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9)
영의는 퇴근하는 길에 동생과 제자를 챙겨 줄 생각으로 치킨을 두 마리 정도 사 왔다.
물론 저녁도 먹고 했으니 다 먹을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얘들이 한창때라고는 해도, 한 마리를 다 먹진 못하겠지? 남은 건 뇌영이랑 내가 대충 먹자.’
하지만 그 생각은 시작부터 단단히 빗나가 있었다.
“맛있다! 치킨 고마워, 오빠.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려고 했었거든.”
“치킨은 이렇게 막 튀겨 내고 김이 올라올 때가 진짜 맛있죠. 안 그래요, 언니?”
분명히 저녁을 먹은 게 틀림없을 텐데, 굶은 것처럼 신나게 먹기 시작하는 수연과 지연.
“어우, 진짜 막 튀겨 낸 것처럼 상태가 아주- 음.”
“…….”
그리고 둘과 마찬가지로 치킨을 빠르게 먹기 시작하는 소년과 소녀.
물론 얼굴 보자마자 바로 치킨을 가져간 건 아니었고 처음 봤을 때 소개는 받았기에 이름 정도는 들었다.
“그러니까, 남자애 쪽이 선우고 여자애 쪽이 선영? 남매인데 동갑이고?”
끄덕끄덕.
모두가 열심히 치킨을 흡입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영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주는 수연.
“그런데, 얘들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우히 하호으히헤…….”
수연이 입안에 고기를 가득 채운 채 대답하자, 영의는 손바닥을 내밀어 그녀를 제지했다.
“먹고 말해, 먹고.”
우물우물.
꿀꺽.
“후, 우리 나오는 길에 같이 따라 나온 거야. 주말 동안 우리랑 놀려고 했었다는데.”
영의가 그 말을 듣고 선우를 쳐다보자, 선우는 눈치 빠르게 입안의 것들을 곧바로 삼키고는 대답했다.
“네, 형님. 잠깐만 있다가 깔끔하게 치우고 빠르게 가겠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자고 가겠단 말은 안 하니까 안심하는 영의.
그때 문득 부모님이 계셨다면 방에서 나와 왔냐는 말 한마디라도 하시거나 애들한테 뭐라도 먹이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근데, 어머니랑 아버지는? 이 시간에 집에 계시지 않아? 어디 가신 거야?”
“엄마랑 아빠? 놀러 가셨는데?”
영의는 수연이 너무 태연하게 대답하자 깜짝 놀랐다.
“뭐?”
‘막내딸을 놔두고 놀러 간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물론 쟤도 성인이긴 한데! 갑자기 놀러 나간다고? 아무 말도 없이?’
“원래 갈 생각 있었는데, 나 때문에 취소하려 하셨나 봐. 근데 오빠가 여기 왔으니까 그대로 가신 거 아닐까? 봐. 여기.”
수연은 영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별 관심이 없었기에 말을 이어 나가며 종이쪽지를 보여 줬다.
영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가 이내 메모를 받고 찬찬히 읽어 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동해로 여행 갔다 온다. 원래대로면 집에 너희들이 없었을 테니 말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갑자기 찾아오니까 어쩔 수 없었다.]
원래 가실 계획이었다고 하니 갑자기 난입한 불청객의 처지가 되어 할 말을 잃은 영의.
‘그래, 내가 두 분 여행 가시려는데 갑자기 집에 찾아와서 끼어든 거지. 쩝.’
뒷부분을 읽어 내려가자, 당황으로 표정이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전에 말 안 해둔 건 영의 너에게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그런다. 주말 동안 수연이 좀 보살펴라. 요리라곤 라면밖에 못하는 애니까. 배달 음식 너무 먹이지 말고.]
‘뭔 소리야, 책임감이라니? 쟤도 이제 성인인데! 아, 물론 지연이야 아직 미성년자이긴 한데!’
주말 동안 애들을 보살피라니? 물론 지연의 경우에는 보호자가 필요하기야 하지만.
‘하아, 귀찮게 됐지만 아무튼 치킨을 사 와서 다행이네. 애들이 마력 주입기를 신경 쓰진 않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메모를 읽어 내려가던 도중, 여백을 상당히 둔 아래쪽에 작은 추신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맞다. 돈은 안 두고 간다. 냉장고에 반찬이랑 다 있으니까 이 엄마는 돈이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한단다.]
“쯧, 내 돈으로 먹이거나 요리를 해 먹이거나 하란 거네.”
확실히 저렇게 해 두면 보살피는 마음 자체는 제대로 깨달을 것 같긴 했다.
‘일단 애들도 다 먹어 가고, 마력 주입기에 대한 관심도 돌려야 하니까…….’
영의는 치킨에 쏠려 있는 주목을 자신에게 돌려오면서, 동시에 자연스럽게 마력 주입기를 빼 오기 위한 밑 작업으로 박수를 쳤다.
짝!
“좋아, 아직 배고파?”
영의의 말에 즉각 대답하는 수연과 살짝 늦지만 부정은 하지 않는 지연.
“응!”
“……네.”
그리고 선우와 선영도 손님으로서의 예의상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직 닭을 바라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그럼 금방 사 올 테니까, 먹고들 있어. 너희도 편하게 있고. 어차피 부모님 안 계시니까.”
영의는 그렇게 치킨을 더 사러 나가는 척을 하며 빠르게 마력 주입기를 빼돌리려고 했다.
“와! 오빠 최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형님!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웃으면서 감사 인사를 하는 애들을 보고 되겠다는 판단을 하는 영의.
‘좋아, 마력 주입기는 아까 만지작거리면서 치킨 먹는다고 내버려 둬 지금은 탁자 귀퉁이에 있다. 빠르게 움직이면 수연이나 지연이 정도만 알겠…….’
하지만, 그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고 보니 치킨 때문에 신경을 못 썼는데, 이건 뭐 하는 건지 아는 사람?”
화제가 다시 마력 주입기로 돌아오고 만 것.
“맞네, 누구 저게 뭔지 아는 사람 있어? 나 옛날에 건강검진할 때 저런 비슷한 걸 봤었는데.”
마력 주입기는 사람의 신체 사이즈에 딱 맞게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고, 그 부분은 옛날에 사용되던 혈압 측정기 같은 모습이 겹쳐 보였다.
영의의 팔에서부터 뇌영의 알까지, 범용성도 넓은 장비라 제법 간단한 구조를 가진 장치였다.
팔을 묶어 두는 부분에 마력 변환기를 장착하고, 그 옆에 마석을 넣는 공간이라든가, 속도를 조절하는 장치들이 달려 있었고.
얼핏 보면 스팀펑크 스타일을 가미한 혈압 측정기같이 생긴 외양 덕분에 어디서 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 큰 의심은 안 샀다.
하지만 그런 이상한 스타일의 모습이었기에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히 특이했던 마력 주입기.
‘하, 씨. 돌겠네. 어쩌지?’
이젠 수연마저도 먹던 속도를 늦추고 마력 주입기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움, 맞네. 이건 대체 뭐지?”
그리고 마력 주입기를 두고 대화가 오가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지연.
“저, 선생님 방 안에 있던 건데 선생님 개인 물건이지 않나요?”
“괜찮아, 오빠 방에 있던 거니까. 안 부서지게만 잘 다루면 돼.”
그때, 영의는 계획을 수정하기로 하고 휴대폰을 조작했다.
“나 아직 여기 있거든? 당사자 앞에 두고 그럴래?”
영의가 치킨을 사러 나가려는 기색이 안 보이자, 의문을 표하는 수연.
“오빠, 안 나가게?”
“방금 시켰어. 폰으로.”
영의에게서 나온 의외의 대답에 수연은 당황했다.
“오빠가? 배달을 시켜?”
“왜, 난 하면 안 돼?”
“아니, 그냥…… 의외라서.”
어지간하면 배달을 잘 안 시켜 먹고, 가끔 먹을 때에도 비싼 추가 비용을 주느니 본인이 직접 가서 사 오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눈을 뗐다 혹여나 마력 주입기가 위험해질 수 있었기에, 그는 집 안에서 직접 감시하기로 했다.
‘진짜 상황이 꼬여 버리면 억지 부리면서 뺏어 와야겠어. 이젠 저거 구할 수도 없다고.’
영의는 알림이가 남긴 기다려 달란 마지막 말을 어느 정도 믿고는 있었지만,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기로 했다.
“가끔은 내가 손님일 때도 있는 거지, 안 그래? 내가 치킨 배달한다고 해서 치킨을 직접 사러 가야 한단 법은 없잖아.”
“뭐, 그러란 법은 없긴 하지만…….”
“그럼 그냥 기다려. 아, 그건 내 거니까 돌려주고.”
상황을 적당히 넘긴 듯하자, 영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력 주입기를 향해 팔을 뻗었다.
“자, 가져가. 손에 기름 묻어서 직접 주긴 좀 그래.”
“뭐, 그 정도야.”
‘됐다, 이제 적당히 쟤들 갈 때까지 숨겨 두고 내일쯤 꺼내면 되겠지.’
영의는 안심하며 마력 주입기를 집어 들었으나, 그때 선영이 질문을 해 왔다.
“근데, 무슨 용도인지 정도는 말해 주실 수 있지 않나요? 옆에 마정석도 엄청 많았고, 방금 대화로 보면 그리 고소득도 아니실 텐데…….”
조금 무례할지도 모르겠지만, 꾸밈없는 성격인 선영은 직설적으로 물어 왔다.
그리고 선영의 행동에 당황하며 그녀를 제지하려 드는 선우.
“아니, 야! 그건 실례지! 직업에 귀천은 없는 거야!”
“물어볼 순 있는 거잖아?”
서로 투덕거리기 시작한 둘은 놔두고, 영의는 마력 주입기가 대체 왜 수연 일행의 손에 들어간 건지부터 물어보기로 했다.
“으음, 그보다 이건 어떻게 찾은 거야?”
“아니, 집에 와 보니까 오빠 방 문이 열려 있길래 왔나 싶어서 들어가 봤더니 오빠는 없고 가방이랑 그거만 있어서. 못 보던 거길래 뭔가 싶어서 들고 나왔지.”
그리고 그때 문득 마력 주입기를 급하게 놔두고 나오는 길에 방문을 안 닫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영의.
“마정석은…… 투자 개념으로 갖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 변명에 대해서는 바로 납득하는 아이들.
“아, 단타 하시는구나?”
“솔직히 현물 갖고 버티는 게 재테크가 되긴 하지.”
영의가 순순히 대답해 주자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가는 수연 일행.
그리고 마력 주입기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던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배달이요!”
때마침 방금 전 시켰던 추가 치킨이 온 듯했다.
“네~.”
문을 열자, 그곳에는 그가 거의 매일 보던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병찬아?”
항상 보던 병찬이었지만, 이렇게 문 앞에서 만나게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영의.
“……행님?”
그건 병찬도 마찬가지였는지, 많이 당황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너 왜 여기…….”
“행님은 와 이 짝에…….”
각자 서로가 왜 여기 있는지 의아해하는 둘이었지만, 대답은 영의가 먼저 했다.
“나는 여기가 집이니까…….”
“행님 집 원룸 아입니까?”
영의와 친하게 지내는 만큼 그의 자취방에 방문한 적도 있었던 병찬이었기에, 이 시간에 배달 온 곳에 그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건 내 자취방. 여긴 부모님 집. 왜 온 거야?”
“내는 퇴근길에 마지막 배달 왔지예.”
병찬이 배달하는 것 자체를 의문 삼지는 않았지만, 병찬이 이곳에 온건 의문이었던 영의.
전국 각지로 배달하는 그들이었지만, 병찬이 퇴근하기 전에 마지막 배달을 할 때는 배달지가 서울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너 이쪽은 잘 안 오지 않아? 너 마지막 배달은 거의 서울만 돌았던 것 같은데.”
“일 끝내고 할매 집 가는 길이라 온 거지예. 아까 할매 얘기 나와가 할매 얼굴도 볼까 싶어 가꼬.”
병찬은 할머니가 보고 싶었던 건지 오늘 영의처럼 일찍 퇴근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어, 그래. 수고가 많네. 일찍 퇴근하니까 크게 수고는 아닌가?”
“근데 행님, 배달은 와 시키셨어예? 행님이 직접 사가 오면 되는데. 저 짝에 행님 애마도 있더만.”
병찬은 영의가 자신의 바이크를 두고 굳이 배달을 시킨 이유가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아니, 뭐. 부모님이 여행 가셔서. 그동안 동생 좀 봐야 하는데 뭐 사고 칠까 봐 불안해서 그러지.”
“지도 그 마음 알지예. 안 그럴 거라고는 믿는데 혹시나 눈만 떼면 뭔 짓을 할까 싶고.”
영의는 병찬의 말에 의문이 늘어났다.
‘분명히 병찬이는 형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
병찬은 외동아들이었다. 그리고 그 탓에 매번 자신과 좀 더 친하게 지내고 있었고.
“뭐야, 너 동생 없지 않았어?”
“그게, 친동생은 없지예. 근데 개 동생은 쪼매 많아가…….”
“개 동생?”
의동생도, 의붓동생도 아닌 개 동생은 뭐란 말인가. 하지만 그 의문은 병찬이 금방 대답해 주었다.
“부모님이 개를 윽수로 좋아해 가꼬 아들보다 더 애끼시지예. 주말에 늦잠 좀 자면 잔소리를 갖다가 마-악 쌔리 붓는데…….”
부모님이 개를 너무 좋아해서 아주 자식처럼 아낀다는 말을 하며 뭘 부수고 찢어 놔도 웃으면서 넘긴다고 푸념하는 병찬.
‘아…… 병찬아…… 개한테도 밀린 거니?’
“그, 그래. 조심히 가. 할머니 잘 만나고.”
“예, 예. 행님도 몸 건강히 계시고!”
‘할머니한테는, 예쁨받기를 바랄게…….’
영의는 앞으로 병찬에게 조금 더 잘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병찬을 떠나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