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11)
한 남자가 도시의 상공에서 날고 있었다.
팟, 파직-
아니, 정확히 말하면 허공을 박차며 뛰고 있었다.
“휘익(고향에 온 기분이에요)!”
“그러게. 거기선 대충 2주밖에 안 있었는데 되게 그리운 기분이네.”
번개를 뿌리면서 하늘을 달리는 영의와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뇌영.
[사용자, 의복의 착용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모습은 안 보이지만 음성으로 그 주위에 존재하는 알림이가 있었다.
“왜? 괜찮은 것 같은데.”
[사용자, 숲속에서의 생활이 사용자의 머리를 상하게 한 것 같습니다. 당장 의료 기관을 찾아가 보길 권장합니다.]
알림이는 딱딱하고 기계적이던 이전과는 달리 조금 사무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 명의 사람처럼 영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휘약(아빠- 아니, 주인은 안 이상하다)!”
그리고, 뇌영도 알림이와의 대화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이 모든 건 수호자와 숲의 원로, 타이가에게 배운 자연과의 소통 덕분이었다.
무공을 배울 때, 그는 뇌기를 체내에서 생성하고 외부에서 그대로 흡수해 쓰는 방식을 썼지만 보통은 그런 게 아니다.
공기 중에 존재하는 자연의 기를 호흡으로 받아들여 단전에 저장한 뒤, 그것을 일정 방향으로 이끌어내 사용하는 게 무공이었다.
필요로 하는 기운의 일차적인 생산지가 서로 달랐던 탓에 영의는 그 부분을 넘겼고, 당장 독고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물론 그래도 이론은 중요했기에 늘 초식을 하나씩 가르쳐 줄 때 부연 설명을 해주었던 독고휘.
그렇게 하나 둘 주워듣다보니 영의도 어느 정도의 지식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배경지식 덕분에, 타이가의 힌트와 순간적인 발상으로 하루 만에 자연과의 소통을 끝냈었다.
덕분에 몇몇 재밌- 아니, 특이한 능력들을 얻고 무공도 증진시켰다.
그리고, 시험도 거의 프리 패스로 통과했었고.
영의와 같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같은 가르침을 받았기에 시라도 마찬가지로 시험에 통과했다.
그 둘은 다른 숲요정들이 시험을 받는동안 타이가와 함께 숲 요정의 마을로 갔고, 거기서 타이가의 보증과 시라의 설명덕분에 손님으로 대접받았다.
그런 다음 거기서 하루 정도 지내다가 다시 집으로, 지구로 돌아와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림이의 말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영의는 믿을만한 이에게 답을 구해보기로 했다.
“나 이상해?”
“휘요(아니요)!”
믿을 만한 이가 바로 옆에 있는 뇌영이라는게 문제였지만.
물론, 영의는 지금 제법 멀끔하니 괜찮은 상태였다.
식물성 재료로 만든 천이라 조금 거친 면도 있었지만, 요정족의 의복은 생각보다 편하고 좋았다.
다만 생김새가 지구 그 어디를 가도 평상시에 입고다닐 복장이 아니라는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사용자, 혹시 패션 센스라는 말은 들어 봤습니까?]
“아, 당연하지. 수연이가 절대 나하곤 인연이 없는 단어랬어. 그냥 무난하게만 입고 다니래.”
[사용자.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대중적이라 판단되는 요소를 가진 의복으로 환복하기를 권장합니다.]
“왜? 부모님은 찾아가야지.”
영의는 의문스럽다는 듯이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니, 왜? 어차피 시간은 별로 안 흘렀을 텐데?’
지금까지의 경험상 조금 흐르거나 아예 안 흘렀을 것 같았다.
물론 직접 재본 적은 없으니 몰랐지만.
[사용자의 세계 기준으로, 2일이 지났습니다. 이곳의 표기를 따르면 일요일이군요.]
“뭐?! 저녁인데?”
알림이의 말에 다급히 본능적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시간을 가늠하려 해보았다.
지금까지 다른 세계에서 가장 길게 체류했던 게 혁련무강과 독고휘의 배달을 동시에 했을 때뿐이었던 영의.
여러 번 다녀왔지만 매번 짧게만 다녀와서일까, 그 때문에 시간관념이 살짝 어긋나 있었던 것 같았다.
물론 하늘만 봐서는 대략적인 시간만 알지, 당연하게도 날짜를 알 방법은 없었다.
“잠깐, 시계가 어디-.”
손목을 보았다.
당연히 손목시계 같은건 안 차고 다녔다.
혹시 몰라 주머니에 손을 넣어 봤지만, 자신이 본래 입던 옷도 아니고 숲 요정들에게서 받은 옷이니 휴대폰도 있을 리 없었다.
“응? 나, 폰 갖고 있었던가?”
그리고 애초에, 휴대폰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옷과 반쯤 박살 난 그의 헬멧뿐.
‘숲에서 정신을 차렸을 땐 반쯤 벗은 상태였고, 있었어도 아마 뇌기에 다 타버렸겠지.’
그러니까 지금, 휴대폰도 뭣도 없는 상태에서 고립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문제는 없지.”
영의는 최후의 수단이 있었다.
“알림아, 메시지는 보낼 수 있지?”
[가능합니다, 사용자.]
도대체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그의 시야…… 즉, 알림이의 도움을 받으면 그가 쓰던 헬멧의 기존 기능은 사용 가능했던 것.
하지만 그걸 의문스러워하진 않았다.
당장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걸 본인이 직접 하고 다니는데 휴대폰 없이 문자 보내는 정도야 뭐…….
“그럼 수연이한테 문자 좀 보내야겠어.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바로 보내기엔 조금, 껄끄러워서.”
지금이 금요일 저녁이면 모를까, 일요일이다.
더군다나 제대로 설명도 못 하고 연락 두절 상태로 사라졌으니 걱정도 하실 터.
[알겠습니다, 사용자. 내용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영의는 알림이의 도움을 받아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주변 빌딩의 옥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으음, 일단 말이지-”
본인이 직접 손으로 쓸 수 없었고, 문자기능도 확인정도만 하는 수준이었기에 대필을 하듯 알림이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분 뒤, 수연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사용자, 답신이 도착했습니다. 표시할까요?]
“그래.”
[수연: 오바ㅂ 어디서뭘한거야 아니다ㅏ 그보다다친덴ㅇ벗지?]
상당히 다급하게 답신을 보낸 듯, 오타가 가득했다.
“알림아, 나는 괜찮-.”
영의가 거기에 대답을 해주기도 전에, 새로운 메시지가 계속 도착했다.
[수연: 일닩집에 오지말거 딴데 가있어 엄마 지금 울라가 잠드셨어]
“뭐?”
[수연: 지금 오빠 오면 아빠도 쓰러질 거 같으니까 내일 아침에 와]
메시지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니, 어머니가 왜? 예전엔 가출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시던 분이?”
영의는 지금 자신의 영상이 인터넷에 퍼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가족들의 반응이 생소했다.
[수연: 가능하면 지금 오빠 자취방에서 안 나오는 게 좋을 거야]
수연은 이제 어느 정도 진정된 건지, 오타가 줄어들고 메시지의 분위기도 차분해진 것 같았다.
“쓰읍,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영의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체 무슨 영문인지 의아해할 때, 알림이가 말을 걸어왔다.
[사용자, 혹시 지금 추가적인 배달 주문에 대한 제의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예전처럼 냅다 정보부터 던져 주던 때와 달리, 수락 여부를 물어보는 알림이.
“아니. 영감님들이든 베키든 한 번 정도는 안 먹어도 되겠지. 수호자 양반이나 시라도 필요는 없을 거고.”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기 전이었다면 곧바로 갔을 거다.
물론, 그 전에 옷도 갈아입고 음식을 사기 위해 지갑을 가지러 그의 방으로 먼저 갔어야 했겠지만.
하지만 지금 부모님의 이야기에 대해 들었고, 또 세계 간에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나니 섣불리 가기가 꺼려졌다.
[알겠습니다. 다만, 다음 주문에 대해서는 방금 들어온 주문이 우선될 겁니다.]
“음, 베키는 그래도 위험하려나?”
지난번 그가 방문할 때만 해도 베키는 거짓말 반쯤 보태서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괜찮겠지. 그래도 알아서 챙겨는 먹는 것 같았으니.”
베키가 밥 챙겨 먹는 걸 작심삼일 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영의는 자신의 자취방이 있는 곳으로 가려 했으나 메시지가 또 도착했다.
[수연: 그리고 화연 언니한테 찾아가 봐. 언니가 오빠 걱정 엄청 했었어. 그리고 도대체 왜 거기서 혼자 멍청하게 나서 가지고…….]
영의에 대한 걱정과 그를 걱정해 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 장문의 메시지.
왜 거기서 쓸데없이 충돌을 했냐, 한마디라도 해줄 수 있었던 것 아니냐, 또 지연이가 엄청 걱정했다 등…….
그리고 그중에서도 비중이 제일 높았던 게 화연에 대한 이야기였다.
잠도 줄여 가며 영의를 찾아 헤맸고, 본인이 직접 뛰며 찾는 건 물론 길드 내 직권까지 남용할 뻔했지만 그건 다행히 수연의 만류로 막았다는 이야기까지…….
사건 현장에서 증거품으로 경찰에게 넘어간 영의의 바이크를 회수해 준 것도 화연이었다고 한다.
뭐, 영의의 소유이면서 회사의 것이기도 했기에 법적으론 큰 문제가 없었다고 했지만.
대신 불법 주차로 딱지가 끊겼다고 했다.
“흐음, 오늘 집에 들어가긴 그른 것 같네.”
뼈가 부러져도, 사고를 당해 입원을 해도 걱정은 할지언정 눈물은 보이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울다 지쳐 잠드셨다는 소식을 듣자 영의는 마음속 한편이 무거워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가고 싶지만, 섣불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가장 오래 살아 그만큼 친숙한 집으로 가는 길이 두려워질까.
억지로 발을 떼어 놓으려 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스읍-
후우-
‘나도, 마음 정리가 조금 필요하겠어.’
마음 정리도 할 겸, 간만에 온수로 몸도 씻고 내일 집에서 부모님에게 뭐라 말할지 고민도 해야 했기에 영의는 첫 목적지인 자취방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 화연이하고 얘기하면서 조금 정리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영의는 그렇게 집으로 향하며, 알림이를 다시 호출했다.
“알림아? 나중에 메시지 좀 더 보내야겠어.”
[알겠습니다, 사용자.]
그렇게 영의가 자취방으로 갈 때, 수연은 침대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이내 이불 위로 휴대폰을 던졌다.
“오빠, 돌아……. 흡.”
무심코 입 밖에 내뱉었기에 그 목소리가 크지도 않았고, 방문도 닫혀 있었지만 수연은 급하게 입을 다물고 조심스럽게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문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를 몇 분, 아무런 소리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안심하고 입을 여는 수연.
“후우, 나도 참…….”
대략 한 시간 전, 부모님과 함께 거실에서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뉴스를 보다가 오늘도 희망적인 소식이 없자 엄마는 또 울음이 터졌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달래 주면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셨고, 방문을 닫았어도 울음소리가 새어 나와 TV를 끄고 자신의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각성자인 수연의 귀에는 울음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억지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관심도 없는 동영상을 보다 질려 차트에 있는 아무 음악이나 듣던 도중, 누군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별것 아닌 내용이라고 생각해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의젓한 척해도 불안감이 드러나는 지연이거나 혹여나 집에 먼저 도착한 게 아닐까 생각하는 화연일 수도 있었기에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발신인에 사라졌던 오빠가 찍혀 있자, 어째서인지 마음속에는 안도나 분노가 아닌 불길함과 묘한 위화감이 엄습했다.
도대체 왜?
분명 사라진 줄 알았던 오빠가 돌아왔다면 기뻐하거나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화라도 나야 할 텐데?
수연은 그 의문과 위화감을 애써 무시하고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답장을 보내던 그녀의 손이 떨린 것은, 다급해서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