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13)
파드레가 회의를 주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모두가 침묵한 채 파드레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에…… 보자, 이거 어딜 보고 말해야 하는 겁니까? 화면을 보면 되는 건가?”
-아니, 신부님. 휴대폰은 잘 다루면서 왜 여기선 버벅대고 그러신대?
“카메라는 조금 부담되어서 그렇습니다. 일단, 우선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파드레의 말이 끝나자, 어딘가의 화면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짝짝짝-
“와아~! 할아버지 멋져! 기업 회장님 같아!”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는 샤오롱과 여성 참여자.
“하아…… 분위기를 또 깨는 겁니까.”
“어휴, 메리 저 화상 진짜.”
여성이 꺼낸 이름이 소녀의 심기를 건드린 듯, 소녀는 화면의 한구석을 째려보았다.
“쓰읍, 실명 언급 금지! 자꾸 그러면 나도 너 나연이라고 부른다?”
“눼~눼.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우리끼린데.”
나연과 메리도 서로 화면을 노려보자 회의장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화상회의였지만 어째선지 긴장감이 감돌았다.
“됐고, 본론부터 들어가지. 이름 같은 사소한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텐징이 이런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평소 본인의 성격대로 행동한 건지는 몰라도 상황을 원래대로 바꾸려 했다.
“안 사소하거든?”
“그래, 그래. 저 덩치 말대로 진행이나 하자고요.”
반발하는 메리에 비해, 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하자는 듯 손짓했다.
파드레는 고개를 짧게 숙여 감사를 표하며 아래에 써 둔 무언가를 읽어 내려갔다.
“허험, 상황 정리 고맙네. 선지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파드레의 말에서 선지자가 언급되자 모두가 귀를 기울여 그 내용을 자세히 들으려 했다.
그들 모두가 각자 조직에 대한 믿음이나 충성은 각각 생각하는 바가 다를지 몰라도, 선지자의 능력 하나만큼은 크게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샤오롱도 사기꾼일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내심 진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버려 화를 낼 정도로 말이다.
“‘은색 헬멧 찾고는 있는데, 정보가 없다 얘들아. 그러니까 계속 노력 좀 해 줘라. 아, 솔직히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진짜 정보가 없어.’라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파드레의 언행에 당황했고, 닷지를 대신해 참여한 대리인도 그 말을 듣고 무심코 이런 생각을 품고 말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뭐랄까, 선지자치고는 저렴한 예지인데?’
그런 파드레의 언행은 선지자로서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인 듯, 파드레의 뒤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걸 그대로 말해 버리면 어떻게 해? 적당히 각색해 줬어야지!
그리고 파드레는 앞서 전자 장비를 다루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줬듯이, 마이크를 끄거나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선지자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하지만 제가 멋대로 예지를 곡해해 버리는 게 더 문제가 되는 게 아닐지…….”
-예지가 아니라 애들한테 공지하는 내용이라니까? 그 뭐냐, 학교 교장 선생님의 주의 사항 그런 거라고! 대충 적당히 포장하고 각색을 해 봐! 콘티 그대로 만화를 내는 만화가도 아니고!
선지자의 설득에 파드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크흠, 알겠습니다. 찾지 못해도 추궁이나 문책은 하지 않겠으나, 성과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를 찾아볼 수 없게 된다면 여러분 주변에 있는 무언가를 못 찾게 될 수도 있을 테니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파드레의 입에서 나온 말에, 회의에 참여한 모두가 무심코 침을 삼켰다.
‘못 찾으면 가족을 죽이겠다는 거군.’
‘찾아내지 못하면 주변의 모든 걸 없애 버리겠다는 건가?’
‘목숨만은, 붙여 주겠지만 나머진 장담 못 하겠다는 거로군.’
각자가 그 말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동안, 선지자는 자신이 직접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파드레의 옆으로 다가왔다.
물론, 얼굴 노출을 하지 않을 생각인지 보이는 것은 과자 부스러기가 묻은 그의 운동복뿐이었지만.
“그래, 뭐. 알아서 생각하고. 찾다가 진짜 없다 싶으면 난동이라도 좀 부려 봐. 난동의 종류는 뭐든 상관없어.”
굳이 방금 전의 말을 정정할 생각은 없었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알아서 생각하란 말과 함께 난동을 부리라는 말을 전하는 선지자.
그리고 난동이란 말에 얼굴을 가리지 않은 참여자들의 대부분은 의문을 표했다.
“응?”
“난동?”
“아니, 은색 헬멧이 막 히어로처럼 나타났으니까 사고 치면 나오지 않을까…… 싶은 발상에서 말하는 거지. 같은 상황을 연출하면, 어디서든 간에 나오지 않겠어?”
선지자의 말에, 사무라이풍 가면을 쓴 사람이 손을 들었다.
“난동의, 규모는?”
“상관없다. 필요한 건 지원해 주지.”
“민간인 희생자는, 어떻게 하지?”
“그것도 상관없다. 할 수 있으면 줄이되, 희생자가 없게 하려면 규모가 작으니까.”
선지자는 은색 헬멧을 찾는 데에 상당히 진심인 듯 보였다.
그리고 그의 평소 철칙과 살짝 위배되는 듯한 행동을 보자, 마음속에 의구심이 싹트는 몇몇 간부들.
“으-음? 아니 뭐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 보자는 것 자체가 그리 나쁜 계획은 아닌 거 같은데…….”
나타났던 조건을 모르니 똑같은 상황을 재연해 보자는 계획 자체는 괜찮았지만, 그 계획의 내용이 문제였을 뿐.
“그러니까, 은색 헬멧이 나타나면 싸우거나 협박하지 말고 일단 놔둬 봐. 내가 설득 좀 해 보게. 제압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선지자의 말에 간부들은 불만을 품었다.
‘뭐? 제압?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인 줄 아나?’
‘저 덩치랑 맞싸움을 하던 인간을 어떻게 제압해?’
‘아니, 그 이전에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사람일 텐데 대화로 풀자고 설득을 하라고?’
선지자는 그렇게 각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다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아, 맞다!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형태의 게이트가 생길 거야. 그거 생기는 나라가 어딘진 모르겠는데, 하여튼 이번 달에 생긴다. 알겠지? 다들 이번 달 게이트 들어가지 마.”
방금 전의 반쯤 막무가내에 어딘가 뒤틀린 계획과는 달리, 이 말은 확신을 가지고 하는 듯했다.
“자, 그럼. 일단 조사하다가 소식 듣는 대로 보고하고 은색 헬멧이 나타날 만한 지역으로 가 봐. 가서 은색 헬멧이랑 만나면 아까 말한 대로 해 주고.”
그러더니 용건이 끝났다는 듯, 화면에서 과자가 묻은 운동복이 옆으로 사라졌다.
“자, 아무튼 여기서 용무 끝! 다들 일 봐.”
버벅거리던 파드레의 최초 접속과, 모든 인원의 집합에 30여 분이 걸린 화상회의가 약 5분 만에 막을 내리고 있었다.
‘지금 5분 만에 용무 끝! 다들 일 봐. 그거 하려고 세팅만 30분 걸린 화상회의를 하자고 한 거야?’
‘그 30분 중에 20분은 영감이 잡아먹었으면서?’
“허허, 수고했습니다. 여러분. 선지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게이트 조심들 하시고. 그럼 이만.”
파드레는 그렇게 말하며 마우스를 끌어다 뭔가를 연신 클릭했다.
하지만 화상회의는 종료되지 않았고, 파드레는 다시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어, 이거 어떻게 끕니까?”
“다음부터는 그냥 모이자.”
과자 부스러기가 묻은 운동복이 화면 끝자락에 나타나고 잠시 뒤, 파드레가 화상회의에서 나갔다.
띵.
그리고 화상회의 방에는 침묵만이 남았다.
사무라이 가면을 쓴 인물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일본은 우리가 조사하지. 홋카이도부터, 쭉 훑어보겠다. 만약 없으면, 한국으로 건너가서 소란을 피워 보지. 그럼 이만.”
띵.
닷지와 미국이란 팻말을 써 둔 외국인도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크흠, 그럼 저도 제 의뢰인한테 회의 내용을 전달하겠습니다.”
띵.
흰색 가면과 후드 티를 입은 의문의 인물은 변조된 목소리로 뭔가를 웅얼거리더니, 이내 잡음을 발생시켰다.
“중얼중얼…… 확인.”
치지직-
띵.
“아, 씨. 진짜. 뭐야? 나 갈 거야. 괜히 바쁜 사람 부르고 있어.”
나연의 말에 샤오롱이 능글맞게 답했다.
“제가 알기로 바쁜 게 아니라 상당히 한가할 텐데요?”
“시끄러!”
띵.
“그럼 나도 갈게! 아저씨, 안녕! 다음엔 나도 핑크색 헬멧이나…….”
띵.
모든 인원이 나가고, 화상회의 방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프로그램들을 종료하고 인터넷 선을 뽑아 정리하는 샤오롱.
“후우, 정말이지. 내가 어쩌다 이런 곳에 코가 꿰여서는…….”
할 일이 끝나자, 텐징은 1.5리터짜리 음료수 병을 들어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크으. 그보다, 괜찮겠나?”
텐징의 물음에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하는 샤오롱.
“뭐가? 난 네가 괜찮을지 걱정인데?”
“걱정? 나를?”
텐징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웃긴 일이라는 듯,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글쎄, 지난번에 상처 자국을 봤을 때엔 심했는데.”
“괜찮다, 그깟 흉터 따위.”
텐징은 흉터가 별것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지만, 샤오롱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괜찮기는 개뿔이. 반송장 상태로 겨우 탈출했던 걸 내가 아는데?”
적당히 웃으면서 넘기기가 힘들어 보이자, 텐징은 다 마신 음료수 병을 구겨서 옆에 던지고는 웃음을 거두었다.
“어쩔 수, 없지. 그때 내가 그걸 피할 순 없었으니까.”
“그게 그 잘난 무인의 마음가짐인가?”
샤오롱이 비꼬듯이 물어보자, 텐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나이의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열정…… 그런 것이었지. 어느 정도는 본능이기도 했고.”
“열정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아드레날린이었겠지. 만약 그 녀석이 조금만 더 출력이 높았으면 넌 거기서 전신의 근육이 마비돼서 죽었어.”
샤오롱의 말에, 텐징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씻으려는 듯 욕실로 향했다.
“미안하군, 다음부턴 작전대로 움직여 주지. 자고 갈 건가?”
“아니, 이만 가 볼 거다. 그리고 제발 작전대로 따라 주면 좋겠어. 이번에는 선지자 그 인간이 정말 어쩔 수 없는 변수였다고 인정했고 갑자기 나타난 은색 헬멧에 관심을 가져서 다행이었던 거지. 다음에 또 보자고.”
샤오롱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깥으로 나갔고, 텐징은 등산 전의 목욕재계를 위해 욕실로 들어가 옷을 벗었다.
그런 그의 몸에는, 가뭄이 들어 땅이 갈라진 것 같은 화상 흉터가 가슴을 중심으로 온몸에 퍼져 있었다.
* * *
용산에서의 짧은 만남과 볼일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영의와 지연.
영의는 자신이 쓸 장비의 제작을 곧바로 맡기려 했다.
-죄송하지만, 바로 만들 수도 없는 데다 설계 후에 그에 적합한 소재가 시장에 매물로 나와야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주문 제작으로 하려면 성의가 많이 들어가야 하니…….
지금 곧바로 제작하기엔 무리라는 대답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영의의 뒤에 위치한 지연의 손에는, 갈 때와는 달리 짐이 조금 늘어 있었다.
“그, 이런 건 안 주셔도 되는데…….”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손목 보호대와 접이식 삼단봉이었다.
물론, 저 삼단봉도 지석이 만든 물품 중 하나였고.
“넣어 둬. 내 스타일을 배워서 네 걸로 녹여내려면 장비에 의존해야 해.”
“저, 저도 노력하면 선생님처럼 할 수 있어요!”
지연은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려 했지만, 냉담하게 고개를 젓는 영의.
“네가 지향하는 건 화연이 스타일 아니었어?”
“그건, 그렇지만…….”
화연이 보여 주는 능력과 체술의 조합을 동경했고, 그것을 무기 없이 몸으로 보여 주는 영의의 모습에 제자로 들어온 지연.
물론 지금은 화연처럼 되고 싶은 마음보다 영의의 방식대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처음엔 몸으로 때워 보다가 능력에 신경 쓰면서 공격과 방어가 물 흐르듯 한 번에 안 되니까 각자 담당할 걸 나눈 거지. 돌아가서, 무기술부터 가르쳐 줄게.”
“네? 무기술요?”
“그래, 우리 집안이 무기를 안 쓰긴 해도 쓰는 법을 알고는 있거든.”
정확히는 독고휘가 남겨 준 비급에 있던 뇌령검법이었지만, 지연이 그걸 알 방법이 없으니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