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4)
마도학에 몸을 담고 있다 자신과 맞지 않는다 생각하고 뛰쳐나간 마도계의 이단아, 베키.
그녀는 급할 때의 임기응변 또는 보조 도구를 만들 때나 쓰는 거라 여겨진 마공학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마공학이라는 학문의 근간을 마련했다.
마력이 모자라서 마도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마법과는 거리가 먼 평민들이 사용하기에는 베키가 만든 마공학 물품들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제조 방식만 잘 안다면 적당한 수준의 마법사라도 만들 수 있는 간단함이 특별한 장점이었다.
이에 마법 협회는 마공학을 정식적으로 인정하고, 이번 발표회에 제법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마공학자들을 초대했다.
비록 분파의 역사도 짧고 인원도 많지 않았지만 마공학의 전망이 제법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키도 이스데에 와 있었고 발표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적당히 떠돌아 다녔다.
그러다, 재미있어 보이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누군가가 하늘을 나는 마도구를 타고 시내로 내려왔다!
거리에서 떠도는 소문과 나름 친분이 있는 마공학자들의 제보를 들은 베키는 소문 속의 도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황급히 달려왔다.
[마도학회 회원 전용 숙소. 용무 외 출입 엄금]
마도학회의 숙소인 여관 앞에 써져 있는 문구를 보자 잠시 멈칫했지만, 그녀의 이명이 무엇인가.
그녀의 이명인 더 크레이지란 말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베키의 광기에 가까운 열정…… 아니, 광기 그 자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애착은 마도학회의 권위도 막을 수 없었다.
사실, 그녀는 마공학을 하기 전 마도학회에 몸을 담고 있었기에 큰 거리낌도 없었고.
그렇게 미지의 마도구에 대한 호기심과 두근거림을 품은 베키는 여관의 문을 두드렸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살짝 괴팍하고, 꽉 막힌 부분도 있지만 그녀에겐 제법 친숙한 얼굴이.
그녀가 마법을 배우던 시절 친하게 지내면서 의지하기도 했던 로버의 얼굴이었다.
“어? 할아범이네? 잘 지냈지?”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쾅 닫히는 문.
누가 봐도 문전 박대를 당하는 상황이었지만, 베키는 로버가 왜 저러는지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다른 감정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역시, 내가 중간에 나간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렸구나. 할아범.’
길거리에서 떠돌이로 지내다 마법을 배우며 마도학회에 몸을 담았고 촉망받는 유망주로까지 거론이 되었지만 자신의 흥미를 위해 스승과 친구들을 두고 떠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가족처럼 지냈던 로버는 더욱 큰 배신감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나의 마공학에 대한 열정은 아무도 막을 수 없으시다고!’
베키의 이성은 로버에 대한 미안함이 차올랐지만, 그녀의 감성은 이성과 충돌했을 때 대부분 이기는 강한 감성이었다.
“뭐야! 할아범! 열어!”
쾅! 쾅!
거의 못 먹고 다녀서 허약하고 메말랐던 예전과는 달리, 영의 덕분에 생활 습관을 개선해 매번 식사를 챙겨 먹는 베키는 건강해졌다.
물론 작은 키는 어쩔 수 없지만, 지난번에 비해 적당히 살집이 올랐고 또 대규모 작업을 하다 보니 근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마공학자치고는 신체 능력이 상위권에 속하는 베키는 큰 소리가 나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큰 소리는 문뿐만 아니라 그녀의 입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이익! 문 열어! 야아!”
쿵쿵쿵쿵쿵!
베키가 열심히 두드리고 밀어 봤지만, 이미 문 뒤에서는 로버가 빗장을 걸어 잠그고 이런저런 물건을 받쳐 문을 막고 있었다.
“열어어어!! 이거 열라고!!”
마치 재난 상황에서 버림받은 사람처럼 세차고 간절하게 문을 두드리는 베키.
사실, 그냥 하늘을 나는 마도구였으면 그녀도 흥미만 솟는 선에서 그칠 뿐 이렇게 직접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마공학자들에게 전해 들은 바가 있었고,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잘 아는 사람일 것 같았기에 이러는 것이었다.
“열어! 내 친구랑 바이크가 이 나를, 베키 언니를 기다리고 있잖아아!!”
아니, 말하는 걸 보면 그냥 영의보다는 바이크가 더 중요한 것 같아 보였지만.
“이이익! 뭐 이렇게 튼튼해! 내가 바이크를 개조하려고 생각해 둔 게 얼마나 많은데!”
문을 두드리던 베키는 이내 다른 방법을 쓰기로 마음먹고 문에서 몸을 뗀 다음, 메고 다니던 배낭을 벗었다.
“할아범! 나 연장 쓴다! 다쳐도 몰라!”
그렇게 외치고는 배낭에서 무언가를 쭈욱 잡아 빼는 베키.
그녀의 손에 딸려 나온 것은 마치 금속으로 이루어진 구렁이처럼 생긴 물체였다.
그것의 끝에는 튼튼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집게가 달려 있었으며, 배낭과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베키가 배낭을 메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뜯어내고 들어간다!”
마치 위협을 하듯 그렇게 외치고는 문을 잡는 베키.
그녀의 배낭에서 삐져나온 금속 팔이 그 움직임을 돕듯, 문에 다가갔다.
콰드득.
문을 부술 듯한 기세로 꽉 움켜쥐는 금속 팔.
“부서진다!”
빠드득, 콰직!
베키의 금속 팔은 정말 그녀가 경고했던 것만큼 강하고 위험했다.
두꺼운 나무 문이 거의 반쯤 쪼개진 채 문틀에서 뜯겨 나와 바닥을 굴러다녔다.
경첩에 붙어 있는 나뭇조각만이 그곳에 나무로 된 문이 있었다고 짐작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여관 안으로 들어간 베키는,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친구와 만날 수 있었다.
“어, 베키?”
“와! 친구야! 역시나 여기 있었구나! 그런데 바이크는?”
친구인 영의 쪽은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고, 베키는 친구를 만났다는 기쁨인지 아니면 바이크를 만질 수 있다는 기쁨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쁜 듯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마도학회의 인물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일라이저와 친한 듯 대화를 나누었다.
‘하하하, 영감님 하하하.’
‘하하하, 이 친구 하하.’
그렇게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나타난 사람이 스승이자 자신들의 지도자인 일라이저와 친한 사이인 상황을 받아들이는 건 조금 힘들었지만, 못할 건 아니었다.
뭐 어디서 어떤 인맥을 만들어 오실지 모르니까.
‘똑똑.’
‘밖엔 아무도 없습니다.’
‘쿵쿵쿵.’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또 느닷없이 찾아온 방문객이 있었고, 누구인지 확인한 로버가 상당히 이상하게 반응했다.
‘쿵쿵쿵쿵!’
‘쾅! 쾅!’
‘뿌드득, 콰직!’
이내, 방문객이 문을 엄청나게 두드리더니 문을 아예 뜯어내고 들어왔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여관에 들이닥친 방문객은 험상궂은 괴한도, 적대적인 마법사도 아닌 예전에 함께 지내던 동문이자 후배인 베키.
‘와! 친구야!’
그것까지도 정말 어떻게든 이해를 하려고는 할 수 있었다.
베키의 괴팍함과, 로버와 베키의 관계는 아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오늘 처음 봤으며 일라이저와 제법 친하게 지내는 듯한 인물이 베키와 친구라는 것이다.
마도학회에서 베키와 면식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공통된 의문을 품었다.
‘그 베키가 친구라고?!’
사실, 특이한 사람들만 있다는 마법사들의 세계에도 최소한의 인맥이라는 게 있다.
동문이면 동문끼리, 적어도 선후배나 동기끼리 알고 지내고 어느 정도 친구라고 부를 법한 관계도 된다.
다만, 베키만큼은 조금 특이한 케이스였다.
처음에만 해도 마탑에 학문을 배우러 입문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마법 실력이 눈에 띄어 들어온 길바닥 출신의 마법사였다.
물론 그런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인물들도 보통은 경계를 허물고 마탑 내부의 인원들과 제법 친하게 지내려 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니, 어느 정도 본능에 의해서라도 친밀감은 형성하려 하는 것이다.
다만 베키는 그런 행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을 조금 배척하는 듯한 행동을 하던 베키.
특이한 사람이 차고 넘치는 마법사들의 세계에서 그런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간혹가다 한 명쯤은 나왔으니까.
다만, 베키는 그런 인간관계를 일절 끊고 살다가 마공학을 하겠다며 곧바로 학회를 뛰쳐나간 것이었다.
그런 베키가 친구를?! 그것도 일라이저 님과 친한 사람이?
사전에 마탑에서 둘 모두와 면식이 있었다면 말이 된다.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면 친분을 다지기에도 더 좋으니까.
다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마탑에서 상주하는 인원들.
심지어 베키와 함께 가르침을 받은 적 있는 인물들도 있었기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 말인즉슨, 따로 만나서 친분을 다졌다는 말이 되는 거다.
묘한 경의와 특이한 것을 보는 눈으로 영의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마도학회의 인원들.
그런 그들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채, 영의는 베키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우와! 맛있는 냄새! 잘 먹겠습니다!”
자신을 보고 반갑다는 듯 소리친 뒤, 고개를 두리번거린 다음 여관 안에 다소곳이 세워져 있는 바이크를 발견하자 눈을 번뜩였던 베키.
그러나 평소에 하던 것처럼 눈을 뒤집고 달려들지 않고 영의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피자를 발견하고 제멋대로 박스를 열었다.
참고로, 일라이저는 방금 전 소동이 일어나건 말건 베키가 오건 말건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그저 눈앞에 있는 반반 피자뿐.
“우와, 맛있다! 나한테도 이거 갖다 주지 그랬어! 다음에 하나 갖다 주라!”
베키는 피자를 한입 베어 물고는 영의에게 감탄 섞인 부탁을 하고 있었다.
무심코 그 말에 대답하려던 영의는 문득 베키가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아니, 너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아니지, 왜 여기 있는 건데?”
“우움, 나? 이애 보혀호 마옹하해 회앙이에(이래 보여도 마공학회 회장인데)?”
입에 피자를 넣고 우물거리며 대답하는 베키.
이런 모습만큼은 예전과 다를 게 없었다.
“하아. 다 먹고 말해. 다 먹고.”
영의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입을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베키.
“우움, 음.”
그렇게 열심히 피자를 먹는 일라이저와 베키를 보자, 마도학회 회원들도 조금씩 배가 고파지는 기분이 들었다.
꼬륵-
누군가의 배에서 울린 소리에, 무심코 침을 삼키기 시작하는 회원들.
그러나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눈치만 보기 시작했다.
“크흠. 큼. 일라이저 님이 식사를 하시는데 내가 눈치 없이 서 있었군그래!”
하지만 이 중에 단 한 명,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이가 있었다.
로버는 지팡이를 쓰는 노인답지 않게 힘찬 발걸음으로 탁자로 다가와 피자를 집어 들고 천천히 베어 물었다.
“으음, 음.”
이내 음미하듯 눈을 감고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하자, 마도학회의 회원들도 곧바로 움직여 탁자 앞에 착석하기 시작했다.
“크흠, 잘 먹겠습니다.”
“으음, 선배님이 참으로 맛깔나게 식사를 하시는군. 베키 녀석 때문에 잠깐 당황했지만, 본래라면 내가 했어야 할 일. 이것의 맛을 한번 보겠다.”
그렇게, 마도학회는 본래 먹을 예정이었던 식사를 피자로 해결하며 행복한 식사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