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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32화 (132/325)

#제132화 (8)

오후 4시 30분.

“자,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다들 주말 잘 보내고, 다음 시간까지 과제 잊지 않고 해 오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교육생들에게는 앞에 누가 있든, 지금 그들에게 무슨 과제가 부여되었든 상관없었다.

드디어 금요일의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내일이 대망의 주말이란 사실이 중요했을 뿐.

“오늘 PC방이나 가자.”

“노래방 가자!”

어디를 놀러 갈까 고민하며 신나서 떠들며 나가는 교육생들.

아직 어린 교육생들이 많았기에,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수업이나 시험이 끝난 학생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쟤는 왜 아직도 잔대?”

“몰라, 아침부터 자고 있었어. 깨워도 안 일어나더라.”

물론, 그 와중에도 특이한 케이스가 몇 있었지만.

그렇게 아카데미의 밖으로 나와 신이 나서 걸어 다니는 교육생들의 모습이 보이자, 주변 상권 사장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집이 지방에 있어서 기숙사를 이용해야 하는 교육생들도, 집이 아카데미 주변이라 금방 왕복이 가능한 교육생들도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가까운 곳에서 이런저런 용무를 봤으니까.

그리고, 아카데미에 올 정도의 학생들이면 금전적으로 곤란한 경우가 별로 없으니 씀씀이도 컸다.

기숙사도 강제적인 조항이 없고, 말 그대로 숙소에 가까운 개념이었기에 외출이 자유로워 어지간하면 대부분 바깥으로 외출을 나간다.

부모들의 입김과 주변 상권들의 반발이 영향이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 아카데미 측은 아예 그런 부분을 자유롭게 풀어 버린 것.

어차피 불법적인 행위를 하거나 하면 제적시켜 버리면 그만이고 교육생들만 손해니, 간 큰 짓은 별로 하지 않았고.

그리고 그런 교육생들 틈새에 섞여 나오는 지연.

삑.

그녀는 정문의 리더기에 학생증을 찍고 밖에 나온 뒤, 주변의 가게들을 보자 기분이 들떴다.

“언니, 언니는 외출 나오는 거 처음 아니에요?”

삑.

수연은 외출이 처음이었기에 지연의 뒤를 따라 나오며 그녀가 했던 것과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뭐, 그렇지. 어지간하면 대부분 안에서 시간을 보냈으니까.”

지연은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끔 나온 경우가 있었지만 수연은 집과 거리가 조금 있었고, 어지간해서는 사서 쓰지 않는 성격이라 밖으로 나올 일이 없었다.

거기다가, 수연은 강의들이 끝나고도 대부분 수련에 시간을 할애했었고.

“잠깐, 같이 좀 가요.”

삑. 삑.

그녀들의 뒤를 따라, 선우와 선영이 급하게 달려 나왔다.

“뭐야, 안 올 줄 알았는데?”

지연은 수연과의 사이에 그들이 끼어들자 조금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니, 뭐. 영웅 쌤이 집에 잘 안 간다는 말을 해 줬으면 진작 같이 따라왔죠.”

첫 수업 이후 영웅은 어째서인지 대인 마크를 하듯이 선우를 콕 짚어서 시범 사례로 삼기도 하고, 직접 이름을 호명하며 다가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영웅이 조금 거북했던 선우였지만, 그만큼 집중적인 관리를 받으니 하루가 다르게 상태가 좋아져서 싫다고도 못 하고 있었다.

비록 강화계는 아니었지만, 강화계처럼 싸우는 것에 대한 묘한 환상이나 집착 같은 게 있었던 선우.

그 배경에는 그가 어린 시절 봤던 만화와 애니메이션들, 그리고 게임들이 있었고 그 환상의 범위에는 실전 무술 도장도 포함되었다.

“저도 그 도장은 좀 궁금하고요.”

지연은 혹시나 만일의 경우 영의의 정체가 탄로 날까 봐 그들을 데려가기 싫은 낌새였다.

“별로 볼 건, 없을 텐데? 쌤도 너희를 제대로 가르쳐 주긴 힘들 것 같고.”

하지만 선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곤조곤 자신들이 가는 이유를 대답해 주기 시작했다.

“괜찮아. 그냥 보러 가는 거고, 대인 무술은 배워 두면 좋으니까. 적당히 이론 정도만 들어 두면 나머지는 아카데미에서 연습으로 해결하면 되겠지.”

선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선우는 연습이란 말을 듣자 선영을 휙 돌아보았다.

“응? 설마, 그 연습 상대가 나는 아니겠지?”

“맞아, 연습 상대.”

선우는 선영의 대답에 뭐라 하려 했으나, 선영의 빠른 펀치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그건 좀 불합리하지! 이 힘만 센- 커흑?!”

“쓰읍.”

그렇게 선우는 강제로 침묵당한 뒤 선영의 손에 이끌려 비틀비틀 발걸음을 옮겼다.

“에휴, 저렇게들 보고 싶어 하는데 뭐 어때? 정작 와서 실체를 보면 실망할 거야.”

“언니, 그치만-.”

영의의 비밀을 혹시라도 알아내면 어떻게 하나 싶은 얘기를 하려던 그때, 수연이 지연의 귓가에 아주 작게 속삭였다.

“어차피 능력 두 개는 있을 수 없어. 오빠가 이상한 거지. 아무도 모를걸? 그리고 오빠한테는 능력만 보이지 말라고 하면 되는 거고.”

그렇게 속삭이고는 웃어 보이는 수연을 향해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직접 보고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선생님이 그냥 속성계인 줄 알았잖아. 아무도 못 믿겠지.’

지연은 그 사실에 조금 안심이 되었던 건지, 옅은 미소를 짓고는 수연과 팔짱을 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언니, 저녁은 어떻게 할 거예요?”

“음? 글쎄. 주변에 맛집이라도 있나?”

수연의 물음에, 선영에게 제압당해 있던 걸 풀고 곧바로 앞으로 튀어나오는 선우.

“어, 누나! 저 알아요! 진짜 맛집!”

선영은 선우가 탈출한 것이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그 뒤를 따라갔다.

“네 입맛 기준 말고, 객관적으로 맛있는 집 맞지?”

아카데미에서 육체 단련에 열성을 보이는 4인조는 그렇게 여유롭게 저녁을 고민하며 길거리를 거닐었다.

한편, 영의는 지금 자취방에서 짐을 챙기고 있었다.

마력 주입기와 마정석이 들어 있는 가방을 챙겨 들고는 잠깐 멈칫하는 영의.

‘잠깐, 이거 보여 주고 직접 써도 문제는…… 안 생기겠지?’

사실 소형 마력 주입기는 지금 당장 세상에 드러나면 거대한 파란을 몰고 올 물건이다.

당장 현역에서 사용되는 기계만 해도 MRI 촬영 기기처럼 방 하나에 겨우 들어갈 만한 큰 사이즈였으니.

“에이, 어차피 다 가까운 사이고 더 큰 비밀도 아는데 뭘.”

그런 영의의 혼잣말에 반응하여 고개를 갸웃하는 뇌영.

“휘오(뭘 알아요)?”

“아무것도 아냐. 그보다, 앞으로는 진짜 마정석 막 집어 먹지 마. 이젠 저거 구하지도 못할 거 같으니까.”

끄덕끄덕.

지난번, 뇌 속성 마정석을 멋대로 집어 먹었던 건으로 혼난 적 있는 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니까.

“음, 수연이는 별다른 속성이 없어서 마력량 자체만 늘려 주면 될 것 같은데. 지연이는 어떡하지?”

마력량 자체만 늘려 주는 것도 효과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속성에 맞는 걸 주입해 주면 효과는 더욱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니, 잠깐 고민하는 영의.

팔면 차 하나는 사고도 남을 속성 마정석이냐, 아니면 제자냐를 생각하던 영의는 이내 손을 뻗어 뇌 속성 마정석을 하나만 집어 들었다.

“시험, 시험만 해 보자. 얼마나 차이 나는지만 보는 거야.”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마정석이 든 가방 안에 뇌 속성 마정석을 스윽 집어넣고는 이내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사실, 무술을 하는 집안이다 보니 제자를 조금 귀하게 대하는 감이 있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챙겨 줘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 제자는 살뜰하게 챙겨야지. 무림 쪽에서 하는 거 보니까 무슨 자식처럼 챙기던데. 딸만큼은 안 돼도 동생만큼은 챙겨 줘야지.’

사실, 지연은 수연보다 더 어렸기에 영의의 입장에서는 조카와도 같은 느낌이었지만 아직 그는 조카가 없었기에 그냥 막내 여동생쯤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부모님께 찾아간 뒤, 이런저런 근황을 주고받는 영의.

“요즘도 그렇게 하이바 쓰고 뭐 어디 뛰어다니고 그러고 있냐? 일본에 그 뭐냐, 무슨 라이더처럼?”

영의를 반기며 장난기 가득한 농담을 건네는 정권.

“아뇨, 안 해요. 그런 거. 그보다, 헬멧 쓰고 다니면 그건 헬멧 라이더인가?”

그리고 그 농담을 받아 주는 영의.

“아무튼, 어쩐 일이냐? 네가 뭐 돈이 궁해서 손 벌리러 올 녀석도 아니고.”

“정말 그런 용건으로 왔으면 빌려주기라도 하시게요?”

“아니, 내쫓아야지. 두들겨 패고.”

정권의 망설임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대답에 영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부모님이야.’

“수연이하고 지연이한테 용건 있어서 온 거예요. 주말 동안 집에 좀 오라고 얘기도 해 뒀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어머니, 희정이 재빨리 다가와서 영의의 등짝을 소리 나게 때렸다.

“아니, 공부하느라 바쁜 애를 뭐 하러 불러? 볼일이 있으면 네가 가야지! 으이구! 아무튼 생각 없는 건 아빠나 아들이나 똑 닮아 가지고는!”

나이를 먹고, 운동을 하거나 옷을 입어도 등에 작렬하는 엄마의 손길은 아프게 와 닿는 법이다.

“아! 왜, 왜 때려요? 주말엔 동사무소도 학교도 심지어 군대도 쉬는데! 주말에 부르는 게 잘못이에요?”

“그래, 여보.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말아. 근데, 내가 그렇게 생각이 없었어?”

“으휴, 쯧. 자기가 그걸 알았으면 생각 없단 소리를 안 들었겠지. 누구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지를 않나, 누구는 말도 없이 위험한 곳에 머리를 들이밀지를 않나……. 내가 못살지 정말.”

정곡을 찌르는 묵직한 팩트에 영의와 정권은 입을 다물었다.

“크흠, 큼.”

“저, 저는 잠깐 좀 나갔다 올게요.”

영의는 가져온 짐과 가방을 급하게 자신의 방에 던져두고는 곧바로 집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어디 가? 오늘 돌아올 거지?”

“네. 일하고 오늘 돌아올게요.”

“그래, 오늘 오는 거 맞지? 몸조심하고!”

“네!”

담벼락에서 날개를 정리하던 중 갑자기 영의가 나오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굳이 따라나서지 않는 뇌영.

지금 영의가 헬멧과 바이크의 안장 속에 든 보온 박스를 챙기는 것으로 보아, 배달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집 안에서는 정권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됐을 말을 하다가 등짝을 맞았다.

“또 번개 맞지 말고!”

“이 사람이 정말! 아무튼, 빨리 준비해! 얘들은 왜 갑자기 집에 오는 거람? 그리고 여행 가는 거 까먹었지? 조금만 더 있었으면 애들도 데리고 가자고 했겠어 아주?”

짝!

정권은 등짝을 맞으면서도 방으로 들어가 여행용 가방 안에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챙겨 넣기 시작했다.

“아악! 알겠어. 근데, 애들이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미리 말이라도 해 둬야…….”

“그런 말을 하지 마! 말이 씨가 된다잖아! 메모라도 있으면 알아서 할 거야. 그리고 쟤는 누구를 보살펴 보는 경험을 해 봐야 해. 그래야 부모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겠지. 그럼 이제 빨리 준비해요.”

“아, 알겠어!”

어머니에게 쏘이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영의가 향한 곳은, 그가 자주 가던 라이더들의 집결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늘 그랬듯 그에게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를 해 오는 병찬과 병민.

“이야, 행님! 오늘은 일찍 오셨네예!”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잖아.”

“일찍 인나는 새는 일찍 피곤해진다 아이가…….”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둘.

“음, 그래. 너희도 변함없이 그대로구나.”

“행님, 사람이 갑자기 팍 하고 바뀌면 디진다 아입니까.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사는 게 제일 좋다 카데예!”

평소에도 쓸데없는 말을 자주 하던 병찬이었지만, 오늘따라 교훈이 담긴 듯한 말을 꺼냈다.

그 사실에 의외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병민과 영의.

“뭐야, 네가 어쩐 일로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한다?”

“그러게, 누가 한 말이야? 되게 괜찮네.”

그리고 병찬이는 웃으면서 이렇게 외쳤다.

“우리 할매가!”

“음, 할머니가 참 현명하시네.”

“나이 드신 분들의 그런 게 있잖아. 뭐랄까, 관록에서 오는 지혜?”

그렇게 오늘도 병찬과 병민이라는 곁에 두면 심심하지 않은 동생들을 두고, 영의는 간만에 업무 차원의 배달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찍 출근한 것은 일찍 퇴근하기 위해서라는 듯, 8시가 되자 곧바로 바이크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영의.

이미 집에 도착했다는 수연의 연락을 받았던 그의 손에는 치킨 봉투가 두어 개 들려 있었다.

‘저녁은 먹었겠지만, 한창때에 잘 먹어 줘야지.’

제자와 동생을 위한 선물이었고, 한 명 앞에 한 마리씩 주기 위해 사 들고 오는 길이었다.

삐리릭-

도어락의 잠금장치가 풀리고 집 안에 들어선 영의.

그가 본 것은 예상에 있었던 수연과 지연.

“어? 오빠다.”

“쌤!”

예상에 없었던 의문의 남녀.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리고 그들의 손에 들린 소형 마력 주입기였다.

“오, 치킨 사 왔네?”

툭.

‘저게, 왜 저기 있지?’

치킨 봉지가 힘없이 땅에 떨어졌지만, 영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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