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1)
한국에서 일어난 각성자 아카데미 습격 사건은 큰 피해를 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여파가 작은 것도 아니었다.
국제적인 범죄자 거물들이 여럿 모습을 드러냈고, 그중에 한 명인 모스코는 체포당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각국의 수사기관들은 한국으로 인원을 파견 보내는 한편, 어째서 한국이었을까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권왕이 나오기까지 했음에도 지면의 손상이나 몇몇 차량 및 구조물 파손 같은 극미한 피해로 끝난 아카데미 습격 그 자체를 막아 낸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의문의 전격 계열 각성자.
사실 전격 계열이란 것도 화면을 보고 추측하는 것에 가까웠다.
보이는 것은 전격 계열 능력이지만, 몸놀림은 강화 계열 못지않게 재빠르고 간결했으니까.
가장 특이한 것은, 정체가 도저히 짐작되질 않는다는 점이다.
추정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강력한 각성자들은 이미 길드나 정부에 협력하고 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행적 정도는 밝혀져 있다.
처음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모두 영상 속의 인물을 보고 각국의 유명한 전격 계열 각성자를 거론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인도의 인드라, 영국의 토르, 미국의 썬더볼트나 일본의 라이진일 거란 예측이 가장 많았고 그 외에 전격 능력을 가진 장비를 활용한 강화계일 거란 추측들이 난무했다.
그러나 그 모든 추측들은 앞서 언급된 인물들이 속한 길드에서 내건 공고에 묻히고 말았다.
[한국에서 출현하였던 의문의 영웅에게 초대장을 보냅니다.]
정중한 초대로 시작되는 공고들은 모두가 사전에 협의를 하고 작성한 듯 내용이 한결같았다.
-당신의 활약을 보았고, 그 실력에 놀랐다.
-그리고 어째서 숨어 있었던 건지 몰라도, 우리와 함께하면 정체를 안 들키게 해줄 수도 있다.
-우리에게 그 힘만 빌려줄 수 없겠는가? 대가는 지급할 것이고, 대우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내용이 이어진 뒤, 모든 길드가 각자 자신의 길드로 오라는 내용을 담은 공고를 각자의 홈페이지나 SNS, 광고 매체 등에 게시했다.
그에 편승하듯 각국 정부도 똑같이 행동했다.
다만, 각 정부들의 방식은 기업의 방식을 쓰는 길드처럼 인재영입 시도 같은게 아니라 일종의 귀화 장려에 가까웠다.
사실 저러한 것들은 매너가 아니었다.
어지간해서 다른 나라의 각성자들을 빼가는 것은 산업스파이처럼 여겨졌고, 또 소속을 함부로 옮겼다가 어떤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 다수가 자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각 나라나 길드들도 그걸 알았기에 최대한 대우할 만큼은 해주었지만.
그러나 이번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숨어 지내던 인물이었고, 불의를 보자마자 곧바로 나섰기에 눈에 띄기는 싫어하지만 힘을 쓰는 데에 주저함은 없는 인물이란 이미지가 굳어진 것.
그런 부류의 정체를 숨긴 히어로 같은 데에 열광하는 미국과 일본이 특히 더 열성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러브 콜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대중적인 관심은 줄어들었으나 각 수뇌부의 인물들은 더더욱 관심이 갔다.
미국의 대형 길드, <패트리어트>에서는 정부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이래도 모습을 안 드러내는 걸 보면, 범죄자인가? 그렇다면 사법 거래를 제시해 보면……!’
반면 똑같은 미국이지만 정부와는 노선을 달리하는 <히어로즈>.
그들은 사설 무장 기업에 가까운 패트리어트와 달리, 사기업에 가까웠기에 조건을 더욱 올렸다.
‘범죄자였으면 저 상황에서 나오지 않았을 거다. 틀림없이 숨어 지내는 히어로일 거야. 조건을 더 올려 보자.’
그리고, 일본의 길드 <부시도 스피리츠>에서는 더더욱 찬사를 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주인공은 힘을 숨기는 법이지, 그리고 위기가 닥쳤을 때 힘을 보이는 거야! 뭘 좀 아는 인물인 것 같다.’
그러나 각성자 세계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은 그런 상황을 알지 못했고, 그것은 영의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서로 간의 경쟁만 과열되기 시작했다.
인도, 델리.
델리와 뉴델리를 모두 거쳐 흐르는 야무나 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사내가 있었다.
웃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에 남자는 그의 양팔에 있는 금강저 문신과 등에 새겨진 만다라 문신이 있는 몸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사내의 뒤로 천천히 걸어오는 양복 차림의 한 남자.
“무슨 일이야? 오늘 할 일은 다 했을 텐데.”
남자는 누군가 다가오는 걸 미리 알아챘고, 심지어 그게 누군지도 아는 듯 친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확인차 물어보러 온 거지. 정말 모집 안 해도 돼?”
양복 차림의 남자는 아스트라 길드의 부마스터, 찬드라였다.
본명은 그게 아니었지만, 길드원들 모두와 길가의 아이들까지 그를 찬드라라고 불렀다.
“안 해도 된다. 본인이 마음이 있었다면 지원을 했겠지. 너도 이리 와서 강물이나 바라봐라.”
“나 참, 난 너랑 다르게 할 일이 많아, 인드라. 자꾸 그러면 내일 결재 서류를 한층 더 쌓아 버리는 수가 있어.”
강 앞에서 앉아 있던 사내는 전격 계열로 세계에서 유명한 아스트라 길드의 마스터, 인드라였다.
“미안하군. 그럼 다시 가서 내일 나의 결재 서류를 줄여 주지 않겠나?”
“너, 언제까지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뭐, 어떤가? 우리에겐 내일이란 게 있으니 괜찮지 않겠나?”
“쯧, 어쩌다 저런 녀석이랑 같이 일을 시작해서는…….”
찬드라는 투덜거리면서도 그리 싫지 않은 기색으로 자리를 떠났고, 인드라는 아까 하던 것처럼 다시 강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영국, 런던.
사우스 켄싱턴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두 명의 남성이 전시장 안의 전시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볼 때마다 참 웃긴단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이 안에 든 돌들. 경도는 화강암이나 다른 것에 비해 나을 게 없는 것들도 아름답다거나 희소하단 이유로 이렇게 전시되잖나.”
“아. 그런 겁니까. 뭐, 구하기 쉬운가 어려운가는 둘째 치더라도 보는 것만으로 묘한 끌림이 생기지 않습니까?”
두 남성은 방금 전까지 비를 맞기라도 한 듯, 물방울이 맺혀 있는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하긴, 나도 어릴 때엔 레이캬비크 앞의 바다에서 예쁜 조약돌을…… 크흠, 아니. 도버였나? 그쪽 바다에서 예쁜 돌들을 찾아다니곤 했었지.”
어릴 적의 추억을 꺼내다 급히 장소를 고치는 남성.
“괜찮습니다. 당신의 과거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까요.”
“크흠, 무슨 소리인가? 나는 영국에서 나고 영국에서 자란 영국의 신사이네만.”
남자의 시치미에 다른 남성은 익숙하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후우, 네. 그런 것으로 합시다. 햄스워스 경.”
“가능하다면 오딘의 아들이자 천둥의 신이며 영국의 귀족 작위를 가진 햄스워스 가문의 토르 경으로 불러 주겠나?”
남자는 이 말에는 대꾸도 하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만 가시지요. 매번 런던에 올 때마다 박물관에 꼭 들렀다 가는 건 좋지만, 거기에 동행해야 하는 제 입장도 생각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기, 기다리게. 아직 저쪽은 못 봤네만-”
햄스워스 경이라 불린 토르는 앞서 나가기 시작한 남자를 급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미 전시 번호도 다 외울 만큼 많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어울려 드렸으니, 당신도 저한테 좀 어울려 주시지요.”
“어허! 귀족한테 못 하는 소리가……!”
토르가 뭐라 하려 하자, 발걸음을 멈추고는 곧바로 뒤돌아서 토르를 노려보는 남자.
“그럼 저도 직장 때려치우겠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냐고 한 소리 듣고 싶으신지요?”
“크흠, 가지. 뭐 하나? 안 따라오고?”
토르는 남자의 말에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자신이 성큼성큼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 출신 티모르 호베르센, 그는 현재 영국 국적의 토르 T.H. 햄스워스란 이름을 가지고 토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본인은 스스로를 영국인으로 여기고 영국 출신인 것으로 만들려 하지만 주변인들의 반응은 싸늘하다고밖에는 못 하겠다.
일본, 신주쿠.
국토가 좁고 도심지가 발달한 일본의 특성상, 가게라는 것은 골목이나 건물의 한구석, 심지어 지하에도 생겨나고 발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 주는 듯, 지하에 존재하지만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는 한 음식점.
평소에는 오픈 전부터 줄을 설 만큼 북적이고 인기 많은 가게였으나 오늘은 손님이 없었다.
가게 안에는 직원들과 단 네 사람만이 존재했고, 그 네 사람은 각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진짜 너 아니지?”
무릎이 늘어난 운동복 바지에 때 탄 회색 후드 집업을 입은 한 청년이 태블릿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니라니까!”
그리고 청년에게 날카롭게 소리치는 한 여성.
“혹시 모르지. 너도 모르는 네 안의 히어로 본능이 깨어난 걸 수도 있지! 한번 봐봐.”
청년은 여성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태블릿을 들이밀며 계속 말을 걸었다.
“아니라고, 아니야! 아니라니까!”
여성은 세 번이나 부정하며 소리 질렀다.
“쓰읍, 키나 체형을 보면 너 같은데…… 진짜 아니야?”
“아냐! 난 그날……!”
여성은 뭔가 말하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침묵했다.
“이것 봐, 말하려다가 자꾸 입을 다무니까 더 의혹스러운 거야! 그냥 아니라고만 말해도 됐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니까 내가 더 궁금해지는 거라고!”
“너 진짜-!”
여성의 인내심이 마침내 한계에 다다른 듯, 청년에게 손을 뻗었으나 그 손이 청년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그만. 우린 식사를 하러 온 거지 그런 대화를 하러 온 게 아니다.”
“아, 대장! 료가 화나게 하잖아!”
대장이라 불린 남자는 긴 머리를 뒤로 묶어 정리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마치 흔히 창작물에서 나오는 사무라이를 연상케 했다.
“그렇다면 네가 지난 금요일에 뭘 했는지 얘기해 주면 되는 거다. 료도 그것만 알려 주면 얌전해질 거고.”
늘어진 옷차림을 한 청년의 이름은 료. <부시도 스피리츠> 길드의 간부 중 한 명이었다.
“윽, 그건…… 대, 대장도 알잖아. 내 취미.”
“그래, 우리 모두가 알지. 하지만 료는 다이카 네가 직접 말하는 걸 듣고 싶어 하는 듯하다만?”
여성, 다이카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 우물쭈물하더니 이내 입을 다물었다.
“흠, 역시 아직 정신 수양이 부족한가.”
팔짱을 끼며 다이카를 쳐다보는 대장.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지! 정신력이랑 수치심이랑은 별개의 거라고!”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무사의 강인한 정신력이 있다면 수치 따위 아무렇지 않다!”
대장은 무사의 정신력에 대해 열정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에이 씨, 자꾸 그러면 나 탈퇴할 거야?”
빈정이 상한 다이카가 탈퇴를 거론하자, 료가 반쯤 놀리는 어투로 말했다.
“그 어디에도 성질 나쁜 라이진을 품을 길드가 없어서 흘러온 곳이 여기 아니던가?”
그리고 료의 그 말에 삿대질하며 소리치는 다이카.
“료, 그 입 닥쳐!”
“에- 그 엡 닥쪠-”
“둘 다 그만. 음식이 나온다.”
그들이 주문한 규카츠가 나오면서, 그들의 다툼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그들 셋이 떠들고 난리를 피우는 동안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한 명은 계속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