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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28화 (128/325)

#제128화 (4)

지금까지 무림과 지구 사이를 자주 오갔던 영의였다.

그런 그였기에, 시야에 지금 아무런 반응이 없는 상황은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언제나 가고 싶은 세계로 갈 마음을 먹으면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어느새 목적지의 상공에서 날고 있었다.

그렇게 참으로 간단한 이동 과정이었기 때문에 뭐가 문제인지조차 짐작이 가지 않는 영의.

“알림아? 문제가 좀 생겼는데?”

“휘로옥(좀이 아니라 많이 큰데요).”

뇌영도 지금 그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어, 추가로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영의에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의 목소리가 아닌, 무미건조한 메시지 창이었다.

[지정 권한 이상의 간섭을 확인. 현재 사용 중지된 계정입니다.]

그리고, 내용도 심상치 않았고.

‘권한 이상의 간섭? 계정 중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나마 의지해 볼 만한 상대도 반응이 없자, 영의는 점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이대로 못 돌아가는 건가? 정지는 얼마나 가는 거지? 설마, 영원히 이대로야?’

어느새 무림 세계를 옆 동네처럼 친숙하게 여기기 시작했던 영의였다.

그렇게 큰 부담 없이 왔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자 더욱 큰 충격을 받은 영의는 지금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태였다.

“어쩌지? 이대로 못 돌아가면, 가족들은? 화연이는?”

“휘약! 캭(그만하고! 정신 차려요)!”

콱.

점점 더 혼란스러워하며 공황 상태에 빠지려던 그때, 뇌영이 영의의 머리를 세게 쪼았다.

“아악!”

비록 나이는 어려도, 몸만큼은 어지간한 맹금류보다 큰 뇌영의 부리는 단련된 영의의 몸에 상처를 내고 고통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고통 덕분에 잃어 가던 정신을 번쩍 차려 이성을 되찾은 영의.

하지만 너무 아프다.

“아윽. 의도도 알겠고 상황이 급해서 그런 건 알겠는데 머리는 좀 아니지 않아?”

“휘요(급했으니까요)!”

슬쩍 만져 보니 피가 조금씩 배어 나오는 듯, 검붉은 액체가 손끝에 묻어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살면서 머리에 피 한 번 안 나 본 적 없는 화초가 아니었기에, 영의는 출혈량을 보고 곧바로 견적을 냈다.

‘한 1분쯤 있으면 피 멎겠네.’

“아무튼, 고마워.”

영의는 뇌영의 부리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단 문제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려 했다.

‘흐음, 일단 평소랑 달랐던 게 뭘까? 그래, 업데이트였지. 그것도 허가 없이 바로 실행한 거.’

평상시에 고지를 하고 했던 업데이트와 달리, 이번에는 강제적인 느낌이 드는 업데이트였다.

컴퓨터 업데이트도 미루고 미루다 보면 가끔 자동으로 할 때가 있었으니, 그런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영의.

그는 아직 알림이를 사람과 친화적인 고지능 AI일 뿐이라 생각했기에, 컴퓨터를 다루듯 생각하고 있었다.

“컴퓨터는 잘 모르긴 하지만. 업데이트 중이라 기능이 막힌 건가……?”

영의는 혹시나 싶어 알림이- 아니, 무엇이든 간에 지금 메시지 창을 표시하는 무언가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업데이트는 얼마나 남았지?’

평소처럼 마음속으로 생각해서 말을 걸어 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설마 이것도 대답이 안 되나 싶은 마음에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자, 그제야 반응하는 메시지 창.

“저기, 업데이트는 언제 끝나지?”

[업데이트 종료 예정 시각 - 06D 23H]

6일 23시간을 뜻하는 게 틀림없는 메시지 창을 보자, 영의는 제법 긴 기간에 암담해하거나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그동안 뭐 얼마나 밀려 있었길래?’

“아니, 그동안 어떻게 버티라는-.”

영의가 긴 기간에 짜증을 내며 따지려 할 때, 순간적으로 예전에 알림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잠깐, 분명히 예전에는 업데이트 없이 추가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분명히 그때 알림이는 시계 기능을 큰 업데이트 없이 곧바로 추가해 줬었다.

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업데이트를 한다고?

영의가 그런 생각을 품는 동시에, 6일 23시간을 표시하던 메시지 창이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어?”

[업데이트 종료 예정 시각 - 23H 87M]

갑자기 일자가 사라지고 있을 수 없는 87분이 표기되는가 싶더니, 이내 글자까지 깨지는 메시지 창.

[제■■업 종료 예정 시각 - ■3H 27M]

‘뭐야?!’

순간적으로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 눈을 감았다 다시 떠 본 영의.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메시지 창이 처음 봤던 그 모습 그대로 표시되고 있었다.

[업데이트 종료 예정 시각 - 06D 23H]

“뭐였지?”

영의가 순간적으로 봤던 다른 메시지에 대한 기억을 살려 보려고 할 때, 그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상황 감지. 비상 프로토콜을 가동합니다.]

늘 들어왔던, 무미건조하면서도 때때로 생동감 넘치던 알림이의 목소리.

“알림아?!”

[사용자의 위치 복구 실시.]

무림 세계의 광활한 산을 아래에 두고 있던 영의는, 어느새 회색빛 가득한 빌딩 숲을 아래에 두고 있었다.

‘돌아왔어?! 그럼, 알림이는? 알림아?’

[사용자에게 ■수■■■을 설치하겠습니다. 사용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알림이는 영의의 말을 듣지 못하는지, 대답을 해 주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있었다.

[사용자, 잠■만 기다려 주시기 ■랍-.]

이내, 목소리가 끊기고 영의의 귀에 들리는 것은 아래쪽의 도시에서 들려오는 도심의 소음뿐이었다.

“방금, 뭐였던 거지?”

너무 짧은 시간 사이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 의문을 표하는 영의.

“알림아!”

[사용이 정지된 계정입니다.]

방금 전 알림이가 그에게 말을 하던 것이 환청이라고 말하듯, 사용이 정지된 계정이라는 대답만이 공허하게 눈앞을 아른거렸다.

“닫힌 계정이라니, 무슨 내가 게임 캐릭터도 아니고.”

그렇게 영의가 묘한 불만이 섞인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자, 그의 시야가 어두워지며 메시지 창이 갑자기 소멸했다.

“또야?”

잠시 뒤, 세상이 다시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고 시험 삼아 알림이를 불러 보았으나 메시지 창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평소에 그의 헬멧 안쪽의 인터페이스를 본뜬 가상의 인터페이스도 표시되지 않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일단 집으로 가서 생각해야겠어. 생각할 게 너무 많아.’

그렇게 찜찜함과 석연찮음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영의.

푸드득.

뇌영이 방의 한구석으로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것마저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알림이에 대한 생각과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에 대해 생각하던 그때, 아주 잠깐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한 메시지 창.

[특수 언어팩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특수, 언어팩?”

메시지 창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처럼,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시간! 지도! 주문 내역! 메시지!”

그는 집 안에서 미친 사람처럼 이것저것 외쳤지만, 시야에 표시되던 인터페이스가 다시 나타나진 않았다.

‘잠깐, 설마 뇌기와 다른 보상들도 사라진 건……?!’

혹시나 자신이 보상으로 받은 무공들과 다른 것들도 사라졌나 싶어 뇌기를 일으켜 보았지만, 그것들은 어째서인지 다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팟, 파직-

“어째서 이것들은 멀쩡하지? 그보다, 특수 언어팩이 뭐야?”

영의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이내 과도한 두뇌 활동에 그만 과부하가 왔다.

‘갑작스러운 알림이의 연락 두절, 그 전에 남긴 3급 뭐시기란 말, 게임 계정처럼 사용이 중지되었단 메시지, 그리고 언어팩이라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설명 대신 의문이 더 생기는 뭔가를 주고 간 알림이.

하지만 몸 쓰는 건 몰라도 머리 쓰는 것에 있어서는 그리 천재가 아니었던 영의는 결국 포기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 복잡해.”

뭔가 단서라도 더 있거나 자신이 아는 분야 정도가 되어야 단서 하나로 추측이라도 해 보지, 저렇게 두서없이 말해 놓은 걸 짜 맞추는 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렇게 영의가 생각을 잠시 포기하고 침대에 눕자, 그의 등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응?”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거기에 있던 것은 낡은 수첩.

분명히 예전에 베키에게 받아서 집에 잘 보관해 두었던 것인데.

‘어째서 침대 위에 있는 거지? 누가 옮겼나?’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뇌영은 마정석이라면 모를까, 수첩에는 관심도 없었기에 별로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간만에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활성화를 시작한 영의의 두뇌가 뭔가를 캐치해 냈다.

‘잠깐만. 뭔 소린지 모르겠는 말로 써진 노트, 알림이가 관련자의 기억을 지운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고. 게다가, 특수 언어팩?’

영의는 순간적으로 직감이 왔다.

알림이가 최근 보여 준 이상 행동과 마지막 순간에 보내 준 언어팩,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이 써진 수첩은 틀림없이 밀접하게 연관된 거다!

그 생각에 다다르자 곧바로 수첩을 잡아서 앞장을 살펴보기 시작하는 영의.

알림이의 말과, 베키의 설명으로 추측해 보면 아마 그 의문의 남자는 영의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를 이동하면서 이런저런 능력도 얻었겠지. 그래서 그 갱들을 한 번에 소탕했을 거고.’

자신과는 달리, 육체적 능력이 엄청난 듯했으나 어쩌면 전력을 다하지 않고도 소탕할 수 있을 정도로 갱들이 약했을지도 모른다.

그 남자는 단순히 길거리에서 늘어져 자던, 어깨를 탈골시킬 수 있는 재주가 있던 기사나 마법사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세계의 것이 아닌 문자가 적혀 있는 이 수첩이 그 모든 가능성을 부정했다.

‘보자, 음. 몇 개는 아직도 모르겠고. 몇 개는 읽을 순 있지만 뭔 뜻인지를 모르겠고.’

예전에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었지만, 특수 언어팩 덕분인지 몇몇 글자들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로버트]

‘아마 베키를 구해 줬었던 그 의문의 남자의 이름이겠지.’

전 주인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일기장]

‘이거, 일기장이었나? 근데 그런 것치고는 수첩이 좀 작은데?’

두껍긴 했으나 크기가 해 봐야 스케줄표와 짤막한 일기 정도만 쓸 법한 수첩이었기에, 일기장으로 쓰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오는 길에 ■■랑 ■■ 사 올 것.]

중간에 샀던 것을 체크하듯, 물품의 목록에 검은 줄이 진하게 그어져 있었다.

“잉크가 진한 걸로 봐서, 일단 절대 연필이나 볼펜은 아니겠네.”

하지만 글씨의 두께가 제법 일정한 것으로 봐서, 깃펜보다는 만년필이나 그런 쪽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그럼 탐정 놀이는 이쯤 하고, 무슨 비밀이 있는지 살펴볼까.’

적당히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펴보기 시작하는 영의.

초반부엔 별 내용이 없었다.

아까처럼 메모라든가, 가끔 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 등.

그렇게 학생의 낙서장이나 교과서 뒷부분처럼 이것저것 잡다하게 써진 부분들을 넘기자, 제대로 일기에 매진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이 나타났다.

-1월 1일.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은퇴하기 전까지 모은 돈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 식료품점이 망할 일은 없으니 차분하게 살아야지. 전장은, 이제 싫다.

‘뭐지? 우리랑 같은 방식으로 날짜를 세나? 아니지,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지. 이 일기의 주인은 군인 출신이었나?’

그리고 1월 1일 이후에는 일이 바빴던 건지, 일기가 없었다.

-3월 1일. 두 달째 장사가 잘 안 된다. 어째서지? 분명히 제일 좋은 것들로만 골라 왔는데?

두 달 동안 어떻게든 꾸려 봤지만, 적자를 보는 듯했다.

“쓸 만한 내용은 어디에 있는 거야? 죄다 일기인데.”

그렇게 팔락팔락 뒤로 넘기다, 글씨가 흐트러진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5월 3일. 장사가 망해 가고 있어 치즈를 베개 삼아 가게에서 졸던 도중, 갑자기 바닥이 훅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가게가 아니라 어떤 허름한 판잣집 앞에 있었다. 치즈와 함께.

“빙고.”

드디어, 영의가 찾는 부분이 나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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