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4)
온몸을 내달리는 짜릿한 감각이 느껴진다.
마치 금방 뚫린 지하수가 솟아 나오듯, 심장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뇌기.
그리고, 심장에서 시작되어 혈관을 지나 손과 발, 머리끝까지 전해지는 고양감과 활력은 그 모든 것에 박차를 가하게 해주었다.
영의는 온몸에 뇌기를 휘감으며, 자신을 가로막는 눈앞의 거대한 벽으로 돌진했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거대한 태산과도 같은 기세가 느껴졌고, 실제로도 그만큼 굳건하였다.
콰앙!
하늘에서 내려친 천둔검의 벼락과 온몸에서 끌어 올려 부딪친 뇌신무의 일격.
하늘에서 내려온 벼락과 땅에서 솟아오른 벼락이 함께 격돌하였다.
인간인 이상 당해 낼 수 없을 것만 같은, 강렬한 동시에 아름답기까지 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영의의 눈앞에 있는 것은 한낱 인간이 아닌 산.
벼락이 아무리 내리쳐도 산은 그 자리에 굳건하듯, 두 벼락은 산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리고 산을 정복하지 못한 인간은, 역으로 산에게 목숨을 건 시험을 받게 된다.
찰나의 순간 서로 주고받은 한 방.
영의의 모든 것을 건 일격은 충분히 강하지 못했고, 결국 몸을 내어 주고 말았다.
“크헉! 허어, 윽.”
얻어맞고 날아가 이리저리 구르며 땅에 처참히 널브러져 고통 섞인 신음을 내뱉는 영의.
‘아, 죽는 건가?’
예전에, 공중에서 번개를 맞았을 때도 이 정도로 아프진 않았다.
‘아니, 그때는 거의 곧바로 의식이 끊어졌으니 아픔을 몰랐으려나…….’
지금 느껴지는 아득한 고통은 의식을 끊음과 동시에 다시 고통으로 하여금 의식을 되찾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점멸하는 의식 속에서, 영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몸의 감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격통으로 인해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온몸에서 올라오는 고통의 신호는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으로도 어찌할 수준이 아니었다.
움직일 수 있는 몸이 그럴진대, 감각은 어떠할까.
미각과 후각은 뇌기로 인한 탄내와 피의 비린 향과 쇠 맛에 마비되었고, 촉각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시각은 의식이 끊어지며 검게 물드는 것과 동시에 격통으로 각성하며 푸른 하늘을 교차하여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푸른 하늘 위에서, 작은 점이 자신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휘이익!”
자신의 모습을 본 건지,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는 뇌영.
‘걱정을 해주는 건 좋은데, 여기 오면 위험해…….’
뇌영의 울음소리를 들은 그 순간, 머릿속에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위급 상황 인지. 변수 발생. 사망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알립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다급한 듯 빨라지는 알림이의 목소리.
[……강제로 개입합니다. 더 큰 변수를 막기 위해서.]
알림이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였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길게 이어졌다.
[이동 수단, 뇌영…… 이동 위치는…… 여기로.]
‘대체…… 무슨 소리지……?’
한참 정신없을 때에, 유독 머릿속에 또렷하게 들리는 알림이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가 영문 모를 소리를 계속한다면 싫어도 의식하게 된다.
‘뭐 하는 거야……?’
그리고 뇌영을 언급한 알림이의 목소리를 들은 건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뇌영이 영의의 몸 위로 안착해 울기 시작했다.
“휘이오…….”
[지금은 이른 것 같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무탈…… 아니, 생존하길 바랍니다.]
‘……뭐?’
영의는 푸른 하늘을 보다가, 잠깐 의식이 끊겨 검은 세상에 갇혔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며 눈을 떴을 때, 그는 노을 지고 있는 하늘을 목격했다.
‘무슨…….’
영의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렇게 의식을 잃고 난 다음 현재…….
“스읍…… 후우…….”
영의는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한 절벽 위의 바위에 앉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집중을 하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집중하는 모습이었지만…….
“스읍…… 아, 때려치워. 안 해.”
심각한 표정은 사실 찡그린 표정이었다는 듯,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휘익? 휘약!”
옆에서 함께 무언가를 하는 듯, 눈을 감고 있던 뇌영은 영의가 중간에 그만두자 성질을 내는 듯 날개를 펼치며 날카롭게 울었다.
“중간에 그만두는 게 좋지 않다는 건 나도 아는데, 대체 내가 자연이랑 뭐 어떻게 어울리라고?”
무언가 풀리지 않는 문제를 끌어안은 듯, 답답함을 호소하는 영의.
“휘요오…….”
뇌영은 그런 영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내가 지금까지 진짜 날로 먹긴 했구나. 사람 마음 하나 얻는 게 이렇게까지 힘드냐?”
그렇게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영의.
그의 눈앞에는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메시지 창이 공중에 떠 있었다.
[주문인과 타협하여 보상을 수령받아 오세요.]
[주문인: 숲의 수호자]
[보상: 자연과의 소통, 자기 치유 능력]
여기까지만 보면 조금 이상하긴 해도 배달 때와 다를 게 없었으나, 그 아래에 써져 있는 글귀가 문제였다.
[긴급한 상황이었기에 개입했으나, 다음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대비책으로 당신을 이곳에 데려다 놓았음을 알립니다.]
알림이가 써둔 것 같은, 그런 것치곤 사람이 쓴 것 같지만 어미에 붙은 알립니다가 상당히 알림이스러웠다.
아무튼 저 메시지 때문에 집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영의.
권왕과의 일전 이후 경각심도 생겼고, 거의 시체였던 자신을 살린 힘이 탐났다.
“하아…… 뭐 설득할 방법이 없나……?”
영의는 저 깊은 숲속 어딘가에 있을 남자를 떠올리며 고민을 시작했다.
이 숲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 보니 갑자기 나타나서는 나가라고 했던 의문의 남자.
무슨 야생에서 사는 자연인처럼 반쯤 벗은 몸에 가죽 한 장을 걸치고 그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고풍스러운 말투를 쓰는 남자였다.
이름을 물어봤지만 남자는 할 말은 다 했다는 듯이 대답하지 않고 숲속으로 사라졌었다.
그 뒤로 남자를 쫓아가 봤지만…… 이내 추적을 포기했다.
아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속도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나무들과 깎아지른 절벽을 평지처럼 내달리는 모습에 그만 추적할 의지가 사라졌었다.
그렇게 숲 어딘가에 주저앉아 집으로는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을 하던 무렵 눈앞에 알림이가 보낸 듯한 메시지 창이 떠올랐고, 그걸 보고 가르침을 청해 봤지만…….
-잠깐만요! 저는 어떻게 고친 건데요! 그것만 가르쳐 주면 더 이상 안 따라다닐게요!
다급히 소리쳐서 남자를 멈춰 세웠지만, 숲의 수호자라는 정체만 아는 남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가르칠 건 없단다. 자연을 보고 배워 보아라. 옆의 친구의 도움을 받거나.
숲의 수호자는 영문 모를 말을 하고 다시 저 멀리로 사라졌다.
지리도 모르고, 숲속을 제집처럼 다닐 재주는 더더욱 없었던 영의.
하늘로 가면 또 모르겠지만 나무가 너무 울창해 하늘로 올라가면 아래에 있는 게 뭔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하아…… 어떻게 해야 하지? 자연을 뭐?’
그래서 자연을 보고 배우라는 의미불명의 한마디에 별짓을 다 해봤다.
일단 어느 정도 이미지가 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따라 해봤다.
물가를 찾아서 폭포 수련처럼 물을 맞으며 수련해 봤지만…….
‘아, 따거! 아! 왜 아프지? 아악!’
작은 돌가루나 자갈 같은 게 섞여서 내려오는 경우가 있어서 제법 아팠다.
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도 해봤다.
‘……크헉, 컥! 어우, 깜빡 졸았네.’
그늘이 시원해서 잠은 잘 왔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도해 본 게 방금 전의 바위 명상.
“아, 진짜…… 그냥 집에 갈까……?”
그냥 다 때려치우고 집에나 갈까?
부모님도 걱정하실 것 같은데?
아니지, 다른 차원에 오면 시간 흐름이 없으니까……. 응? 진짜 없었나?
영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포기할까 생각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든 한 가지 의문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일단 무림…… 쪽은 다녀오면 시간 변화가 없는 건 확인했는데, 다른 쪽도 그랬었나?”
독고휘나 혁련무강에게 다녀올 때는 시간 변화가 없었다.
거기서 몇 시간을 보내든, 아니면 그냥 금방 돌아오든 갈 때의 시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일라이저나 베키에게 다녀올 때는…… 어땠더라?
영의가 그렇게 기억을 되살리려 고민에 빠져들 때, 뒤에서 영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
그 누군가는 영의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숲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아, 씨…… 기억이 안 나네……. 넌 좀 아니?”
기억을 떠올려 보려 해도 영 성과가 없자 하다못해 뇌영에게까지 물어보는 영의.
“휘익?”
당연하지만, 뇌영이 뭔가를 알 리가 없었다.
“그래, 내가 조류한테 뭘 기대하냐? 후우…….”
애초에 기대할 만한 것도 아니었지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뇌영을 보며 한숨을 쉬는 영의.
“휘약! 휘익!”
뇌영은 자신이 무시받았다고 생각하는지 날카롭게 울며 따지기 시작했다.
“아, 미안. 그건 사과할게.”
“휘요오!”
“어디 가?!”
영의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뇌영은 삐진 건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흐음……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지난 며칠간의 수련? 비슷한 행위로 얻은 게 아주 없진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진 몰라도 예전과는 다르게 몸이 더 튼튼해졌고, 조금 더…… 민첩해졌다.
속도 자체야 다를 게 없었지만 반응 같은 게 확실히 조금 빨라졌다.
‘뼈야 부러지고 다시 붙으면 더 튼튼해진다지만, 몸이 더 민첩해지는 건 이상한데…….’
어쩌면 이게 그 자연과의 소통의 효과일까 싶은 생각을 하던 찰나,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워우우-
“가봐야겠네.”
영의는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던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뇌룡보로 빠르게 허공을 질주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 직후, 누군가가 다급히 절벽 쪽으로 달려와 저 멀리로 사라지는 영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날아……갔다? 인간이? 어떻게?”
공중을 밟으며 빠르게 이동하는 영의의 뒷모습을 보는 누군가는 망토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머리에 후드를 쓰고 있었으나, 다급히 달려오느라 후드가 벗겨져 머리가 바깥으로 드러났다.
“어, 어쩌지? 수호자님한테 알려야 하나……?”
그렇게 말하며 고민하기 시작한 누군가는 인간과 흡사한 외모와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특이하게도 긴 귀를 가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수호자님께 알리는 게 첫 번째 원칙이긴 한데…….’
방금 전 들린 늑대 울음소리는 틀림없이 숲의 수호자와 함께 다니는 늑대의 것.
낯선 인간도 그곳으로 향했으니, 이럴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어,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심하게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도 뭐든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단 몸을 움직였다.
“이, 일단은 따라가야…….”
그렇게 절벽 끝까지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고, 그래도 조심만 하면 잘 내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
생……각…….
“생각보다 높은데……?”
차마 공중을 걷거나 새들처럼 날아가는 재주를 가지고 있진 않았으므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돌아서 가자…….”
그렇게 영의를 뒤쫓는 의문의 추적자가 하나.
그것도 아주 천천히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