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24)
서울 구치소.
이른 아침부터 구치소의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젊은 청년에서부터 나이 든 어르신들까지 다양하게 모여 있었고, 그들은 모두 손에 봉지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구치소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아빠!”
“여보!”
“형님!”
“아이고 이놈아!”
각양각색의 호칭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며 자신이 찾던 이에게로 몰려가는 사람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각자 찾는 사람들을 찾아 가지고 있던 두부를 주었다.
“천천히 먹고. 뭐 먹고 싶은 건 없어요?”
남편인 듯한 남자에게 다정히 묻는 여성도 있었고.
“아이구, 이놈아. 뭐 하러 남의 것에 손을 대가지고…….”
“죄송해요, 아버지.”
“아니다, 됐다. 너 좋아하는 냉면 먹으러 가자.”
아들을 혼내는 동시에 걱정하며 챙기는 어르신도 있었으며.
“차 준비시켜라. 고기 먹으러 가자.”
“예!”
양복을 차려입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까지.
대부분이 각자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떠나갔고, 몇몇 혼자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혼자인 걸 알았기에 가족이 찾아온 이들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이내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가족이 있지만 혼자라고 생각하는 한 남자, 지석은 그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후우, 특사로 나와서 다행이야. 혼란스러울 때 특사로 내보내 주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들 대부분은 구치소에 있었으나 갑작스럽게 내려온 특별사면령을 받아 구치소를 나온 이들이었다.
갑자기 사면령이 내려온 이유에 대해 명확히 알려진 것은 없었으나 표면적으로는 죄질이 가볍기에 사면을 해주는 것이라 밝혔다.
그렇다면 형무소에 대해서는 왜 사면된 인원이 없는가 하는 여론도 생겨났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잠잠해졌다.
그렇게 홀몸인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타러 걸어가던 남자는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아빠!”
아내가 떠나고, 혼자 뒷바라지를 하며 키운 자식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의 아들과 딸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그래, 애들이 와줬구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두 남녀가 보였다.
“얘들아! 안 와도 됐을 텐데, 굳……이?”
지석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하려던 말을 끝맺지 못했다.
옛날부터 배움은 짧았지만 그래도 손재주는 있어 이런저런 기술을 배워 먹고살다 각성자까지 되었다.
직접적으로 강해지는 강화계나 마법 같은 행위를 하는 속성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보조계로 뭉뚱그렸지만, 그중에서도 메이저한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긴급 후송이나 정말 급한 배송을 할 때 쓰는 공간 이동 능력의 각성자들이나 그보다는 못해도 틈새시장으로 배달업에 간 기승 계열 능력자들.
그리고 잘만 하면 강화 계열이나 속성 계열보다 더 번다는 강화, 제작 계열 각성자들이 있다.
그 말석에서 보급형 장비를 하나씩 만들던 그는 야심 차게 사업을 해보려다 사기를 당하고, 결국 불법 장비 개조를 하다 체포당했다.
그랬기에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구치소에서도 굶고 다니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봄이라고는 해도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고, 지석은 추위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과 딸은 손을 흔들며 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 산 듯 때 하나 타지 않은 패딩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작은 쇼핑백까지 들고 있었다.
“아빠! 두부, 두부 먹어야지!”
“아니지, 멍청아. 고기 먹으러 가야지! 안쪽에서 못 먹은 단백질 보충하러!”
옷차림은 둘째 치더라도 아빠를 만난 것이 매우 기뻐 보이는 그의 쌍둥이 아들과 딸.
“뭐래, 콩에 단백질 엄청 많거든? 일단 나왔으면 두부부터 먹는 게 맞아!”
오빠를 나무라듯 소리치는 여동생, 유경은.
“식물성 단백질이랑 동물성 단백질이랑 같냐? 헬스하는 사람들이 왜 닭 가슴살을 선호하겠어? 그러니까 고기를 먹는 게 맞지.”
그런 동생에게 되받아치는 오빠, 유경현.
두 남매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라도 지석은 아무 말이나 해야 했다.
“얘들아, 아빠 없는 동안 잘 지냈어?”
그리고 지석의 그런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남매.
“아빠! 들어 봐, 있지. 엄청 대박이야!”
무언가 엄청난 소식을 전하려는 듯 한껏 과장된 태도와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하는 경은.
“누가 아빠 물건 사갔어. 두 개 다.”
그러나 경은의 준비가 무색하게도, 경현이 나머지 부분을 말했다.
“물건? 무슨 물건?”
“아, 그 왜. 아빠가 만든 각성자 장비들 있잖아. 그거 철관 삼촌이 백화점에 찔러 넣었거든. 근데 그게 팔렸대.”
“뭐?”
사실 영의도 모르고 지석의 가족도 모르는 일이었고, 심지어 저 물건을 넘긴 철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석이 만든 장비가 철관의 손과 개인적 인맥을 거쳐 들어간 백화점에서 영의에게 팔릴 거라고는.
실제로는 백화점에 납품한 시점에서 대금을 받았어야 정상이지만, 백화점으로서도 언제 팔릴지 모르는 장비를 돈 주고 사오는 건 손해 아닌가.
그래서 각성자들의 장비는 직거래 또는 판매 대행의 개념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제외하고는 전부 거래 성사 시에 제작자나 원 판매자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구조로.
즉, 지석이 만든 물건은 용산에서 가게를 하는 철관에게 넘어간 뒤 철관이 다시 백화점에 판매하는 물건으로 끼워 넣은 것.
현시점에선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지만, 덕분에 지석의 가족은 그가 구치소에 들어간 이후에도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었다.
아니, 더 풍족하게 살았다.
아직 정황을 자세히 모르는 지석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철관이가?”
별 직업 없이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던 시절 용산에서 함께 일을 하던 오랜 친구 사이였던 철관에게 고마움이 솟아났다.
“응. 삼촌이 감정하고 가격 좀 더 올려서 백화점에 찔러줬대. 그리고 고마우면 그런 거 몇 개만 더 만들어서 싸게 팔아 달라던데?”
그리고 그때, 지석은 또 다른 의구심이 피어났다.
‘근데, 뭘 얘기하는 거지?’
만들어 둔 게 한두 개도 아니고, 그때그때 떠오르면 만들고 아니면 말았기에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업 준비에 매진하느라 사업 아이템을 제외한 것에는 소홀했기도 했고.
‘일단, 내일 철관이한테 찾아가서 얘기를 좀 해봐야겠다. 일자리도 알아봐야 하고…….’
지석은 그렇게 의문을 품은 채 아들과 딸에게 팔을 한쪽씩 붙들려 끌려가듯 구치소에서 떠났다.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의 터미널.
한 젊은 남성이 선글라스를 쓴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그래요. 조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음, 그렇군요. 의외군요? 이렇게 효과가 금방 나타날 줄은.”
남성은 상당히 큰 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으나 주위를 지나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에게 눈치를 주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배려하듯 옆으로 지나가거나 아니면 아예 그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까지 했다.
“음, 그렇다면 일단 보고는 계속 해주시죠. 다른 방법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내 통화를 끝내고 다 마신 음료수 캔을 버리듯 사용했던 휴대전화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남자.
“참, 이상한 나라군요. 수뇌부는 뇌물이나 협박이 잘 먹히는데, 정작 아래쪽 실무진에서는 그게 불발이 났으니.”
남성의 정체는 바로 파렌하이트.
그는 신분과 입국 방식 자체에는 결함이 없었기에 이렇게 여유롭게 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타깃이 알아서 석방되었다니 우리로선 좋은데, 좀 더 까다롭게 됐군요. 가족이라…….”
파렌하이트는 오늘, 구치소에서 나온 유지석을 노리고 있었다.
‘대체 어째서 상부, 아니. 대장님께서는 그런 남자를 노리는 거지? 각성했단 것 외에는 그 어떤 특이 사항도 없는 평범한 기술자일 텐데.’
그가 몸담은 조직은 평범하지 않았다. <죽음으로 가는 빛>이란 이름을 달고, 이런저런 테러 행위나 암살 등을 주로 해왔으니.
거기까지면 그냥 범죄 조직으로서의 모습이었지만, 여러 가지로 특이했다.
한 명만 있어도 국제적으로 공조수사가 진행될 인물들을 모아 두고는, 팀을 짜서 작전에 투입할 정도로 인적, 물적 자원이 넉넉했다.
‘한 번도 자금을 얻기 위한 활동을 한 적도 없는 것 같고, 활동의 방향성을 보면 스폰서가 있는 것도 아니야.’
과거, 그와 권왕이 뒷세계에 몸을 담자 곧바로 스카우트가 온 것을 보아하니 정보력도 생각 이상인 것 같았다.
‘아니, 내 정체를 알고 있던 시점부터 보통이 아니었지. 우리가 몸을 숨긴 은신처를 찾진 못했지만, 자금을 얻으러 왔을 때 파드레…… 그 괴물 같은 영감이 접촉해 왔었다.’
파렌하이트는 공항의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는 고민을 해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이런 뒷세계 조직에 구리지 않은 게 어디 있겠냐 싶은 생각으로 넘기거나 다른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파드레의 면담과 그때의 대화가 마음에 걸렸다.
‘도덕,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지.’
이런 질문들을 한 의도는, 배신을 우려한 사상 검증의 일환이 아닐까 싶었다.
파드레는 늘 웃는 인상을 하고서는 그 주름지고 늙은 손으로 그의 동료들을 주살한 이였으니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복수는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 목숨을 이어 온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던 그때, 공항의 내부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10시 30분에 출발하는 싱가포르행 EDD 108기의 탑승 수속이 7번 게이트에서 진행될 예정이오니…….
싱가포르는 그가 가야 할 목적지였기에 생각을 멈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일단 내가 할 일부터 해야겠지.”
파렌하이트는 마음속에 작은 불안감과 의심을 남겨 두고는, 7번 게이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가 자리에서 떠나가자마자, 이내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다니던 여행객들이 그가 앉았던 벤치로 와 앉았다.
“어후, 좀 앉아서 쉬자.”
“그래, 그러자.”
누가 봐도 관광객인 듯, 기념품으로 보이는 티셔츠를 입고 선글라스까지 챙긴 여행객들.
“어?”
“왜? 뭐 때문에 그래?”
그들 중 한 명이 앉자마자 갑작스럽게 주변의 벤치들을 둘러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내 자리가 따뜻해서.”
그 말에 그 자리에 손을 대어 보는 일행들.
“정말? 진짜네?”
“일본은 공항 의자도 온열 기능이 있나 봐.”
옆에 있는 다른 의자들에도 손을 대보았지만, 서늘한 감촉만이 느껴졌다.
“근데 내 의자는 안 그런데?”
“중앙에 있는 이것만 그런가?”
“누가 앉아 있어서 그런 거 아냐?”
“아니야, 분명히 아무도 없는 자리여서 여기 온 거잖아. 너희도 여기가 비어서 이쪽으로 같이 오자고 해놓고는.”
“그래, 그건 그랬지.”
“충전기가 있는 의자들도 있는데 뭐, 이 정도야 있을 법하겠지.”
“어? 이제 보니 내 의자도 좀 따뜻한 것 같기도?”
그렇게 관광객들은 이곳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자신들끼리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