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21)
알림이의 설명은 간략하고 알아듣기 쉬웠다.
연금술사는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복사해 보려던 마법사들이 확립하게 된 학문으로, 마력에 관한 재능 없이도 대성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재능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 노력형 성공길이라 처음에는 인기였으나 학문의 특성상 너무 난해하고 복잡했고 그로 인해 마법사보다 더 뛰어난 두뇌를 요구하는 학문이 되었다.
그러나 학문이 어려웠던 만큼 성과가 좋아서 연금술사들은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공정을 거치거나 장인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하는 몇 가지 가공 작업 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용액을 만들거나 마법 없이도 급한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약품 등을 만든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그런 만큼 치료사에게 치료받는 것보다는 비쌌지만 밤중에 습격해 온 강도의 칼에 찔린 상처나 전장에서 입은 부상 같은 것은 치료사에게 갈 여유가 없기에 수요가 확실했다.
그리고 그런 연금술사 중의 최고봉이 바로 호엔하임.
“그러니까, 화학이랑 생물학? 그쪽 계열이란 거지?”
자세한 이론과 설명은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나마 비교할 만한 과목을 언급하는 영의.
[큰 틀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래, 쉽게 말해서 치료용 약이나 마력 쪽 특수 가공이 특기라는 거지?”
[그 외에도 다양합니다만, 사용자가 흥미를 느낄 부분은 그것들이 전부일 겁니다.]
알림이의 말에 영의는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으음. 그럼 만약 배달을 했다 치고, 받을 수 있는 것 중에 쓸 만한 건 치료약 정도인가? 물론 자연 치유력도 좋아졌지만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뇌격공으로 내부를 관조할 수 있고, 자연과의 소통으로 더욱 심화했으나 영의의 몸은 자연 치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숲의 수호자처럼 타인도 치유시킬 수준으로 모든 것과 소통하는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영감님한테 편지를 챙겨서 한번 가보자고.”
베키도 일라이저도 편지를 가져가면 홀대는 안 당할 거라고 했기에 보험을 들어 둔 뒤 움직이기로 한 영의.
아직 본격적으로 업무가 시작되는 저녁때까지는 조금 멀었기에 영의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력 주입기도 챙겨야 하고. 아, 그러고 보니 마정석도 조금 사놔야겠네.”
수연과 지연의 힘을 조금 늘려 주기 위해 마력 주입을 생각하던 영의는 문득, 둘에게 줬던 선물도 기억해 냈다.
‘그러고 보니, 그 장비들. 꽤 쓸 만했는데. 용산으로 가면 제작자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었나?’
영의는 이참에 생각났을 때 다 처리해 두자 싶어서 곧바로 휴대폰을 열어 수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주말에 지연이 데리고 집 와. 그리고 너한테 선물해 줬던 장비도 챙겨 오고. 뺏는 거 아니고 옥션에 뭐 물어보러 가져가는 거니까 들고 와. 그리고 아직도 운동장 뛰고 있어? 이쯤이면 뭔가 바뀔 때가 됐는데.]
“음. 대충 할 말은 다 한 것 같네.”
영의는 답장이나 읽음 표시도 확인하지 않고 곧바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집으로 돌아와 마력 주입기와 마정석들을 확인했다.
“흐음. 멀쩡하네. 응? 이거 마정석이 좀 줄어든 거 같은데?”
일반 마정석은 상자에 넣어 두고 까먹고 있어서 먼지가 앉아 있었으나, 뇌 속성 마정석은 누군가 건드린 듯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마치, 영의의 집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고 마정석을 탐낼 만한 누군가가.
그와 함께 살고, 뇌기를 좋아하며, 자세한 컨트롤이 힘들어 건드렸다는 흔적을 감추기 힘든…….
“흐음…… 누굴까? 응?”
휙.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뇌영을 의심하듯 바라보는 영의. 뇌영은 모른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이내 고개를 돌려 영의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덩치가 쑥쑥 커지더라니. 몰래 하나씩 집어 먹고 있었냐?”
뇌영이 쑥쑥 자라는 이유가 영물인 것 외에 하나가 더 밝혀졌다.
“삐우(맛있어서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우는 뇌영을 보며 짧은 한숨을 쉬는 영의.
“하아, 넌 임마. 내가 주인이라 다행이야. 만약 다른 사람이 키우는데 속성 마정석을 홀랑 집어 먹었다고 해봐. 너 그날로 바로 치킨 됐을걸?”
일라이저와 거래를 해서 뇌 속성 마정석을 무슨 동전 얻어 오듯 얻어 온 영의였으니 망정이지, 만약 한 부자 각성자가 취미로 키우는 새가 먹었으면 그날 밤 전기구이 통닭으로 변했을 것이다.
물론, 마정석을 먹고 살아남았을 때가 전제 조건이었지만.
그리고 자신이 치킨이 된다는 소리를 듣자 깜짝 놀라며 푸드덕거리는 뇌영.
후드득.
“휘약(치킨이요? 저를)?!”
“그래. 우리 집에야 저게 쌓여 있지만 저거 옥션 가도 매물 없어. 올라오면 그날이 경매장 불타는 날이야.”
뇌영은 그만큼 비싼 거라는 걸 몰랐던 건지, 안절부절못하다가 이내 토해 내기라도 하려는 듯 캑캑거리기 시작했다.
“휘요, 칵(뱉어 내야)……!”
그리고 먹은 지 한참은 됐을 걸 토해 내려 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약해진 영의는 뇌영을 들어 쓰다듬기 시작했다.
“어허, 쓰읍. 먹은 건 어쩔 수 없잖아. 앞으로 막 집어 먹지만 마. 알겠지?”
끄덕끄덕.
뇌영은 자신이 좋아하는 치킨의 재료가 된다고 생각하자 두려워졌는지, 부들부들 떨며 고개만 끄덕였다.
‘으후, 덩치만 컸지 아직 애라니까.’
아무리 똑똑하고 사람만 해봐야 결국은 한 달도 못 산 아기에 가까웠기에 어리숙한 부분이 조금 있었다.
“흐음. 일단 주말에는 수연이 불러서 마력 주입해 주고 월요일 전까지만 용산에 다녀오면 될 것 같고. 그럼 그동안에는…….”
일주일간의 스케줄을 생각해 보던 영의는 문득, 근래에 방문하지 않았던 사람이 떠올랐다.
“천마 영감님한테나 가볼까?”
물론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고, 무림 대회를 준비한다고 여유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영의는 일단 찾아가 볼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다 다녀왔지만 천마 영감님한테는 안 다녀왔단 말이지.’
일부러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지만, 어째선지 따돌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혁련무강에게 조금 미안해지는 영의.
“알림아, 혹시 천마 영감님은 배달 여건 안 되거나 그런 거 있어?”
[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맞네. 기간이 문제지.”
당장 자신이 찾아가더라도 개인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 마주하기 껄끄러운 때라든가 수련 중일 때 찾아가면 민폐가 될 거라 생각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영의.
그리고 그런 영의를 위해서 알림이가 편의를 봐주었다.
[달력의 형태로 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추가로, 시간 또한 사용자의 시야에 표시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시야 한구석에 시계와 달력 아이콘이 표시되자 갑자기 이렇게 급변하는 게 의문스러워진 영의.
“어? 이젠 업데이트 안 하는 거야?”
일전에는 눈에 띄지 않는 변경에도 업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잡아먹지 않았던가.
물론 지금처럼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 업데이트를 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너무 갑자기 변하지 않았나.
하지만 알림이는 그 의문에 대해서도 곧바로 대답해 주었다.
[업데이트로 인한 기능 정지 시에 사용자의 몸이 위험에 빠질 시 지난번과 같은 대처가 힘들어질 수 있으므로, 기능의 개선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하. 업데이트 중에 비상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방식을 바꾸겠다고?”
[맞습니다. 이미 중요 기능 대부분은 존재하지만, 사용자에게 필요하거나 원하는 기능은 선택적으로 사용하겠습니다.]
방금 추가한 시계 기능처럼, 어지간하면 즉석에서 갖다 쓰거나 금방 마련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시계 같은 것들? 이렇게 금방 될 거면 왜 지난번엔 바로 안 해줬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시라와 헤어져서 돌아왔을 때 곧바로 표시해 줬다면 상황을 좀 더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알림이는 그걸 알려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 그게 너답긴 하다.”
[예. 그리고, 아직 미완입니다만 주문인의 현 심리를 반영하는 기능을 도입할 예정입니다.]
또 의외의 기능에 깜짝 놀라는 영의.
“심리? 그러니까, 마음을 읽는다고?”
[예측입니다. 최근 행동과 성격을 고려해 가장 선호할 만한 것을 예측하는 것일 뿐입니다.]
“흐음, 그건 좀 마음에 드네.”
예를 들면 어느 날 독고휘가 오늘따라 짜장면이 많이 먹고 싶어진다는 심리 상태가 자신에게 표시된다는 게 아닌가.
보통을 가져다준다면 만족감을 크게 느끼진 못할 것이다. 아마 만두 하나쯤 더 먹어야 배가 부르겠지.
하지만 미리 알고 간다면 곱빼기를 배달해 줄 수도 있다.
그런 기능은 확실히 좋다고 느낀 영의는 언제쯤 사용 가능할지 궁금해졌다.
“그럼, 그건 언제 되는 거야?”
[미정입니다. 예측을 하기 위한 표본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영의는 희망을 품고 물어봤으나, 알림이의 단호한 대답에 희망이 박살났다.
“아, 그래? 흐음.”
대화 중에 더 좋은 게 나와서 그렇지, 객관적으로 보자면 질문 하나로 부가 기능을 두 개나 얻어 낸 영의.
하지만 깜짝 선물과도 같은 것을 눈앞에서 보여 줬다가 아직 안 된다고 말했을 때의 좌절감이 묘하게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냥 오늘 가야겠다. 독고휘 영감님한테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너무 최근에 다녀왔어.”
영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며 이번엔 무슨 치킨을 사 들고 가야 할까 고민했다.
“아, 뇌영아. 너도 따라와. 천마 영감님 보러 가는 거야.”
일라이저에게 갈 때는 혹여나 뇌영을 조사하겠다고 할까 싶어 안 데리고 갔고, 그다음에는 베키가 뇌영을 무서워할까 봐 집에 두고 갔다.
덕분에 영의와 함께 나가지 못해서 심술이 난 뇌영을 달래기 위해, 영의는 뇌영을 챙겨 함께 하늘을 가로질렀다.
* * *
한편, 신화 길드 빌딩.
상층에 있는 회의실에서는 진중한 분위기의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우리 길드가 맡게 된 게 저 게이트란 거지?”
“네, 맞습니다. A+등급으로 책정되긴 했는데, 변동성이 크고 지금까지 보인 적 없는 패턴이 관측됐습니다. 신형이라 정보가 없는 걸 감안하면 A++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정훈과 영석, 화연을 비롯해 길드의 간부진들이 모두 참여한 대형 회의였다.
“지난 주말에 얘기한 내용 아니었나요? 이번에 또 말해 줄 거였으면 주말에 안 불렀어도 됐잖습니까.”
화연은 매서운 눈빛으로 영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급한 긴급 상황인 줄로만 알고 뛰어갔으나, 거기 기다리고 있었던 건 영석과 정훈뿐인 간소한 회의 자리였다.
“이번엔 대부분의 인원들이 모여서 듣는 거니까. 다시 설명하는 거지. 그리고, 주말에는 미안했어.”
“아닙니다, 대신 저거 끝나면 제대로 휴가 챙겨 주셔야 해요.”
이번에는 확실히 휴가를 받아서 영의와 즐기지 못했던 데이트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화연.
“아아! 그건 당연히 챙겨 주지. 그리고 그동안은 절대로! 안 부를 테니까 걱정 마.”
“진짜요?”
화연이 재차 묻자, 영석은 헛기침을 하며 작게 말했다.
“크흐음, 국가 비상사태만 빼고.”
화연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니지, 그런 상황이면 휴가를 즐기지도 못하겠네.”
‘외국에는 저렇게 강제하는 법안은 없다는데 왜 한국은! 각성자들을 무슨 사방 천지에 널려 있는 예비군으로 아는 거야 뭐야?’
그렇게 국가에 대해 투덜거리려던 화연은 문득 이 상황을 만든 게이트 사진과 자료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무섭다…….’
‘야, 좀 춥지 않냐?’
‘말 걸지 마. 가끔 야식으로 햄버거 시켜 먹고 나면 저럴 때가 있었어.’
‘왜? 보통 먹고 나면 행복해하지 않나?’
‘몰라, 햄버거에 굴복해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만 자신을 보고서 분노했던 걸지도?’
그리고 화연을 쳐다보며 두려움에 떨기 시작하는 다른 간부들과 정훈.
그들은 영석이 화연을 말려 주기를 바라며 영석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으나 영석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얘들아. 내가 저렇게 만들어 버려서 뭐라 할 방법이 없다…….’
회의실의 프로젝터 화면에 띄워진 자료에서는 경기도 파주의 산자락에 나타난 대형 게이트가 불길한 검붉은 색으로 점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