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23)
정말 간만에 보는 듯한 혁련무강의 얼굴이 더 좋아진 듯하자 칭찬을 하는 영의.
“이야, 천마 영감님. 확실히 얼굴색이 좋아지긴 했네요. 요즘 맛있는 거 많이 드시나 봐요?”
영의의 넉살 좋은 칭찬에 웃으면서 손사래를 치는 혁련무강.
“자네가 가져오는 것보다는 진미가 아니네만, 매번 먹으면 그건 진미가 아니지.”
“하하, 맞는 말이네요.”
그리고 혁련무강의 말에 뭔가 주장하듯 날개를 파닥이며 우는 뇌영.
“휘요, 휘잇햑(나는, 언제 먹어도 새롭고 맛있는 치킨을 매일 먹고 싶은데)!”
아마 매번 먹으면 맛있는 게 아니라는 혁련무강의 말을 반박하려 하는 듯했다.
“쓰읍, 조용히 있어. 이 돼지야. 마정석 먹었으면 충분하지. 매 끼니 그렇게 먹으면 살쪄.”
영의의 말에 뇌영은 삐진 듯 고개를 홱 돌렸다.
“삑(흥)!”
정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같아 보이자, 혁련운은 그만 입 밖으로 감탄을 내뱉고 말았다.
“오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영의는 문득 혁련운과 혁련무강이 어느 정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눈치챘다.
“어, 영감님 손자예요?”
반로, 아니 반만 환동하기 전의 모습을 봤었던 영의였기에 아직 앳된 모습이 보이는 혁련운은 손자뻘로 보였다.
“아들이네만. 운이라고 하지.”
“어, 오. 으음. 근데 아들이면 막 후계자니 뭐니 할 텐데, 무공은 수련 안 하나 봐요?”
아들이란 말에 뻘쭘해진 영의는 급하게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본인이 안 하는데 뭘 어쩌겠나?”
혁련무강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자, 긴장을 풀고 솔직한 감상을 내뱉는 영의.
“흠, 재능은 좋아 보이는데요? 뭐, 각자 이유가 있겠죠.”
영의가 보기에는 혁련운은 재능이 넘치는 인재였다.
‘대기 중의 마력이랑도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몸도 쓸 만하고. 센스가 문제긴 한데 뭐 스펙으로 찍어 눌러도 되는 거니까.’
그리고 영의의 말에 한쪽 눈썹을 올리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 혁련무강과 낯선 이의 칭찬에 살짝 긴장하는 혁련운.
“그걸, 알아보는 건가?”
영의는 독고휘 앞에서도 했던 얘기였기에 별 부담 없이 말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는 직감인 것도 있지만 얼마 전에 비슷한 사람을 하나 봤거든요. 뭐, 조금 이상하긴 해도, 사람은 참 착했어요.”
우형에 대해 말을 꺼냈지만 어지간해서는 영문 모를 소리일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나중에 보시면 알 거예요. 아마 비무대회 나올 것 같긴 했는데, 뭐 그건 독고휘 영감님이 알아서 하겠죠. 닭이나 드시죠.”
도중에 독고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흥미롭다는 표정이 사라지고, 흥분에 가까운 표정을 짓는 혁련무강.
“뭐라? 독고휘를 만나고 왔어?”
그리고 그런 혁련무강의 모습을 한두 번 본 영의가 아니었기에, 영의는 무심하게 치킨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아, 네. 뇌섬문 가시던데? 방금 말한 건 거기 있던 애였어요. 아, 혹시 아들 쪽도 드실 건가?”
영의는 혁련운에게 넌지시 치킨을 권했지만, 혁련운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에 깜짝 놀라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음, 뭐. 생각해 보니 전에도 딱히 나눠 먹진 않았던 것 같네요.”
서로가 사이좋게 먹어야 나눠 먹는 거지, 눈치 보고 극히 적은 양을 받아서 먹는다면 그건 나눠 먹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영의.
“자, 오늘은 파닭입니다. 생각해 보니까 영감님도 건강은 좀 챙겨야 할 것 같더라고요? 아! 그래도 양념은 따로 챙겨 왔어요. 그나마 활동적인 편이시니까 뭐.”
독고휘와 혁련무강도 일라이저보다 늙으면 늙었지, 더 젊지는 않은 연배였다.
하지만 둘은 무림인이라 몸을 많이 움직이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반로환동을 깔짝거리는 수준으로나마 했으니 큰 변화는 주지 않았다.
다만 건강을 생각해 야채를 더 먹는 게 나을 것 같아 파닭을 사왔을 뿐.
“흐음, 또 새로운 것이군? 그리고 기본적으로 챙겨 줄 건 다 챙겨 줬고.”
혁련무강은 본인의 몸에 자부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새로운 치킨에 정신이 팔린 건지 건강을 챙기라는 말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와사삭.
“음, 본좌는 듣고 있을 테니 계속 말하게. 뇌섬문이 뭐?”
한 손으로 치킨을 물어뜯으며 다른 손으로는 말을 이어 가라는 듯 영의에게 손짓하는 혁련무강.
“어, 네. 근데 혼자 드실 거예요? 아들 쪽은?”
“아,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다는군. 그리고, 연화를 불렀지 않나.”
“그럼 계속 얘기할게요. 보자, 원래는 어디 산에서 은거하셨는데 뭔 바람이 분 건지 아니면 나이 먹고 가족이 그리워진 건지 산을 내려오셨더라고요.”
혁련운이 비록 의욕은 없지만 그렇다고 호기심이나 지식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 눈앞의 남자는 전 무림이 찾아도 모르는 절대고수 독고휘의 행방을 직접 다 묘사해 주고 얘기해 주고 있었다.
“음. 그래서?”
그리고, 그 정보를 듣는 아버지는 이웃집이나 친구 소식을 전해 듣는 듯 음식을 먹으며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아무튼, 뭔 이유인지는 몰라도 내려오셔 가지고 뇌섬문 주변에서 기웃거리시다가 저랑 만났거든요. 솔직히, 제가 찾아간 거긴 한데 아무튼 만난 건 사실이니까.”
치익, 뚜두둑.
페트병의 뚜껑이 열리자, 안에 갇혀 있던 이산화탄소가 바깥으로 빠져나오며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안의 검은 물을 찻잔에 따르는 혁련무강.
치킨은 양보를 못 해도 콜라에 대해선 관대한지, 혁련운의 잔에도 따라 주었다.
“어엇. 성은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체 모를 검은색의 액체를 먹기에는 두려운 건지 잔에 손을 대지 않는 혁련운.
“음. 자네가 찾아갔다고? 어떻게 알고?”
“그건 영업 비밀입니다. 영감님도 남의 무공 안 물어보잖아요.”
“뭐, 그건 맞지. 계속해 보게.”
“그래서 일단 밥이나 먹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왠지는 몰라도 뇌섬문 제자들이 막 들이닥치더라고요. 제 생각엔 아마도 독고휘 영감님이 뭔 수를 쓴 것 같긴 해요. 무협지에 나올 법한 상황이 그렇게 우연찮게 일어날 리가.”
“예전부터 봐왔지만, 독고휘는 종종 그런 걸 선호할 때가 있었지. 실리를 버린 낭만을 좇는 행위.”
뚜둑.
파닭만 먹기에는 조금 질린 듯 양념이 든 플라스틱 통의 비닐 포장을 허공섭물로 뜯어 버리는 혁련무강.
“나이 먹고 더 감상적으로 변한 것 같긴 했어요. 아무튼 그렇게 한바탕 하고, 어쩌다가 영감님 얼굴을 아는 제자를 만나 버렸거든요. 그 전까지만 해도 그냥 의문의 고수로 지나갈 뻔했는데.”
“호오, 녀석의 얼굴을 아는 제자라? 그럼 제법 연배가 있을 텐데.”
“조금 있긴 했죠. 아무튼 그렇게 정체가 밝혀져서 어쩔 방법이 없으니까 뇌섬문으로 간 거죠.”
“쩝쩝. 그렇게 된 거로군. 그럼, 녀석은 거기에 있나?”
“네. 아직 있을걸요? 아마 비무대회 전까지는 계속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래, 알겠네. 그보다 그동안 뇌령조가 많이 컸군? 영물이라지만 저렇게 빨리 크는 줄은 몰랐는데.”
사실 영물의 생태에 대해서 알 방법이 없었기에 뇌령조의 생태도 몰랐다.
남만의 부족들은 영물과 가까이 지내기에 아는 바가 조금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들도 뇌령조만큼은 폭풍과 함께 다니니 어떻게 파악할 도리가 없는 영물이었다.
“영감님도 몰라요? 그런 것 좀 물어보러 왔었는데.”
“유감이지만 뇌령조는 의문이 많은 영물일세. 우리도 포획하기 위해 조사해 봤었지만 별 성과가 없었지. 내단과 알을 얻어 낸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였네.”
“네, 근데 너무 열심히 드시는 거 아니에요? 나눠 먹을 건 남겨 둬야 하지 않나?”
“본좌는 분명히 오라고 했건만 당사자가 빨리 안 오는 거지.”
그리고 그 순간, 그 말에 반응하듯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아버님!”
다급한 표정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연화.
그리고 그 뒤, 문 앞에서 멈춰 서서 열린 문 너머로 방 안을 바라보는 장화관이 있었다.
다급히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예를 표하려 하는 장화관.
“지존이시여! 속하가-”
그리고 그런 요리 스승을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는 연화.
“들어오시라니까요?”
어지간해서는 연화에게 져주고 넘어가는 장화관이었지만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는 듯 보였다.
“아가씨, 법도와 절차란 게 있는 법입니다! 긴급 사항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급하긴 했지만, 사안의 경중을 따지지 않을 정도로 긴급하진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본 혁련무강은 장화관을 쳐다보며 들어오라고 손짓하였다.
“들어오게. 본좌가 허하지. 어차피 열린 문인 것을.”
“예!”
혁련무강의 말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린 뒤, 열린 문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장화관.
그리고 문을 닫으려던 순간, 한 미청년이 문 앞에 다다랐다.
“어, 어어. 어?”
문이 닫히거나 열린 것도 아니고, 막 닫히기 직전의 순간이 되자 제대로 된 상황 판단이 안 되는지 당황하는 청년.
그리고 혁련무강은 또 상황이 귀찮게 될 것 같아 입을 열었다.
“그래, 들어와라.”
장화관처럼 급격히 예를 갖추려 하는 청년.
“아, 아버님. 소자 와룡-”
청년은 혁련무강의 막내아들인 와룡이었다.
“들어오라고 하였다.”
혁련무강의 말에도 개의치 않고 인사말과 서론을 시작하는 와룡.
“방금 전에 누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기에, 혹여나 실례가 되지나 않는다면-”
그리고 들어오란 말을 세 번째로 할 때가 되자, 혁련무강의 목소리에는 싸늘함이 담겨 버리고 말았다.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런 혁련무강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위기를 느낀 와룡은 과연 형제 중 가장 머리가 좋은 인재답게 뜻을 굽힐 때를 알았다.
“예.”
얌전히 들어와 문을 살포시 닫고는 내부를 빠르게 살펴보는 와룡.
‘최고숙수, 누이, 운 형. 그리고…… 누구지?’
자주 보진 않지만 그래도 가끔 봤던 사람과 자주 보는 가족,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어째선지 거리를 두는 형.
거기까진 이해할 법한 그림인데, 처음 보는 사람이 있다. 처음 보는 복장에 어깨에는 새까지 얹고서.
호기심이 머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지만, 와룡은 지금 자신이 뭔가를 할 때가 아니란 걸 알았기에 침묵했다.
그러나 그런 와룡도 갑작스럽게 돌발 행동을 하는 연화에게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버님! 혼자 이만큼이나! 치사하십니다!”
연화의 언행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으나, 방 안에 있던 인물 중 그 누구도 그 행동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뭘 그러느냐. 아직 반이나 남지 않았더냐.”
지난번에 비하면 확실히 많이 남겨 준 편이라고 생각하는 혁련무강.
“예전에 비하면 천마 영감님 기준으로 확실히 많이 남겨 준 거긴 하네요.”
영의는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연화는 전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반밖에 안 남은 것입니다! 심지어 처음 보는 요리이건만!”
“지난번엔 하나만 먹고도 제대로 만들어 냈을 터인데?”
양념 치킨 한 조각과 양념만으로도 어떻게든 치킨 유사 제품은 만들어 냈던 연화와 장화관.
하지만 연화는 그것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는 듯,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시행착오를 거친다고 잡은 닭만 해도 수라대 하나는 먹였을 거란 말입니다!”
사실, 마교는 서역과의 무역로 중간에 위치한 여건상 돈은 많이 있지만 식량은 자체적으로 수급하기가 여의치 않았기에 그리 쉽게 식재를 구하지는 못했다.
배불리 먹기야 하지만 대부분이 보존이 용이한 곡식 정도였고, 살아 있는 동물의 경우에는 중원보다 귀한 형편이었다.
물론 교주인 혁련무강이 먹겠다는데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냐마는, 사용된 닭의 양이었으면 무력대 하나에 포상을 내릴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연화가 아버지인 혁련무강에게 잔소리를 할 때, 끼어들면 안 될 것 같은 걸 직감한 영의는 슬그머니 빠져 장화관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닭을 몇십 마리나 잡았다고요? 참 많이도 썼네.”
“그마저도 귀띔해 준 정보가 아니었으면 두 배는 넘게 썼겠지. 하지만 아직도 그때의 맛에는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
장화관과 연화의 필사적인 노력과 천운으로 치킨을 어느 정도 재현하는 데에 성공했었다.
다만 그 결과가 현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망해 가는 통닭집의 치킨 같은 조악한 결과물이었을 뿐.
“나중에 한 마리 갖다 드릴 수 있는데, 혹시 영감님은 특기가-”
영의가 장화관에게 연구용 치킨 샘플을 가져다주는 겸 영업(?)을 시도하고 있을 때, 옆에서 쭈뼛대며 묻는 누군가가 있었다.
“저, 저어. 귀인은 누구신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그 주인공은 바로 와룡이었고, 처음에는 낯선 이라 뭐라 대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 영의가 혁련무강을 대하는 태도에 곧바로 존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