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2)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마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과제를 하는 대학생처럼 다급한 표정을 지은 채 거리를 뛰어다니는 사람들.
그들은 마치 중세 시대의 유럽을 연상케 하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도로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서둘러! 마도학 성과 발표회가 내일이다!”
마법 협회 주관 성과 발표회.
폐쇄적이고 은밀한 마도 연구 특성상 연구 도중에 연구자가 돌연사를 하거나 해서 연구가 중단되었을 경우, 그것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으면 연구의 맥이 그대로 끊긴다.
그래서 자신들의 연구가 조금 유출되는 한이 있더라도 보존과 혹시 모를 유실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발표회.
말이 발표회이지, 실제로는 거의 성과 자랑과 제자 모집, 공동 연구 제의를 하는 일종의 학술회에 가까웠다.
그러나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것이 세월이 흐르며 마도학의 연구 분파 분열과 한정된 지원 쟁탈 싸움, 그리고 여러 이권 충돌이 벌어지며 경합전에 가깝게 변해 버렸다.
그리고 이번 발표회에 참여하게 된 일라이저와 그의 마탑 소속원들, 그리고 과거 그의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
발표회는 아리안델 내의 대형 도시, 이스데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이스데는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로, 도시의 명물로는 마공학자 베키의 발명품들과 그녀의 흔적이 가득한 도시 밖 평원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이스데에 각국의 마도사들과 제자들이 몰렸으며 그 외에 마법과 관련된 직종의 인물들도 모여들었다.
그런 각양각색의 참여자들 가운데에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신 마도학회.
대마도사 일라이저를 주축으로 정통성 있는 마도학을 추구하는 마도학회와 달리 이런저런 기술을 도입하여 다른 방향으로의 발전을 꾀하는 마도학 분파였다.
물론, 여기까지만 보면 발전과 창의성을 생각해 보는 신세대 학파 같겠지만 그들의 목적은 마도학의 발전이 아닌 새로운 기술 도입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학문에 뜻이 있다기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거나 재능이 흥미보다 앞섰던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나름의 실력은 있어 위세가 제법 있었으나, 오랜 전통의 마도학회와 맞서기에는 아직 모자란 감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대마도사 일라이저.
신 마도학회는 여러 기술로 다양한 발전을 할 수는 있었으나 하나에 몰두하는 인간들의 광기와도 같은 집착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더더욱 이문과 다른 방향으로의 성과에 더더욱 눈독을 들이며 여러 감정을 품게 만들게 했다.
그렇게 분주한 이스데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탄성을 내뱉는 이가 있었다.
“와, 엄청난데? 축제라도 하나?”
광장에 설치되기 시작한 거대한 단상과 이곳저곳에 걸리기 시작한 장식물들, 말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었지만 도시 안팎을 분주히 오가는 수많은 마차들.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이 풍경과는 명백히 이질적인 기계장치처럼 보이는 무언가들까지.
흔히 떠올릴 법한 판타지스러운 광경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현대 관광지 같아 보였다.
곳곳에 필요한 기계나 현대 문명은 남아 있지만, 과거의 모습만은 재현하려 한 그런 모습.
영의는 공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구경을 하다 문득 이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 맞다. 나 배달 온 거지 참.”
그의 등 뒤에는 층층이 쌓여 온기를 간직하고 있는 피자의 탑이 있었다.
시간제한이나 이런저런 조건이 없고 익숙해져서 그렇지 이것도 엄연한 배달이었다.
“알림아, 마도사 영감님 위치 좀 띄워 줘.”
영의의 말에 충고와 함께 지도를 표시해 주는 알림이.
[알겠습니다, 사용자. 참고로 내려가실 때에는 충분히 감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추가로, 도심지에 그대로 내려가는 것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뭐 하루 이틀도 아닌데 걱정은. 여긴 저런 게 많아서 좋잖아?”
[무엇이. 말입니까?]
영의의 말에 의문이 생긴 듯 묻는 알림이. 지금까지 어지간해서는 영의가 묻고 알림이가 알려 주는 식이었지만 드물게도 그 관계가 잠깐 뒤집혔다.
“저런 것들. 막 말없이 다니는 마차나 바닥에서 조금씩 둥둥 떠서 다니는 작은 수레들. 내 바이크도 별로 의심은 안 받을 거 아냐?”
아래쪽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사용하는 수레들과 도시를 오가는 마차들이 있으니 바이크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바닥과의 접촉이 없고 이동 시 소음이 적다는 것을 제외하면 둘의 공통점은 멸치와 고래 정도의 차이입니다.]
알림이는 영의의 말을 지적해 주었다.
마정석 바이크와 저런 조잡한 것들은 달라도 한참은 다르다고.
그러나 영의는 알림이의 신랄한 말에도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 하나는 있다는 거네?”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단 말입니까?]
알림이가 진심으로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영의에게 묻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그 둘 사이에 공통점?
“둘 다 물에 살긴 하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조금 범위가 너무 큰 게 아닐까?
[그 대전제의 공통점이 바닥과의 접촉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용자.]
“아, 하나 더 있다.”
[이번엔 둘 다 어류라고 하실 겁니까? 고래는 사용자의 학문 기준상 포유류입니다.]
“아니, 어지간해선 그 둘 다 물속에서 살아 있는 건 잘 못 본다는 거?”
영의의 말에 알림이는 잠깐 침묵했다.
[……맞는 것 같군요, 사용자. 저의 비유가 틀린 것 같습니다.]
“음, 그래도 전문적인 사람이 아니면 둘의 차이는 못 알아본다는 거지?”
[그건 맞습니다. 다만, 지금 목적지 부근에는-]
“그럼 됐어, 베키만큼 이상한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나 붙잡고 뭐 물어보진 않겠지.”
영의는 어차피 일반인들이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냐는 생각으로 최단 경로를 따라 땅에 내려갔고, 그곳은 한 여관 앞이었다.
그리고 영의가 몰랐던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지금 이곳엔 그 전문적인 사람들이 가득하단 것이었다.
정통 마도학을 파고드는 이들에게는 영의의 마정석 바이크가 괴짜들인 마공학자들의 것으로 보였을 것이고, 신 마도학파에서는 정보에 없던 의문의 신인의 등장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괴짜들로 유명한 마공학자들은…….
“이보게! 거기 친구! 잠깐 서보게!”
“젊은이! 실력이 대단하군! 어디, 작품도 대단한지 한 번만 보여 주지 않겠나?”
“우오오! 폭발하지 않으면서 저만큼 깔끔한 마감이라니! 분해, 분해를 해보자!”
영의가 바닥에 내려서기 무섭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뭐, 뭔데?!”
영의로서는 관심이야 받겠지만 큰 문제는 없겠다 생각하고 내려선 것이었으나, 내려서자마자 돌아온 건 예상외의 시선들과…… 돌격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열 명 있다면, 두 명은 처음 보는 걸 봤다는 것처럼 신기하게 바라봤다.
세 명 정도는 못마땅하게 보고 있었지만, 그래도 신비함을 감출 수는 없는지 시선이 떨어지진 않았다.
네 명쯤이 약간 경계하듯 쳐다보더니, 이내 발걸음을 빠르게 옮겨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리고 남는 한 명에 해당하는 이들은…… 인파를 헤치고 급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냥 다가오는 거면 큰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여기에 뭘 놔두면 안 된다느니,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냐느니 그런 질문을 할 법했으니까.
다만, 다가오는 사람이 눈에 불을 켜고 광기 가득한 말을 쏟아 내며 품속에서 이런저런 공구들을 꺼내 든다면 그건 그 순간부터 공포다.
“오, 오지 마!”
영의는 뇌기를 일으켜 위협하듯 소리쳤지만, 이미 광기로 변질해 버린 마공학자들의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걱정 말게! 잠깐만 살펴보겠네!”
“히히! 분해도! 분해도를 보자!”
“결합이 약한 곳은 어디냐!”
그들의 광기 어린 모습에서 순간 바이크를 개조할 때의 베키를 떠올린 영의는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말 안 통하고 기계에 집착하는- 예전 개조할 때 바이크한테 말 걸던 베키 같은 모습은, 마주치지 않는 게 답이다!
그렇게 다급히 공중으로 도망가려던 그때, 거리를 진동시킬 만큼 큰 목소리가 울렸다.
“누가 이리 소란스러운 것인가!!”
그 목소리에는 단순히 위압감이나 카리스마와는 다른, 실제로 작용하는 힘이 담긴 듯 여관 주변에 있던 모든 이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크윽!”
“분해…… 분, 해를……!”
“히, 히! 베키도 궁금해할 거라……. 크헉!”
모든 이들이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것은 영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어째서인지 다른 이들과는 달리, 못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저 몸이 무겁게 느껴졌을 뿐.
벌컥-
여관의 문이 열리고, 로브를 입은 여러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감히 누가 배짱 좋게 마도학회의 숙소 앞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거냐!”
“신 마도학회의 앞잡이인가!”
그리고 그들의 뒤로, 한 노인이 손에 나무 지팡이를 들고 달려 나왔다.
“어떤 놈이 일라이저 님을 방해하려 하는 것이냐! 이 백인장 출신 로버 님이 뜨거운 맛을 보여 주마!”
영의는 저 노인이 눈에 익었다.
일라이저를 만나기 위해 마탑에 갔을 때, 처음 본 이가 로버였기 때문.
처음에는 그를 일라이저로 착각했으나 나중에 일라이저에게 얘기를 들어 보니 마탑의 청소부 겸 관리인 역할을 맡고 있는 노인이었다.
그런 로버가 말하는 기세는 좋았으나 하필 그때 바람이 불어 그의 옷자락이 날렸고, 옷 아래에 감춰져 있던 앙상한 팔이 드러났다.
뜨거운 맛이 아니라 미지근한 맛일 것만 같은 그 모습에 영의는 그만 웃음이 터졌다.
“푸흡!”
그리고 그 웃음소리를 놓치지 않은 마도학회의 인원들.
“누구야!”
“누가 웃음소리를 내었어!”
마도학회의 사람들은 웃음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조금 느릿하지만 몸을 움직이고 있는 영의가 있었다.
“저놈이구나! 거기 딱 기다리고 있어라! 나의 창술을 보여 주마!”
로버는 나무 지팡이를 붕붕 휘두르며 영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지만, 인외의 괴물에 달하는 노인들만 만나고 다녔던 영의로서는 저런 평범한 노인이 오히려 반가웠다.
그래서 적당히 지팡이 정도만 막으려고 하던 그때, 영의가 찾던 인물이 누군가와 함께 여관 밖으로 걸어 나왔다.
“크흠, 분명히 내가 아는 이가 온 것 같다고 하지 않나.”
자주 봤고, 또 그만큼 친숙한 일라이저가 나왔고 그 뒤를 따라 머리숱이 없는 장년인이 나왔다.
“하지만 선배님, 신 마도학회가 수작을 부린 거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그러니까 내가 직접 확인해 보겠다는 거지.”
일라이저의 말에 감동받은 듯 눈가를 훔치는 장년인.
“크흑……! 역시 선배님은 대단하십니다! 솔선수범하는 그 행동력!”
장년인이 이러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닌지, 일라이저는 난감해하거나 당황하지도 않고 태연하게 고개를 돌렸다.
“어디…… 아! 저기 있군. 이번엔 조금 요란하게 왔군그래?”
“저도 이럴 줄 몰랐죠. 왜 평소처럼 마탑에 안 계셨던 거예요?”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해 주지. 늘 가져오던 것 맞나?”
“네, 아주 한 보따리를 싸왔으니까 나눠 드시죠?”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는 영의와 일라이저, 그리고 그 광경을 눈을 크게 뜨고 보는 주변인들.
그렇게 영의의 피자 배달은 상당히 소란스럽게 성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