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19)
신화 길드의 정예들이 게이트에 진입하기 직전,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촬영하는 이들이 있었다.
“Yo, Bro. 찍고 있지 제대로? like as 므-찐 충무로 배우들처럼?”
“그래, 앨런. 그보다 너도 한국 온 지 거의 7년 차인데 아직도 한국말이 잘 안 돼? 그리고 므-찐이 뭐냐 므-찐이. 너 또 이상한 거에 꽂혔냐?”
게이트 앞에서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는 이들 사이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는 금발 머리의 외국인.
그는 한국 이민 7년 차 각성자인 앨런 스미스였다.
참고로 주변에 소개할 때 쓰는 한국식 이름은 최민식이었지만 그와 친하게 지내는 그 누구도 그렇게 불러 주지 않았다.
“Oh, 진수! 왜 이래? Come on! 뜻만 통하면 됐지! 사 놓고 까먹고 안 먹은 송편처럼 딱딱하게 그럴래?”
앨런은 평소 어조에는 영어를 섞어 쓰지만 종종 한국인보다 유창한 한국어 구사 실력을 자랑했다.
“그런 데서만 이상하게 한국말 잘하지 말라고…….”
앨런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은 신화 길드 직원인 박진수였다.
그는 비각성자였음에도 각성자들과도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인물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길드의 활동 기록 담당이었기 때문이다.
“Don't worry 진수. 너도 언젠가는 한국말을 나처럼 잘할 거야.”
앨런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던졌고, 그의 농담에 주변에 있던 다른 각성자들도 웃음이 터졌다.
“야, 진수야! 넌 언제 쟤랑 말싸움해서 이길래?”
“이렇게 된 거 너도 한국인 귀화 시험 봐서 귀화해 버려!”
한국인이지만 한국으로 귀화하란 말을 듣자 반발하듯 외치는 진수.
“나 이미 한국인이라고!”
하지만 그의 외침은 크게 효과가 없었다.
“근데 왜 쟤보다 한국말이 안 되냐!”
“그래, 한국에서 먹은 공깃밥이 쟤보다 세 배는 많을 녀석이!”
진수에게 상당히 짓궂은 농담을 던지는 이들이었지만, 그들도 적당한 분위기 완화를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았기에 진수도 웃으면서 외쳤다.
“에이, 진짜! 빨리 들어가서 괴수나 잡고 나와! 오늘 일찍 퇴근하게!”
“싫은데? 진수 늦게 퇴근시키고 싶은데?”
“진수. 걱정 마. 우리 뎨쟝림이 빠른 퇴근을 원해. 빨리 끝날 거야.”
앨런이 빨리 끝낼 거라며 진수의 어깨를 툭툭 치고 있을 때, 정훈과 함께 그 뒤를 지나가던 화연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뎨쟝림은 또 뭐야……. 대장님이라고 부를 거면 제대로 불러.”
화연의 목소리를 듣자, 화색을 띠며 고개를 돌리는 앨런.
“Oh, 뎨쟝림!”
“대.장.님.”
“뎨쟝림!”
화연은 그냥 앨런의 발음을 고치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 맘대로 해. 다들, 준비됐지?”
“예!”
“그럼, 들어간다!”
선두의 화연과 정훈을 필두로, 앨런을 비롯한 각 팀의 팀장들이 각자의 장비를 착용하고 일사불란하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제법 멋진 그림이었다.
“오, 이번에도 그림 좋다.”
진수는 게이트에 진입하는 인원들을 하나하나 찍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고, 진입하는 인원들도 그에 화답하듯 카메라를 보며 웃거나 멋진 포즈를 한 번씩들 취해 준 뒤 게이트로 들어갔다.
그렇게 게이트 내부로 진입한 신화 길드 게이트 공략대.
사실 ‘게이트 내부 진입 및 괴수 소탕 행위’라는 법적 단어에 대해 길드별로 부르는 별칭이 제법 상세하게 있었다.
어떤 길드는 레이드, 어떤 길드는 입던, 어떤 길드는 그냥 소탕…… 그리고 신화 길드는 길드장 영석의 성향에 의해 공략으로 부르고 있었다.
게이트 내부에서 인원들이 어느 정도 모여들자, 화연은 뒤쪽에 늘어선 공략대의 인원들에게 명령했다.
“자, 각 팀장들 인원들 좀 정리해 봐. 공격 1, 2팀. 수비 1, 2팀. 지원 1, 2, 3팀!”
화연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거리를 두고 서는 팀장들.
“자! 공격 1, 2팀! 모여!”
화연을 대리해 공격 1팀과 2팀을 모두 담당하는 정훈.
“Here, 수비 2팀 fellas! 여기에 모여!”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취미가 있지만 수비 팀의 에이스인 앨런.
“지원 팀들은 각자 얼굴 알지? 알아서 모여!”
그리고 그 외 팀장들.
화연은 눈대중으로 모인 인원들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저쪽에 베이스캠프부터 설치해. 미탐사 게이트니까 최대한 안전하게 간다. 수비, 공격 팀은 경계 태세 갖추고.”
지원 팀은 베이스캠프라는 말이 들린 순간부터 가져온 짐들을 풀고 화연이 지정한 위치에 빠르게 대형 천막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사실 베이스캠프라고 해 봤자 군대에서 쓰는 중, 대형 텐트에 이런저런 장비들을 쌓아 둔 장소였지만 내구성과 부피, 설치 시간을 고려해 보면 군용품이 그들의 목적에 가장 적합했다.
철컥, 착!
“거기 잡아!”
펄럭.
모두가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불과 20여 분 만에 베이스캠프가 완성되었다.
“좋아! 지휘소…… 아니, 베이스캠프 완성! 지원 1팀! 의료 장비 세팅해! 지원 2팀은 수비 2팀과 함께 나랑 같이 정찰 간다! 3팀은 대기!”
물자를 적재해 두고, 혹시 모를 부상자를 두기 위한 베이스캠프가 완성되자 곧바로 행동에 나서는 지원 팀의 인원들.
베이스캠프를 떠나 15분 가까이 걸어, 숲과 사막의 경계선에 도달했다.
“와, 진짜 정보대로 사막 바로 옆에 숲이 딱 붙어 있네?”
“신기한 풍경이네요…….”
정찰대로 온 공략대원들은 사막과 숲이 붙어 있는 놀라운 경치에 감탄해 순간적으로나마 정찰을 해야 한단 사실마저 잊었다.
“경치에 신경 쓰지 말고,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괴수를 찾으라고.”
“살펴보고 있습니다. 근데,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고 아무리 찾아봐도 특이한 게 없는데?”
전투 능력보다 감각 쪽이 더 발달한 강화계들이 정찰 역할로 편성된 지원 2팀이었지만, 그들의 발달한 감각에도 아무런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이상한 점을 발견한 지원 2팀장.
“잠깐,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네.”
지원 2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럴 리가. 아까 탐사 때는 아이언 버팔로도 발견했었어. 그 녀석 소리 정도는 들려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그 이전에, 정말 아무런 소리도 없어? 벌레나 새소리도?”
물론 그들이 지나온 곳은 사막이라 특이한 소리가 들리길 기대하는 게 우스운 일이지만, 반대로 나머지 반은 숲이니 그곳에서라면 무슨 소리라도 들려야 하는 것 아닌가.
“어……? 그러고 보니? 잠깐! 방금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팀원이 뭔가를 감지하자, 곧바로 고개를 돌려 숲 쪽을 바라보는 지원 2팀장.
“뭐? 어디?”
뭔가 소리가 들리려면 어지간해서는 숲이겠거니 싶은 상식적이고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었으나, 팀원은 숲이 아닌 지나왔던 사막 쪽을 보고 있었다.
“뭐야, 사막이야? 저 넓은 사막 평원에 무슨…… 소리가…….”
지원 2팀장은 팀원이 보는 방향과 자신이 보는 방향이 다르단 걸 뒤늦게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 사막 쪽을 바라보았고,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저게, 뭐야?”
만들다가 실패한 인형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기괴하고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을까 싶은 형태의 물체가, 천천히 사막 쪽에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히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오고 있었지만, 땅에 닿고 있는 다리는 세 개였으며 몸통은 고릴라나 오랑우탄처럼 묵직하고 튼튼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 속의 동물이라 할지라도 팔이 앞뒤로 몇 개씩 더 달려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세 개의 다리와 비대한 몸통, 그리고 어딘가에서 갖다 붙이기라도 한듯 서로 굵기와 길이가 다른 팔들을 몇 개씩이나 주렁주렁 달고 있는 괴 생명체.
가장 특이한 것은,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목과 가슴에 해당하는 부분에 눈이 여러 개 달려 있고 겨드랑이 쪽에 작은 머리가 하나 있었다는 점이다.
정찰대 인원들은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한 무언가를 보고 당황하고 놀라며 충격을 받았다.
“오, 이런 미친. Jesus…….”
모두가 기존의 상식과 개념을 파괴하는 그것을 보며 멍하게 있을 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지원 2팀장이었다.
“무, 무전부터 쳐! 괴수가 나타났다고!”
쌓인 경험과 팀장이 될 정도의 능력이 있었기에 가장 먼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수비 2팀장.
하지만 그들이 들어온 게이트는 전자 장비의 작동이 방해받았기에, 무전기는 전부 바깥에 있었다.
“팀장님! 저희 무전기 없습니다! 여긴 EMP 게이트라고요!”
“그럼 직접 발로 뛰어야지! 아무나 발 빠른 녀석이 가! 수비 2팀장!”
수비 2팀장은 팀원 중 한 명의 등을 거칠게 밀어 베이스캠프 쪽으로 보내고는 함께 온 수비 팀을 바라보았다.
“Holy, what the fu…….”
“야! 앨런! 정신 차려, 최가 놈아!”
짜악!
지원 2팀장은 앨런의 뺨을 때렸고, 그 덕분에 앨런은 혼란을 다잡았다.
“Yes? 네! 네!”
“빨리 준비해! 처음 보는 녀석이니까 견적부터 내야지! 수비 2팀! 진형 구축해!”
“예!”
그들은 정찰대이기 이전에 이 게이트를 공략하러 온 공략대였다.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길드이기도 했고.
그런 그들이 생전 처음 보는 괴수 하나에 쫄아서 전부 도망가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물론, 방심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기에 보고와 지원을 위한 전령을 보낸 것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신화 길드야. 중소 규모랑 다르게 하나 정도는 수비 팀으로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지?”
지원 2팀장의 말에 앨런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괴생물체를 천천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일단, 느리다. In case of 수틀렸을 때, 도망칠 수 있겠고.”
“그건 내가 봐도 알아. 근데 저놈, 걸을 때 다리를 두 개만 쓴다. 나머지 하나는 뭐지?”
위에 달린 팔은 움직이고 있지 않았기에 뭐가 위협적인지, 뭐가 약한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종종 가느다란 꼬리나 뿔 같은 것으로도 치명상을 내는 괴수들은 충분히 있었으니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그들.
“예비용?”
“아니면 다른 거일 수도 있겠지.”
앨런은 지원 2팀장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Oh, 지금 순간에 농담이 나와? 저게 가운데 다리로 보여요?”
“꼬리, 이 자식아. 꼬리!”
지원 2팀장의 말을 분위기 완화용 농담으로 받아들였던 앨런은 이어지는 말에 납득했다.
“아, 꼬리.”
그렇게 대략적인 견적을 내 본 뒤, 앨런은 수비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밀집 대형! 팔이 많으니까, 하나쯤 튀는 거에 조심하고!”
“네!”
그의 지시에 따라 서로 간의 거리를 좁혀 인간 벽을 만드는 수비 2팀.
“좋아, 나도 낀다. 지원 2팀장님. 중간에 Great support, 부탁해요.”
“말 중간에 영어 섞지 마, 이 자식아. 앞부분이나 뒷부분은 실수라고 쳐도 중간은 일부러 넣는 거지? 너.”
지원 2팀장은 적당히 툴툴대면서도 앨런의 요청에 따라 그를 최대한 돕는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좋아, 일단 원거리 견제부터 해 봐야지. 겉으로 보기에는 약해 보이는데…….”
주변을 둘러보다 던지기에 적당한 크기의 바위를 발견한 지원 2팀장.
그는 1인용 소파 정도는 될 법한 큰 바위를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흐으읍……차!”
전력으로 힘을 쓰고 있는지, 붉어진 얼굴의 위로 바위를 집어 든 뒤 그대로 내던지는 지원 2팀장.
콰앙!
큰 소리가 울려 퍼지며, 사막에 충돌한 바위의 조각과 모래들이 흩날려 시야가 잠시 차단되었다.
“휘유, 역시 팀장. 강화계가 아닌데도 저 정도라니.”
앨런은 지원 2팀장의 힘에 휘파람을 불며 감탄하는 듯 보였지만, 괴생물체에 대한 경계는 빈틈이 없었다.
그렇게 계속 모래 먼지를 주시하고 있던 앨런은 이내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았다.
“This can't be! 세상에!”
바닥에 두 동강 난 채 주위에 파편들이 흩날리고 있는 바위와 그 바위를 뒤로한 채 걸어오고 있는 괴생물체.
그런 괴생물체의 발자국은, 일정 거리를 두고 꾸준히 남겨져 있었다.
그 말인즉슨, 괴생물체는 그 바위를 직접 몸으로 맞고도 한 치의 밀려남 없이 그들에게 꾸준히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