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83화 (83/325)

#제83화 (9)

덩치 큰 사내를 실은 의문의 배가 공해를 떠나 시야에서 사라지자, 선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럼 이제 돌아가야…….”

‘이제 가서 받기로 한 돈만 받고……. 아니, 혹시 모르니 받지 말까? 영화처럼 죽여서 입막음을 당할지도…….’

선장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영화의 장면들에서 꼭 협박이나 회유로 이동수단을 사용한 악당들은 마지막 순간에 그것의 조종사나 운전자를 버리거나 죽이지 않던가.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기라도 한 것처럼, 낚시꾼 차림의 남자가 무서운 말을 내뱉었다.

“안 되죠. 돌아가다니.”

그 말을 들은 선장의 등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역시, 나를 죽여서…….’

달그락, 따다닥!

삼단봉, 또는 접는 형태의 철봉을 펴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히익, 때려죽이는 건가?’

선장은 공포에 질려 눈을 감았으나, 그가 두려워하는 고통이나 죽음은 다가오지 않았다.

“……어?”

이윽고 작게 실눈을 뜬 선장의 눈에, 뱃전에서 낚싯대를 만지작거리는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음, 조금 힘드네. 초심자용으로 사왔어야 하나?”

사내는 낚시꾼 차림이 위장용이 아니라는 듯, 작은 접이용 의자까지 바닥에 깔고는 이런저런 것들을 꺼내어 준비하고 있었다.

“저…….”

“아, 선장님. 이 주변에 고기 잘 잡히는 데가 어딥니까?”

사내는 웃으면서 선장에게 물어보았고, 선장은 그런 사내의 태도에 오히려 당황했다.

“그, 그게…… 안 돌아가실 겁니까?”

“무슨 소립니까? 이왕 바다에 나왔으니 큰 거 하나는 낚고 가봐야죠. 제 일은 조금 전에 끝났지만, 선장님의 일은 아직 안 끝났잖아요?”

방금 전 범죄자의 도주를 도와준 사람과 동일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낚시에 취미를 붙여 보려 하는 중년 아저씨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 어어. 그렇죠.”

“그럼 잘 부탁합니다. 아! 혹시 매운탕 잘 끓이십니까?”

선장은 살아온 세월이 있었으니 눈치를 챘다.

‘그래, 나와서 바로 들어가면 의심을 사지. 이건 이제 그냥 낚시하러 나온 배다. 그것도 돈 많아서 혼자 배를 빌린 아저씨의 배.’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는, 선장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가슴을 두드렸다.

“으하하! 물론이죠! 제가 동네에서 두 번째로 제일 잘 끓입니다! 첫 번째는 식당 아줌마고! 그런데, 다른 부식들은 안챙겨왔으니 두끼까진 힘들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점심은 다른곳에서 먹을 생각이라서요.”

그렇게 남해에서는, 오늘 둘이서 출조를 나왔지만 돌아갈 땐 혼자뿐인 배가 한 척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은 선장과 그곳에 탔던 두 명만이 기억하고 있었다.

* * *

시험의 당일, 타이가는 폭포의 앞으로 갔다.

중력에 모든 걸 맡기고 떨어지는 거친 물살 아래에서, 한 남자가 태평하게 앉아 있었다.

-흐음, 이제 풋사과 같진 않아 보이는군?

“영감님이 보기에도 그런가? 얘도 그렇다던데.”

남자의 옆, 물가에서 발을 찰박거리던 큰 새 한 마리가 작게 울었다.

“휘익.”

“그래. 네 말대로 지금은 사람이 힘이 가장 넘칠 오전 시간. 정말 뭘 하더라도 해낼 수 있겠어.”

새는 짧게 울었지만 남자는 그 안에 담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제법인데? 그대로 몇 년만 더 수행하면 수호자의 자리를 노려 볼 법도 하겠다?

“됐어요, 영감님. 난 숲의 수호자보다는 최씨 집안 아들 최영의가 더 어울려.”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폭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왔고, 이내 시험의 때를 맞이하기 위해 나아갔다.

영원의 숲.

숲 요정들이 자연의 시험을 치르러 오는 곳이며, 그들이 보호하며 지키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그 숲을 진짜로 지키는 것은 숲의 수호자와 원로들이지만 대외적으로는 그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지금, 숲 요정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그 자연의 시험이 실시되려 하고 있었다.

숲 가운데의 공터에는 숲 요정들이 불안하거나, 자신에 넘치거나, 때로는 아무런 감정 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거대한 멧돼지와 늑대, 호랑이가 있었고 그 중앙에 수호자가 앉아 있었다.

-후욱. 올해에는 제법 쓸 만한 아이들이 많은 것 같아.

-그렇겠지요. 아무래도 수호자가 통합되고, 가르침을 줄 원로가 늘었으니.

많은 요정족들을 앞에 두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두 원로들.

-크륵. 타이가 영감이 안 보이니 좋군?

-후욱. 그래, 토끼한테 패배한 호랑아.

-크릉! 그게 뭐! 백 년 넘게 살아온 노괴한테는 이기는 게 더 힘든 거 아냐?!

-후욱. 그런데 그걸 저 녀석이 해냈지. 그건 어떻게 설명하려고?

-크릉…….

호랑이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때, 수풀 속에서 작은 토끼가 튀어나왔다.

-내가 뭐?

-후욱. 호랑이를 이겨서 그런지 토끼도 제 말 하면 오는군. 역시 그 귀는 어디 가질 않아.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숨을 몰아쉬는 시라와 약간 지친 기색의 영의가 나타났다.

“아, 영감님 진짜. 천천히 좀 가면 안 돼요?”

“허억, 허억. 늦은 거…… 아니지? 허억…….”

-걱정 마라, 그 정도로 달렸다고 죽는 생물체는 없다?

“죽는 게 문제가 아니니까 그렇지, 후우…….”

“크흡, 후우. 쓰읍-.”

영의는 숨을 길게 내쉬며 불평했고, 시라는 다급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다 모인 것 같구나. 그럼 이제, 시험을 시작하면 되겠지.”

나머지 두 명의 참여를 확인한 수호자는 눈앞의 인원들을 바라보며 특유의 말투로 시험의 개시를 알렸다.

“교육은 원로들에게 받았지만, 시험은 나에게 받으니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단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은 아니니 안심하렴.”

수호자의 말에 불안한 기색을 보이던 몇 숲 요정들은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숲 요정들을 안심시킨 뒤 수호자는 고개를 돌려 영의와 시라, 그리고 그들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새들을 보았다.

“너는 이제 나가면 되겠네.”

영의를 가리키며 나가도 된다고 말하는 수호자.

“네? 아니, 왜요?”

수호자에게 의문을 표시한 건 의외로 영의가 아닌 시라였다.

“이 친…… 아니, 인간이 비록 침입자이긴 해도 시험을 치를 자격은 있던 것 아닌가요?! 그런데 왜-.”

일주일간 함께 고생하면서 정이라도 들었던 걸까, 영의를 변호하는 시라. 물론 영의는 고생이라는 걸 별로 하지 않았다.

-그만. 타인의 일이고, 더군다나 수호자의 앞이다?

시라의 변호는 타이가에 의해 제지당했다.

“하지만-.”

-하지만은 없다. 네 일이라면 여기서 물어도 되겠지만, 같이 수업을 받았다고 해서 저 녀석의 대리인이라도 된 건 아니다?

“뭐, 그렇다네. 그래도 날 위해서 목소리 내준 건 고맙다.”

영의는 시라를 보며 미소 지었고, 시라는 분노를 참는 듯 이를 악물었다.

“본인은 이해가 빨라서 좋구나. 그럼, 가능한 한 빨리 이 숲을 떠나 주길 바란다.”

수호자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이동했고, 타이가를 제외한 숲의 원로들과 시험을 볼 숲 요정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공터에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셋.

영의는 태연하게 타이가에게 말을 건넸다.

“영감님, 저번에 말했던 그 과일 어디 있는지 알아요?”

-가르쳐 줘도 네가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 그렇네. 정 그러면 다른 건 없어요?”

영의와 타이가가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자 시라는 소리를 질렀다.

“이 멍청한 인간. 시험도 못 보고 나가야 하는데 뭐가 그렇게 태평해?”

“아, 깜짝이야. 갑자기 왜 화를 내?”

펄럭-

“휘야악!”

뇌영은 시라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라에게 화를 내듯 날개를 펼치며 위협했다.

삐익!

파닥, 파닥.

그리고 그에 맞서서 자기도 질 수 없다는 듯 시라의 어깨 위에서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울음소리를 내는 새.

두 새의 기세 싸움을 쳐다보던 타이가는 그때 문득 뭔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시험에 대해서 말을 안 해줬다?

“쟤한테 얘기 안 했나?”

-안 했다?

시라는 영의와 타이가 둘이 자기들만 아는 뭔가가 있는 듯 대화를 하자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질문했다.

“뭐, 뭘 얘기 안 했는데……요?”

-시험에 대해서. 그리고, 왜 수호자가 너흴 두고 갔는지도 얘기해 주겠다?

타이가는 그 자리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 주기 시작했다.

시라도 시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말로만 들었지,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

알려 주면 오히려 그 정보에 매달리기 때문에 시험을 잘 못 치르고, 개인마다 방법이 다르기에 백지인 상태가 도움이 된다.

마을에선 그렇게 전후의 대략적인 설명만 들었다.

-자연과의 소통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다만, 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쓰는 것뿐이다?

타이가는 다른 원로들의 교육 방식은 전부 다르다고 설명했다.

들판을 질주하는 방식은 그때의 해방감을 통해 자연과 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고, 숲속에서 명상을 하며 자아를 비워내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도 있다고.

다만 자신의 방법은 생물로서의 본능을 자극해 자연과 반쯤 강제로 연결시키는 거라 설명했다.

그렇게 어떤 방법으로든 자연과 소통을 하고 나면 자연을 거쳐 동물, 식물과 의사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지금 각자 새 한 마리씩을 데리고 있는 거지. 쉽게 말해서, 너흰 이미 시험을 통과한 거다?

시라는 거기까지 듣자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타이가는 전대 수호자가 있을 때에도 원로를 하고 있었던 노괴 중의 노괴.

그런 노괴가 직접 가르쳤으니 성과만은 확실했고, 시험에 대비한 교육에 불과한 다른 원로의 수업과는 달리 타이가는 자체적인 졸업까지 시켜 버린 것이다.

“그, 그럼 왜 저는 이 아이랑 제대로 이야기를 못하는 거죠? 영- 아니, 인간은 잘하던데!”

-한 계절도 못 산 녀석한테 뭘 바라는 거지? 그건 과도한 욕심이다?

영물 출신에 영의와 붙어살며 질 좋은 뇌기를 잔뜩 먹어 살이…… 아니, 벌크업을 잔뜩 한 뇌영과는 달리 시라의 새로운 파트너는 야생의 새 출신.

뭔가 제대로 여물기에는 아직 멀고도 먼 것이었다.

-그래, 풋사과 같은 녀석이니까 느린게 당연한 것이다? 이제 계속 자연을 거쳐 소통하면서 키워나가야 한다?

타이가는 시라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끝내고 난 후, 영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조언을 해주었다지만 하루 만에 깨치고 자연과 소통할 줄은 몰랐다?

“뭘요, 영감님이 잘 가르쳐 준 거지.”

타이가는 영의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연신 귀를 까딱거렸다.

-전전전- 언젠지 모르겠다. 아무튼 옛날에 수호자를 하던 자격으로 인정하겠다. 너희 둘은 시험을 잘 통과했다?

그리고 타이가의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영의의 눈앞에 익숙한 창이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주문을 완료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문구는 창과 달리 익숙하지 않았다.

‘알림아?’

[네, 사용자. 말씀하시죠.]

우리 알림이가 조금- 아니, 많이 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