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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89화 (89/325)

#제89화 (15)

백화점 최상층에 있는 식당가.

이곳의 디저트 가게에서 한 노인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아하하하!”

그리고 그 앞에 있던 한 젊은 여성도 그를 따라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하하…….”

그 모습만 보면 노인이 자기만 재밌는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에 그만 크게 웃어 버리고 여자가 억지로 웃어 주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자네를 죽이려 한다 생각했다 이거지?”

“네, 네에.”

노인, 교부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놉. 자네가 배신을 했다면 정말 그럴 생각은 있었지만-.”

이때, 감겨 있던 그의 눈이 살짝 떠져 에르메스의 눈과 마주쳤다.

“힉.”

그리고 그 눈빛에 잔뜩 겁을 먹은 에르메스.

“걱정 말게. 자네는 배신 혐의가 없으니까. 근래 행동이 조금 수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맛있는 가게라면 그럴 만도 하지.”

교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앞에 있는 케이크를 작게 잘라 입에 넣었다.

“음, 역시 이 나라는 맛의 평균점이 높아서 좋아. 아! 수상하긴 하겠군! 체중이 갑작스럽게 늘어날 테니 말이야! 하하하!”

아무래도 교부가 자신을 살려 줄 것 같아 보이자 에르메스는 긴장의 끈을 놓았다.

“후우…….”

“좋아, 아주 좋아. 음.”

교부는 케이크가 몹시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우물거렸다.

“저기, 여긴 밀크 티가 맛있는데요.”

에르메스는 분위기를 조금 더 풀기 위해 밀크 티를 추천했으나, 그 말에 교부의 표정이 굳었다.

“밀크, 티?”

뭔가 잘못 선택한 건가? 내가 저 양반 취향을 어떻게 알아?

“마, 마음에 안 드시나요? 그럼 다른 거로-.”

“괜찮군. 내가 차 중에서 밀크 티를 제일 좋아하는 건 또 어찌 알고. 하하, 자네 참 마음에 들어.”

나이 든 노인이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 누구라도 웃음이 지어질 것 같지만 노인의 실체를 알고 있으니 웃을 수가 없었다.

조직, 그러니까 <죽음으로 향하는 빛>에서 누구나 아는 2인자의 자리에 있는 노인.

교부, 신부, 파드레, 목사, 다양하게 불리지만 공통된 것은 성직자의 뜻을 지니고 있다.

물론, 대놓고 영감이라 부르거나 친밀하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미친 녀석들도 있지만.

그런데 왜…….

이 영감…… 아니, 어르신이 날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지?

‘나, 혹시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그런 타입이었나?’

문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점이 생긴 에르메스.

‘뭐지? 태어날 때부터 탑재된 유교적 마인드 같은 게 있는 건가?’

“하하, 자네에 대한건 잘 얘기해 두겠네. 아니지, 내가 조용히만 있는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잖나?”

“아, 하하. 그렇죠?”

“흐음, 그럼 일단 인원들은 다 만나 봤으니 이제 철수해야겠군. 다음 임무까지 몸 관리 잘하도록 하고.”

드디어 교부가 뭔가를 마무리 지으려는 듯하자, 에르메스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다.

“네!”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든다고 곧바로 행동해 버리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적당히 대답을 해주었으나, 그녀가 기분이 좋아진 건 들킨 것 같았다.

“음? 자네…….”

‘아, 망했다. 포커페이스 유지를 했어야 하는데…….’

에르메스는 빠르게 사과를 하고 처벌을 덜 받기 위해 입을 열었다.

“죄송-.”

“그러고 보니 이 나라 출신이지?”

“합, 네? 네.”

“그럼 관광할 만한 곳 조금 있나? 동아시아는 자주 와봤지만 관광 자체는 일본을 자주 해서 말이네.”

그렇게 에르메스는 뜬금없이 한국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관광 계획을 짜주게 되었다.

한편, 영의와 화연은 백화점 앞에서 걷고 있었다.

어느새 많이 어둑어둑해진 밤거리.

화연은 방금 전 길드에서 온 호출로 인해 영의와의 데이트를 중단했다.

“미안해요, 선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네가 미안해할 게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사실 영의는 화연이 왜 미안해하는지는 몰랐다.

내가 불러서 나왔는데 왜 네가 미안해하는 거지? 아니다, 그냥 가만히 있자.

영의는 화연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좋아, 이제 얘기해 봐.”

“뭘요?”

“나한테 묻고 싶은 말이랑, 듣고 싶은 말 같은 거 많지 않아?”

사실상 이번 만남의 주목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화연은 영의의 말을 듣자 그런 것도 있었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그러고 보니……?”

영의가 잠깐 서로가 지금 생각하는 게 다르다고 느끼려던 순간 화연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많죠. 아니, 정확히는 많았죠.”

“많았다고?”

왜 과거형으로 대답하는 거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이제 안 물어봐도 된다는 건가?

“뭐, 언제는 선배가 차분했나요? 여차하면 바로 몸부터 움직이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했는데.”

“그, 그 정도는 아니었어. 아닌가? 조금 그랬던가?”

평소에 그렇게 생각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반박하려 했지만, 어느 정도 짐작 가는 게 생각나기 시작했다.

“후훗, 그래도 그렇게 바로 움직이는 버릇 덕분에 제가 옛날에 살았으니까요.”

화연은 그런 영의를 보며 작게 웃었다.

과거, 갑작스럽게 생긴 게이트에 휘말렸을 때 그녀를 구하기 위해 바로 뛰어들지 않았던가.

“네, 뭐. 묻고 싶은 건 많았어요. 아카데미 앞에서 싸웠던 이유나, 그 상대의 정체나, 또 어디로 갔었던 건지. 몸은 멀쩡한지. 왜 말없이 사라진 건지.”

화연의 말 중에 아카데미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영의는 당황했다.

그걸 알고 있었다고? 아니, 뭐 불가능하진 않은데…….

“어, 알고…… 있었어?”

화연은 금요일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아는 듯 하자, 영의는 급격히 당황스러워졌다.

“네. 인터넷에 아주 화제인데요? 의문의 영웅! 하면서. 앞으로는 헬멧 좀 다른 거로 쓰고 다녀야 할 것 같던데.”

“차, 참고할게.”

영의는 이제부터 들을 질문과 해야할 변명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화연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으나, 그녀는 영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근데 그 많던 질문이랑 저한테 사과할 것들. 그것들도 선배랑 같이 다니면서 딱히 물을 필요가 없어지더라고요.”

“왜?”

“그야, 그렇게 물어봤자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아서?”

화연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영의를 쳐다보았다.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었으나, 그 말은 영의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실제로 차원 간을 이동한다거나 하는 진실을 말할 생각은 없었던 것.

“저기, 사실은 그게 말이야. 나는-”

자신이 품고있는 비밀에 대해 이야기해주려 했으나, 화연이 영의의 말을 끊고 말았다.

“아, 벌써 10분이나 이러고 있었네. 선배, 다음에 봐요.”

화연은 영의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바로 떠나려 했고, 영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떡하지? 일단 멈춰 세워? 아니면 여기서 바로 진실을 말해? 아니지, 뭘 해야…….’

영의는 그렇게 복잡한 고민 속,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화연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러고는 그대로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그때는 제대로 날 자-읍?!”

말을 하던 중 갑자기 들어온 입맞춤에 당황한 건지 몸이 굳어 버린 화연.

그리고 영의도 몸이 굳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다음은 계획이 없는데……?’

일단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한 결과가 이것.

다음은 생각하지 않았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둘은 서로 몸을 떼었다.

“어, 음. 그게, 음.”

영의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고, 화연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저, 저는 가볼게요!”

둘 사이의 침묵 속에, 화연이 다급히 발걸음을 옮기며 소리쳤다.

“어어? 어! 그래! 잘 가! 몸조심하고!”

영의는 할 말이 없어 머뭇거리다 화연의 급격한 인사에 곧바로 대답해 주며 손을 흔들었다.

“네, 네!”

그렇게 영의와 화연의 데이트 비스무리한 것은 화연이 도망치듯 떠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백화점 식당가.

에르메스는 교부에게 관광 계획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문화재 같은 걸 보시려면 저기 경주 쪽을 가시고, 도심 구경을 하시려면 서울이 좋아요.”

“흐음, 둘 다 구경하러 가면 안 되나? 나는 고즈넉하고 옛 풍경을 간직한 유적도 좋아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의 도시풍경도 좋아하네만.”

정장의 재킷도 벗어서 의자에 걸어 둔 채 편하게 앉아 설명을 듣는 교부.

그리고 둘의 탁자에는 상당한 수의 찻잔이 놓여 있었다.

“그, 그럼 시간이 조금-아니, 많이 걸릴텐데요?.”

“음, 얼마나 걸리기에?”

교부의 요청에 따라 에르메스는 대략적으로 문화재들을 둘러보기 위한 시간을 말하려 했다.

“어디를 관광하실지에 따라 다른-.”

하지만 그때, 교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음? 잠깐만.”

“무슨 일이신데요?”

지금까지 설명을 잘 듣다가 이 어르신이 갑자기 왜 이러지? 싶은 표정으로 쳐다보는 에르메스.

“뭔가, 느낌이 안 좋군.”

교부는 그 말을 하고는 급하게 자신의 옷을 챙겨 가게를 나서려 했다.

“아, 계산 부탁하네.”

물론 신사답게 계산하는 걸 잊지는 않았다.

“네? 느낌이요? 어?! 느낌이요?!”

에르메스도 잠시 교부의 말을 곱씹어 보다 다급히 그의 뒤를 따라 가게를 나섰다.

잠시 뒤, 백화점 정문.

“교부, 아니 어르신. 왜 그렇게 급하게 나가요? 누가 보면 건물 박살 나는 줄 알겠네.”

에르메스는 식당가에서 1층까지 오느라 숨을 약간 헐떡이고 있었으나, 교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말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서 나와 봤지만…… 음. 특이 사항은 없는 것 같군.”

에르메스는 교부가 말한 예감이란 말을 듣고 잠시 표정이 굳었지만 뒤이어 들려온 특이 사항이 없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이 먹으면 안 좋은 느낌이니 예감이니 뭐니 하는 게 일상이라지만 어르신이 그러면 괜히 신경 쓰인다고요.”

그리고 그때, 교부는 먼 곳을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아까 봤던 청년이 있군그래. 우연이라곤 해도 두 번이나 보다니. 허허, 인연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야.”

“네? 누구요?”

청년? 갑자기 무슨 청년?

에르메스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교부의 손끝이 가리키는 쪽을 보았고, 그 끝에는 아까 봤던 남자가 있었다.

“저 남자는 분명…….”

“응? 아는 남자인가? 무슨 사이지?”

교부의 말에 에르메스는 뭐라 답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음, 애인이 있는 걸 알면서도 남자 친구로 만들고 싶은 사이? 아니지, 이름도 모르는데 호감이 있는 건 아는 사이인 건가?’

그러나 어느 쪽도 이상한 대답이었기에, 과연 자신이 아는 사이라고 이야기 하는게 맞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뇨, 알진 못하는…… 아니, 아는 건가?”

에르메스의 애매한 대답에, 교부의 눈이 조금 날카롭게 변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말해 주게.”

교부의 태도 변화에 잠깐 당황하는 에르메스.

‘아까까지만 해도 그냥 도시 구경을 할까 문화재 탐방을 할까 신나 있던 노인이었는데, 갑자기 진지해졌어…….’

“어, 관광 계획은요……?”

“그건 나중에 천천히 듣기로 하지.”

그래도 결국 관광할 생각이시긴 하구나?

“그럼 제 커피는…….”

“그것도 나중에 얼마든지 사줄 테니 마음껏 마시게.”

에르메스는 그렇게 이름은 모르겠지만 잘생긴 것 하나만은 확실한 남자와의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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