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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10화 (110/325)

#제110화 (11)

베키와 발레리는 눈앞에서 본 충격적인 광경에 할 말을 잃고 잠시 굳어 있었으나, 이내 정신을 차렸다.

“바, 방금 뭐였지?”

누워 있던 남자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몸을 뒤틀며 밧줄을 풀고서는 그대로 나갔다.

“저 사람도, 광대 같은 게 아니었을까?”

“아니, 사람의 몸이 저렇게 막 움직일 리가 없잖아! 내가 봤던 광대들은 그나마 이해가 가는 움직임을 했다고!”

관절의 고통은 둘째 치더라도 그렇게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드는, 따라 해보려고 해도 엄두도 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저 아저씨 맨몸으로 그냥 나갔어!”

발렌타인 갱의 두목 잭 발렌타인은 기사 출신의 강자다.

본인 주장으로는 시골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기 위해 기사단을 그만뒀다고 한다.

하지만 소문에 따르면 마을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기사단에서 잘리고, 강도나 산적 등을 전전하다 동문이 시장 자리에 앉은 헤이로크에 정착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잭의 행실을 생각해 보면 그게 더 그럴듯했다.

그리고 그런 소문을 퍼트리는 인물이 있다면 끌려가서 발렌타인 갱에게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을 보아 그 소문은 사실일 것이다.

잭 발렌타인 외에도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몇몇 전과자들이 갱의 간부직을 맡고 있었고, 이름난 기사나 마법사가 아닌 이상 그들을 상대로 이길 순 없을 것이다.

“그래, 저런 이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여기 잡혀 올 정도면 못 이기겠지. 그런데 그거 알아? 우린 아직 묶여 있다는 거.”

베키가 발레리에게 지금 그들의 상황을 비꼬는 듯한 말을 했고, 거기에 발레리가 뭐라 말하려 한 순간.

바깥에서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악!”

콰앙!

챙그랑!

비명 소리가 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방금 전 남자가 나갔던 문에서 큰 충격과 함께 문이 부서지며 무언가가 날아 들어왔다. 그리고 그 여파에 문가에 있던 램프가 넘어져 깨졌다.

“뭐야?!”

“이, 이거. 발렌타인 똘마니 아냐?”

문밖에서 날아 들어온 것은 방금 전 나간 남자가 아닌, 남자를 여기 던져 둘 때 램프를 두고 간 발렌타인 갱의 졸개였다.

“아까 그 아저씨가 이렇게 만든 걸까?”

“그러면 빅터가 갑자기 정신 차리고 우릴 구하러 와서 이랬겠냐?”

그리고 그때, 램프가 깨지며 바닥에 엎질러진 기름이 부서진 문에 닿아 불이 옮겨붙기 시작했다.

“어어? 부, 불이야!”

“진정해, 그렇게 금방 큰불이 나진 않는다고. 그리고 저걸 잘만 이용하면 우리 밧줄을 태울 수 있지 않을까?”

베키가 화상을 입을 각오를 하며 불이 붙은 문을 쳐다보고 있었으나, 발레리는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뭐야, 어디 가?”

“저기 저 녀석, 몸에 칼 박혀 있는 거 보여?”

발레리의 말에 베키가 시선을 돌리자, 어쩌다 저렇게 된 건지 손잡이의 중간까지 가슴팍에 박혀 있는 단검이 보였다.

“뭐야, 저거?”

“아까 나간 아저씨가 엄청 힘이 센 사람이거나, 이 똘마니가 가슴에 뼈가 없거나 한 거겠지.”

저렇게 깊숙하게 박혔다면 빼는 것도 상당히 큰 힘을 요구하리라.

“뽑을 수, 있을까?”

“해봐야지.”

잠시 뒤, 불길이 그들에게 닿기 전에 겨우 단검으로 밧줄을 끊어 낸 베키와 발레리는 묶여 있던 팔다리를 주무르며 빠져나왔다.

단검 한 자루를 꽉 쥐고 싸움을 각오한 발레리. 베키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통을 호소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오자마자 본 것은, 참혹한 현장이었다.

반으로 부서져 동강난 테이블, 녹슬고 이가 나갔지만 사람을 베는 데에는 충분한 검.

뒷골목에서 필수품인 단검과 나무 몽둥이까지.

싸움판이 벌어졌다면 있을 법한 물건들이었지만, 그것들이 전부 사람의 몸뚱이에 박혀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게, 대체…….”

사람의 몸뚱이에 테이블을 그대로 메다꽂은 듯한 참상을 보자 할 말을 잃은 베키와 발레리.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죽은 이들은 마치 강도라도 당한 건지, 주머니와 옷이 뒤집어져 있었다.

다만 강도 사건의 현장과는 다르게, 금품이나 소지품 같은 것들이 바닥에 그대로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뭔가를, 찾고 있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아까 나가기 전에 뭔가 없다는 말을 했던 것 같기도?”

“아무튼, 잘됐다. 놈들이 혼란스러울 테니까 바로 빠져나가면 될 거야.”

방금 전 갇혀 있다 나간 남자의 정체에 대해 급격한 궁금증이 밀려왔지만, 이렇게 잔인한 손속을 보니 알아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상납금을 내기 위해 몇 번 와봤기에 발렌타인 갱의 본부 내부 지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이곳은 갈림길이 없는 외길임에도 눈에 익지 않았고, 창문이 없었다.

“여기, 지하실인가?”

하지만 그 말에 맞다고 대답해 줄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었기에 해답을 얻을 순 없었다.

그녀들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펼쳐진 처참한 광경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재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모퉁이를 돌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올라오자 눈에 익은 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왔고 계단을 모두 올라 더 나가려던 순간, 그녀들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여라!”

이 도시의 무법자이자, 뒷골목의 지배자 잭 발렌타인.

늘 거들먹거리며 손을 까닥이며 지시만 내리던 그가, 필사적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 조심스레 고개만 내밀어 상황을 살펴보자, 거기엔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잭을 잡고 있는 남자와 그를 둘러싸듯 원을 그린 형상으로 바닥에 쓰러진 채 꿈틀대는 잭의 심복들.

잭의 몸과 그의 손에 들린 검에서는, 어렴풋이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기사들의 마력 강화임이 틀림없었다.

“컥, 커흑.”

그러나, 그런 잭의 목을 한 손으로 잡고 들어 올리고 있는 남자는 그러한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에 맨몸으로 모든 이들을 제압한 것 같았다.

“어디 있지?”

남자는 아무런 감정이 묻어 나오지 않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뭐가?”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

“모, 몰라! 길거리 노숙자 소지품 따위! 내가 어떻게 알아? 크억.”

“그럼 죽어라.”

남자는 잭이 쓸 만한 답변을 내놓지 않자 이용 가치가 없어졌다는 듯이 말했다.

“자, 잠깐! 살-”

뚜둑.

헤이로크를 좌지우지하던 발렌타인 갱의 두목, 잭 발렌타인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털썩.

잭의 시체를 마치 손에 묻은 흙을 털듯 팔을 적당히 휘저어 바닥에 버리는 남자.

남자는 이내 잭의 몸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베키와 발레리는 계단을 조금 내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닥이기 시작했다.

“어쩌지?”

“뭘 어째?”

“여기서 나가야 하는데 저 남자가 길을 막고 있잖아.”

뒷문으로 가는 길도 존재했으나 지금으로선 정문이 더 가까웠고, 당장 계단을 올라가면 곧바로 남자를 마주치는 상황이었다.

“그, 그냥 지나가면 괜찮지 않을까?”

“너 아까 못 봤어? 사람을 벌레 죽이듯이 죽였잖아! 그런 인간이 왜 저런 거지꼴을 하겠어? 흉악한 범죄자일 거라고!”

그렇게 대책을 세우려던 때, 남자가 잭과 그 부하들의 몸을 전부 뒤졌는지 어디론가 이동하는 발소리가 났다.

발소리가 들려오자 베키와 발레리는 숨까지 참으며 남자가 멀리 가기를 기다렸다.

“가, 갔나?”

발소리가 멀어지고 들리지 않게 되자, 참았던 숨을 내쉬는 둘.

“그보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인 걸까?”

“알 게 뭐야, 빨리 나가자. 비상금 챙겨서 도시를 뜨는 거야.”

발레리의 말에 베키는 의문을 표했다.

여기서 떠나야 할 원인이 사라졌는데, 굳이 왜?

“왜? 발렌타인 녀석들, 다 죽었잖아.”

“그러니까 더더욱 도망가야지! 도시가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겠어? 아마 시장 놈, 잭이 죽은 걸 화풀이하겠다고 뒷골목을 싹 쓸어버릴걸.”

시민들은 몰라도, 잭과 친구 관계를 유지할 정도인 시장은 틀림없이 화풀이로라도 그런 짓을 하고도 남았다.

“젠장, 그러고 보니 시장이 있었지.”

“그래, 그러니까 여기서 얼른 나가야지.”

베키는 발레리와 함께 나가려다, 문득 시체 중에 빅터처럼 보이는 이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 빅터는?”

왜 갑자기 이제 와서 배신자의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빅터가 뭐?”

“아니, 지금까지 오면서 빅터는 못 봤잖아. 그 녀석은 손을 봐줘야지.”

발레리는 베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겁쟁이에 배신자 녀석은 손을 봐줘야지.”

“아마 그 녀석 성격이라면 어디 숨어 있다가 기회를 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올 거야. 아니면 잭이 당할 거라는 걸 눈치채고 도둑놈처럼 금고를 털고 도망가든가.”

베키와 발레리는 의문의 남자에 대한 두려움 이전에, 배신자 빅터에 대한 분노가 앞섰다.

죽음이 가까운 뒷골목 생활을 하며 쌓인 두터운 신뢰를 배신했기에, 발렌타인 갱들이 박살 난 지금 복수가 가능해질 것 같자 행동에 나서는 둘.

베키와 발레리는 잭의 심복들이 쓰던 질 좋은 단검을 하나씩 들고 잭의 집무실이 있는 2층으로 향했다.

“잠깐, 아까 그 남자가 2층으로 갔으면 어떡하지?”

“죽일 거면 아까 갇혀 있을 때 죽였겠지. 아마 뭘 찾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빅터는 아닐 거 아냐.”

복수를 결심하자 훨씬 과감하고 단호해진 발레리의 모습은 평소의 그녀와 너무나 달랐다.

“좋아. 가자.”

잭의 집무실 쪽으로 가자, 안에서 무거운 무언가를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쿵!

그리고 이어지는 겁먹은 듯한 남자아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 이게 다예요. 진짜예요!

빅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끄덕이는 베키.

“안에 있나 봐.”

“들어가자.”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에는 작은 봇짐을 손에 든 남자와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방 안, 잭의 것으로 보이는 책상 위에는 쇠로 된 금고가 찢겨 나가 금화와 보석들이 흘러나와 있었다.

“빅터! 너 이 자식!”

눈앞에서 자신을 때렸던 배신자 빅터의 얼굴을 보자 곧바로 분노해 달려드는 베키.

하지만 의문의 남자가 베키를 잡아채 옆으로 던졌다.

쿵!

“베키?!”

발레리는 남자에게 덤벼들려고 했지만, 아까 본 광경 탓에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을 직접적으로 적대하진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참상을 만들어 낸 이에게 덤비는 건 두려웠기 때문이다.

베키를 날려 버렸음에도 신경 쓰지 않은 남자는 말없이 봇짐의 안을 뒤적이더니, 빅터를 노려보았다.

“수첩이 없군.”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이 수첩을 찾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듯, 수첩을 언급하는 남자.

“수, 수첩이요? 그건 모릅니다!”

빅터는 없는 것을 달라는 상황을 맞이한 듯,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거짓말이군. 내놔라.”

하지만 남자는 그런 빅터의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빅터를 집어 들어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으윽…… 큭.”

이내, 빅터의 뒷주머니에서 낡은 갈색 수첩을 찾아내는 남자.

털썩.

“아-읍!”

남자는 수첩을 찾아내자 빅터를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았고, 떨어진 빅터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다 이내 입을 틀어막았다.

자칫 심기를 거슬렀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용히 숨을 죽이는 빅터.

남자는 수첩을 펼쳐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이내 수첩을 덮고는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방 안에 셋이 남게 되자, 곧바로 빅터에게 달려드는 발레리.

“이 배신자 자식! 가족을 배신하다니!”

퍼억! 퍽!

발레리는 베키만큼 싸움을 자주 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뒷골목에서 오래 구른 만큼 싸움에 약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녀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크다고는 하나 어차피 비슷한 처지인 빅터에게는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크윽!”

“죽어! 이 자식아! 죽으라고!”

발레리는 화풀이를 하려는 듯 주먹에 분노를 가득 담아 빅터를 내려치고 있었고, 빅터는 손으로 주먹을 막으려 했으나 발레리가 그의 위에 올라타 있어 큰 효과는 없었다.

한편, 날려졌던 충격 탓에 베키는 뒤늦게 몸을 일으켰다.

“으윽……!”

그리고 그런 베키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빅터의 위에 올라타 있는 발레리였다.

베키는 빅터를 때리는 것은 발레리에게 맡기기로 하고, 책상 위에 쏟아져 있는 금화를 방금 전 남자가 무심하게 내던진 주머니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발레리, 그만 때리고 빨리 찔러 버려. 여기 있는 돈도 가져가야지.”

빅터는 약삭빠르게 이곳으로 도망쳐 와 이런저런 물건을 챙겨 도망가려 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물건을 다 챙기기 전에 남자가 들어왔고, 남자는 수첩을 찾기 위해 금고와 이곳저곳을 수색하다 빅터에게서 수첩을 찾고 나간 것이겠지만.

“으아아!”

푸욱.

칼로 찌르는 소리와 빅터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리자, 베키는 발레리가 빅터를 찌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베키가 발레리와 함께 나가기 위해 뒤를 돌아봤을 때, 발레리는 빅터의 위에서 옆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구리에는, 단검이 한 자루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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