
정훈은 색이 다른 부분은 뭔가 약점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물어보았고, 지원 2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해 봤죠. 그냥 뜯어내면 잡힌 것도 풀리고 뜯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하긴,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이네.”
힘이 세고 튼튼하긴 해도, 잡아당기면 떨어지는 팔다리를 갖고 있고 떨어지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는 인형 같은 녀석인데 굳이 칼을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섣불리 무기를 썼다가 깨먹을 수도 있었으니까.
“근데 특이한 건, 저 떼 낸 팔 중에 붉은 부분이 없는 게 있어요. 꼭 진짜로 붙여 놓은 것처럼.”
‘몸에 저렇게 팔이 많이 있다면, 보통은 그냥 팔이 많은 생물이구나 싶은 생각을 할 텐데…… 붙여 놨다고?’
“붙여 놔? 나 있는 게 아니라?”
“그런 건 조금 더 떼기 힘들긴 했는데, 네 명쯤 붙으니까 떨어졌습니다. 저건 진짜 시체 누더기처럼 생겨 가지고는, 딱 특징도 비슷하고. 시체 누더기라고 부를까요?”
지원 2팀장과 앨런의 설명을 듣고 정보를 종합해 보는 화연.
“흐음,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라……. 일단 철수하자.”
“네?”
“뎨쟝림, 철수라니? 왜?”
철수하겠다는 화연의 결정에 의문을 표하는 지원 2팀장과 앨런.
“너무 위험해. 한 놈이야 단체로 붙어서 팔 하나씩 뜯어내면 되는 거지만, 저런 게 수십 수백 마리가 몰려오면 어쩔 거야? 개인의 힘으로 떼 낼 형편이 안 되잖아.”
“그만큼 있었으면 진작에 나타나도 다 나타났겠지, 뎨쟝림!”
“안 돼. 위험해. 그리고 한 놈 상대로 장비도 저만큼 박살 내 놓고, 뭘 더 하겠단 거야?”
앨런은 뭐라 더 말하려 했으나, 수비 2팀원들의 장비 상태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알겠어요. 뎨쟝림.”
조금…… 아니, 상당히 기분파에 진지할 때가 별로 없는 앨런이었지만 그래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래, 그리고 뎨쟝림 아니고 대장님.”
“Yes, Ma'am. 대. 쟝. 님.”
“뭐, 그나마 좀 낫네. 지원 2팀장님은요?”
“철수하지요. 하루 정도 늦춰지는 게 누구 하나가 다치거나 죽는 것보단 낫잖습니까.”
모두의 의견이 철수 쪽으로 모아지자, 화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려 했다.
“네, 그럼 철수를……. 잠깐.”
“대쟝님, What's the problem? 문제 있어요?”
“역시, 느낌이 안 좋더라니…….”
화연의 혼잣말에 모두가 의문을 표하고 있었으나, 이내 정훈도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직감만큼은 확실히 동물급이라니까. 어떻게 속성계가 강화계보다 눈치가 빠른 건데요?”
화연은 목소리를 높여 모든 인원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쳤다.
“전원! 경계 태세 최대로 철수한다!”
그녀의 명령에 처음에는 잠깐 의문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들은 정예.
“철수?”
명령에는 곧바로 따랐다.
“경계 태세로 철수!”
“철수!”
곧바로 주위를 살피며 베이스캠프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인원들.
그들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철수하는 것을 의아해했으나, 부길드장과 서울 지부장의 자리를 추첨이나 투표로 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았기에 묵묵히, 그리고 신속하게 철수하기 시작했다.
사막과 숲의 경계선에서 베이스캠프가 있는 사막 쪽으로 달려가며 숲이 멀어져 보일 무렵, 숲 쪽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쫓아오기 시작했다.
“뒤에 뭐가 쫓아온다! 속도 올려!”
방금 전 보았던 시체 누더기 괴생물체가 눈으로만 확인된 것이 둘.
아까 천천히 걸어 다니던 것과는 생김새만 같고 다르다고 말하는 듯, 수많은 팔과 세 개의 다리를 모두 사용해 땅을 박차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 옆에서 달려오는 사족 보행의 생물체와 두 발로 걷고 있지만 다른 모든 것들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인간 형태의 무언가.
철수하는 와중에 흘끗 뒤를 돌아본 신화 길드 인원들은 모두가 상당한 경험이 있는 정예였고 베테랑이었지만,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을 자극하는 생김새의 괴물은 두려운지 점점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젠장, 저런 것들은 왜 나온 거야?”
“나도 모르니까, 달려!”
화연은 정훈과 다른 팀장들을 재촉하면서도 뒤를 보며 저 괴생물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선배, 아무래도 휴가는 조금 늦게 받을 것 같네요.’
그리고, 영의에 대한 짤막한 사과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