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22)
독고휘와의 짧은 만남 이후, 영의는 집에 돌아오며 알림이에게 질문했다.
“알림아,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얼마든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사용자.]
“대체 왜 영감님한테 가라고 한 거야? 가서 뭐 별일도 없었는데.”
제자가 되겠다고 말했고, 뇌섬문의 인원들과 조우하긴 했으나 크게 특이한 점을 느끼진 못했다.
그리고 독고휘도 마을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걸 보면 뇌섬문에 가볼 마음이 없진 않아 보였고.
하지만 알림이는 간단해 보이는 그 대답을 회피했다.
[그것만은, 아직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다른 질문은 어떻습니까?]
“흐음, 얼마든지 대답해 준다면서?”
아까와는 다른 태도로 나오는 알림이였다.
[죄송합니다만, 밝힐 수 없는 사항입니다. 다른 질문을 하시는 건 어떨까요?]
“알겠어. 싫다는데 뭐 어쩌겠어?”
영의는 그런 알림이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쿨하게 받아들였다.
[그걸로 괜찮으신가요? 알고 싶은 것이 있었기에 물어보신 줄로만 알았습니다만.]
영의가 너무 빠르게 받아들이자, 알림이가 오히려 당황한 듯 보였다.
“괜찮아. 뭐 내가 고생이라도 하고 왔으면 물어봤겠는데, 좋은 일 하고 온 거잖아.”
[좋은…… 일, 말입니까?]
“그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게 좋을까 안 좋을까 고민하던 어르신 등 떠밀어 주고 온 거 아냐?”
아마 영의가 가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뇌섬문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독고휘였다.
하지만, 그 시기는 분명히 더 늦었을 것이리라.
영의가 독고휘에게 갔고, 그 만남의 중간에 우연히 그의 기가 드러났고 거기에 반응한 뇌섬문.
[어떻게 보면, 사용자의 말대로 볼 수도 있겠군요.]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조금 더 좋은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영의는 이 모든 게 알림이의 배려 또는 조언같이 느껴졌다.
“그런 거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사용자가 저에게 감사 인사를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해야겠지요.]
“그래, 내일 나도 집에 찾아가야겠어. 걱정이나 고민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가족이니까.”
그렇게 영의는 그날 자취방에서 잠을 잔 뒤, 아침 일찍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좋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는 거야!’
집 안에 들어서며 크게 인사를 했다.
“저 왔어요!”
부엌에서 김치를 썰던 어머니도, 거실에서 리모컨을 잡고 계시던 아버지도 영의를 돌아보셨다.
그리고 영의에게 돌아온 것은 걱정이나 기쁨의 인사가 아닌, 손에 쥔 무언가였다.
휘익-파각!
플라스틱 리모컨이 재빠르게 얼굴 옆을 지나가 벽에 맞고 박살이 났다.
어? 이게 아닌데?
“이놈의 자식이…… 뭘 잘했다고 그렇게 당당한지, 어디 얘기 좀 들어 보자.”
정권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와중에 그의 오른손은 주변에 뭔가 더 튼튼한 게 없는지 허공을 젓고 있었다.
“어? 아버지? 잠깐만요?”
‘잠깐, 아버지는 리모컨을 던졌는데. 어머니는?’
급하게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는 영의.
다행히도, 붉은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식칼을 던지실 마음은 없어 보였다.
자칫 잘못했다면 저 붉은 것이 김치 국물이 아니라 자신의 피가 되었을거라는 생각에 오한이 들었다.
다만, 얼굴이…….
‘웃고 계시질 않는데?’
“저, 일단 진정부터 하시고 제 얘기 좀……?”
영의는 대화를 통해 부모님을 설득하려 했고, 그의 집안도 대대로 설득과 대화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다만, 그 대화라는 게 육체의 대화였고 설득이라는 게 물리적 설득이라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도망쳐서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다가 혼날까 봐 늦게 온 거라고?”
“어, 으음. 네.”
영의는 부상의 상태는 최소한으로, 집에 안 온 이유는 최대한 사소한 것으로 변명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통해 버린 그 변명은 부모님의 한숨을 이끌어 냈다.
“정말이지, 어떻게 네 형 교통사고 당했을 때랑 하나도 다른 게 없니?”
“그때 네 형도 다리 부러진 거 들키면 혼날까 봐 한 달 정도 가출했었는데…….”
놀랍게도 이전의 선례가 있어서인지 받아들이는 부모님.
“아니, 누가 뭐 다쳤다고 하면 때리기라도 하니? 왜 다들 다친 사실을 그렇게 숨기려고 안달인 거니?”
“사람하고 싸워서 지면 엄청 혼내긴 할 건데, 그래도 상대가 각성자면 차보다 위험하잖냐. 그래도…… 다친 데는 별로 없어 보여서 다행이다.”
부모님이 적당히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였기에, 영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그래도 어떻게 속여 넘길 수 있어서 다행이야. 안 그래, 알림아?’
영의는 마음에 여유가 생겨 알림이에게 말을 걸었지만, 알림이는 영의에게 경고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아 보입니다, 사용자.]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크흠, 그럼 그건 대충 넘어가고. 대체 그때 왜 나간 거냐?”
‘어? 이거 끝난 얘기 아니었나?’
[아닙니다. 사용자는 틀림없이 주말 동안의 행방을 설명했을 뿐,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알림이의 말을 듣자, 영의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잠깐, 그 부분은 생각해 둔 게 없는데?’
“그래, 네가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는 건 우리도 안단다. 하지만 최소한 말 한마디라도 하거나 해주었으면…….”
영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리 짜둔 변명거리가 없었고, 또 그때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해서는 실수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때는 확실히 내가 잘못하긴 했었지. 얌전히 있자.’
그렇게 영의에게 쏟아지기 시작한 잔소리와 걱정, 그리고 약간의 질문은 점심을 먹을 때가 되어서야 멈추었다.
그 말들을 듣고 난 뒤, 영의는 그제야 사건이 얼마나 커졌는지 알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퍼진 자신의 영상으로 느닷없는 히어로가 나타났다며 떠들썩해진 세상.
자신이 맞서 싸운 이가 국제적으로 수배받는 거물 범죄자라는 사실.
그리고, 얼마나 복잡한지는 몰라도 상당히 복잡하고 큰 범죄 계획에 연루되었다는 것까지.
정권이 휴대폰으로 보여 준 자신의 영상과 신문의 1면에 대문짝만 하게 걸린 몇몇 사진과 기사를 본 영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제 주변인들은 대부분 다 이 정체를 안다 이거죠?”
아니, 뭐 가족이야 그렇다 쳐도 지연이는 어차피 실력을 보고 제자로 들어왔고.
병찬이 병민이는…… 걔들은 그냥 모를 거 같은데?
‘아니지, 그래도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다면 알겠지 걔들도.’
“그렇지. 이 부분에 대해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뭔지는 몰라도 다행이라고 말하는 정권.
“뭐가요?”
“우리 아들이 친구가 적어서.”
정권의 말에 영의는 순간 발끈할 뻔했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었다.
“저 친구 많은……!”
‘아니지, 생각해 보면 별로 없지 않나? 대부분 데면데면한 녀석들뿐이고, 친하다고 할 만한 건 해봐야 병찬이네고.’
20대가 되고 나서, 살기에 바빠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별로 없었다.
“네, 적어서 다행이네요.”
그렇게 정권의 말에 동의하는 영의의 가슴속에서는 작은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아, 맞다. 그리고 이건 너만 알아 둬라.”
대부분의 할 이야기가 끝나자, 정권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예? 뭘요?”
“지연이, 사실은…… 단군 길드 마스터 딸이다.”
정권도 화연과 지연의 집 주소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고, 상당히 엄청난 비밀이었지만 영의는 무덤덤했다.
“아, 그래요? 몰랐네.”
“놀랐지? 당연하겠지, 나도……. 응?”
생각보다 너무 싱거운 반응에 의아해하는 정권.
“음…… 바이크는 수리점에 맡기고. 아, 맞다. 헬멧도 바꿔야 하네.”
‘나중에도 카메라에 찍힐 수도 있으니까, 안 들키려면 헬멧을 바꾸고. 옷도 바꾸는 게 나으려나?’
영의는 지연의 집안이나 정체에 대해선 별 관심 없었다.
다만 카메라에 찍혀서 전국에 퍼지게 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만 정신이 팔렸을 뿐.
‘예전이었으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영웅이고 뭐고 하기 싫어. 뇌섬문에서 받은 시선만 해도 그렇게 부담스러웠는데.’
뇌섬문에서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그에게는 별로 좋지 않게 작용하였다.
“아, 아니. 단군 길드 마스터의 딸이라니까? 그것도 외동딸? 걔를 가르치고 있는 게 너인데?”
정권은 영의가 조금 더 놀라는 모습을 보여 줬으면 해서 영의의 위치를 강조까지 했다.
“뭐 어때요, 당장 여친이 신화 길드 간판스타인데.”
그리고 이어진 영의의 말에, 놀랍게도 정권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으음, 그렇……지?”
생각해 보면 그것도 그렇다. 이미 엮일 부분은 엮였는데 하나 더 있어 봐야…….
“그럼 아버지, 전 가볼게요.”
영의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부모님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여 주었다.
“어딜 가니?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 가봐라. 몸 성히 돌아왔으면 된 거지 당신은 걱정이 너무 많아.”
이내 대립하기 시작하는 둘.
“당신은 걱정이 너무 없어서 문제지!”
“아니, 당신도 봤잖아? 그거랑 싸우고도 살아남은 애인데 어디 가서 다칠 일이 있겠어?”
조금씩 격해지며 긴장감이 고조되는 두 분 사이의 분위기.
이때 영의는 타이가와의 수행 도중, 순간적으로 느끼던 감각을 다시 느꼈다.
‘지금이다, 지금이 타이밍이야!’
“그럼, 가볼게요!”
영의는 황급히 인사를 하고는 신발도 대충 구겨 신고 바깥으로 나갔다.
“후우, 다행이네. 하마터면 저 사이에 끼일 뻔했어. 그럼 바이크나 바꾸러 가볼까……?”
오늘부터 다시 배달업을 뛰어야 하는 영의.
더 이상 배달을 할 이유가 없었으나 너무 바로 그만두면 예의가 아니기도 했고, 또 바이크를 타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그때 알림이가 말을 걸어왔다.
[사용자, 공중에서 기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탈것의 보조 없이 사용자의 역량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됩니다.]
“뭐, 그렇지.”
뇌룡보로 뛰어다니면 표준적인 마정석 바이크 정도의 속도는 충분히 나올 것이다.
잠깐이나마 전력 질주를 하면 그것보다도 빠를 것이고.
[그렇다면 어째서 사용자는 공중에서의 기동에 탈것을 이용하는 건가요? 사용자의 경제적 여유에 비해 탈것의 가격을 고려한다면 부담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의는 알림이의 말에 조금 마음이 놓이는 동시에 복잡한 기분도 들었다.
‘그래, 얘가 아무리 말을 잘해도 인공지능 같은 애였지 참.’
요즘 자신의 삶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 알림이.
사람이 아니니까 별 상관 없지 않은가 하는 안도감과 인공지능한테 위로받거나 조언을 구하는 자신은 무엇인가에 대한 감정이 가슴속에 묵직하게 남았다.
“넌 내 로망 하나도 몰라.”
[로망…… 즉, 낭만 말씀이십니까?]
“뭐, 낭만도 맞고. 그냥 내 개인적인 감성이지.”
영의의 말에 알림이는 놀라운 대답을 했다.
[이해했습니다. 세간에서는 이런 것을 취향 존중이라 한다죠. 존중해 드리겠습니다, 사용자.]
“어어, 그래.”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대답에, 영의는 당황하면서도 그래도 물어본 다음에야 이해한 거니 인공지능은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되뇌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