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31화 (131/325)

#제131화 (7)

[다음 세계로 넘어왔다. 이곳은 마력을 다루는 게 상당히 발전해 있다. 상당히 조잡하긴 해도, 그 누구도 마법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식의 독점이 심하진 않은 듯하다.]

[몇몇은 내가 거지꼴로 돌아다니는 걸 꺼려 하지만, 대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걸 봐서 거지가 흔히 있는 빈부 격차가 존재하는 듯하다. 당분간은 길거리 생활을 해야겠군.]

영의가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은 거기까지가 마지막이었고, 그다음 장은 찢겨 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아무리 넘겨보아도, 뭔가 유의미한 말이 써져 있는 부분은 없었고.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되새겨 보며 작게 웃는 영의.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을 차원의 심부름꾼이라고 한다고? 하, 차원 배달부라. 재밌네. 아니지, 요즘 단어로 치면 차원의 라이더인가? 나 참.”

영의는 힘없이 웃으며 로버트의 일기장을 덮고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풀썩.

“뭐- 정리하면 이거네? 내가 이번 대의 라이더, 아니 심부름꾼. 그리고 고객들을 잘 관리하고, 뻘짓하지 말아야 하고.”

알림이가 왜 정지를 당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혁련운을 살리는 행위가 본래의 역사와 어긋나는 행위라든가, 그런 거겠지.

그리고 그 대상인 혁련운은 죽지 않고 오래 산다면 무림의 판도가 바뀌거나 역사에 영향을 줄 정도의 인물이었던 거고.

“내가 너무 선을 넘었다, 이거지? 재밌네. 근데 어쩌나? 이미 선은 넘은 것 같은데. 그래도, 과거의 심부름꾼들에 비하면 나아진 게 맞나?”

영의는 로버트가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자신은 그렇게 헌신짝 버리듯 처분당하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했다.

로버트의 머릿속 목소리보다 훨씬 다재다능하고 친절한 도우미가 붙어 있었고, 찾아와서 간섭하는 의문의 남자 같은 존재도 없어 조금 더 나은 환경이기도 했고.

‘그보다, 진짜 그 남자는 뭐 하는 존재지? 첫 심부름꾼, 뭐 그런 존재인가?’

대체 로버트 다음으로 이 일기장을 썼던 남자의 정체가 무엇일까 고민하는 영의.

알림이의 기능이 사라지면 세계- 아니, 차원 간 이동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나 로버트와 달리 남자는 자유자재로 이동이 가능한 듯했다.

‘심부름은 다른 후임한테 맡겼지만 본인은 다른 세계를 막 돌아다니니까. 그보다 그러려면 나이가 문제 아닌가?’

솔직히 로버트가 남자의 바로 다음 후임이라고 쳐도, 무림으로 추정되는 차원에서만 25년을 지내고 다른 차원에서도 적어도 몇 년씩은 지냈었다.

하지만 베키의 증언에 따르면 수염과 머리칼이 지저분했어도 노인이라는 느낌은 없었다고 했고.

‘뭐지? 무슨 반신이나 신선, 뭐 그런 건가? 아니지, 공간 말고 시간을 건너뛰는 것도 가능해 보였으니까, 안 늙는 게 대수인가?’

그건 그렇다 치고 넘겨봐도 더 이상 생각해 볼 만한 단서가 잡히질 않았다.

“일단, 그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은 심부름꾼들 팀장 정도라 생각해 두자.”

‘시간이랑 공간을 건너뛰고, 늙지도 않는 괴물이라. 이건 뭐, 마음을 놓질 못하겠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자기 위해 누운 영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아. 비밀은 알았지만 별 쓸모가 없네. 아니지, 내가 이렇게 된 이유라도 알았으니 다행인가?”

로버트에 비하면 훨씬 다양하고 질 좋은 보상을 받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진 않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알림이도 먹통이고, 여기서 더 발전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지금 그에게 있는 것을 갈고닦는 것은 문제가 없다.

뇌격공은 출력을 올리면 되고, 다른 기술들은 조금 더 연습하면 실전에서도 중간에 녹여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놈한테는 뭘 해도 안 될 것 같아.’

자신의 공격들을 몸으로 받아 내고 심지어 모든 걸 끌어모아 날린 최후의 일격도 맞고 나서 카운터를 날린, 아카데미에서 만난 자신을 권왕이라 칭하던 남자.

태풍이 불어도, 집채만 한 파도가 쓸고 지나가도 산은 그 자리에 굳건히 버티고 있듯 그 남자는 뭘 해도 산처럼 버텨 냈었다.

자연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크고 강력한 것이 그러한 자연재해인데, 번개가 아무리 내리쳐도 흙은 사라지지 않듯 효과가 별로 없었다.

문득 다시 되새겨 보니 권왕의 몸이 정말 짜증 날 정도로 사기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그런 인간이 왜 거기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가만, 그 정도면 육체 강화의 끝판왕쯤 아닌가? 그런 인간이 애들 있는 아카데미나 습격한다고? 뭘 위해서? 개인적인 취미인가?’

그렇게 다른 쪽으로 새기 시작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고, 결국 영의는 느와르 영화와 액션 영화의 관계성을 생각하다 잠들어 버렸다.

금요일.

영의는 아침에 받은 문자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더 이상 얻을 방법이 사라졌으니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들이라도 활용을 잘해 봐야겠다는 고민을 하던 그때, 화연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오늘이랑 주말에 훈련을 해서 못 볼 것 같아요. 월요일에는 바로 게이트 진입이고. 대신 끝나면 휴가니까 빨리 갔다 와서 우리 같이 놀러 가요.]

그 문자를 봤을 때, 영의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 뭐. 적어도 로버트처럼 비참한 끝은 아니니까. 소소하게나마 이런 게 있으면 된 거지.”

영의는 알겠다는 답장을 보내 주고는, 가진 능력을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찾을 겸 주말 동안 수연과 지연을 맞이하기 위해 부모님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시각, 아카데미.

“자아! 체력 단련 마지막 한 세트! 이것만 끝내면 오늘 수업은 끝이다!”

운동장에 오와 열을 맞춰서 쭉 늘어선 학생들을 보며 외치는 영웅.

“와아!”

“마지막 세트다!”

그리고 교육생들도 어느새 영웅의 수업 방식에 적응한 건지, 아니면 뭘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음을 느낀 건지 수업에 잘 참여하고 있었다.

게다가, 각성자는 아니지만 사람을 훈련시키는 데에는 나름 재주가 있었던 영웅은 교육생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적당히 사용했다.

“대신, 한 명이라도 실수하면 오늘 수업은 정시 종료다!”

성공에 대한 보상인 수업의 조기 종료와 실패에 대한 체벌인 조기 종료의 부재.

그리고 그 말을 한두 번 들은 게 아닌지, 교육생들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실수하면 안 된다!’

‘여기서 삐끗하면 끝날 때까지 구르는 거야!’

필사적으로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려는 교육생들.

‘이때를 위해, 힘을 아끼고 있었다! 오라, 준비된 시련이여!’

‘평소처럼 하면 된다. 평소처럼.’

이 상황을 예측한 듯, 각자 숨겨 둔 패를 꺼내는 선우와 선영.

‘아, 일부러 틀려서 풀타임 채우고 한 세트 더 할까? 넌 어때?’

‘그러면 애들이 언니 욕할 텐데요?’

‘얼마든지 하라 그래. 중간에 선 넘으면 바로 패지 뭐.’

‘언니 가끔 진짜 무서운 거 알아요? 아무 망설임 없이 팬다고 하는 그 사고방식이.’

서로 눈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위험한 대화를 나누는 수연과 지연.

“자, 그럼 점프 스쿼트부터 시작!”

“하나아아!”

수연의 필사적인 눈빛 설득과 다른 교육생들의 강렬한 의지가 담긴 구령 소리에 수연은 일부러 틀리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교육생들이 빠르게 씻거나 옷을 갈아입으러 갔을 때, 운동장에 남은 것은 네 명뿐이었다.

그중 한 명인 수연은 수업 과정에서 한 운동은 성에 안 찬다는 듯 제자리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언니, 아까 한 정도로 몸이 안 풀리는 건 알겠는데 그만한 체력이 안 되는 다른 애들도 생각 좀 해 줘요.”

날이 갈수록 단련 시간과 강도가 조율되자, 그 정도로는 자극을 받지 못하는 수연이 시간을 더욱 연장하기 위해 일부러 틀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 수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곱지는 못했고, 결국 참지못한 몇몇 교육생들이 그녀에게 해코지를 하려 했지만 전부 수연의 주먹 앞에 제압당했다.

그래서 힘으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교육생들은 어떻게든 가까이 지내는 수연을 설득하려 하고 있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그런 것치고는 너도 나랑 같이 단련하고 있잖아?”

“언니처럼 수업 시간에 억지로 틀려 가면서까지는 안 하죠. 애들이 언니 좀 말려 달라고 저한테 부탁을 얼마나 해 오는데.”

그리고 그 옆에서 무표정으로 함께 단련하던 선영도 그러한 일을 겪고 있는지 입을 열었다.

“네, 요즘에는 저한테도 은근히 눈치를 주는 교육생들이 늘어났죠. 저도 다가오는 애들을 패 버리면 더 이상 안 귀찮게 하지 않을까요?”

“하지 마, 안 그래도 멀쩡한 이미지가 없는데 거기서 폭력성까지 짙어지면 어쩌려고? 시집은 가겠냐?”

선우는 선영과 쌍둥이인 만큼, 그녀에 대해 잘 알았고 그만큼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이미지 있다고 사람은 안 죽어. 필요 없어.”

“사람은 안 죽겠지만 마음이 죽겠지! 친구 하나 없이 사는 게 말이 돼?”

선우의 말에, 선영은 팔굽혀펴기를 멈추고 선우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래서, 너는 친구가 몇 명이지?”

선영의 질문에 선우는 그 자리에 일어서서 매우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오, 친구가 많나?’

‘동생이랑은 다르게, 오빠인 선우는 인싸인가 보네?’

아카데미에서야 아직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친구를 만들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는 친구가 많았을지도 모른다.

“없지! 당연히!”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는 전혀 다른 대답에 수연과 지연은 맥이 빠졌다.

“없어?”

“없구나.”

“하, 그래. 너 잘났다 아주.”

“쌍둥이니까 그렇지! 한 명이라도 인싸였어 봐! 다른 쪽도 인싸였을걸?”

조소하는 선영과 쌍둥이여서 둘 다 같은 거라고 주장하는 선우.

“그럼, 내가 친구가 없어서 너도 친구가 없는 거라고?”

“바로 그거지!”

뻐억!

선영이 날린 불의의 일격에, 선우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으억! 너, 리버블로…….”

“풉, 팔굽 1분에 70개도 못하는 허접 주제에.”

참고로, 선우는 염동력을 각성했고 선영은 육체 강화를 각성했다.

그 때문에 동생에게 처참히 지는 결과가 종종 나오고는 했고.

“으이구, 괜찮아?”

수연은 괜히 까불다가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진 선우를 걱정하는 듯했다.

“안 괜찮아요, 누나…….”

“뭐, 말하는 거 보니까 상태 괜찮네.”

툭툭.

쓰러진 선우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상태를 확인하는 수연.

“아악! 악!”

“엄살 피우는 거 보니까 멀쩡하네. 좀 쉬면 낫겠다.”

수연의 진단(?)에 눈물을 글썽이며 묻는 선우.

“멀쩡요? 이렇게 아픈데요?”

“뼈 안 부러졌으면 된 거야.”

그래도 선우가 약한 것은 알고 있는지, 그의 팔과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 주는 수연.

“자, 들어가자. 금요일이니까 빠르게 할 거 다 하고 집에 가야지.”

“맞다, 누나 주말에 집에 간댔죠?”

수연의 진단이 정확했던 걸까, 벌써 회복한 듯 나름 멀쩡한 모습을 보여 주는 선우.

“응. 오늘부터 가려고 했는데, 여기 주변에 있는 것들도 구경 좀 해 보고. 아, 지연이도 같이 갈 거야.”

“언니, 근데 쌤이 우리 장비는 왜 갖고 오라고 한 거래요?”

지연의 입에서 나온 호칭에, 선영이 의문을 표시했다.

“쌤?”

바깥에 가서 만난다고 했으니, 아카데미에 있는 인물을 말하는 건 아닐 거란 추측을 하는 선영.

“음, 이거 말해도 되나?”

“글쎄. 개인적으로 가르침받은 거니까 별로 상관없지 않나? 뭐 돈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고.”

“나중에 부탁 하나 들어주기로 하긴 했는데…….”

“뭐, 작은오빠라면 이상한 건 안 시키겠지.”

수연과 지연의 대화에서, 선영은 필요한 정보를 얻어 냈다.

“작은오빠면, 다른 형제?”

선영의 물음에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영웅 오빠가 큰오빠고 그 밑에 둘째 오빠, 그 밑에 얘한테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 우리 막내오빠.”

“아, 주말에 놀러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아깝다.”

“그럼 너희도 같이 갈래? 집이 여기서 조금 거리가 있긴 해도 지하철 타면 바로 가는데.”

-야! 외부인 데려오지 말라고!

만약 영의가 이 말을 들었다면 필사적으로 이렇게 외쳤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은 영의의 집과 한참 떨어져 있었기에 영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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