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17)
일요일 오전.
영의는 체육관 내에서 지연과 일대일로 검법을 전수하고 있었다.
어째서 두 명만 있는가 하면 수연이 안타깝게도 집 안에 누워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어제 외식을 하고 난 직후, 수연과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텐션이 높아졌던 영의.
‘얘들아! 검 한번 배워 볼래? 내가 한번 보여 줄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체육관에 있던 목검을 들고 뇌령검법의 초식을 연달아 보여 주었다.
‘오오……!’
간결하면서도 충분히 실전적인 움직임의 뇌령검법의 시연이 끝나자 감탄하는 아이들.
물론 거기까지만 했으면 아이들도 한번 시험 삼아 배워 보려 했겠으나 텐션이 높아져 버린 영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독고휘가 써 준 비급에는 기본적인 투법과 검법 이외에, 중간에 끼워 넣은 상위의 검술 비급이 있었다.
영의도 스스로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가르칠 순 없었기에 대략적으로 집에서 읽어 보았고, 그 김에 전광검법이라는 그 검술 또한 익혔던 것이다.
충분히 경지에 이른 무인이 아니고서는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복잡한 동작들에 목검의 형태가 일그러져 보였다.
그리고 그 검술의 시연을 눈앞에서 보자, 아이들은 조금 두려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 그걸 해야 한다고요?’
‘선생님, 그…… 중간까진 알겠는데 그다음부턴 어떻게 하는 거죠? 목검이 휘어진 것 같았는데?’
‘오빠, 우리 그런 검술도 있었어?’
아이들의 반응에 영의도 일단 첫 동작부터 천천히 가르치려 해 봤다.
‘자, 처음부터 차근차근 해 보자!’
그는 모두에게 뇌령검법 정도만 전수하려 했으나 뒷부분의 시범 동작을 본 선우와 선영은 전수를 거부했다.
‘그, 제가 뭐 멋진 동작 같은 건 잘 따라 하는 편인데 그런 건 조금…….’
‘대인 전용 검술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사실 그런 변명을 했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도 있었다.
-천재형 인간은 잘 가르치지 못한단 말이 진짜구나!
이미 영의가 평범한 인재를 가르치는 데엔 큰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그들이었기에, 더 큰 고생을 하기 전에 빨리 몸을 뺀 것이다.
‘음, 그러면 대신에 기본적인 검술 대처 요령 정도만…….’
영의가 아쉬움에 뭐라도 가르치려 하던 그때, 그들을 구원해 줄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우웅-
‘어, 전화 왔다! 잠시만요. 네, 여보세…….’
휴대폰의 너머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소리.
그 소리는 잠시 동안 지속되었고, 선우는 전화를 받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네, 네. 아, 죄송해요. 아니, 알죠. 네. 친구 집에서 좀……. 누구냐고요? 그건 말씀드리기가 조금……. 아뇨, 아뇨. 네? 선영이랑 같이요. 네.’
한참을 저자세로 통화를 하던 선우는 통화가 끝나자 급하게 선영의 손을 잡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죄송합니다, 형님! 급한 일이 생겼어요!’
라는 말을 남기고 뛰쳐나간 선우와 선영.
영의는 그런 둘을 쳐다보며 잠깐 멍하니 있었으나,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해서는 금방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음, 얘들 그냥 외출로만 해 놓고 나온 것 같은데? 늦어도 밤엔 돌아올 애들이 다음 날 낮까지도 없으니까 기숙사 측에서 부모님께 연락을 한 것 같아.’
‘뭐야, 그런 규정이 있어?’
‘규정까진 아니고, 외출 시간을 설정할 때 대충 한 거겠지. 기록상으로 오늘 안에 와야 하는데 없으니까.’
그렇게 의도치 않게 외부인을 쫓아내는 데 성공(?)한 영의.
이제 내부자(?)들만 남게 되자, 영의는 체육관의 문을 잠근 뒤 재킷의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에서 나오는 마력 주입기를 보자 의문을 가지는 지연과 수연.
‘어, 그게 왜 거기서 나와……?’
‘자, 지금부터 보여 주는 건 묻지도 말고 궁금해하지도 마. 엄청난 비밀이니까.’
그렇게 지연과 수연은 토요일 오후에 서로 번갈아 가며 몇 번씩 마력을 주입받고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시간이 지나자 마력 주입의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오빠, 나 온몸이 쑤셔…… 못 일어나겠어.’
바로 마력을 주입받은 대상이 근육통을 호소하며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다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근육통은 수연만이 겪는 부작용이었고, 지연은 약간 아픈 정도의 근육통으로 끝났다.
‘저, 저는 괜찮은데요……?’
영의는 둘의 차이를 보고 짐작 가는 이유가 여러 개 있었지만, 이것이다! 라고 확신할 만한 원인을 특정하지는 못했다.
‘아마 얘는 강화 쪽에 가깝고 지연이는 속성계에 가까워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아니지, 지연이는 속성 마정석을 주입받아서 그런가? 모르겠네……. 일단 남용하는 게 안 좋은 것 같긴 한데…….’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수연을 방에 눕혀 두고는 지연만 데리고 나와 교습을 진행하게 된 영의.
체육관 안에는 둘밖에 없었기에 감출 게 없어진 둘은 서로 뇌기를 사용하며 검을 주고받고 있었다.
찌릿, 파지직-
물론 목검이었기에 서로 힘 조절을 하고 있었고, 지도 대련에 가까운 느낌으로 천천히 진행하고 있었다.
“좋아, 기초는 그럭저럭 잘하는 것 같네.”
뇌령검법의 이름을 그대로 쓰려고 했지만 뇌창 같은 다른 기술들과는 다르게 직관적이지 않은 작명에 묘한 의심을 살까 봐 망설였던 영의는 그저 기초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 감사합니다!”
지연은 칭찬을 받자 기쁜지 미소를 지으며 자세를 가다듬으려는 듯 초식들을 천천히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본 영의는 지연이 확실히 무인 쪽에는 크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뇌기 운용만큼은 확실히 잘하는데…… 몸의 반응속도가 뇌기의 반응속도보다 반의반 박자쯤 늦네. 이걸 어쩌지?’
지연은 동시에 반응한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영의의 기준에서는 확실히 서로 간의 차이가 보였기에 조금 고쳐 보기로 했다.
“그, 지연아.”
“네, 선생님!”
해맑게 답하는 제자를 보며 지금 상태를 고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하려니 약간 마음 한구석이 아파 왔지만 제자는 확실하게 키우기로 했다.
“뇌기를 쓸 때, 뇌기랑 몸이 약간 따로 논다든가…… 하는 느낌을 받지 않아?”
“네? 따로 논다고요?”
“그게, 그러니까 서로 박자가 조금 안 맞는다거나? 한번 봐 봐.”
영의가 시범을 보이려는 듯 팔을 들어 뇌기를 모아 손끝에서 방출하였다.
“봤지? 방금 게 일반적인 뇌기의 방출이지. 근데 실전에서 적이나 너나 이렇게 가만히 있을 리는 없잖아?”
이내 실전 상황을 가정하듯이 이런저런 움직임을 하는 영의.
“만약 이렇게 뭔가를 피하다가 공격할 때가 생긴다. 그러면 일단 반사적으로 팔이 움직이겠지?”
“네.”
“근데 이미 팔은 움직이고 있는데 뇌기를 거기에 따라 이동하게 하는 걸 하려면 집중도 흐트러지고, 조금씩 어긋남이 생겨. 뇌기의 움직임과 몸의 움직임을 똑같이 반응하게 만들어 봐.”
영의의 설명에 지연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선생님!”
그렇게 아주 천천히 움직이다가 이내 빠르게 움직여 보기도 하며 여러 방법을 써 보는 지연.
하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느낌이 드는 방법이 없었기에, 지연은 영의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선생님,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게 제일 효과가 좋을까요? 빠르게 움직이면서 맞추는 게 제일 좋을까요?”
언제나 멋진 모습만 보였고, 상상 이상의 기술들을 구사하는 영의였기에 이번에도 그녀가 생각지도 못하는 참신하고 놀라운 대답이 나올 거라 기대한 지연.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어깨를 으쓱하며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다.
“나야 모르지?”
“네?”
모르겠다는 말에 당황하는 지연에게 영의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뇌기의 운용 방식이나 몸놀림 같은 거야 내가 가르치고 직접 보면서 알 수 있지만, 몸을 움직이는 건 너잖아. 일종의…… 본능 같은 거지. 그건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아, 네에…….”
본인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말에 체념하듯 고개를 숙이는 지연.
“하지만.”
“하지만……?”
“그것들에 조금 더 익숙해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지. 편하고 딱 맞는 길은 없지만, 가는 길이 없는 건 아니랄까?”
희망이 있다고 속삭이는 듯한 영의의 말.
“그, 그게 뭔가요?”
“실전과 같은 훈련. 위기 상황에 처하면 대련이고 뭐고 자신이 가지고 있고 몸에 밴 걸 전부 갖다 쓰게 되어 있어.”
지연은 영의의 말에 일단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이 방금 들은 내용이 잘못된 게 아닐까 싶어 다시 되물었다.
“네…… 네?”
‘그러니까, 위기 상황이 올 때까지 대련을 한다는 거야?’
“그럼, 대련을 시작해 볼까?”
지연은 다급히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대련을 피하려 했다.
“자, 잠깐만요. 선생님? 수연 언니랑 하면…….”
“유감이지만, 지금도 누워 있어서.”
“어, 어어어…… 저! 내일 학교 가야 해서!”
너무 급한 나머지 아카데미를 핑계로 삼기도 했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학교가 아니라 아카데미겠지. 괜찮아, 그렇게 아프진 않을 거야.”
“어? 어어어??”
영의와 지연.
두 사제 간의 대련은 오후까지 이어졌고, 때마침 돌아온 영의의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지연은 수연에게 업혀서 아카데미의 기숙사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저녁 시간, 영의는 평소처럼 바이크에 탄 채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언제나처럼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병찬.
“행님, 얼굴이 윽수로 기분 좋아 보이는데예?”
“응? 내가?”
“네. 형 얼굴이 원래 웃는 상이 아니었는데, 묘하게 웃는 상으로 바뀌었달까? 뭐 좋은 일 있어요?”
영의는 그들의 말에 정말 웃는 건가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주무르다 이내 작게 웃었다.
“으음, 내일이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긴 해.”
‘내가 봤던 게 정확하다면 월요일 오후쯤에 알림이가 복구되겠지.’
연락이 끊겼던 알림이가 돌아오는 것이 바로 내일이기에 기분이 좋아져 웃고 있었던 것이리라.
‘다행이다. 앞으로 다시는 다른 세계로 못 갈 줄 알았는데. 어떻게 돌아왔네? 베키도, 알림이도. 영감님들도 다시 볼 수 있겠어.’
독고휘나 일라이저, 베키 같은 인물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마음과 보상을 다시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항상 주변에 있던 친구 같은 느낌의 존재, 알림이를 그만큼 그리워한 거라고 느끼던 영의는 문득 자신의 처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잠깐, 내가 그 사람들을 그리워할 정도로 주변에 사람이 그렇게 없었던 건가?’
이제 만나러 갈 길을 잃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AI 친구를 그리워했다는 것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존재를 그리워할 정도로 주변에 친구가 없다는 뜻이 된다.
“야, 얘들아.”
“네?”
“내가 그렇게 친구가 없었나?”
영의의 말에 병찬과 병민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행님, 행님 옆에는 지하고 뱅미이가 있지예.”
“네, 형. 저희가 있잖아요.”
묘하게 따뜻한 눈빛을 하며 영의를 쳐다보는 병찬과 병민의 시선에 영의는 자신에게 가지고 있던 의혹이 깊어짐을 느꼈다.
“뭐야, 너희가 봐도 내가 아싸 같아 보여?”
다급히 뭔가를 생각해 내느라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하는 병병 브라더스.
“어, 뭐라 해야 하나? 아싸……는 아니고. 그…….”
“그, 행님. 음…… 하, 씨. 참말로. 이…… 그 뭐고? 그거를 뭐라 캐야 하노?”
이내 병민이 쓸 만한 표현을 찾았는지,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
“그러니까…… 그래! 인싸와 아싸! 그 사이 어딘가!”
“뭐?”
병찬도 병민의 말에 뭔가가 떠오른 듯 이어서 외쳤다.
“그래! 용두사미!”
‘용두사미? 갑자기?’
영의가 지금 상황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 말에 의문을 표했다.
“그건 아니지 않냐?”
“어? 용두사미 아이가? 그라믄 어두육미?”
“아니야…….”
영의가 고개를 젓자, 병찬은 자기가 말하려 하는 게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뭐고?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 대가리가 되겠다, 그거를 용두사미라 칸다 아이가?”
“두와 미가 서로 바뀌었잖아……. 그리고 보통 닭의 머리라고 하지.”
병찬은 자신의 말이 틀린 것을 지적받자, 머쓱함을 감추기 위해 웃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아, 하하하! 그라믄 고쳐가 인싸의 발가락과 아싸의 머리 사이 어딘가라 카면 되긌네!”
영의는 병찬의 그 말을 들으며 과연 자신이 아싸쯤에 있긴 하구나 싶은 생각을 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 발가락 같은 녀석이…….”
“뭐라고예?”
“아냐, 아무것도.”
그렇게 오늘도 다른 세계에서만큼은 인싸 중의 슈퍼 인싸감이지만 지구에서만큼은 참 트루 아싸 사이에 끼인 친구 없는 남자, 영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