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16)
밤이 깊어지고, 날짜가 바뀌기 직전에야 집으로 돌아온 영의.
“으어어…….”
바이크를 주차한 그는 피곤한 듯, 의미 불명의 소리를 내뱉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휘익(오셨어요).”
건물의 안에 들어오자 복도의 창문가에서 작게 울음소리를 내는 뇌영.
영의가 적당히 인사를 받아 주기 위해 뇌영을 돌아보자, 불 꺼진 건물 안에서 뇌영의 눈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어어, 그래. 그보다 너 야행성이었어?”
“휘요(뭐가요)?”
뇌영은 영의의 질문에 고개를 휙 돌리며 의문을 표했다.
“아니, 눈에서 빛이 나네.”
“휘잇, 삐약(눈이 뭐요)?!”
영의의 말에 깜짝 놀란 뇌영은 창문에서 뛰어내려 다급히 영의를 뒤따라 걸어오기 시작했다.
삐리릭-
잠금장치가 풀리고, 집의 문이 열리자 다급히 달려가 거울 앞에 서는 뇌영.
어슴푸레한 빛만이 존재하는 어두운 실내에서, 뇌영의 눈은 은은한 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휘로록(이게 뭐야)?!”
퍼덕퍼덕.
당황한 듯 날개를 퍼덕이며 안절부절못하는 뇌영.
‘하하, 그러고 보니 밤에 거울을 본 적이 없었겠지.’
지금껏 밤눈이 어둡다는 생각은 못 했던 뇌영이었지만, 자신이 야행성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던 것 같았다.
아니, 이제 생각해 보니 뇌령조가 원래 야행성인지 주행성인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달칵.
영의는 뇌영이 당황해하자 집의 불을 켜고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려 했다.
“잠깐, 생각 좀 해보자. 얘는 분명 낮에 더 잘 돌아다녔는데, 눈은 야행성처럼 빛나고. 생긴 건 맹금류인데 잡식성이고. 아, 원래 잡식성인가? 그건 잘 모르겠네.”
파닥파닥.
하지만 생각을 이어 가려던 그때, 뇌영이 날개를 퍼덕이며 집 안을 어수선하게 만들기 시작하자 영의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허. 가만히 있어. 집 안에서는 비행 금지야.”
조류에게 비행을 금지하는 건 조금 가혹행위일 수도 있었지만 영의의 집이 원룸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했다.
사실 어릴 때야 별문제가 없었다. 덩치도 작았고 날렵하니 잘 날아다녔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커간 뇌영은 이제 어느새 어지간한 대형 조류처럼 사람 몸통만 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
물론 아직 집 안에서 날개를 펴고 날기 시작했을 때 모든 물건을 부딪쳐서 떨어트리는 수준까진 가지 않았지만 머지않은 것 같았다.
“어후, 얘는 언제쯤 자기 몸을 조절하려나?”
영물들이 자기 몸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무협지를 통해 배운(?) 영의는 뇌영이 덩치를 좀 줄여 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휘약, 휙 휘익(나는, 큰 게 더 좋은데요)!”
뇌영이 말하는 어조만 들어 보면 할 수 있지만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중에 자기가 불편하면 알아서 줄이겠지 뭐. 내가 손해인가? 자기가 손해지.’
“그래, 날아다니는 애 걸어 다니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전, 샤워를 하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올빼미처럼 고개도 막 돌리고, 밤에도 낮에도 움직이는데 밤에 눈이 빛나고 뇌기를 먹으면서 음식도 먹고……. 뭐 이런 새가 다 있어?’
무림에서 괜히 유명한 영물 중 하나가 아닌 듯, 이런저런 특징은 다 갖고 있는 뇌영.
영의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뇌영은 이미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있었네.”
어째서인지 잘 때는 굳이 누워서 수면을 취하는 뇌영이었다.
‘새끼일 때 버릇을 잘못 들인 건가?’
올빼미의 경우 비행이 가능함에도 새끼일 때는 머리가 무거워 누워서 수면을 취하는 개체가 있고, 야행성 조류의 일종임에도 주행성인 흰 올빼미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영의는 머리를 말리면서 자신이 잘못 키웠다고만 생각했고, 묘한 죄책감을 안으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뇌영에게 어제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는 영의.
“아하. 그래서 형이 애들을 죄다 운동장을 돌렸다 이 말이지?”
끄덕끄덕.
함께 빵으로 아침 끼니를 때우며 대화를 나누는 영의와 뇌영.
“참, 형답네. 그리고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 뭐라 반박하고 싶어도 할 말 없게 만드는 수련 방식이.”
영의는 빵을 씹으며 과거의 추억을 회상했다.
-힘드냐?
-네!
-그렇겠지. 힘들지 않으려면 체력을 더 키워야 한다! 그럼 이만큼 뛰어도 안 지치지. 더 뛰어!
-네?
-뛰어!!
-네에!
물론 어릴 때였기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뛰었고, 나중에 체력이 발달하긴 했다.
-이제 이만큼 뛰어도 안 지쳐요!
-그래, 잘했다. 내 말이 맞지?
어린 5살 영의는 정권의 수련이 조금 힘들긴 했으나, 어릴 적 특유의 무한한 체력으로 어떻게든 따라는 갔었다.
뭐, 나름 보람도 있고 인정받자 기쁜 마음에 조금 더 해도 되겠다는 생각도 했었었다.
-네!
해맑게 웃고 있던 영의의 등에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앉기 전까지만.
-그럼 이제 이 가방을 메고 달린다.
-네?
-그 가방은 20kg짜리란다. 물론 가방 무게 빼고. 자, 뛰자!
-네?
-뛰어!
-네, 네에!
결국 그 가방의 무게는 30kg까지 늘어났고, 나중에 20kg으로 바꿔 동생인 수연에게 달아 주기도 했었다.
“……그런, 추억이 있었지.”
뭐랄까, 영웅이 했던 단련 방식을 평가할 때랑은 상당히 다른 듯한 영의의 추억(?)에 의문을 가지는 뇌영.
“삐잇. 휘익(그거, 아까 말한 거랑 같은 거 맞아요)?”
“크게 보면 틀리진 않아.”
“??”
“대들 수 없는 상대가 시키면 밑의 사람은 어쩔 방법이 없거든. 형은 그런 사람이야. 막무가내 같아 보여도 자세히 보면 은근히 빠져나갈 구석이 있어.”
즉, 영웅은 그래 보여도 대책이 다 있고 학생들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벗어날 수 없을 거란 것이었다.
“자, 그럼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해볼까?”
알림이에게 물어볼 말이 있고, 궁금한 것도 많았지만 아직은 물어도 가르쳐 주지 않을 것 같았기에 일단 성실히 하라는 대로 해보기로 한 영의.
‘그리고, 궁금하단 말이지. 베키는 과연 화해를 할까? 아니면, 계속 대립할까?’
묘하게 드라마를 직접 보는 듯한 감상도 있었기에 영의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주문을 이행하기로 했다.
이스데의 중앙 광장.
성과 발표회의 당일이니만큼, 완공된 무대 주변을 둘러싼 인파가 상당했다.
웅성이는 사람들 사이로 들려오는 노점상들의 호객 행위 소리와 축제로만 아는 아이들의 신난 웃음소리.
그리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들뜬 분위기에 웃음이 자연스레 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무대 주변의 시민들을 통제하기 시작하더니, 분위기가 조금씩 엄숙해지기 시작했다.
발표회가 시작되려는 듯 분주하던 인원들이 정리를 하고는 몇몇 초대받은 귀빈들이 자리를 찾아 착석하기 시작했다.
“음.”
“오랜만이군요.”
귀빈들은 서로 안면이 있는 듯,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하거나 상당히 친한 경우에는 다가와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런, 오랜만이군요 이글스 대표. 하노아 상단이 마공학 제품으로 제법 잘나간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 아래에서 나간 뒤로 헤매더니 잘된 것을 보아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허허, 성구느 킴 자작님이야말로, 마도학회 후원으로 도움을 많이 받으셨다죠? 참으로 많은…… 성의를 상호 간에 보였나 봅니다.”
가끔은, 친한 게 아니라 조금 악연이 있는 경우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귀빈들이 착석하고, 관계자들까지 모두 제자리를 찾아 앉자 사회자로 추정되는 한 사내가 무대 위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왔다.
“크흠!”
사내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고, 확성 마법에 의해 그 소리가 중앙 광장에 울려 퍼졌다.
“자! 친애하는 마도학 종사자 및 귀빈 여러분! 마도학 성과 발표회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사내의 말에, 장내의 인원들이 작게 박수 쳤다.
“사회는 바로 저, 마법 협회 명예 회원이자 최고의 음유시인상 3회 수상에 빛나는 이온 준이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법 유명한 인물인지, 객석에서 큰 박수나 환호 소리가 조금 들려왔지만 사내는 살짝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았다.
“자! 제8회! 마도학 성과 발표회를 시자아아아아악-하겠습니다!”
이온의 말에, 무대 뒤에서 섬광이 번쩍거리며 폭죽이 터져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귀빈석에서는 그것을 보며 인상을 쓰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흡족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인물이 있었고, 그런 반응은 거의 반반으로 갈라졌다.
‘제길, 신성한 발표회를 무슨 놀음판처럼 만들어 놨잖아! 신 마도학회 녀석들…….’
‘음, 역시 돈이 되는군. 이런저런 협찬을 받기를 잘했어.’
서로 째려보며 기 싸움을 하는 다른 파벌의 인물들.
‘오오, 멋지군. 다음 발명품에는 저런 장치를 꼭 넣어 달라고 주문해야겠군!’
그리고, 단순히 멋지다는 생각을 하는 마공학 파벌의 인물도 있었다.
객석에서는 그런 반응이 나오고 있었으나, 실제 발표회에 참여해야 하는 이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멈추지 않았다.
“뭐지? 원래 저런 게 계획되어 있었나?”
전해 들은 것과는 다르자 당황하는 마도학회 측의 몇몇 인물들.
“이온 준이라고? 마법 협회 명예 회원? 마법의 마 자도 모르는 인물 아냐?”
마법에 대해 초심자에 가까운 인물을 명예 회원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에 불만을 표하는 신 마도학회의 인물들.
정통을 지켜 온 마도학회 쪽과 뭐든 받아들이는 신 마도학회의 반응이 서로 바뀐 것 같아 보여도 신 마도학회 측이 이온을 더 싫어하는 듯 보였다.
그들은 스스로도 정통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격지심을 품은 이들이었고, 마도학회 측은 이온을 어차피 사회자라고만 생각했기에 큰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기실 겸 숙소인 여관에 돌아온 마도학회의 인원들.
어떤 이유에선지 발표 순서가 바뀌어 오후에 발표하게 될 그들은 자료를 손볼 시간이 더 남아 있었고 뭐라도 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으음, 참 긴장되네요. 저는 발표회가 처음이라.”
“사실 우리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할 줄은 몰랐지. 대부분 관심 있는 이들만 왔는데, 어째선지 이번에는 구경꾼들도 엄청 몰려왔고.”
“마공학이 제대로 참여해서 그럴 겁니다. 일반인들은 마법에 대해서는 조금 거리감을 느끼지만, 마공학으로 만든 도구에 대해서는 제법 친숙하니까요.”
자료를 정리하고 검토하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마도학회 인원들.
그들은 여유롭다는 듯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떨리는 손과 전혀 진행되지 않는 정리 과정에서는 긴장감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후우, 큰 무대는 처음이어선지 아이들이 제법 긴장하고 있군요. 선배님.”
로크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쉬었으나 그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인지 머리에 연신 땀이 맺혀 반짝거리고 있었다.
“흐음, 그렇군. 사실 마법 협회에서 식사를 제공해 준다고 하더군. 실력 있는 요리사를 고용해 맡긴다고 하던데.”
고개를 끄덕이며 협회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해주는 일라이저.
“과연 선배님입니다! 그런 정보를 벌써 전해 듣다니. 그보다 요리사 말입니까? 예전엔 그런 것 없었잖습니까?”
감탄하던 로크는 의아해하며 물었으나 일라이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신 마도학회 녀석들, 돈은 많으니까 자랑질을 하려는 거겠지. 자기들만 먹으면 눈총을 살까 봐 전부에게 제공하기로 한 거고.”
로크는 일라이저의 말에 동의하며 제자들을 쳐다보았다.
“그렇군요. 저 녀석들, 긴장했을 텐데 뭐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긴 할까 걱정입니다.”
“그걸 감안한 건지, 서방의 향신료를 사용한 수프를 제공하겠다고 하더군. 허기를 느끼면 빵과 함께 먹으라면서.”
“그거, 뭔가 모욕적인 것 같지 않습니까? 하늘 같은 선배님께 고작 수프라니? 신 마도학회 녀석들……!”
일라이저는 늘 보던 로크의 과잉 반응을 무시하며 말했다.
“배가 부른 것보다 적당히 속을 달래는 게 더 좋은 법이야. 마법 협회의 원로들이 그것도 모르겠나? 아니, 어쩌면 늙은이들은 씹는 게 힘드니 수프가 제일 좋은 걸지도 모르겠군. 하하하.”
평소에도 일라이저의 말이나 농담에 큰 반응을 보였던 로크였으나, 이번만은 확실히 웃음이 나오는 듯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것도 그렇겠군요.”
“자, 그럼 제자들의 긴장이나 풀어 주러 가지. 처음 참여하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말이네.”
“예,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