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7)
자연의 시험.
통칭 시험이라고 불리며, 성지로 취급되는 숲의 수호자의 주관 아래에 치러지는 숲 요정족 전통의 시험이다.
이 시험을 통과한 이들은 자연을 이해하는 동시에 각자의 파트너를 하나씩 만들게 되며, 평생을 함께하게 된다.
그런 만큼 시험에는 대부분 통과하려 하며, 한번 떨어지고 끝이 아닌 만큼 크게 부담감도 가지지 않는다.
대략적으로 들은 설명에 따르면,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연과 하나 되는 방법을 알게 될 거라고 했다.
다른 원로들의 가르침은 숲속에서 자연을 느끼거나, 평원을 내달리며 바람과 하나 된다는 약간 자연 휴양림의 삼림욕 같은 평화로움이 잔뜩 묻어나는 내용이었지만…….
-하지만, 나는 저 무른 녀석들과는 다르다?
저 토끼 놈…… 아니, 만렙 토끼 타이가 님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생존하려 해라! 죽는다는 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즉, 죽기 직전이 가장 자연을 잘 느낄 때다?
-그리고 자연이 너에게 대답을 해주거나 뭔가를 해줄거라 기대하지 마라? 돌한테 말을 건다고 돌이 대답할거라 믿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거라고 믿는다?
라는 해괴하면서도 뭔가 설득력 있는 말을 하면서 평원에선 쓰러지기 직전까지 달리게 했고, 절벽에 매달고 바람을 느끼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엔 흙과 바위의 불변성과 묵직함을 느껴 보라며 땅속에 파묻는 걸 오늘의 수업이라고 했다.
-느껴 봐라, 그 안에서 몸으로 직접 대지를 느끼고 한자리에서 절대 움직이지 않는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
숲속에 구덩이를 두 개 파고는 거기에 영의와 시라더러 들어가라고 한 뒤, 둘을 땅에 묻고는 어딘가로 사라진 타이가.
땅 위에 머리 두 개만 달랑 나와 있는 상황에, 뇌영은 땅 위에 앉아 그 둘을 구경하고 있었다.
“휘이익…….”
영의는 불평할 것과 불만이 마음속 가득 쌓여 있었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하긴 하는데……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 거지?
도대체 이러는 거랑 사람이 회복하는 능력이랑 무슨 관계인 거고?
그런데 이상한 게 또 영 소득이 없는 게 아니란 사실이었다.
불편하던 숲의 잠자리나 기온 같은 게 그럭저럭 적응되었고, 무슨 연유에선지 뇌영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조금 알아듣게 되었다.
하지만, 땅에 사람을 파묻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무슨 느와르 영화에서 사람 파묻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또 언제 이 괴상한 수업이 끝날까 고민하던 영의의 옆에는 그와 같은 모습으로 파묻혀 있는 시라가 있었다.
“으, 으음…….”
폭포 아래에서 물을 맞고 날아가거나 다른 수업에서도 영의에 비하면 뒤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음? 뭐야?”
만렙 토끼 타이가의 가르침을 함께 받아서인지, 영의는 그녀에게 어느 정도 정감이 갔다.
약간 전우애와 비슷한 느낌의 그런 정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호감은 호감 아닌가.
물론, 매번 가르침을 따라오지 못해 쓰러지거나 실패하는 모습을 보며 생긴 동정심이 더 먼저였지만.
그렇게 시라의 상태를 보자, 땅에 묻혀서 숨을 잘 못 쉬겠는지 호흡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타이가 아재! 토끼 양반! 어이!”
영의는 목소리를 높여 그들을 도와줄 토끼를 찾았지만, 어디론가 간 건지 반응이 없었다.
“수업 중엔 옆에 붙어 있더니 필요할 땐 안 보이네. 역시 옛말에 틀린게 하나도 없어. 개똥도……크흠.”
혹여나 어딘가에서 듣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을 하다 중간에 멈춘 영의는 행동부터 하기로 했다.
퍼억!
후두두둑.
몸에서 뇌기를 일으키며 빠르게 땅 밖으로 나온 영의는 시라의 옆으로 다가갔다.
“도와줘?”
도리도리.
하지만 시라는 영의의 도움은 필요 없다는 건지, 아니면 더 버티겠다는 건진 몰라도 고개를 저었다.
“흠, 뭐…… 마음대로 해.”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뇌영과 함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휘요?”
뇌영이 뭔가를 물어보는 듯, 작게 울었다.
“뭐, 다시 들어가라고? 어떻게? 내가 들어가도 저 흙을 누가 메워 줄 건데?”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영의는 뇌영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고, 뇌영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휘익.”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을까.
“으…… 흐읏. 저기…… 아, 아니.”
시라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도 주저하는 등,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휘요?”
톡톡.
뇌영은 안부를 물어보는 듯이, 부리로 가볍게 시라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아, 나는 괜찮아.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야. 걱정해 줘서 고마워.”
영의는 그 모습을 보며 동물과 대화를 하다니, 과연……이라는 감상을 가졌다.
“오, 동물이랑 의사소통이 되다니. 요정족이란 이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네?”
영의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그렇게 말했지만, 시라는 그것도 심기에 거슬리는 듯했다.
“그냥 요정이, 아니라…… 숲 요정……이라고! 어딜 봐서 숲이 아니란 거야?”
“휘익!”
뇌영은 시라가 영의에게 소리치자 날카롭게 울며 시라를 노려보았다.
“아, 미안해. 그래도 쟤가 요정 차별을 하잖아! 난 숲 요정인데!”
단순히 요정으로 칭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여기는 듯한 발언을 듣자 다른 쪽으로 생각이 닿았다.
“그게 중요해? 아니지, 그럼 뭐 산이나 물이나 그런 요정도 있다는 건가?”
“그래…… 멍청한 인간. 그것도 모르면서 뭘 배우겠다고……. 후, 훗.”
시라는 잘 모르는 영의를 비꼬려는 듯이 비웃으려고 했지만, 모습이 모습인지라 별 효력이 없었다.
“뭐, 애초에 난 머리 쓰는 거랑은 안 어울렸고. 이쪽 세상 사람도 아니거든. 내가 말 안 했었나? 아, 할 여유가 안 났지.”
생각해 보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대화란 걸 딱히 할 여유가 없었다.
타이가한테 이끌려서 반강제로 수업을 듣게 되었고, 매번 버티기에만 급급했으니 대화를 할 시간이 나올 리가.
“음, 폭포 때도 넘어져서 물먹고…… 평원에선 지쳐서 쓰러졌고. 절벽에서는 울었었지?”
폭포에서야 타이가가 건져 줬지만, 그 외에는 영의가 구해 줬었다.
“아, 안 울었어!”
시라가 버럭 소리를 치자 영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래, 그런 거로 하자.”
“안 울었다고!!”
“알았다니까? 왜 자꾸 소리를 질러?”
영의는 시라를 약간 놀려 먹으면서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시라 없이 혼자서 타이가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면 아마 엄청 심심하거나 지루했을 테니까.
“윽.”
“응?”
또 한 번쯤 더 뭐라고 하지 않을까 싶었던 영의의 예상과는 달리, 입을 다무는 시라.
“아, 내일 아침은 뭐로 먹지……?”
“휘요!”
“새고기……? 그보다, 넌 같은 새인데 새를 먹는 게 안 질리니?”
“휘익! 햑!”
“아니, 뭐 맛있긴 한데. 그보다 너 고기만 먹으면 돼지가…….”
뇌영과 함께 내일 아침 메뉴를 고민하던 그때,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줘.”
“그렇게 먹으면……. 뭐?”
제대로 듣지도 못했고, 딱히 시라에게 집중하고 있지도 않았기에 되묻는 영의.
“꺼내…… 줘, 인간…….”
시라의 말에 시라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꺼내 줘……. 아니, 꺼내 주세요……. 제발…… 인간님…….”
갑자기 영의에게 존대까지 하며 자신을 꺼내 달라 요청하는 시라.
“뭐, 뭔데? 갑자기 왜?”
탈진한 걸 데려다줘도, 울던 걸 구해다가 절벽 위로 올려 줬을 때도 감사 인사는커녕 냉랭한 대답밖에 못 들었었다.
근데 갑자기 나한테 존대까지 하면서 부탁을 한다고?
“급하니까…… 제발…….”
일단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급격한 심경 변화가 있는 듯했다.
“어, 일단은 꺼내 줄게.”
늘 쌀쌀맞던 애가 갑자기 저자세로 나오자 당황부터 하는 영의.
“휘약!”
뇌영은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날개를 파닥이며 울었지만, 영의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평소에 괘씸했다고 해도…… 애가 갑자기 죽을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확 변했는데 그냥 두는 건 좀 그렇지 않아?”
“휘익…….”
영의는 일단 빠르게 꺼내 주기 위해 뇌기를 일으켜 시라가 있는 곳 주변의 땅을 때렸다.
쿠웅.
“흐익?!”
시라는 크게 움찔하며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자, 잠깐! 하지 마!”
꺼내 달라고 부탁할 땐 언제고, 갑자기 하지 말라고?
“왜? 꺼내 달라며?”
“그게…… 조금, 진동이 덜 가는 방향으로는 안 될까?”
영의는 지금 시라가 자신을 갖고 노는 건가 싶었다.
“아니, 그럼 흙을 조금씩 퍼내라고?”
“가, 가능하면 그런 쪽으로……. 윽.”
시라는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고, 영의는 그 모습에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랬다가 말랬다가, 사람 귀찮게……. 고개는 들어야지?”
이젠 아예 사람 말도 안 듣는 건가 싶어 시라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아주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올 것 같아……. 흐윽.”
영의는 그 한마디를 듣자마자 뭔가를 직감했다.
평소의 태도와는 확연히 달라진 비굴함, 다른 곳에 집중하느라 힘이 빠지는 다른 신체 부위.
“그, 혹시 화장실? 그것도 급하게?”
시라는 얼굴을 붉히며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경찰도 도로의 무법자들도 설명만 한다면 모두 용납하고 인정해준다는 생물로서의 생리현상이다.
영의는 사정을 알겠다는 듯 손날을 세워 삽처럼 시라의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말을 하지……. 아니, 못 했겠구나.”
당장 면식이 있고 제법 친분이 있는 사이라도 조심스러운 주제 아닌가.
하물며 평소에 별로 좋게 보지 않던 상대가 눈앞에 있는데…….
“에휴…… 너도 참지 말고 그냥 말하면 됐을 텐데. 토끼아재 아까까지만 해도 우리 주변에 있었잖아?”
영의는 흙을 퍼내며 반쯤 불평하듯 말했고, 시라는 참는 데 모든 집중력을 쏟아붓고 있는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우윽…….”
그리고 그런 시라를 보며 뇌영은…….
퍼덕! 퍼덕!
“휘요! 휘약햑햑햑!”
……웃고 있었다.
날개를 퍼덕이면서 새 소리에 대한 문외한이 들어도 웃는 듯한 어조로 우는 뇌영.
시라는 그런 뇌영을 보며 설움이 차올랐는지 눈에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야, 조금만 더 하면 상체까지 나오겠다. 그땐 잡아서 빼줄게.”
그리고 영의의 손 삽질도 이제 어느 정도 성과가 보여, 시라의 어깨와 양팔의 윗부분이 바깥으로 드러났다.
끄덕끄덕.
“휘햑햑햑햑!”
“야! 웃지 말고 도와줘! 하다못해 저기 멀리 가서라도 웃던가!”
지금 상황과 뇌영의 비웃음에 의해 수치심과 서러움을 가득히 채운 시라는, 잠시 뒤 영의의 손에 의해 꺼내졌다.
“흣, 으으…….”
그리고 마지막 힘을 발휘하는 듯 전속력으로 달리……진 못하고, 비틀거리며 숲속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숲속 깊은 곳에서 시라는 몸과 마음 모두를 비워 내고 방금 전의 감정마저 깨끗하게 비우고는 평화를 되찾았다.
그런 다음, 영의와 눈을 마주칠 수 없는 부작용이 조금 있었지만 시라는 심성이 나쁘진 않았기에 이내 사과와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은 가득했던지 얼굴이 붉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