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3)
여관 앞에서 벌어졌던 소란은 영의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쉽게 진정되었다.
현대인으로서의 가치관을 가진 영의는 그런 소란이 있으면 사람이 몰릴 것이라고 생각했고, 공권력이 있는 누군가가 와서 중재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잠깐 시끄러워진 것 말고는 이내 다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를 비운 사람들에 신기함을 느꼈다.
사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마법을 쓰는 이들은 모두 어디 한군데가 이상하거나 신비한 면이 있었다.
길가에서 갑자기 명상을 하거나, 중얼거리며 바닥에 이런저런 문자나 수식들을 써 내려가는 기행을 종종 접하기 때문.
그리고 잠깐 무아지경에 빠져서 그런 기행들을 한 사람들도 사과하고 뒷정리를 하긴 했다.
물론, 언제나 그럴 거란 법은 없었기에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면 보상해 주도록 각 나라나 마탑별로 규율을 정해 두었지만.
아무튼 무슨 기행을 해도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준에 이르렀기에 일반인들은 금방 신경을 끄고 지나갔다.
마도학회와 신 마도학회 소속의 인물들은 일라이저의 적당한 상황 설명을 듣고 가던 길을 갔고.
다만, 마공학자들은 상당히 끈질기게 달라붙었기에 그들을 떼어 내는 데엔 제법 고생이 있었다.
“하, 한 번만 보겠-”
따악!
“나, 나는 나의 모든 걸 보여 주겠네! 대신 그 장치의 모든 것- 아니, 일부라도 보여 주게!”
따악!
질척하게 달라붙는 마공학자들을 쫓아낸 것은 젊은 축에 속하는 마도학회의 회원도 아니고, 영의도 아닌 의외의 인물이었다.
“어허! 가라, 가! 이 로버 님의 뜨거운 창술 맛을 보기 싫다면!”
앙상한 팔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온 건지, 마공학자들을 지팡이 한 대에 한 명씩 격퇴하며 수문장처럼 여관 문을 지키고 선 로버.
“크윽……! 두고 보자!”
“그래! 수많은 마공학자 동료들이 이곳으로 올 것이다! 저 장치의 비밀을 밝혀낼 때까지!”
아니, 어쩌면 마공학자들이 약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지팡이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는 다급히 뒤돌아 도망치며 악당의 졸개1 역할들이나 내뱉을 법한 대사를 외치는 마공학자들.
“하! 얼마든지 와라! 이 로버 님이 왜 백인장이었는지 보여 주마! 하하!”
도망치는 마공학자들을 바라보며, 로버는 지팡이를 땅에 쿡 하고 찍고는 기세등등하게 외치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여관 안에서 지켜본 영의는 마공학자들은 모두 허약한 신체가 기본 조건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베키도 그랬고, 지금 저기서 도망치는 몇몇 인물들도 로버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할 나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 상황이 진정되자 일라이저가 분위기도 환기할 겸,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꺼냈다.
“크흠, 그래. 마탑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거리가 조금 있었을 텐데 수고했네. 그런데 거기서 여기까지 온 것치고는 의외로 온기가 남아 있군?”
일라이저는 영의가 어떻게 알고 이곳까지 온 건가에 대한 생각도 있었지만, 마탑에서 이스데까지 그 먼 거리를 오며 어떻게 음식이 식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컸다.
일라이저의 마탑이 있는 도비데에서 이스데까지는 평범하게 마차로 올 경우 휴식 포함 이틀 거리.
날아온다 해도 따뜻한 음식이 온기를 유지할 거리는 아니었다.
영의는 일라이저의 그 질문에 사실 처음부터 여기로 올 예정이었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음, 어. 영업 비밀입니다.”
일단 뭐라도 말하려다 보니 영업 비밀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려 했다.
‘아, 내가 했지만 너무 대충 댄 변명인데? 씨알도 안 먹히겠네.’
그러나 그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은 변명은 의외로 통했다.
“으음, 그렇군. 비밀인가? 그럼 더 이상 묻지 않겠네.”
‘응?!’
일전에 이것저것 호기심에 가득 차 열정적으로 물어보던 일라이저의 태도를 생각해 보면,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는 게 이상해 보였다.
사실, 마도학에 몸담은 이들은 대부분 호기심과 탐구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게 이상했기에 질문에 대해서 부담감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상대가 밝히기 꺼리거나 밝혀졌을 때 불이익이 올 만한 것들에 대해서 묻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질문받는 이가 거절한다면 깔끔하게 납득해야 했다.
그런 상호 간의 예의가 이후에도 서로 질문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니까.
그러나 영의는 그걸 몰랐고, 일라이저가 너무 깔끔하게 물러나자 약간 의문스러웠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으레 그렇듯이 여기에 배달을 하러 왔고, 또 일라이저에게는 독고휘나 혁련무강처럼 조금 유감스러운 고수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었으니까.
‘약간, 교수직 하다가 은퇴한 노인을 보는 것 같단 말이지.’
자기가 하던 것만 아는 노인 같은 느낌의 독고휘와 혁련무강과는 달리 일라이저는 뭘 물어봐도 대답해 줄 것만 같은 현기가 느껴졌다.
“그럼, 드시죠.”
“고맙게 잘 먹겠네. 그보다 이만큼 가져온 건 내 제자들도 고려해서인가?”
일라이저는 자신의 앞에 놓인 피자 박스를 보더니 옆에 쌓인 14개의 다른 피자 박스에 눈길을 주었다.
“으음, 뭐 그렇죠?”
알림이가 말해 주는 대로 해서 손해 본 적이 없었기에 알림이의 말을 따랐다.
일전에는 알림이가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권왕과의 싸움에서 죽을 뻔한 걸 구해 준 이후로 믿음이 생긴 영의.
들어서 손해 볼 이야기는 해주지 않는 것 같았기에 영의는 알림이를 나름 친구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아, 친구라고 하니까 생각났는데. 베키한테도 가봐야 하는데? 이쪽 세계가 베키 쪽이랑 같은 곳이긴 한 것 같은데.’
바이크의 개조와 헬멧에 대한 약속이 있었기에 언제 한번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같은 곳이 맞습니다.]
‘맞아? 그럼 가는 길에 들러 볼까.’
영의가 배달을 끝내고 받을 보상을 챙긴 뒤에 베키를 만나러 갈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줄곧 가만히 있던 마도학회의 회원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 선배님은 언제나 저희가 예상하지 못하는 혜안과 통찰력으로 저희 같은 우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들은 나중에 큰 것이 되어 돌아왔고요.”
마도학회 회원들 중 일라이저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것인지, 민머리의 장년인이 말을 시작했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었다.
“으흠.”
“다만 이번만큼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단순한 질투나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가 예상되질 않는단 말입니다. 대체 언제 어디서 저런 인물을 만났기에 그렇게 친한 듯이 지내는 겁니까? 저랑은 말 트기까지 2년도 넘게 걸렸는데!”
중간까지는 가만히 잘 듣고 있던 마도학회 회원들도, 마지막 문장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깜짝 놀란 눈으로 장년인을 바라보았다.
“큼, 크흠. 로크, 나와 네 제자들도 있고 로버까지 있는데 그런 말은 조금…….”
“아니, 누가 안 억울하겠습니까! 누구는 정말 열심히 일해서 성과물 한번 슥 봐주는 것만 기대하는데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놈이 튀어나와서 엄청 친하게 대화하고 있는데! 나는 저런 거 못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투정에 가깝게 변해 가기 시작하는 말.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본심이 조금, 아니 상당히 섞여있었다.
마도학회 회원들은 로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건지, 부끄러운 건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먹을 것을 받다니! 저랑은 같이 밥 먹는 것도 싫어하시잖습니까!”
“아니, 그건 내가 바빠서 식사를 대충 해결하니까…….”
“지금은 안 바쁘지 않습니까! 물론 나중에야 바쁘겠지요! 연구 결과물 분석이랑 자료 정리랑 발표 준비까지 해야 하니!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영의는 뭔가 집안에 소홀하고 취미에 몰두하던 가장이 어느 순간 울분이 터져 화를 내기 시작한 아내의 푸념을 듣는 광경을 보는 것 같았다.
그 경우에서 취미 쪽에 해당하는 영의는 뭔가 자신이 잘못한 건 없었지만,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20여 분이 지났을까, 할 말을 모두 내뱉은 듯 입을 다문 로크.
로크는 모든 기력을 쏟아부은 듯, 의자에 털썩 앉았고 마도학회의 회원들과 일라이저도 로크가 침묵하자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자, 제자들. 그리고 마도학회 회원들. 식사나 하지.”
일라이저는 여관 안의 큰 탁자의 상석에 해당하는 자리에 앉아 양팔을 벌리며 그리 말했다.
그리고 그의 손짓에 따라 탁자 위로 주르륵 놓이는 피자 판들.
하지만 정작 자리에 앉아야 할 마도학회 회원들은 머뭇거렸다.
“음? 왜 그러나?”
“그, 사실 저희도 어느 정도 로크 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스승님의 뜻을 거스를 생각은 없지만, 요즘 신 마도학회의 움직임이 조금 수상하단 얘기가 있어서…….”
“네, 그 녀석들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 저희가 먹을 음식에 뭘 넣어도 이상하질 않아서…….”
마도학회의 회원들은 신 마도학회가 이번 연구 발표회 때 자신들에게 수작을 부릴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서로 치열한 물밑 견제를 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요즈음 신 마도학회의 움직임이 뜸해져서 오히려 수상해졌기 때문이다.
평소에 하도 치고받던 상대가 갑자기 침묵하고 소극적으로 변한다면 기회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수상하다고 여기듯이, 마도학회의 회원들은 더 불안하고 조심스러워졌다.
그런 이유로, 그들의 입장에선 낯선 이인 영의가 주는 음식은 못 먹겠다고 하는 것.
“으음, 일리가 있군그래.”
일라이저도 제자들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야 자주 봤고, 마탑에 직접 왔을 때부터 만나고 이것저것 교류하며 친해졌지만 이들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일단 먹여 보고 생각하기도 힘들 것 같고.
아니, 오히려 먹고 나서 영의에게 호의적으로 변하게 되면 더더욱 안 먹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방금 전 소란으로 인해 누구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여관의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쿵쿵.
“누구지?”
“아까 분명히 밖에 써놓지 않았나? 마도학회의 숙소라고.”
“발표회 관계자라면 마법으로 연락을 했을 텐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 여관의 안은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쿵쿵쿵.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지자, 로버가 나무 지팡이를 다시 들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흥! 허약한 마공학자 놈들이 왔나 보군!”
방금 전까지 신 마도학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신 마도학회의 인물이라 예측한 다른 이들과는 달리, 로버는 아까 쫓아낸 마공학자일 거라 예상한 듯했다.
“자, 잠깐-”
누군가가 로버를 말리려고 했지만, 로버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고 이내 여관의 문이 열렸다.
벌컥-
로버가 문을 열자, 바깥에서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할아범이네. 잘 지냈-”
쾅!
로버는 바깥에 있던 이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문을 세차게 닫고는, 이내 빗장까지 걸어 잠갔다.
철컥-
착!
로버의 행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옆에 있던 의자와 탁자까지 가져와 문 앞에 받치기 시작하는 로버.
드르륵-
턱!
“로버, 바깥에 누구였-”
일라이저가 방문자의 정체가 궁금해 물어보려 했으나, 로버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아무도 아니었습니다.”
쿵쿵쿵쿵쿵!
“글쎄 누구-”
“없습니다. 그런 꼬- 아니, 사람.”
그러나 로버의 말과는 달리, 방문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계속 표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