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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05화 (105/325)

#제105화 (6)

운동장을 뛰던 학생들은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으나, 누구 하나 떨어져 나가진 않았다.

교실에 들어온 초빙 강사가 꺼낸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단군 길드 소속 트레이너, 최영웅입니다. 이름이 특이하지? 히어로 최!”

농담으로 꺼낸 말이었기에, 몇몇 교육생들의 얼굴엔 작은 웃음이 맺히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보니까 여러분은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물론 당연하지. 성인이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첫 문장만 들었을 때는 약간 심기가 불편해진 교육생들도 있었지만, 뒷말을 듣자 어느 정도 납득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첫 수업이니만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끝낼 것으로 생각한 교육생들은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럼 이제 준비를 하게 해야지? 자, 다들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집합. 시간은…… 5분 준다.”

영웅은 그렇게 말하며 칠판에 글씨를 빠르게 쓰고는 교실 밖으로 나갔고, 교실 안의 모두는 그 행동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우리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체육? 중학교 때도 잘 안 했는데?’

‘원래, 교육 커리큘럼에 이런 게 있었나?’

그렇게 모두가 멍해 있을 때, 재빠르게 행동하는 이들이 몇 있었다.

이 교실 안에서 가장 연장자일 것이 분명한 수연은 영웅이 들어온 시점부터 자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수연의 옆에 함께 앉아 있던 지연도, 수연의 움직임에 곧바로 반응하여 빠르게 그녀를 따라갔다.

그 외에, 몇몇 상황 판단이 빠르거나 영웅의 말과 행동을 짐작한 교육생들이 빠르게 교실 밖으로 나가 탈의실로 향했다.

“어어?”

“자, 잠깐!”

“후, 훈련복이 어디 있는데?”

안타깝게도, 사전에 아카데미 내부를 둘러보지 못했거나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한 학생들은 부랴부랴 그들을 따라 움직였으나 이미 선두로 나선 교육생들의 발자취를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운동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지연과 수연. 그들은 잔디로 가득한 운동장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와, 언니. 진짜 빨리 뛰네요?”

“이래 보여도 가속 계열이거든.”

“그런데, 우리 말고도 빠르게 움직이던 애들 많던데요?”

수연과 지연은 탈의실에서 훈련복으로 갈아입을 때에, 그녀들을 뒤따라온 교육생들을 보았다.

“그렇지? 확실히 인재들이 모여 있긴 한가 봐. 그보다, 오빠도 참……. 시작부터 체력 단련이야?”

“음, 영웅 아저씨는 조금 그런 면이 있으니까요. 약간, 뭐랄까…….”

지연이 조금 적당한 표현을 고르려는 듯, 말끝을 늘이자 지연이 냉큼 대답해 주었다.

“근육에 미친 스타일?”

물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일 뻔한 지연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적합한 대답을 했다.

“아, 아뇨. 그 정도까진 아니고. 뭐든 간에 체력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니까 운동해라! 같은 느낌?”

“아아, 뭐. 근데 그건 틀린 말은 아니잖아. 하다못해 사무직도 체력 있는 사람이 더 잘하는걸.”

“그렇긴 한데, 처음부터 다짜고짜 애들을 운동장에 부르는 게 조금 그렇다는 거죠.”

“뭐 어때, 몸 풀고 좋지.”

“근데, 설마 강의 시간 전부를 다 체력 단련으로 채우진 않겠죠?”

각성자 아카데미는 가르치는 이들의 자율에 따라 강의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대학교에서의 강의처럼 일찍 끝내고 싶으면 일찍 끝낼 수 있고 길게 늘어져도 한도, 즉 정해진 시간이란 게 있는 것이었다.

“글쎄, 큰오빠는 그것보다 더 하고도 남을 사람이긴 한데.”

그리고 그때, 지연과 수연의 대화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큰오빠? 저 강사님이랑 알고 지내는 사이인가 봐요? 그것도 가족처럼 가깝게?”

대화에 열중하다 누군가 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지연과 수연.

그녀들이 뒤를 돌아보자, 몇몇 교육생들이 빠르게 운동장을 향해 달려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최선두였을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한 남녀.

“흐음, 학교에 와봤더니 짜잔! 가족이 있었습니다! 라니. 뭔가 드라마나 만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네.”

“아니, 교육기관이라고 해도 초빙 강사잖아. 그러니까 오히려 더 만날 수 있는 거 아니야? 현실성이 충분히 있어.”

“그런가? 근데 그래도 우연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지연과 수연에게 무언가를 묻다가 갑작스럽게 자신들의 토론을 시작하는 남녀.

“저기, 너희는-”

수연이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보려 했을 때, 운동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5분 됐다! 역시 별로 많이 나오진 않았네!”

운동장 저편에서 걸어오는 영웅은 마치 확성기를 쓴 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와, 목청 엄청나네. 노래도 잘하려나? 뭔가 그런 분위기가 있지 않아?”

“목소리가 크다고 노래를 잘할 거라는 건 편견이야. 물론 성악가들이 목소리가 큰 경우는 있지만, 그건-”

이제 보니 남자 쪽은 기분에 따라 말을 하는 듯했고, 여자 쪽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노래는 못해. 음치야.”

“그렇다는데? 쩝, 느낌 좋았는데. 이번 건 틀렸나 봐.”

남자는 아쉽다는 듯이 말했고, 여자는 확실하지 않은 건 믿지 않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직접 보기 전까지는-”

여자가 뭐라 논리적으로 반박하려 했지만, 눈앞의 상대는 가족이다. 살아 있는 증거이자 증인.

“아.”

가족이 앞에 있는데 저 사람은 어떠할 것이다- 하는 토론을 할 뻔했으니 무안해진 듯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히는 여자.

그렇게 둘은 침묵했고, 이내 영웅은 교육생들을 모아 다짜고짜 운동장을 달리게 했다.

“죽일 거야, 저 인간……!”

목적도, 이유도 알려 주지 않은 채 한참을 달리게 하니 인내심이 바닥난 피 끓는 청춘들.

몇몇은 위협하는 듯한 말을 했지만 영웅은 능청스럽게 외쳤다.

“하하! 유감스럽지만 난 민간인이야! 능력을 사용하면 처벌받을 텐데? 능력을 사용한 범죄는 무조건 형사처벌인 거 알지?”

실제로, 각성자들의 능력에 의한 범죄는 청소년 쪽에서 많이 일어났기에 각성자 범죄는 청소년과 성인을 가리지 않고 같은 처벌을 실시했다.

“으으윽……!”

그렇게 할 말이 없어진 교육생들은 묵묵히 달리기 시작했고, 연신 죽겠다는 말과 거친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자! 아무도 도중에 포기를 안 하니 보기가 좋다! 그럼 여기까지 하자!”

영웅은 그렇게 말하며 그 자리에 멈췄고, 그 말을 들은 교육생들의 대부분은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허억……! 억!”

“에이씨, 진짜! 더러워! 군대도 이러진 않겠다!”

“낙오하면 두 바퀴 추가라니, 이건 고문이야!”

교육생들이 운동장을 달리다가 못 이기는 척 그만두려 하자 영웅이 낙오자가 발생하면 더 달리게 하겠다고 했기에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달렸다.

“하하! 대신 그만큼 천천히 달리게 해줬잖아? 그래서, 기분이 어때? 실컷 달려 보니까?”

영웅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음, 그래도 쓸 만한 애들은 보이네. 열두 명이라.”

대부분의 교육생들이 바닥에 눕거나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영웅의 말대로 열두 명은 서 있거나 가벼운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 네 명이 지연과 수연, 그리고 그녀들 다음으로 도착했던 남녀였고.

“후우. 싫지 않아, 이런 전개. 근성과 열정으로 가득한 육체 계열 선생이라니. 멋지지 않아 선영아?”

여자 쪽의 이름은 선영인 듯했다.

“비효율적이야, 이런 건. 운동은, 루틴을 제대로 짜야, 효율이 좋은데.”

“가슴속의 열정과 근성만 있다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남자아이 쪽은 상당히 감명 깊게 본 작품들이 많은 듯, 의미심장한 대사를 외쳤다.

“오, 학생! 말 잘했어! 가치관이 좀 맞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말이 취향에 딱 들어맞은 영웅.

“하지만 전 선생님만큼 뜨거운 열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것만으로도 충분해! 이름이 뭐야?”

“선우입니다!”

자신 있게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선우.

그리고 선영은 그런 선우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또 저 중2병이.”

선우의 외침에 영웅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웃었다.

“좋아! 내가 널 꼭 기억하마! 확실하게!”

“그, 적당히 잊으셔도 되는데……?”

좀 부담스러운 관심과 열정에, 선우는 당황하여 관심을 조금 사양하기 시작했다.

“아니! 나의 가슴속 열정만큼 너를 기억하마!”

“어어? 이, 이게 아닌데?”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영웅이 격하게 반응해 주자, 선우는 도움을 청하려는 듯 선영을 돌아보았다.

“도, 도움-”

하지만 선영은 이미 선우를 포기한 것인지, 선우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 있었다.

“어어?!”

그리고 그사이, 영웅이 선우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하하하! 선우야! 나랑 같이 체력 단련 하지 않겠니? 열정과 근성만 있다면 체력은 길러지게 되어 있으니까!”

“아, 하하. 하…….”

얼굴은 애써 웃고 있었지만, 눈만큼은 웃고 있지 않은 선우.

그는 자신의 슬픈 미래를 직감했다.

“자! 그럼 다들 들어가서 씻을 사람은 씻고! 다음 수업 준비하자! 그리고 다음 체력 단련 시간을 기대하고!”

영웅은 선우에게 두른 팔을 풀지 않은 채 그렇게 소리쳤고, 영웅의 말에 교육생들은 하나둘 몸을 일으켜 아카데미의 건물로 돌아갔다.

“흠, 어떤 운동을 시켜 볼지 고민해 봐야겠네. 선우야! 나중에 다시 보자!”

그리고 학생들이 비틀거리며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영웅은 뭔가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우의 어깨를 툭툭 쳐준 뒤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 나 어떡하지? 운동은 싫은데.”

뭔가 자신의 미래가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는 예감에 어깨가 축 늘어진 선우.

그리고 그런 선우의 옆에 수연이 다가왔다.

“괜찮아. 좀 막무가내에 대책 없고, 생각까지 조금 모자라 보여도 나름 진지할 땐 진지하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진짜로? 어, 요?”

선우는 누가 봐도 동년배로는 보이지 않는 수연을 보고는 다급히 뒤에 존대를 붙였다.

“음, 아저씨가 저래 보이긴 해도 나름 가르칠 땐 잘 가르쳤죠.”

“그러면 안심-”

그런 수연의 옆에서, 그나마 좀 또래 같아 보이는 지연이 말을 꺼내자 말을 붙여 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래, 저래 보여도 우리 집안에서 공부 좀 하는 타입이야. 물론 그게 다 체육 계열이라 문제였지.”

“그럼 선생님은요?”

눈을 반짝이며 수연에게 질문하는 지연.

그리고 그런 지연의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기에 수연은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작은오빠도 재능은 있었지. 대신 그게 육체로 하는 거에만 재능이 있었던 것뿐이지.”

“음, 조금 그렇긴 했죠.”

“그, 제 말 좀-”

뭐라 말을 붙여 보려 하고 있었으나 수연과 지연은 어느새 앞서 걸어가며 둘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선우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는 듯, 선우에 대해서는 철저히 모르는 듯한 두 사람.

“이 쉬운 걸 왜 못하는 건가…… 하는 눈으로 볼 때, 있지 않아?”

지연은 수연의 말에 손뼉을 치며 격하게 공감했다.

“네! 있어요! 그 눈빛! 이게 어렵나? 하는 그런! 막 궁금해하는 눈빛!”

“아니, 난 어릴 때부터 그걸 계속 봤다니까? 어떻게 4살짜리한테 공중제비 도는 걸 시키냐고!”

“네? 그런 걸 시켜요?”

“하긴 했지! 몇 번 실패하고 나서. 근데 오빠는 그걸 가르쳐 주자마자 했다는 거야! 큰오빠도 둘째 오빠도 다 몇 번 실패하고 이틀 정도 걸렸었다는데 내가 열이 안 받겠냐고! 나도 천재 소리 듣는데!”

수연과 지연은 친자매처럼 서로 즐겁다는 듯 대화하며 멀어져 갔다.

“내, 내 말 좀- 아, 선영아!”

선우는 다급히 자신의 남매인 선영을 불렀지만, 선영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도도하게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혼자 남겨진 피 끓는 청춘 17세 김선우.

학기 첫날, 첫 수업 친구 만들기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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