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2)
영의는 일단 다른 세계에 관해서 모르는 게 있을 때엔 알림이를 찾고는 했다.
수상쩍은 구석도 있고, 뭔가 찜찜하기도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뭐 마법 관련이면 일라이저, 무공 관련이면 독고휘나 혁련무강을 찾아가 보겠지만 병은 아는 게 없다.
‘알리- 잠깐만.’
문득 요즘 들어 뭔가 얻는 것보다는 이상하게 남 좋은 일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영의.
‘나 요즘 상담소나 뭐 해결사 그 사이 어딘가쯤인 것 같은데?’
베키의 고민을 들어주고, 본의 아니게 일라이저를 도와줬고, 방금도 더 강해지는 방법을 알려고 왔는데 남의 고민만 들어주고 가는 게 아닌가.
‘쓰읍, 뭐지? 아니. 지정으로 배달 주문이 안 들어와서 그런 건가?’
그리고 그때, 앞의 알 자만 들어도 반응한 건지 알림이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용자, 부르셨습니까?]
‘어, 그래. 혹시-.’
뭔가 아는 게 있을까 싶어 물어보려던 영의의 질문보다 더 빠른 대답이 돌아왔다.
[죄송합니다만, 방금 전 대화에서 나온 병에 대해서는 정보가 부족합니다. 현재 병이 진행 중인 환자가 없는 이상 정확한 데이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어어, 그래? 어. 음.’
[‘병’으로 분류된 것 중 증상이 유사한 것은 총 1,377건이 일치하며, 그중 ‘유전성’과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으로 추가 분류를 할 경우 총 233건의 결과가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결과에 당황하는 영의.
‘야, 기침 증상으로 찾아도 저 정도는 안 나오겠다. 치료법은 있는 거 맞아?’
[‘유전성’이 존재하는 병이기에 완치의 방법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유전병은 알림이도 어떻게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으음, 그럼 일단 그냥 치료는? 목숨을 붙이는 방법은 있을 거 아냐?’
[사용자, 이 이상 관련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을 권고합니다.]
‘뭐?’
갑작스럽게 영의가 더 이상 끼어드는 것을 막으려 하는 알림이.
[본래 규정에 따르면 3급 역사 변형까지는 허용됩니다만, 사용자의 행동이 그대로 이어져 개체명 혁련운이 치료될 경우-.]
알림이가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중간에, 갑작스럽게 음성이 끊어지고 말았다.
뚝.
‘알림아?’
영의는 알림이를 찾았으나, 그에게 온 대답은 눈앞에 뜬 반투명한 창.
[업데이트 중. 지금은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사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알림이의 업데이트에 당황한 영의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고, 대전에 다다랐다.
그런 다음 혁련운과 연화를 마주치게 된 것.
머릿속 한구석에는 알림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눈앞에서 엎드린 채 자신에게 매달릴 기세를 보이는 혁련운을 보자 묘하게 동정심이 일어나는 영의.
‘수연이만 한 녀석이, 어쩌다가 벌써 인생을 달관한 영감처럼 변해서는…….’
“일단, 일어나. 얘기나 좀 하자고.”
“그, 그럼…….”
자신을 희망찬 눈으로 바라보는 혁련운의 두 눈을 보자 마음이 복잡해지는 영의.
“아니. 얘기나 해 보자는 거야. 그리고, 배우고 싶다고 배워지는 것도 아니고.”
“예, 귀인! 제가 모시겠습니다!”
간간이 뇌영을 흘끗거리며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하는 혁련운.
‘알림아?’
[업데이트 중입니다.]
‘흐음.’
영의는 일전에도 알림이가 급작스러운 업데이트를 하는 경우는 있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언젠가 업데이트했다면서 돌아오겠지.’
조금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혁련운의 뒤를 따라 걸어가던 영의는 문득, 그의 뒤로 따라붙은 누군가가 신경 쓰였다.
“근데, 왜 따라오는 거죠?”
그의 뒤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오는 이는 바로 연화.
“저, 그게, 음. 귀, 귀인을 모시려고요?”
연화는 지금껏 살아오며 딱히 거짓말을 할 만한 일이 없다가 처음으로 말을 지어낼 상황이 와서인지 어색하게 대답했다.
“필요 없- 아니다, 그냥 오고 싶으면 오시고.”
“아, 네.”
그렇게 도착한 혁련운의 개인실은 생각보다 특이했다.
“죄송합니다, 객을 맞이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금방 치우겠습니다.”
지저분한 방이 부끄러운 듯, 황급히 이것저것 옮겨 가며 자리를 만들려는 혁련운.
그러나 영의는 지저분한 것보다는 방 안을 가득 채운 내용물들에 관심이 갔다.
전문적인 연구와 사용 이후의 개량이 없어서인지 조잡해 보이는 기계장치와 몇몇 도두들.
해 질 녘의 사막이나 험준한 산맥을 그린 아름다운 풍경화와 붓으로 그려 낸 것치고 매우 사실적인 연화의 초상화가 벽에 걸려 있었다.
“어머, 저걸 또 그려 놨네.”
연화의 말을 듣자 하니 초상화를 한 번만 그린 게 아닌 듯했다.
연화의 얼굴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들이 몇 점 있었으나 그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지 책상 위에 겹쳐서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현대의 개량 한복처럼 줄일 부분은 줄이고, 편하게 풀어 줄 곳은 풀어 준 옷들이 놓여 있었다.
“음, 다 직접 만든 거야?”
“부끄럽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운은 선반이나 보관대쯤으로 사용되던 의자와 탁자 위의 물건들을 빠르게 치우고는 영의와 연화에게 자리를 권했다.
“저, 귀인. 정말로 저한테 새와 대화하는 것을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혁련운은 양 눈에서 빛이 나올 것만 같은 기세로 영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영의가 새와 대화까지 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영의를 쳐다보는 연화.
‘새랑 말을 한다고? 물론 영물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영특하기는 해도, 서로 대화가 가능한가?’
영의는 둘의 시선에 침묵을 유지했다.
“저, 귀인?”
영의의 침묵이 어색했던지, 조심스레 말을 걸어 보는 혁련운.
“후우, 그래. 30쯤 되면 죽는 병이라고 했던가? 지금 나이가 20쯤이고.”
혁련운의 행동에, 영의는 처음에 했던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
‘생각해 보니까 마음에 안 드네. 아직 새파랗게 어린놈이 벌써부터 세상 다 산 노인네처럼 이러는 거잖아?’
영의는 차분하게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의 발언에 충격을 받은 혁련 남매.
“아, 아니. 운아야! 방금 내가 들은 게 맞니? 이립에 죽는다니?”
비록 이상한 구석이 있기는 해도 그림 선물도 해 주고 새를 좋아하는 자신의 동생이 10년쯤 살다가 죽는다는 말에 놀란 연화.
하지만 그녀의 동생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방금 전까지 보내던 열성적인 눈빛을 거두었다.
“아버지께서, 말해 주셨습니까?”
이젠 귀인이란 말도 붙이지 않는 혁련운.
“그래.”
혁련운은 오히려 영의를 싸늘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누님과 당신. 두 분 다.”
혁련운은 영의를 데려올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축객령을 내렸다.
“싫어. 그리고, 너희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걸어 본 희망이 나인데. 그렇게 냉랭해도 되겠어?”
혁련운은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영의의 말을 듣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너네 아버지, 그러니까 천마 영감님이 나 없었으면 독고휘 영감님한테 무릎 꿇고 빌어서라도 널 살리려고 했다고.”
무릎을 꿇는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영의는 원만한 대화를 위해 적당히 각색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말에 연화는 잠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 거짓말. 아버님께서 어찌 숙적인 독고휘에게…….”
지금이야 그 강대한 힘으로 마교에 군림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교는 강자가 우대받고 위에 올라선다.
혁련무강이 독고휘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이야기가 떠돈다면 곧바로 마교가 뒤집힌다거나 교주 직위를 내려놓는 일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교의 위상이 추락하고 혁련무강의 권위와 교주 직위의 불변성에 금이 갈 것은 틀림없었다.
“다, 당신은 대체 정체가 무엇이길래 아버지께서 그런 부탁을…….”
혁련운은 문득 영의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독고휘의 임시 제자이면서 아무런 부담 없이 마교에 오고, 들어 보지도 먹어 보지도 못한 신비한 음식을 가져오기까지.
“글쎄, 네가 평소에 생각하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상상하지 못할 사람? 자세한 건 네 누나한테 들어 보고.”
그 말에 곧바로 자신의 누이에게 시선을 옮기는 혁련운.
“처음부터 신비하신 분이었지. 하늘을 날아서 오시고 상상도 못 했던 진미를 가져오시는가 하면, 지금까지 본 이들 중에 가장 무공에 대한 재능을 타고나신 분이란다.”
“음, 무공의 재능 부분은 조금 아닌데.”
연화가 무공에 대한 재능을 언급하자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는 영의.
“그럼, 귀인보다 더 재능이 뛰어난 이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어, 얘.”
연화의 물음에 영의는 손을 들어 운을 가리켰다.
“저, 말입니까?”
“비슷한 재능을 가진 애가 하나 더 있긴 한데, 걔는 성격이 좀 특이해서. 종합적으로 보면 얘가 더 좋을 거야.”
영의는 나름 칭찬하겠다고 한 말이었는데, 어떤 심기를 건드린 건지 혁련운이 갑작스럽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타앙!
탁자를 내려치며 벌떡 일어서는 혁련운.
“그럼 뭘 합니까! 이립이면 죽을 팔자인 것을! 무공은 배워서 무엇에 쓰고, 지식은 알아봐야 어디에 쓰겠습니까!”
영의는 혁련운이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하자 일단은 당황했다.
‘어? 얘가 갑자기 왜 급발진을 하지?’
“있어 봐야 어디에 쓰겠습니까? 이딴 재능들! 차라리 없는 편이 좋았습니다!”
영의는 혁련운의 분노에 가득 찬 말을 듣다 보니 문득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잠깐, 재능이 없는 편이 좋았다고?’
세상이 바뀌고, 각성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세상은 더더욱 재능을 중요시했다.
아무리 마력량이 많아도 능력이 보잘것없으면 천시받았고, 마력량이 D등급에 불과해도 전투에 도움만 된다면 길드에 취직을 보장받았다.
사람의 몸을 갈고닦고 힘을 키우는 무술이 각성이란 새로운 형태의 힘 앞에 힘을 잃자 부모님의 도장은 경영 부진에 이르렀다.
그리고, 자신도 각성은 했지만 능력이 전투에 큰 쓸모가 없었기에 배달 일을 하고 다녔고.
그러나 그마저도 축복받은 것이었다.
자신의 큰형, 영웅은 몇몇 경력을 쌓고 운이 좋아 트레이너를 하지만 둘째 형 영환은 경력도 없고 각성도 하지 못해 회사원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런 영의인데 눈앞에서 자신의 재능이 필요 없다고 화를 내는 어린 녀석이 마음에 들겠는가.
콰앙!
순간적인 화를 주체하지 못했던 영의.
그가 문득 정신을 차리자, 그의 눈앞에는 박살 난 탁자와 바닥에 쓰러진 혁련운이 있었다.
‘어? 얘가 갑자기 왜 이러고 있지? 아, 아니지. 일단 수습을 해야지.’
영의는 그렇게 수습을 하기 위해 곧바로 뒤돌아서 방 밖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는 살아 계시잖아. 그런 아버지도 부모 아니냐?”
연화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충격받아 굳어 있다 영의가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자 정신을 차렸다.
“10년이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짧지도 않아. 더 살 마음 없으면 솔직하게 마음 터놓고 추억이라도 만들든가. 뭘 살 만큼 산 노인네처럼 그러냐?”
영의가 방 밖으로 나가자, 연화는 범인을 잡으려는 생각인지 무심코 그를 쫓아갔다.
“방금, 대체 왜 그러신 거죠?”
방 밖으로 나오며 적당히 포장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던 영의는 연화가 따라 나오자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맞다, 얘도 있었지.’
하지만 정신 차려 보니 애를 메쳤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
“천마인데, 정파 최고수한테 영물 내단 바치고 무릎 꿇고. 하다못해 면식도 별로 없는 나한테 무공을 퍼 주면서까지 아들을 살리려 하는데 정작 아들놈은 자긴 죽을 거라고 비관하는 걸 보고도 화가 안 나?”
어느새 상호 존대에서 반말로 바뀐 영의였지만 연화는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그래도 때릴 것까지는 없지 않았습니까?”
“하도 오냐오냐 키우니까 저렇게 된 거지. 말로 해서 안 되면 충격을 줘야 하는 법이야. 쟤, 크면서 한 번도 혼난 적 없지?”
“그, 그건.”
문득 되새겨 보니 운은 크게 활동한 적이 없었기에 까먹었었지, 지금까지 크게 혼나거나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아무튼, 다음에 왔을 때에도 지금이랑 하나도 다른 게 없으면 실망할 거야. 아, 그리고 잘만 바뀌어 있으면 하늘 정도는 날게 해 준다고 해. 새랑 말하는 건, 뭐 모르겠지만.”
영의는 그 말을 끝으로 뇌룡보를 사용해 빠르게 자리를 떴다.
‘하, 씨. 왜 하필 거기서 손이 바로 나가서는. 천마 영감님 닮아서 뒤끝 있는 성격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