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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07화 (107/325)

#제107화 (8)

여관의 바깥 골목 어딘가에서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베키.

그리고 영의는 바이크 위에 걸터앉아 그녀를 지키듯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금이야 나중에 받으면 되는 거고, 그보다 베키가 너무 스스럼없이 행동하길래 아는 사이인가 했더니 스승과 제자였나?’

알림이가 과거에 비해 유해진 것이 원인인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원인이 된 것인지 몰라도 보상이 강제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보상을 반쯤 강제로 받아 왔었는데. 어쩌면 적응을 시켜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건가?’

지금의 방식이 과거에 비해 발전한 것인지 아니면 동물에게 훈련을 하듯 강제적으로 여건을 만들어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으려던 찰나, 베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우…….”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예전의 활기 넘치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베키, 괜찮아?”

큰 감정은 없어 보여도 그래도 한때 스승이었던 이와 싸우고 형식상으로나마 쫓겨 나온 상태.

아무리 제멋대로인 성향이 강한 베키라도 분명히 마음에 상처가-

“괜찮아! 욕하고 싸우는 건 일상이었으니까!”

영의의 걱정 섞인 말에, 웃으면서 대답해 주는 베키.

그녀의 미소는 예전에 봤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그런 해맑은 미소였다.

“베키…….”

예전과 같은 미소를 지금 지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가 감정을 숨기는 데에 능한 것이거나 아예 감정이 상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친구가 생겼다며 기뻐할 때를 생각해 보면…….’

친구 한 명에 그렇게 아이처럼 기뻐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아마 감정을 숨기는 데에 매우 능숙한 것이 틀림없었다.

“음, 조금 걸을까? 사실 마음 같아선 바이크를 타고 싶은데. 너무 소란 피우면 경비가 올지도 몰라.”

베키는 영의의 소매를 잡아끌며 그렇게 말했고, 영의는 베키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 바이크를 끌고 그녀의 옆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밤의 거리를 하염없이 걸어가는 둘은 줄곧 침묵하였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베키였다.

“……왜 그랬는지, 안 물어봐도 돼?”

“뭐가? 싸운 거?”

베키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아닌 듯, 고개를 살짝 까딱거리며 대답했다.

“그것도 그렇고, 내 과거도 그렇고.”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듯 질문을 유도하는 베키.

“솔직하게 말해. 난 이래 보여도 의리 있는 남자니까.”

영의가 병찬과 병민과 계속 친하게 지내고, 화연과의 관계를 끊지 않는 것도 일종의 의리였을 것이다.

대신, 그만큼 그가 친구를 잘 안 만든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지만.

“글쎄? 의리라. 도둑들 사이에 의리라는 말, 들어 본 적 있어?”

자신이 과거에 도둑 또는 범죄자였다고 말하는 듯한 베키의 질문에 영의는 고개를 저었다.

“의리는 겉으로나마 정의로운 사람들이나 가지고 있는 거지. 도둑 사이의 의리란 건 파고들면 계산이야.”

영의답지 않은 상당히 철학적인 말이었으나, 방금 전 스스로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듯 의리에 대한 견해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뭐, 좋은 말이네.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 의리란 건 더 안 어울리지만. 부랑아에, 좀도둑 출신. 강도질이나 하던 이름 없는 고아가 쓸 만한 말은 아니야.”

베키의 입에서 나온 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과거였다.

지금은 성공한 마공학자이고, 과거에도 마도학계에서 제법 알아주는 인재였으나 저러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비밀일 터.

그러나 영의는 그런 베키의 과거는 개의치 않는 듯, 그녀가 고아 출신이란 것에 관심이 갔다.

“고아, 라고?”

그리고 그 반응은 베키도 의외였던 건지, 놀라는 눈으로 영의를 올려다보는 그녀.

“뭐야, 놀라는 부분이 거기야? 내가 살인은 안 했어도, 다른 건 다 해봤는데.”

“나도 길거리에서 싸움질하고, 탈선하던 때가 있었으니까.”

물론 돈을 빼앗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집안 특성상 싸움에 대해서는 관대했기에 그러한 길을 걸은 적이 있는 영의.

그리고 자신도 그런 적 있다며 공감하는 영의를 보자 베키는 얼굴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너는,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구나.”

“내가 범죄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길거리에서 살아남는 가장 빠른 방법이 범죄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

과거 질풍노도의 시기에, 경제적 여건의 이유로 잘못된 길로 빠지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던 영의.

싸움은 해도 양아치 짓은 하지 않았던 영의였기에 그들을 설득해 보려 했으나, 도와줄 수 없으면 방해나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손을 놓아 버렸다.

범죄라 할지라도 타인의 생존에 자신이 관여한다면 그건 살인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국가 지원의 존재에 대해서는 영의도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리고, 그 지원마저 수탈해 가는 이들이 있다는 참담한 현실도 함께.

나름 발달한 한국에서마저도 그러할진대, 이런 세계에서의 부랑아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성공했잖아?”

“성공, 이라. 그렇게 보여?”

베키는 걸음을 멈추며 자신을 가리켰다.

“날 봐. 어떻게 보여?”

작은 키, 관리 안 한 듯 부스스한 머리카락.

과거에 비하면 살집이 조금 올랐으나 그래도 마른 체형에 어딘가에 공구를 한가득 가지고 다니는…….

“그냥 베키지. 조금 작고, 어린애 같은.”

“친구인 너는 그렇게 볼지도 모르지. 아니, 그렇게 보니까 친구가 된 게 아닐까?”

베키의 말에 영의는 문득, 자신과 베키의 사고방식이 상당히 많이 다른 것 같다고 느꼈다.

물론 기계에 집착하는 베키와 영의의 사고방식이 같을 리는 없다.

그러한 사고방식 이전에, 기본적인 개념이나 상식선에서 무언가가 뒤틀려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혹시 부랑아 출신을 특별히 안 좋게 본다든가 그런 게 있어?”

영의의 질문에 베키는 잠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멍하니 있다가 역으로 물었다.

“있지, 너 혹시 여기 말고 다른 먼 지방이나…… 어쩌면 다른 세상에서 온 거야?”

핵심을 꿰뚫는 듯한 베키의 질문에 말문이 막히는 영의.

“윽.”

그리고 그런 반응은, 베키에게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음, 그래. 그렇구나. 아니, 그렇기 때문이구나?”

베키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럼, 조금 더 상세하고 정확한 이야기를 해줘야겠네? 하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뭔가 특이하다고는 생각했었지. 잘 들어.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은 내 과거 이야기를.”

그렇게 베키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한편, 황금노송나무 여관.

이곳에서는 신 마도학회의 회원들이 있었다.

마도학회의 회원들처럼 열띤 토론을 벌이거나 실험 자료를 열심히 정리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마공학회처럼 광기에 가까운 열정으로 기계들을 조립하거나 분해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 노인을 중심으로 모두가 원을 그리며 둘러앉아 있었을 뿐.

“다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나?”

노인은 질문하듯 물었으나, 그 자리의 누구도 노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가 익숙한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답을 들으려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 건지 노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내일은, 우리의 숙원이 이루어질 날이다.”

그 말을 하며, 마음속에 감정이 차오른 듯 웃기 시작하는 노인.

“크흐흐. 오늘을 위해, 상당한 노력과 준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약간의 운이 따라 주었지.”

이내, 품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는 노인.

그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유리병에 담긴 가루와 버섯이었다.

“이 버섯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버섯일 뿐이다. 아리안델 북부에서는 제법 좋은 식재로 쓰이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지.”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등 뒤, 여관의 구석에는 버섯이 담긴 상자가 있었다.

“그리고 이 가루로 말할 것 같으면! 서방의 향신료다. 자네들도 익히 아는 그런 것이지. 물론 가격대가 조금 있긴 하지만, 향신료이니만큼 그 정도는 그럴 만하지.”

노인은 어째서 이러한 것들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걸까? 장소를 보아하니 식재료 장사꾼은 아닌 것이 틀림없지만.

“사실, 본래의 계획은 조금 더…… 리스크가 크고 실패 확률도 높은 계획이었다. 뭐, 법적으로는 살인쯤 갔겠지.”

노인은 살인을 거론하면서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래, 그래도 최대한 조심하면서 철저하게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싼 독과 약도 구해 뒀다.”

살인이란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는 듯, 노인을 둘러싼 사람들 중에서는 안색이 창백해지는 이도 있었다.

“다만, 한 달 전! 나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 향신료를 사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간 북부의 한 청년이 하루 내내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노인의 말이 이어지자, 그제야 그곳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이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이 버섯과 향신료가 조합되면! 먹은 이가 깊은 잠에 빠져드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말이지.”

노인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인지 말을 잠시 멈추고 뜸을 들였다.

“그 어떤 약물 검사나 독 검사에도 걸리지 않았다. 독이나 약이 아니라는 거지.”

다시 품속에 버섯과 향신료를 집어넣고는 말을 이어 나가는 노인.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저 탐구심과 적당한 호기심만을 느꼈었다. 계획에 신경 쓰느라 바빠서 말이지. 하지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

“어째서 굳이 죽일 필요가 있는 거지? 내가 그런 부담을 왜 져야 하는 거지? 그냥, 마도학회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서기만 하면 그걸로 끝 아닌가?”

노인의 말이 길어지고 있었지만, 이 자리의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찬성하는 듯 그들의 눈빛에서 감출 수 없는 열망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때를 위해 요리사도 포섭했고, 마도학회의 내부인도 매수해 두었다. 당연히 의심받을 짓은 하지 않았지. 다만, 우리의 발표 순서를 점심 식사 이전으로 하고, 마도학회를 점심 식사 이후로 조정했을 뿐이지.”

노인은 그리 말하며 웃기 시작했다.

“흐흐흐……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같이 맛있는 식사를 하고, 편하게 잠들면 되는 것이야. 세간에서는 그저 의문의 단체 수면이라고만 알겠지. 다만, 우리의 멋진 발표는 세상이 알겠지만, 마도학회는 발표하지 못할 것이다.”

노인이 말을 끝내자, 모든 인원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목적과 동기는 모두 달랐다.

누군가는 돈을 원했고, 누군가는 개인적 명예를 원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곳을 찾아왔고, 마도학회에 밀려서 또는 복수를 위해 몸담은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처음에는 다른 마음을 가졌으나 시간이 지나자 하나의 마음으로 일치했다.

-마도학회보다 더 잘나가게 된다면, 우리의 목적도 더 쉽게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한 하나의 마음을 품고, 신 마도학회는 음습한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

뭐, 어디까지나 그들 기준에서 음습한 계략이었고 그 계략이 제대로 먹힐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걸 정정해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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