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5)
도시 이스데의 외곽.
오늘도 도시 출입 관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매일이 똑같은 일상의 지루함을 참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할 일도, 정기적으로 출입하는 상인들을 제외하면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평소와는 달랐다.
마법 협회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이스데에서 열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스데로 출입했고, 그런 만큼 그들도 바빠졌지만 마음만은 기뻤다.
-크흠, 나리들. 경비하시느라 수고하십니다. 저희가 물품을 전달해야 할 시간이 늦어져서 그런데 혹시…… 대문 좀 열어 주실 수 있습니까? 저기, 이건 출출하실 때 뭐라도 사 드시고…….
장사를 하기 위해 서둘러 이스데로 들어오려고 뇌물을 찔러주는 상인들이 있어 주머니가 제법 두둑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뇌물을 받는 것이 썩 좋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도시 내의 주민들은 모른 체했다.
그런 상인들이 들어와야 새로운 물건도 구경해 보고, 또 이런저런 도움이 될 게 아닌가.
그리고 다른 곳에서 온 이들도 경비들에 은화나 동화 한 줌 정도야 얼마든지 찔러줄 만한 여유는 있었다.
다만 체면상의 이유나 뇌물을 주는 게 성미에 안 맞았기에 그냥 있었지만.
그렇게 경비병들이 어느 정도 기쁨을 느끼며 근무를 서던 그때, 경비대장인 스미스가 나타났다.
“보자, 근무는 잘 서고 있나?”
평소에 검은색 옷을 즐겨 입고, 표정에 변화가 없는 인상이라 알게 모르게 두려움을 사고 있는 스미스.
경비병들은 스미스의 등장에 군기가 바짝 들어 대답했다.
“네, 넵!”
경비병들의 옆을 재빠르게 지나가려 하는 상인들의 마차를 슬쩍 쳐다본 스미스.
“흐음, 출출하거나 목마를 때 도움 되라고 받는…… 성.의.도 잘 받고 있겠군?”
스미스의 말에 경비병들은 속으로 뜨끔했다.
관행 같은 거라고는 해도, 엄연히 뇌물은 뇌물. 규칙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그, 그게…….”
하지만 스미스는 그때 웃으면서 경비병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하하! 괜찮네. 경비 급료도 얼마 안 되는데 이럴 때에 조금이라도 모아 둬야지.”
거의 매번 무표정인 모습만 보아 왔던 경비병들로서는 스미스가 웃으면서 넘어가려는 듯하자 안심했다.
“하지만, 먹고 마시는 건 근무가 끝나고 나서일세. 그리고 과음하지 말게. 그날은 좋아도, 다음 날 근무 서기 힘들어.”
‘그래, 지금 경비대장이긴 하지만 과거에도 경비대장이진 않았을 거 아냐? 다 겪어 본 거겠지.’
경비병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감상을 품은 경비병들은 스미스의 충고를 마음속에 새겼다.
“아, 네!”
그리고 그때, 아무런 언질이나 사전 협의가 없었던 수레가 입구 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어? 저, 정지!”
경비병이 수레의 접근에 당황해 마차를 멈춰 세우려 했으나, 수레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다가왔다.
“아, 그냥 있게. 내가 아는 마차니까.”
“네?”
스미스가 수레 쪽으로 걸어가자, 수레는 스미스를 알아본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봐, 노마린. 아무리 우리가 10년 넘게 봐왔다지만 이렇게 다짜고짜 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큰 수레의 뒤쪽에서 키가 작은 한 사내가 돌아 나오더니 스미스를 보며 활짝 웃었다.
“하하! 미안하네! 수레가 너무 커서 안 보이지 않지 뭔가!”
노마린이라 불린 사내는 키가 상당히 작아, 얼굴만 안 본다면 어린아이로 착각할 것만 같았다.
“그런 변명도, 10년을 넘게 듣고 있지.”
“으하하하! 것참, 하지만 사실인 걸 어떡하나?”
상당히 친한 사이인 듯 대화를 나누는 둘.
“그래, 애들은 잘 지내지?”
“아니.”
“그것참 유감이군.”
“하지만 자네가 이 수레를 들어가게 해준다면 잘 지낼 걸세.”
“그게 뭐야, 애들 가지고 협박하는 건가?”
“이런, 자네는 나를 자식 가지고 협박하는 나쁜 아비로 만드는 건가? 우리 우정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군!”
노마린과 스미스는 그렇게 즐겁다는 듯이 농담 섞인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자연스럽게 수레를 끌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수레가 향한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외부에서 온 상인들이 자리를 깔기 시작한 광장이 아니었다.
그 둘의 수레는 한 고급 여관 앞에 멈춰 섰다.
이스데 최고의 여관인 황금노송나무 여관.
그곳의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험상궂은 얼굴의 사내가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주문한 물건을 가져왔다.”
“……잠깐만 기다려라.”
험상궂은 사내의 태도는 무례했고, 거기에 눈살을 찌푸릴 법도 했지만 스미스와 노마린은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내 문이 다시 열리고, 험상궂은 사내가 다시 나와서 무언가가 담긴 주머니를 주었다.
“자, 돈이다. 이제 가봐라.”
험상궂은 사내가 돈주머니를 준 뒤, 손짓하며 떠나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노마린이 급히 되물었다.
이대로 그냥 가라고?!
“수, 수레는요?”
노마린은 키가 작았으나, 그 대신 튼튼한 몸과 엄청난 힘을 타고났다.
그 덕분에 자신의 몸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들 수 있었고, 그런 만큼 물건을 가져다가 파는 보부상 스타일의 장사를 하기에는 적합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끌고, 때로는 밀고 다니는 수레는 키가 작은 그를 위해 주문 제작한 물건.
“수레값도 포함한 거다. 썩 꺼져.”
하지만 험상궂은 사내는 위협적인 어조로 경고하듯 말했고, 수레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노마린의 어깨를 스미스가 잡았다.
“괜찮네. 어차피 저 수레를 쓸 일은 없을 테니 나중에 내가 가져다주지.”
“……고맙네, 친구.”
“고마우면, 그 돈으로 술이나 사라고.”
스미스는 노마린이 받은 돈주머니를 손으로 가리켰다.
상당히 무례한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계산은 확실한지 장사를 오래 한 노마린은 그 묵직함만으로도 액수가 충분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네 경비 일은 어쩌고?”
“대장이란 건 자잘한 경비를 맡기보다는 책임을 지는 입장이지. 사고만 안 터지면 되는 거야.”
스미스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지만, 아까 경비병들에게 했던 말이 있었으니 고개를 젓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후우, 생각해 보니 내가 술을 적당히 하라고 하고 오늘 취하게 마실 순 없지. 그냥 밥이나 사게.”
“그런 거라면야 배가 터지게 먹여 주지.”
“이번에도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겠지?”
“당연하지. 돈 안 드는 숙소인데.”
“돈 받을 걸세.”
“그럼 나도 밥 안 사지, 하하하!”
“하하하하!”
그렇게 스미스와 노마린은 씁쓸함을 감추려는 듯 웃으면서 여관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여관의 안에서는 한 노인이 의자에 앉아 깍지를 끼고 있었다.
“회장님, 물건이 제때 도착했습니다.”
“그래? 좋아. 그렇다면 이제 슬슬 준비하지. 요리사를 불러서 저 약을 가져가게 해라.”
황금노송나무 여관의 앞에는 이러한 팻말이 걸려 있었다.
[신 마도학회 숙박 중]
* * *
한편, 영의가 없는 지구에서는…….
“휘이이요…….”
뇌영이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한 건물의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의가 어디론가 가면서, 뇌영을 두고 갔기 때문이었다.
‘미안, 뇌영아. 너는 잠깐 두고 가야 할 것 같아.’
‘휘약(왜요)?!’
‘그게, 으음. 네가 위험할 것도 같고, 너를 위험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도 같고.’
‘휘이(뭐가)?!’
뇌영도 나름 똑똑했기 때문에, 영의가 자신을 싫어해서 놔두고 간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말한 이유가 충분히 사실이라는 것도.
‘틀림없이 그 작은 꼬맹이가 있는 곳에 간 거겠지. 다음에 보면 더 혼쭐을 내줘야겠어.’
사실 목적지가 베키가 있는 곳이 아니고, 일라이저가 있는 곳이었고 뇌영을 본다면 마법사란 족속들이 어떤 짓을 할지 몰랐기에 두고 간 것이었다.
뭐, 혹시 베키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가능성도 염두에 둔 영의였지만.
아무튼 뇌영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심심함을 느껴 주위를 구경했다.
조류들 사이에서는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까치들도 뇌영 앞에서는 그저 병아리였고, 까마귀는 영리하기로 소문난 만큼 알아서 몸을 피했다.
비둘기는 까치들의 선에서 정리될 수준이었으며 기타 도심지에 나타나는 맹금류들도 해봐야 황조롱이 수준이었기에 뇌영은 고독함을 느꼈다.
같이 놀 상대, 하다못해 말이라도 통할 상대가 없지 않은가.
도심지에서 볼 만한 새들은 대부분 자신을 두려운 포식자로 인식해서 벌벌 떨거나 도망치기 바쁜데.
그래서 생긴 뇌영의 취미는 인간 관찰이었다.
물론 일상적인 활동이나 별것 아닌 물건들은 관심이 없었고, 인간들 기준에서도 특이하다고 할 만한 것들을 찾아다녔다.
인적 드문 골목 어딘가에서 혼자 춤을 추는 사내라든가, 빌딩의 벽을 무게 추를 단 채 기어 올라가는 인간도 보았다.
그리고, 지금 뇌영은 수많은 인간 무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자, 앞으로 두 바퀴!”
“네?! 아까도 두 바퀴였잖아요!”
“그건 잘못 들은 거다, 다시 한번! 두 바퀴!”
“두, 두 바퀴이이!”
무리 지어 넓은 공터를 뛰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과 그 옆에서 달리면서 소리치고 있는 나이 든 한 인간.
그리고 그들 중에 몇 명은 뇌영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무리 지은 인간들의 앞에서 뛰고 있는 것은 엄마 겸 아빠 겸 주인인 영의의 동생인 여자와 제자인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나중에 다시 들어 보면 기억나겠지.
그리고 옆에서 소리치며 뛰는 나이 든 인간은 영의의 형이라고 하던 인간이었다.
뇌영이 자리 잡은 곳은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사건이 일어났던 각성자 아카데미.
그리고 단군 길드의 트레이너로 붙어 있던 영웅이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체력 단련을 시키고 있었다.
길드 마스터 황준이 혹여나 지연이 무슨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영웅을 초빙 강사로 아카데미에 꽂아 넣었었다.
소란은 있었지만 수업에 지장이 생길 문제는 하나도 없었기에, 아카데미는 거짓말처럼 정상적으로 학기를 개시했다.
물론, 주변에 상당한 경비 인력을 배치했고 그 대부분은 학교 측이 아닌 학부모 측이 고용한 인원들이었지만.
그렇게 아카데미의 학기는 나름 멀쩡하게 진행되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검사도 받고, 나름의 판정도 받고 들어오지만 같은 계열이라도 자세한 것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법.
아카데미는 그런 작은 부분에 중점을 맞춰 능력 발전을 도모하고 개발하는 것을 지원했다.
그렇기에 어지간해서는 실질적인 활동보다는 반쯤 연구에 가까운 활동이 주가 되었으나, 이번 학기에 온 초빙 강사의 생각은 달랐다.
-일단 뛰고, 굴러라! 몸에 잠든 힘을 깨우는 데에는 그게 최고다!
상당히 야만적이고,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교육 지침이었다.
아마 학부모들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공론화가 된다면 충분히 시끄러워질 사항이었으나 의외로 아카데미 측은 그 교육 지침을 수락했다.
현재 아카데미에 있는 교사진은 대부분 게이트 전문 인력 출신이거나, 은퇴한 각성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게이트 안에서? 멀리서 깔짝거리는 속성 계열도 기초 체력은 있어야지.
-하다못해 고등학교에서도 체육 수업만큼은 한다. 동년배들보다 체력이 약할 순 없지?
그들 모두가 확실히 체력만큼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물론, 다른 것들은 의견이 갈렸지만.
-서로 치고받게 하자고요? 부상은 어떡하고요?
-극한에 가깝게 몰아붙이고 단련시킨다라……. 음, 실전을 뛸 수 없으니 그나마 이게 차선책 같네요.
찬반이 갈리긴 했어도, 확실히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느닷없는 트레이너 초빙이 성사된 것이다.
“쿨럭, 허억!”
“헛, 허억.”
“살, 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대련 때와 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쓰지 않는 운동장을 기진맥진하게 달리고 있는 아카데미 교육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