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18)
월요일.
수많은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날이다.
월요일이 싫어지는 이유는 주말을 빼앗기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과 주말의 끝을 고하는 요일이라서 그럴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쉬던 것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뼈아픈 사실 또한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월요일이 다가왔고, 신화 길드는 자신들이 담당할 게이트가 있는 지역으로 출발했다.
경기도 파주.
출판 단지, 아웃렛, 군부대 밀집 지역, 그 외 이것저것이 특색인 지역이다.
그런 파주에 위치한 한 산.
산으로 들어가는 길목들 주변에는 군인들이 경계선을 쳐 두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도로나 등산로와는 한참 떨어진 곳에서 임시 초소를 두고 2인 1조로 경계 업무를 하고 있는 군인들.
“양종하 병장님?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경계 도중 마음속에 떠오른 의문을 참지 못한 것인지, 자신과 함께 근무를 서는 사수 양 병장에게 뭔가를 묻는 장성민 이병.
“뭔데?”
“저희들, 여기 언제까지 근무 서고 있어야 합니까?”
양 병장은 쓸데없는 걸 묻는 자신의 부사수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간부들이 철수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 여기서 이러는 거지. 군 생활 하루 이틀 하냐? 아니, 너 이병이었지?”
“예! 그렇습니다.”
양 병장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부사수를 쳐다보았다.
“그래, 이병이면 모를 때지. 아무튼 오늘 신화 길드에서 온다고 했으니까, 잘하면 내일이나 모레쯤에 뒷정리랑 수색 같은 거 다 끝내고 철수하겠지.”
“아, 알겠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고 다시 정자세로 경계를 시작하는 부사수를 보며 바닥에 쭈그려 앉는 양 병장.
“근데 오늘 점심 아냐?”
“어, 오늘 점심 말씀이십니까?”
“그럼 내가 먹고 온 아침 메뉴를 묻겠냐? 점심 메뉴 뭔지 좀 말해 봐. 전부 말 안 해도 된다. 핵심 반찬만 말해 봐.”
“다, 다는 기억 못 하지만! 제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 제육볶음이었습니다!”
머릿속 기억을 뒤져 나온 대답은 제육볶음이었고, 생각보다 괜찮은 메뉴에 양 병장은 미소를 지었다.
“오, 괜찮네.”
그리고 그때, 그들이 있는 임시 초소와는 제법 떨어진 도로 쪽 초소에서 차량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어?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길드에서 왔나 보지. 하, 씨. 나도 각성자만 됐으면 이렇게 전방에서 뺑이 치고 있진 않았을 텐데…….”
양 병장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하늘을 쳐다보며 투덜거렸다.
“그, 각성자 부대 말씀이십니까?”
장 이병은 양 병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각성을 했지만 징집 대상인 경우, 그들은 각성자들만 있는 부대에 편성된다.
물론 신분만 군인이고, 거의 공익 요원이나 상근 요원처럼 반쯤 사회에 걸치고 출퇴근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
각성자가 나타나던 초기에 아무런 대안이 없던 군에서는 평소처럼 일반인들과 함께 부대에 편성했다.
그러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군대 특성상 사고는 존재했고, 그중에서도 각성자들이 일으킨 사고들에는 무조건 ‘대형’이란 글자가 붙었다.
사건이 터져야 빠르게 대처하는 군은 결국, 각성자들을 일반인들과 격리하기로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각성자 부대였다.
물론, 그들도 군인이니만큼 몇몇 규정이 있었고 국가 비상사태의 경우에도 동원되는 엄연한 전력이었다.
다만, 통제가 훨씬 느슨했을 뿐.
“그래, 그런 데에서 꿀 빨다가 전역하고 싶었는데……. 내 친구는 거기서 매일 놀고먹는다고. 내가 여기서 산하고 하늘 보면서 시간 태울 때 걔는 외출 나가서 여자랑 클럽 조명 보면서 청춘을 태우지…….”
신세 한탄을 하니 오히려 암울해지기 시작하는 분위기에, 장 이병은 눈치 빠르게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양종하 병장님? 이번에 신화 길드가 오는 거면, 신화연도 오지 않겠습니까?”
“뭐? 얼음꽃? 최근에 신화 길드 활동에 나온 적 없었잖아.”
“온답니다. 이번에.”
장 이병의 말에 양 병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뭐? 자세히 말해 봐.”
“제 친구가 신화 길드 직원인데……. 아, 각성자가 아니라 그냥 사무직원입니다. 얘가 어떻게 거길 들어갔냐면…….”
자세히 말하라는 양 병장의 요구에 정말로 자세히 말하기 시작하는 장 이병.
“아니, 그건 안 중요하니까 말해 보라고. 진짜 온다고?”
“예. 진짭니다. 어제 폰으로 얘기했을 때 들은 겁니다. 서울 지부장에서 부길드장으로 다시 보직 변경이 됐고…….”
“아니, 보직 변경이고 뭐고 안 궁금하다니까. 그보다 이 자식 이거, 꼴에 군인이라고 보직 변경이라고 하네? 너 잠깐 여기 있어 봐.”
양 병장은 장 이병에게 대기하라는 말을 하고는 곧바로 산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 양종하 병장님? 어디 가십니까?”
“어디 가긴? 신화연 얼굴 보러 간다. 자리 잘 지키고 있어.”
양 병장의 돌발 행동에 장 이병은 당황하여 그를 쫓아갔다.
“가, 가지 마십시오! 행보관님한테 걸리면 어쩌시려고……!”
“괜찮아, 내가 군 생활 하루 이틀 하냐? 패턴상 오늘은 순찰 아니야!”
자신만만하게 소리친 뒤 옆 초소의 주변으로 가려던 양 병장.
그의 엄청난 등산 속도와 넘치는 열정, 순간의 기세만큼은 어떤 특수부대 못지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를 멈춰 세울 수 있는 단 하나의 목소리가 있었으니…….
“충성!”
“어, 충성. 야, 양종하. 너 어디 가냐? 칡뿌리 찾니?”
1년 넘게 지겹게 들어왔고, 가장 믿음직하면서 동시에 가장 귀찮은 목소리.
“보, 보급관님? 아, 충성!”
양 병장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상사 계급장을 단 행정보급관과 겁먹은 표정으로 자신과 행정보급관을 번갈아 쳐다보는 장 이병이 있었다.
“그래, 보급관이야. 너, 어디 가냐?”
“그게, 그러니까…….”
양 병장이 급하게 변명거리를 떠올리려 하던 그 순간, 행정보급관 권 상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너도 저~기 옆에 다른 놈들처럼 여자 얼굴 보겠다고 무장공비처럼 산 타고 가는 거냐?”
“아, 하하…… 걸린 게 한두 놈이 아닌가?”
양 병장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네 동기들 다 걸렸고 네가 마지막이야. 어떻게 행동 패턴이 하나같이 똑같냐? 너희는.”
“도, 동기 사랑 나라 사랑 아닙니까? 하하…….”
“어, 그건 알겠고. 거기 계속 있을 거야? 그럼 보급관이 그걸 근무지 이탈로 간주해도 되겠지?”
권 상사의 말에 양 병장은 다급히 임시 초소로 돌아오며 능청스레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유, 아닙니다! 보급관님! 제가 그냥 화장실이 급할 때 어디서 해결할까 싶어서 그만!”
그리고 그런 양 병장의 변명에 어울려 주는 권 상사.
“음, 지금 마려운 건 아니지?”
“네! 아닙니다! 혹시 몰라서 간 거죠!”
“그래, 역시 병장이야. 응? 경험에서 나오는 선견지명이 있어.”
다행히 경고로 끝날 것 같아 보이자 양 병장은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이 상황을 넘기려 했다.
“아, 하하! 괜히 병장이 아닌 거죠!”
“그렇지, 그런 경험이 있으면 보급관이 화났을 때 어떻게 될지도 알겠지?”
“……네.”
권 상사는 양 병장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그럼 수고하고. 만약 한 번 더 보이면…… 그땐 보급관이 너의 휴가증을 이면지로 쓸 수가 있어요, 알겠지?”
“옙! 살펴 가십시오! 충성!”
“어~ 그리고 근무 끝나면 나랑 같이 작업 좀 하자.”
“그, 행보관님. 근무 끝나고 바로 작업은…….”
양 병장은 권 상사와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게 별로 내키지 않는 듯 보였다.
“싫어? 그럼 멧돼지처럼 산 타고 있었다는 걸 내가 중대장님 앞에서 기억해 내 버릴 것 같은데? 이야, 요즘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좋다가 나쁘다가 하네. 근데, 이 기억력이 말이야. 우리 종하랑 같이 작업을 하면 조금 나빠질 것 같은데…….”
“가, 가겠습니다! 예!”
“그래, 음료수 정도는 사 줄게. 알겠지?”
근무 후 작업이 예정되자, 급격히 힘이 없어지는 양 병장.
“…….”
“아, 우리 종하가 대답이 없네. 기억력이 살아날 것 같-”
“예! 작업, 가겠습니다! 음료수도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예, 안녕히 가십시오! 충성!”
그렇게 권 상사가 유유히 사라진 뒤 양 병장은 허탈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았고, 그것은 그의 근무 교대자가 올 때까지 지속되었다.
* * *
게이트의 앞, 군부대의 도움을 빌려 설치된 간이 작전실.
“자, 정찰 담당들이 정찰하고 온 결과입니다.”
정훈은 테이블 위에 이런저런 사진들을 올려 두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폴라로이드? 이번 게이트는 전자 기기가 안 먹히나 봐?”
화연이 즉석에서 뽑아낸 작은 사진들을 집어 올리며 묻자, 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유감스럽게도 EMP 게이트입니다. 덕분에 예산을 털어서 카메라를 바꾸게 생겼고요.”
“그러니까 시험 삼아 싸구려로 들고 들어가서 테스트 좀 해 보자니까.”
화연의 말에 정훈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아니, 진짜 드물게 나오는 EMP 게이트를 제가 뭘 어떻게 압니까? 평소처럼 액션 캠 들고 들어갔다가 먹통이 된 걸!”
간혹 게이트 중, 진입할 때 강한 전자기파가 발생해 전자 장비의 작동을 멈추게 하거나 오류가 생기게 하는 종류가 있었다.
흔히 EMP라는 기술에 대한 이미지와 흡사하고 원리마저 같았기에 그걸 EMP 게이트라고 불렀고, 세기는 약간의 오류에서부터 회로의 파괴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였다.
“자, 자. 그래서 폴라로이드랑 필름 카메라랑 다 챙겨 가잖아. 그래도 다행이네. 폴라로이드가 작동한 걸 보니 배터리까지 먹을 정도로 강하진 않았나 봐?”
“그래, 얼른 브리핑하고 빨리 끝내자고. 우리 부길마, 휴가 간다며?”
그런 그들을 진정시키는 팀장들의 노력에, 정훈과 화연은 냉정을 되찾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크흠, 일단 내부에서는 사막 지형과 산악 지형이 같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사막이랑 산이?”
“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막의 땅과 산과 숲이 있는 땅을 서로 잘라서 붙인 것만 같이 경계선이 있었다는군요. 이걸 보시죠.”
정훈이 내민 사진을 보자, 사막과 숲의 사이에 서서히 변화하는 구간이 존재하지 않고 녹색과 황색이 곧바로 붙어 있었다.
그러한 모습이 조금 꺼림칙하고 특이했지만 본디 게이트라는 것이 신비한 것들투성이였기에, 단순히 신기한 풍경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간 신화 길드 인원들.
그들은 사막과 숲이 붙은 사진을 넘기고, 산의 형태와 식물 사진과 하늘 등의 사진들을 보다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잠깐, 이거 왜 다 이런 사진밖에 없지?’
그리고 그것을 눈치챈 화연.
“으음, 근데 왜 여기에 지형 사진만 있고 괴수 사진은 없지?”
정훈도 그것은 확실히 의문인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뭐 못 마주친 건진 모르겠는데. 사소하게 아이언 버팔로 한 마리가 저 옆에 걸어 다니는 거 말고는 본 게 없답니다.”
“그럼 그거라도 찍어 왔어야지.”
“아니, 찍으려고 다가가는 순간 도망갔답니다.”
아이언 버팔로의 특징을 아는 그들은 정훈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
“도망? 원래 무식하게 돌진하는 게 그놈들 아냐?”
“그래, 뭐든 간에 보이면 들이받는 놈들인데…….”
아이언 버팔로라는 이름답게, 철갑을 두른 것처럼 튼튼하고 육중한 몸을 가지고 광분한 소처럼 돌진하는 녀석들은 덤프트럭과도 같아서 위협적이다.
그런데 그런 저돌성을 지닌 녀석이 도망을 친다는 사실에 의문을 표하는 인원들.
정훈은 외따로이 떨어져 나온 아이언 버팔로 한 마리를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듯, 장비를 챙기며 말했다.
“저야 모르죠. 아무튼,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니까 다들 각별히 조심하시고, 이번에는 전자 장비의 사용에 문제가 조금 있으니 무전기는 사용이 힘들 것 같네요.”
정훈의 말에 팀장들은 서로 긴장을 풀려는 듯, 가볍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뭐, 무전기 떼고 가니까 몸은 좀 가볍겠네.”
“그게 그렇게 말할 사안이야? 여차하면 구조 요청을 못 하는데.”
“그럼 베이스캠프를 크게 설치하고 탐색 반경을 조금씩 잡고 조심하면서 진행하면 되는 거지.”
오전 10시 30분. 신화 길드 파주 신규 A급 변형 게이트에 돌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