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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06화 (106/325)

#제106화 (7)

처음에는 상당한 경계를 샀던 영의였으나, 일라이저의 태도와 베키의 난입으로 그 경계심은 제법 옅어졌다.

그리고 영의가 가져온 피자를 반신반의하며 입에 대는 순간, 그들은 경계를 풀게 되었다.

사실 음식 하나 가지고 어떻게 태도가 그리 급변하는가 하겠지만, 당장 독고휘만 하더라도 한 입 먹자마자 급격히 호의적으로 바뀌지 않았던가.

물론, 그들 모두에게 보상을 받진 못하고 또 영의는 그러한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다만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런 것이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마도학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마법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다.

아침에 기상 - 아침에 연구 - 낮에 연구 - 밤에 연구 - 취침.

일과 중에 식사나 세면 등의 행위가 없는 것은 그것이 일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기를 참지 못하겠으면 간단하게 보존식 같은 것을 먹거나 씻는 것도 연구에 지장이 생기면 하는 등.

현대의 대학원생들보다 더 바쁜 연구 활동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정신적인 측면에서야 서로 간에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규칙적이지 못한 생활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좋은 식사나 편안함이라는 것은 기대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지낸다.

물론 이름난 마탑에 있거나 혼자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연구를 한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누구나 고급지고 맛있는 식사를 먹고 싶어 하지만 그것도 그걸 해낼 수 있는 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마탑에서는 모든 인원에게 돌아갈 만큼의 요리를 할 수 없다.

일라이저 정도야 로버가 개인적으로 식사를 마련하기라도 하겠지만 로버 혼자서 그 많은 인원은 감당하지 못하니까.

그런 그들에게 현대의 음식 중에서도 맛이 강한 편에 속하는 피자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런 맛이?’

‘한평생 신의 존재를 의심해 왔지만, 신은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런 음식이 사람 손에서 나올 리가!’

‘여기서 하나 더 먹으면…… 음, 아직까진 많으니까 눈에 안 띄겠군.’

다들 말할 시간조차 아까운지, 재빠르게 손과 입을 놀리는 마도학회의 회원들.

처음에는 감탄하며 먹기 바쁘던 그들도 한 조각을 먹어 치우고 나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일라이저가 먹는 것을 보며 정석적인 방면으로 따라 하는 이도 있고, 베키처럼 피자를 반으로 접거나 거의 둘둘 말듯이 말아서 먹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며 문득 왜 저렇게 먹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든 영의.

‘응? 베키는 왜 피자를 접어 먹는 거지?’

현대에서야 뭐 그냥 먹기 심심해서, 또는 접어 먹는 게 더 볼륨감이 있어서, 아니면 어디에서 이러는 걸 봐서…… 등등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피자를 처음 접하는 베키가 피자를 바로 접어 먹는다고?

영의는 본인에게서 그 이유를 들어 보기로 했다.

“베키.”

“움? 왜?”

아까와는 달리 제법 먹다 보니 여유가 생긴 건지, 아니면 조금 물리기 시작한 건지 깨작깨작 먹고 있었기에 제때 대답을 했다.

“너 그거 왜 접어 먹는 거야? 뭐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영의의 말에, 베키처럼 접어 먹던 마도학회 회원들은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먹는 방법을 바꾸려고 했다.

‘어, 이게 아닌가?’

‘역시 베키가 하는 거라 그런 건가?’

“특별한 이유? 없는데? 그냥, 접어 먹으면 더 빠르게 다 먹을 수 있잖아. 전에 네가 갖다 준 그거처럼. 사실 겹쳐 먹고 싶었는데, 그건 너무 커서 안 들어갈 것 같아.”

“아아.”

실로 베키답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멀쩡한 축에 속하는 베키답지 않은 답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어느 것을 골라도 베키라면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영의는 베키라는 인물의 행동 방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철저히 흥미 위주! 최대 효율 추구! 장식미 없음!

햄버거를 먹었을 때처럼, 한 끼의 식사를 한 번에 압축시킨 음식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감상은 마도학회 회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빵과 기타 재료들을 한 번에 모아서 구워 낸 요리이니만큼, 식사를 압축했기에 시간을 극도로 아낄 수 있는 것이다.

“크흠. 오늘도 잘 먹었네.”

피자를 다 먹지는 않았지만, 절반을 먹어 치우고는 입을 닦는 일라이저.

“아, 네. 맛은 있었어요?”

“충분히 맛있었네만, 단 하나 아쉬운 게 있다네.”

“네? 뭐가요?”

일라이저는, 다 마시고 가벼워진 콜라 캔을 가리켜 보이며 점잖게 말했다.

“그, 이 음료가…… 조금 적다고 생각하지 않나? 전에 틀림없이 당분이 좀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네만?”

일라이저는 일전에 넌지시 얘기했던 부분에 대해서 반영된 것이 없자 조금 실망했다.

“아, 그거요? 그거 영감님 건강 고려해서 줄여서 가져온 건데요?”

하지만 영의에겐 그럴 만한 명분이 있었다.

“거, 건강이라……. 으음.”

건강의 얘기가 나오자, 말문이 턱 막히는 일라이저.

사실, 요즘 아침에 눈을 뜨자니 눈꺼풀이 무거웠고 밤샘도 예전처럼 거뜬하게 하기 힘들었다.

물론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늙어서 약해지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아무리 마법사가 자연의 섭리와 법칙을 깨는 것이 특기이고, 그 위의 마도사가 자신의 뜻대로 자연을 다룬다고 해도 절대적인 불변의 진리라는 게 있었으니까.

어떠한 생명도 죽음과 노화를 피할 순 없다. 최대한 늦추는 것만이 정답일 뿐.

그리고, 그러한 진리에 도전하는 것은 마도사가 아닌 연금술사들이었고.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늙는 것이 느껴지고 자신의 힘으로 그것들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체감하자 마음이 약해졌다.

조금 더 제자들을 잘 길렀으면 어땠을까, 베키가 나간다고 했을 때 붙잡았으면 어땠을까, 물론 붙잡는다고 여기 남을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

그 혹시나 하는 생각과 과거에 대한 후회가 다른 생각보다 많아질 때, 사람은 비로소 늙은 것이다.

미래와 현재에 눈을 두기보다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미래에서 눈을 돌리게 되는 일종의 두려움에서 비롯한 외면인 것이다.

그런 통찰을 하지 못할 일라이저가 아니었기에 그는 평소에도 예전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려 했으나 가끔 드는 생각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신의 건강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에 말문이 콱 막히고 말았다.

‘어어? 혹시, 무시한다고 생각한 건가?’

영의는 다급히 말을 덧붙이며 일라이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어지간하면 저도 그냥 갖다 드리고 싶거든요. 영감님 말고도 살찌는 음식 막 먹고 술 마시는 다른 영감님들이 계셔서.”

“그렇다면 나는 왜?”

“어…… 그게, 그 영감님들은 몇 살인진 몰라도 나이에 안 맞게 중년처럼 생겼고…….”

처음엔 아니었지만, 지금 시점에선 확실히 중년처럼 생기긴 했다.

“나이에 비해서 엄청 건강하고 젊은이들보다 몸도 좋고…….”

그것도 당연하다. 무림에서 가장 강한 이를 꼽아 보라 했을 때 거론되는 이름들이니까.

“또, 그분들이랑 달리 영- 아니, 어르신은 활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 않아요?”

상당히 무례하게 들리는 말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뭐라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당장에 일과부터가 먹고 씻는 것을 거르고 연구만 하는 인간들이었으니, 활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물론 마법과 신체, 둘을 단련하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있는 인물들은 모두 하나에만 미친 인간들이었으니…….

그리고 그때, 베키가 일라이저를 보며 큰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그러니까 진작에 운동 좀 하지 그랬어?”

일라이저야 로버가 이것저것 챙겨 줬기에 나름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로버가 없었다면 베키 못지않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 마도학회 회원들은 베키를 쳐다보며 모두 비슷한 생각을 품었다.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베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생각을 바로 입 밖으로 내뱉은 영의.

“뭐래, 자기는 밥도 안 먹으면서.”

“아, 안 먹은 게 아니야! 바빠서 못 먹은 거지!”

베키는 다급히 자신의 과거를 치부로 여기듯 고개를 저었다.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아니거든?! 할 수 있는데 못 한 거거든!”

덩치에 걸맞게,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듯 외치는 베키.

“그래서 밥 못 먹고 쓰러져 있었냐?”

하지만 말로 싸우는 것에 대해서는 이골이 난 한국인답게, 영의는 베키와의 말싸움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그, 그 얘기는 하지 마아!”

“이야, 기억난다. 마지막 기력으로 한 게 밥 먹는 게 아니라 나한테 소리 지르는 거였지 아마?”

“아아아아!! 하지 마아!”

그리고 그런 베키를 바라보는 일라이저의 눈빛은, 아까에 비해서 약간 냉담해져 있었다.

“혼자 뭔가 해보겠다며 뛰쳐나가더니,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던 거냐?”

“다, 당신이 신경 쓸 건 아니잖아요.”

베키는 할아범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굴던 로버에게도 하지 않던 존대를 붙이며 대답했다.

“말이 그게 뭐냐. 그래도 옛 스승인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나는 마공학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마공학이 그만큼 좋고.”

일라이저는 걱정을 하며 말한 것이지만, 베키에게는 그것이 자신에 대한 간섭으로 들리는 듯했다.

“아무리 좋다고 해도 쓰러질 때까지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마탑으로 돌아오는 건 어떻겠느냐?”

“필요 없어요. 나는 내 연구실이 있고, 내 작품들이 있어요. 그걸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있고.”

“마공학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주마. 돌아와서 뭘 해도 내가 건드리지 않겠다.”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을 내걸자, 베키는 잠깐 혹한 듯했다.

“자, 잠깐 힘들었던 적은 있어도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안 간다니까!”

잠깐 흔들린 듯 말을 더듬었지만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베키.

아마 영의가 다녀간 뒤 생활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 제안을 수락했을지도 몰랐다.

“……그래, 알겠다. 혹여나 싶어 물어본 것이었다. 다만, 고독하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한 이들이 많다는 것만 알아 두어라.”

그렇게 말을 마친 일라이저는 자리에서 일어선 뒤 여관의 객실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음식의 대금에 대해서는 내일 치르도록 하겠네. 대신 내일도 오늘처럼 부탁할 수 있겠나?”

대금을 떼먹을 인물도 아니었고, 지금 상황에서 돈 얘기를 꺼낼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영의.

“……네, 그러죠.”

“그래, 고맙네. 나는 조금 피곤해서…… 들어가 쉬어야겠어.”

그렇게 말하며 객실로 가는 일라이저의 등에서는, 그저 지친 노인의 모습이 아닌 회한이 담긴 고독한 이의 느낌이 풍겨 나왔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베키와 일라이저의 갈등이 시작되며 분위기가 가라앉은 여관의 내부.

로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자, 선배님은 피곤하셔서 잠시 쉬러 가셨다. 하지만 우리는 선배님만큼 오래 살지도 않았고 위대하지도 않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냐?”

“발표회를 위한 준비입니다.”

누군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연설하듯 말하는 로크.

“그래, 맞다. 이미 연구를 끝낸 안건들만 가지고 왔지만 혹시 모르니까 전부 검토하고, 검증해라.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

“네!”

로크의 말이 끝나자, 먹던 피자를 모두 한곳에 몰아 두고는 탁자 위에 자료들을 가져와 올리기 시작하는 인원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던 로크가 베키와 영의의 어깨를 툭툭 쳤다.

“미안하지만, 지금부터는 기밀 사항이 유출될 수 있으니 나가 주지 않겠나?”

영의는 이것이 로크 나름의 분위기 전환과 자연스럽게 베키를 떨어트려 두려는 계획임을 알았다.

“……네, 그러죠. 나가자.”

베키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으나, 로크의 말을 들은 건지 영의의 손에 순순히 이끌려 여관 밖으로 나왔다.

지금까지 베키에게서 본 적 없는, 기운이 없는 듯한 모습에 영의는 뭔가 말하려 했으나 그냥 가만히 두기로 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놔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때가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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