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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16화 (116/325)

#제116화 (17)

정오.

태양이 정확히 지상을 일직선으로 내리쬐기 시작했다.

“네! 박수 부탁드립니다!”

사회자, 이온 준의 말에 장내에는 박수 소리가 가득해졌다.

짝짝짝짝-

사실, 그의 말이 없었어도 박수는 충분히 많이 나왔을 것이었다.

“크흠. 제가 마도의 길을 걷지 않아서 지식이 깊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금술과 마공학을 접목시켜 만들어 낸 마도구 아이디어는 충분히 멋졌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이온은 음유시인답게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줄 알았고, 몇몇 관계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경꾼들에게 외쳤다.

네-에!

“네! 그렇다는군요! 해설 위원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온은 무대 옆에 마련된 위원석에 앉은 한 노인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지팡이를 손에 쥔 노인은 백발과 수많은 주름으로 추측건대 상당한 고령인 듯했다.

“응? 뭐라고?”

청력이 별로 좋지 않은지, 반문하는 노인에게 웃음을 유지한 채 목소리를 키우는 이온.

“어떻게! 보십니까!”

그리고 이온이 반쯤 소리치듯 말하자, 노인은 역정을 냈다.

“아익! 왜 소리를 지르나! 아직 귀 안 먹었어! 잠깐 딴생각을 한 것뿐이야!”

“아, 죄송합니다.”

그러나 노인의 말과는 다르게, 확실히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긴 했다.

“방금은 뭐라고 말했나?”

이온은 그냥 포기하고 차례를 빠르게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크흠, 방금의 발표에 대한 겁니다만. 어떻게 보셨습니까?”

“눈으로 봤지.”

“그게 아니라, 마법적 견해를 여쭙는 겁니다. 그래도 자문 위원이시니…….”

노인은 이온의 말을 듣고는, 가벼워 보이던 방금 전과는 달리 눈을 빛내며 고개를 저었다.

“견해? 그냥, 난잡했지. 재미는 있어 보였는데 참신함이 없어.”

정말 자기 마음 가는 대로 말하는 듯한 노인이었으나 그 누구도 노인을 제지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다음 해설 위원분께 여쭤보겠습니다.”

“네, 우선은 저 아이디어의 착안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그렇게 발표회가 한창일 무렵, 마도학회가 머물고 있는 여관의 주방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쓰읍, 분명히 다 확인했는데…….”

“뭔가, 뭔가 더 검토해 볼 건 없나?”

이젠 더 이상 정리할 자료마저 없자 의자에 앉아 불안한 듯 연신 다리를 떠는 이가 있는가 하면, 요리에 관심이 빼앗긴 이들도 있었다.

“후우, 냄새 좋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신 마도학회가 이럴 때에 도움이 될 줄은.”

“그쪽 녀석들은 이런 걸 매일 먹는단 건가?”

중요한 발표를 앞뒀다고 보기에는 조금 여유로워 보이는 그 광경에 미소 짓는 로크와 일라이저.

불안해하는 이들이 조금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음식에 신경을 쏟는다는 건 그만큼 불안하진 않다는 뜻 아닌가.

“조금 효과가 있긴 했나 보군.”

“그렇습니다, 선배님.”

“그보다, 확실히 좋은 재료를 써서 맛있게 만들고 있는 것 같군그래. 맛있는 냄새가 이만큼이나 나다니.”

미식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경험이 많은 둘에게도 수프의 냄새가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여관의 주방에서는 이번 행사의 식사를 담당하는 요리사에게서 레시피를 건네받은 여관의 요리사가 레시피대로 수프를 끓이고 있었다.

“으음, 보자. 마지막으로 버섯을 투하하고 그대로 끓여 낼 것. 그럼 이 향신료는 언제 쓰는 거지?”

수프의 핵심 재료라고 들은 향신료를 나머지 재료들과 함께 건네받았었다.

식재료들은 하나같이 고급지고 싱싱한 것들이었고, 거기에 동봉된 향신료들도 그가 구경도 못 해본 것들이 많이 있었다.

“아, 여기 있네. 간을 본 후 향과 풍미를 더하기 위해 살짝? 보통은 향신료를 다 넣고 간을 보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내 요리사는 레시피대로 수프를 조리하기로 했다.

레시피를 준 것은 실력도 있고 유명한 요리사였고, 자신은 크기가 제법 있긴 해도 한낱 여관의 요리사였으니까.

그리고 레시피대로 이행하자, 향신료를 많이 첨가하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와, 정말이네. 조금만 넣어도 이렇게 변화가 확 오다니.”

레시피가 괜히 레시피가 아니란 생각을 하며, 요리사는 수프를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자, 다들 맛있게 드십시오!”

빵이 담긴 그릇과 함께 배달된 수프들.

빵과 수프라는 단출한 식사였으나 긴장한 이들에게는 진수성찬보다 이렇게 간소한 편이 더 좋았다.

“흐음, 향이 확실히 좋군.”

“이 수프 한 그릇에 들어간 돈만 해도 일반 시민의 하루치 식비보다 많을 겁니다.”

“설마, 그만큼 쓰겠나?”

“그러고도 남을 인물들이 있으니까.”

“그건 그렇지.”

어디 가서 굶고 다니는 것도 아닌 마도학회의 회원들이었건만, 고급 식사를 앞에 두니 마음이 들뜬 듯 대화가 많아졌다.

“자! 어서 식사들 하지. 식사를 할 시간과 준비 시간이 좀 남았다고는 해도 다음 차례가 우리이니.”

일라이저의 말에 모두가 수프를 한 숟가락 뜨려던 그 순간, 여관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누구지?”

갑작스러운 방문객의 존재에, 모두가 들어 올리던 손을 멈췄다.

어지간하면 무시할 사람도 있었겠지만, 어제 임팩트가 과할 정도로 넘치던 방문객이 둘이나 있었으니 몸이 저절로 반응해 버렸다.

“어제처럼 베키 아냐?”

“아니, 베키였으면 바로 열고 오거나 안 오거나 둘 중 하나겠지.”

“설마 오늘도 문 부숴 먹으려나?”

그렇게 모두가 문을 쳐다보고 있을 때, 용감한 로버가 곧바로 다가가 냉큼 문을 열었다.

“누구냐!”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 있던 것은 사람이 아닌 무언가 쌓여 있는 물체였다.

“접니다.”

그리고 그 물체들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은 어제의 방문객 중 하나인 영의였다.

조금 껄끄러운 베키와 달리, 영의는 외부인이고 낯설긴 해도 껄끄럽지는 않았기에 마도학회의 인원들도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저, 좀 들어가도 될까요? 앞이 좀 안 보이는데.”

갑작스럽게 영의가 찾아왔음에도 일라이저는 두 팔 벌려 그를 환영했다.

“아아, 들어오게. 그보다 내가 어제 말한 걸 이행하러 온 건가? 떠날 때에 말을 해서 저녁쯤에 올 거라고만 생각했지 뭔가.”

일라이저는 영의가 저녁쯤에 찾아올 거라 생각하고 한 말이었지만 점심, 그것도 식사를 하기 직전에 찾아올 줄은 몰랐다.

“아뇨. 오니까 정오였, 그게 아니라. 어어, 그러니까. 그냥 빨리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빨리 왔습니다.”

사실 영의는 알림이가 인도하는 대로만 따랐고, 이스데의 상공으로 와보니 정오 때였던 것이다.

‘분명히, 일찍 오려는 마음은 있었고 피자집이 문 열자마자 곧바로 사서 왔다. 아무리 늦어도 오전 시간대였을 텐데?’

지금껏 배달을 하며 시간대가 큰 차이가 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았지만, 느닷없이 해의 방향이 하늘 꼭대기로 바뀐다면 확실히 체감이 된다.

‘아니지, 위치상으로 다르면 그럴 수 있는 거겠지?’

머릿속으로 시차를 생각한 영의는 피자 박스를 탁자 위에 살포시 올려 두었다.

“후우. 무게는 어떻게 되는데 부피는 매번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영의는 나지막하게 혼잣말로 그렇게 말했으나, 일라이저는 영의가 한 말을 듣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여기요 영감님.”

“영감님?”

일라이저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고, 영의는 급히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평소에 그 호칭이 입에 붙어서 그만.”

“아닐세. 그냥 그렇게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부르게. 모두들, 식사를 다시 재개하지.”

일라이저는 영의에게 편한 호칭을 허락하며 웃는 동시에 텔레파시 마법을 사용해 영의에게 염화를 보냈다.

-예전엔 몰랐었지만 자네, 정보가 없더군. 자네가 타고 다니는 것도. 베키가 만들었을 거라고만 생각했지만 베키는 자기 작품에 그런 집착을 안 보여.

영의는 마법으로 염화를 하거나 무림의 전음 같은 기술을 배우지 못했기에, 그저 고개만을 미미하게 끄덕였다.

마도학회의 회원들은 긴장감도 어느 정도 풀렸고, 수프의 향 때문에 허기가 지다가 갑자기 영의의 피자가 도착하자 더욱 허기가 진 듯 다들 피자를 먹는 데에 열중했다.

덕분에 영의와 일라이저의 대화는 로크를 제외한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있네만, 딱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네. 대가 없는 호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자네는 대가가 확실하잖나? 그리고 자네가 필요로 할 게 뭔지도 이미 파악했지.

영의는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필요 물품이 뭘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알림아, 혹시 보상이 뭐가 될지 알아?’

[기본적인 보상의 경우 예측이 됩니다만, 주문인의 심경 변화에 따른 보상 변화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만 사용자의 언행과 그때 나온 주문인의 반응으로 보아, 공간 확장 마법이 걸린 가방 등이 예상됩니다.]

알림이의 대답을 들은 영의는 공간 확장 가방이란 말에 눈이 커졌다.

‘공간 확장? 그, 게임이나 그런 데 나오는 인벤토리 같은 거?’

[같진 않습니다만, 개념적으로는 유사합니다.]

‘아무튼, 그런 거 맞잖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고, 보상이 큰 체감이 되던 무공과는 달리 일라이저에게서는 조금 심심한 보상밖에 받지 못했었다.

물론 속성 마석과 금화도 상당히 큰 보상이었고, 마법 문신도 매우 유용한 것이었지만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쓰는 무공에 비하면 별로 체감이 안 됐을 것이다.

‘아, 그래. 언제 한번 지연이나 수연이한테 마력 주입도 해줘야 하는데 뇌영이 부화시킬 때 이후로 하루에 한 번씩 자기 전에 쓸 때 말고는 누구한테 쓴 적이 없네.’

그 둘은 아카데미에 있으니 어쩔 방법이 없겠지만, 주말에 집에 오라고 연락해 두면 될 것이다.

그것들과는 달리, 늘 사용하진 못해도 갖고 다니면서 유용한 물품이라면 충분히 좋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게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려던 무렵, 문득 그걸 들고 다닐 때의 자신을 상상한 영의.

‘잠깐, 알림아. 여기는 뭐 현대식 배낭이나 전대 같은 거 없겠지?’

[없습니다. 기계와 마법, 마력과 관련된 학문은 발달해 있습니다만 함성섬유에 대해서는 일부 연금술사를 제외하고는 크게 발달해 있지 않습니다.]

결국 중세처럼 가죽 주머니나 천 주머니가 끝이라는 뜻이다.

‘으음, 어쩔 수 없나? 가방을 넣을 가방이라도 마련해야 하나?’

예를 들어, 이곳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가죽 주머니는 현대에서 갖고 다니기에 조금 눈에 띄는 물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주머니를 넣어 둘 크로스백이라도 사서 메고 다니면 적당히 눈에 안 띄게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된다.

‘으음, 아니지. 물건을 보고 결정해도 되는 거잖아. 권총 홀스터 같은 느낌이면 가죽 제품이라고 하면서 그냥 차고 다녀도 될 거고.’

영의는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는, 일라이저를 쳐다보았다.

-흠, 고민은 끝냈나? 나의 생각만으로 결론을 내릴 순 없으니, 나중에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긴 해야겠네.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우지. 오래 걸리진 않을 게야.

일라이저는 이내 모두를 쳐다보며 외쳤다.

“자, 곧 발표 시작이다! 다들 손을 닦고, 자료를 챙겨라! 남은 식사는 다녀와서 하도록 하지.”

본래라면 수프만 간단히 먹을 계획이었기에 시간을 적당히 남겨 두고 식사를 하려던 마도학회.

하지만 피자가 올 줄은 몰랐기에 시간 내에 전부 먹지는 못했다.

“예!!”

우렁찬 대답과는 달리 마도학회의 회원들은 아쉽다는 눈빛으로 피자를 보다 손을 닦거나, 급하게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부지런히 씹었다.

“으음, 그보다 왜 다들 수프는 안 먹었죠? 먹을 거 아니에요?”

영의가 손도 대지 않은 수프들을 보며 묻자, 다들 고개를 저었다.

“아, 원래라면 먹었겠지. 자네가 올 줄 몰랐으니까. 먹어도 되네. 그래 보여도 이름 높은 요리사의 레시피로 만든 수프니까 말이야.”

일라이저가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옮기자, 그를 따라나서는 마도학회.

영의는 수프 그릇들을 내려다보며 고민에 잠겼다.

“아, 냄새는 진짜 좋은데…… 먹어도 되려나?”

처음 보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에 대한 식욕과 타인의 식사를 먹는 게 옳은가 하는 양심의 사이에서 영의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 마도사 영감님 것만 먹자. 어차피 피자만 먹을 양반이니까.”

수프의 향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기에, 영의는 양심이 용납하는 범위에서 수프를 먹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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