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15)
식사 메뉴에 대한 대략적인 논의를 하기에 앞서, 영의는 선우와 선영을 먼저 샤워실로 보냈다.
“일단, 땀 흘렸으니까 씻고 와.”
“네, 형님!”
선우는 뭐든 사 준다는 영의의 말에 충성심이 올라간 듯,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외부인인 둘을 잠시 떠나보내고, 영의는 수연과 지연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갔지?”
“네.”
“그보다, 아깐 왜 그런 거야? 너무 빡세게 시킨 거 아냐?”
기초 체력과 대련에서 영의는 평소보다 더 강하게 나왔다.
“이래야 나중에 또 올 마음이 없겠지.”
선우와 선영이 수연이 집에 올 때 따라오는 것에 학을 떼게 하기 위해 살짝 몰아붙였던 영의.
“뭐야, 쟤들 오는 게 싫어서 그래?”
“싫은 건 아니지만 혹시나 싶어서 그러는 거지.”
영의는 마력 주입기를 떠올리며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소고기랑 회였나?”
“응. 근데 둘 다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둘 다 비싸려면 한참 비쌀 수 있지만, 같은 장소에서 먹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구성이었다.
그리고 눈치를 보며 자신의 말을 철회하려던 지연.
“저, 그럼 저는 소고기로…….”
“괜히 의견 안 바꿔도 돼. 둘 다 먹으면 되는 거지. 일단 씻고 나서 생각하자.”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둘의 등을 떠밀며 자신도 샤워를 하러 갔고, 자신을 바라보는 선우의 열렬한 눈빛에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샤워를 끝내고 나올 수 있었다.
위잉-
“사람은 많은데 드라이어는 하나뿐이라니…….”
먼저 씻고 나온 선영이 머리를 말릴 때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선우가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대부분 드라이어를 쓸 텐데, 어쩌지?’
머리를 말리는 데에만 한참 걸릴 거라 생각하고 옆을 돌아본 선우는 생각 외의 풍경에 놀랐다.
“아, 난 선풍기로 말리면 돼. 아~ 으에에에~.”
선풍기를 켜 놓고 그 앞에서 머리카락을 털던 수연은 선풍기에 대고 소리를 내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장난치지 마.”
영의가 그런 수연을 나무라긴 했지만 별 제지를 하지 않고 오히려 옆으로 다가왔다.
“심심하잖아아아~.”
“알겠으니까 옆으로 좀 가 봐. 나도 말리게.”
이내 둘 다 선풍기에 머리를 말리기 시작하는 영의 남매.
그렇게 호쾌하게(?) 건조를 끝낸 뒤 바깥으로 나서는 영의.
“자, 그럼 뭐 먹을래? 둘은 소고기랑 회라고 얘기했고.”
영의의 물음에, 선우와 선영은 샤워 중에 메뉴를 정해 뒀는지 각자 대답했다.
“저는 스테이크랑 초밥!”
“저는, 다 괜찮아요. 단백질만 보충하면 뭐든…….”
선우는 단백질만 있으면 된다는 선영의 대답에 딴지를 걸었다.
“야, 그건 대답이 너무 삭막하잖아. 부담스러울까 봐 하는 말이면 삼겹살 정도로 해야지.”
영의는 그런 두 남매를 보며 작게 웃었다.
“아, 정말로 괜찮아. 우리 도장 애들도 아니고 바깥 애들인데 이만큼 굴렸으면 사 줄 건 사 줘야지.”
선우와 선영이 도장에 섣불리 오지 않게 일부러 훈련을 빡세게 시켰지만, 열심히 임하는 태도를 보니 마음이 조금 바뀐 영의였다.
‘그래,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밥이라도 먹여 줘야지. 그보다 스테이크랑 소고기는…… 같은 걸로, 쳐야 하나?’
영의가 잠깐 메뉴에 따른 장소를 고민하던 그때, 선우는 영의의 마음씨에 흥분했다.
“오오! 존경합니다, 형님!”
“그래, 그래.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 메뉴들을 한 번에 다 먹긴 무리인 것 같은데? 뷔페라도 가야 하나? 근데 그런 데는 맛이 별로인데.”
그때, 분위기를 파악한 수연과 지연이 의견을 타협했다.
“난 그냥 소고기면 돼. 스테이크로 먹자.”
“네, 선생님. 하나 먹으면 배부를 것 같은데…… 회는 다음에 먹어요.”
끄덕끄덕.
선영을 비롯한 여자들이 전부 스테이크 쪽으로 의견을 통일하자, 영의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 그래? 그럼 스테이크로 하자.”
‘아주 잠깐 강원도까지 가서 다 먹어 보자고 제의하려고 했는데. 뭐 각자의 생각이 그렇다면야.’
그렇게 그들은 스테이크 체인점에 도착했고, 각자 메뉴판을 앞에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으음…… 뭘로 먹지?”
“이거 맛있어 보이지 않아? 토마호크.”
“저, 저는 그 정도로 비싼 건 조금……. 그냥 옆에 있는 거 정도면…….”
각자 메뉴판을 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그런 고민을 덜어 주는 것도 직원의 일이라는 듯 직원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네, 손님. 메뉴는 정하셨나요?”
으레 묻는 말이지만, 이렇게 찾아온 단계에서 바로 정했다고 하는 고객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별로 없는 고객 중 한 명이 이곳을 찾은 날이었다.
빠르게 손으로 메뉴판의 스테이크들을 가리키며 주문하는 영의.
“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 두 개랑 립 주세요.”
그의 손가락이 지나간 것들은 모두 한 번씩 언급이 되었던 메뉴들이었다.
그리고 상당한 양을 거침없이 주문하자 당황하는 직원.
“어어, 네?”
영의는 차근차근 말로 하기로 했다.
“토마호크 하나, 여기 티본 하나, 그리고 여기 있는 이거 두 개랑 립. 한 사람 앞에 하나씩, 괜찮지?”
영의는 테이블에 앉은 아이들을 ‘이 정도는 먹을 수 있지?’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 아니…… 형ㄴ-”
선우가 자신은 그만큼 못 먹는다고 부정하려 했을 때, 수연과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먹을 수 있지. 아, 오빠. 나 파스타도 시켜 주라.”
자신감과 함께 추가 주문을 요구하는 수연.
“어, 먹을 순…… 있는데. 비싸지 않나요……?”
가격과 영의의 지갑 사정만 걱정하는 지연.
하지만 그런 둘과 달리 선우와 선영은 일반인의 위장을 가지고 있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내 위장만 한 고기는, 못 먹는데…….”
“네, 네! 저도 이거 한 덩이는 못 먹어요! 아무리 한창 클 때라지만!”
영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저런, 한창 클 때인데…… 입이 짧아? 그럼 너희는 하나 시켜서 나눠 먹어야겠네.”
그렇게 의견 수렴을 마치자, 직원도 상황을 파악한 건지 곧바로 오늘의 고기 가격표를 보여 주었다.
“자, 여기 보시면 오늘 들어온 고기들이랑 그램당 가격 매긴 게 있…….”
직원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결정을 내리는 영의.
“제일 큰 것들로요.”
‘뭐야, 이 사람들? 푸드 파이터인가? 덩치는 작은데 저게 다 들어가나?’
직원은 머릿속에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몸에 밴 습관으로 인해 추가 설명을 시작했다.
“……네, 알겠습니다. 세트로 하시면 샐러드랑 음료, 사이드 메뉴도 있…….”
“그걸로 주세요.”
“네, 그러니까…… 토마호크에 티본에 블랙앵거스 둘 그리고…… 파스타랑 립, 맞으시죠?”
지금 스스로 읊으면서도 다섯 명이 먹을 양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직원.
“아마도요?”
메뉴 이름은 잘 모르는 영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자, 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는 직원.
‘그걸 나한테 묻지 마!! 무슨 샐러드나 먹게 생겼으면서 가족 단위로 먹는 세트를 인당 하나씩 시키고 있어?!’
하지만 사장도 아니고 매니저도 아닌 그가 무슨 힘이 있겠나. 손님이 상전인 것을.
“그, 그럼 스테이크 굽기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굽기를 묻자, 영의는 중립의 길을 가기로 했다.
“취향대로 골라. 나는 미디엄.”
“나도.”
고기가 맛만 있으면 장땡이지, 뭘 익힌 정도까지 신경을 써야 해? 라고 생각하는 영의 남매와 취향이 미디엄이었던 지연.
“저도요.”
하지만 선우와 선영은 서로 취향이 다른 듯했다.
“아, 저는 미디엄 레어…….”
“웰던.”
선우는 선영과 고기에 대한 의견이 갈리자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어디서 탄 걸 먹어? 그런 거 먹으면 암 걸려, 암. 알아?”
“레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인가? 고기는 구워야 하는 건데?”
“누가 그냥 레어래? 미디엄-레어! 부드러운 식감을 원하는 거야!”
“그래서, 피 나와? 안 나와?”
두 남매간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을 때, 영의는 그들을 무시하고 주문을 끝마쳤다.
“그냥, 토마호크랑 티본은 미디엄으로 하고 다른 건 저 둘 주문대로 해 주세요. 음료수 나오죠?”
“아,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갖다 드리겠습니다!”
직원이 테이블에서 떠나고, 영의와 수연은 남매간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기 시작했다.
“누가 이길 것 같냐?”
“글쎄, 평소에는 선우가 져 주는데 취향으로 싸움 나니까 안 물러서네?”
지연은 외동이었기에, 싸우는 선우와 선영이 걱정되는 듯했다.
“저, 안 말리셔도 되나요?”
하지만 지연의 걱정에도 영의와 수연은 태연했다.
“괜찮아, 원래 형제간에는 싸우면서 크는 거야.”
“그래, 물론 승부가 안 나면 싸움이 없어지지만.”
“그런, 가……?”
“요리라는 것의 맛을 모르는 미개한 원시인이!”
“피 뚝뚝 떨어지는 고기나 물어뜯는 원시인이 누구일까?”
둘의 말싸움은 팽팽하게 이어져 나갔고, 가게를 떠날 때까지 지속될 것 같았던 그 말싸움은 음료와 빵이 도착하면서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빵, 샐러드, 파스타와 립을 해치우고 각자의 스테이크를 두고 먹기 시작하는 수연과 아이들.
영의는 음료수를 먹으면서 흐뭇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잘 먹어야지. 그래야 나중에 근육이 붙지.’
물론 음료수와 이것저것이 있었기에 순수하게 근육을 증가시키기 위한 식단은 아니었지만, 근육에 진심인 아이들은 아니지 않은가.
영의가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며 고기를 적당히 집어 먹고 있을 때, 순간적으로 눈앞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뭐지?!’
탕.
순간적으로 지나간 무언가의 내용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깨닫자 무심코 테이블을 쳐 버린 영의.
그리고 그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선생님?”
“어, 테이블을 왜……?”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실수.”
실수라는 말에 다시 고기를 먹는 데에 집중하는 선우와 선영.
하지만 영의가 평소에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수연과 그가 몸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천재적이란 걸 아는 지연은 그런 영의를 잠깐 의심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의식한 영의는, 그들에게만 들릴 만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영의의 말을 듣고는 다시 아까처럼 식사에 집중하는 일행들.
“얘들아, 배불러?”
“으음, 네.”
선우와 선영은 물론이고, 수연까지 배가 부른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우, 오빠. 아무래도 너무 큰 걸 시켰나 봐…….”
“언니? 고기가 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스테이크를 먹기 전에 먹었던 게 문제 아닐까요?”
“그러는 너도 조금 전부터 깨작거리고 있으면서…….”
“사, 살찔까 봐 그러는 거예요…….”
“그래, 그런 거로 하자 우리.”
조금씩 차이가 있긴 있어도, 모두 충분히 먹을 만큼 먹은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영의는 식기를 제대로 고쳐 잡았다.
“아, 그럼 다행이네. 남은 건 내가 좀 먹는다?”
“어~ 맘대로 해…….”
지연은 영의가 남은 음식들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한 건지, 영의를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남긴 걸, 드시려고요? 포장은…….”
“아니, 아깝다는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아직 더 먹을 수 있어서.”
영의의 대답에, 지연은 깜짝 놀랐다.
“네?”
지금까지 나왔던 음식들 중에, 영의가 손을 대지 않았던 메뉴가 없었기 때문이다.
먹은 양으로만 따지면 수연보다 많았던 영의의 식사를 옆에서 보았기에, 지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다 어디로 간 거지……?’
“오빠 원래 각 잡고 먹으면 엄청 먹어. 저만큼은 나도 처음 보는 수준이긴 한데…….”
수연은 영의의 식성이 원래 좋았다고 설명했다.
자연과의 소통 이후로 대사량이 늘기도 했고, 오늘 아침을 굶은 탓도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야, 고기가 살살 녹네. 역시 비싼 값을 한다.”
“아니, 아깐 무표정하게 먹더니 왜 갑자기 먹방을 찍어……?”
눈앞을 스쳐 지나갔던 무언가를 보고 기분이 좋아져 식욕이 제대로 돋아났다.
“입맛이 돌아서.”
영의가 방금 전에 본 메시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시스템 복구 중 - 48시간 남았습니다.]
알림이가, 돌아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