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3)
5성급 호텔의 레스토랑.
그곳의 한 테이블에는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던 듯, 2인분의 요리가 올려져 있었다.
하지만 테이블에는 한 사람만이 있었고, 그마저도 식사를 하고 있지 않았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스테이크가 접시 위에 정갈하게 플레이팅되어 맛있는 향과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며 보는 사람의 식욕을 돋웠지만…….
테이블에 앉은 남자는 고기를 지켜보기만 하고 손을 대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한 2분여가 지났을까, 테이블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자 흠칫하며 고개를 돌리는 남자.
하지만 테이블로 다가오는 발소리는 웨이터였다.
“손님, 혹시 식사 자리가 불편하시다면 말씀을…….”
“괜찮습니다.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남자는 외국인인지, 번역기를 통해 의사를 전달했고 웨이터는 손님의 거절 의사에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물러났다.
그렇게 다시 스테이크에 시선을 고정하려는 남자.
하지만 이미 한번 긴장감이 극에 달해서였을까, 불안한 듯 눈알만을 이리저리 굴려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남자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다시 아래로 시선을 내려 스테이크를 볼 때, 갑작스럽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식사를 하고 있지 않지? 들게나.”
“허엇.”
아주 잠깐 시야를 돌렸을 뿐인데 그사이에 나타난 한 노인.
그 이전에, 노인은 다가오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한순간에 그에게로 왔다.
“이게…… 제 마지막 식사인 겁니까…….”
남자는 불안한 듯, 떨리는 눈으로 아래의 스테이크를 내려다보았다.
“음? 무슨 소리인가?”
노인은 남자의 말이 의문스러운 듯, 자리에 앉으면서 남자에게 물었다.
갑자기 마지막 식사라고?
“……제 처분을 의논하기 위해, 전화를 하고 오신 것 아닙니까?”
“음? 아아, 그거? 파…… 아니, 제이미 자네는 처벌받지 않을 거야. 그분께선 능력 부족에는 엄하셔도, 뭐 어쩔 도리가 없었다면 관대하시니까.”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나이프를 들어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교부…… 아니, 파드레 님. 저는…… 죽지 않는 겁니까?”
제이미라고 불린 남자는 의아해하며 노인에게 물었다.
“음? 자네도 죽을 순 있지. 칼에 맞거나, 수명이 다하거나 하면. 오, 맛있군.”
파드레라 불린 노인은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어 씹으면서 그 맛에 감탄했다.
“그 말이 아니란 거 아시잖습니까.”
파드레는 그 말에 눈 한쪽을 치켜떴다.
“……이봐, 적당히 넘기려 할 때 넘기게. 자넨 죽지 않았고, 기회를 얻었다. 이거 이상으로 필요한 사실이 있나?”
“아니, 아닙니다.”
제이미…… 실제로는 파렌하이트인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리고…… 자네 친구도 챙기도록 하게. 뒷골목 의사 둘 정도로는 부족할 거야.”
“네……?”
갑자기 친구를 언급하며 무언가 조언하는 파드레.
“뭐, 인원을 하나 보내 놓긴 했네. 근데…… 보고를 듣기론 영…….”
보통은 당황할 만도 하건만, 파렌하이트는 파드레의 말에 표정이 심각해졌다.
“상태가…… 심각합니까?”
“음.”
노인의 입에서 긍정과 부정, 그 어떤 의미도 담은 대답이 곧바로 나오지 않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고 생각한 파렌하이트.
그는 마음이 급해졌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서려 했다.
“앉게. 이미 인원을 보냈다고 하지 않았나. 자네가 사람을 살리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유 있게 가는 게 좋지 않겠나?”
“……네.”
파드레의 말에 다시 자리에 앉아 천천히 스테이크에 칼을 갖다 대는 파렌하이트.
스테이크는 아까처럼 김을 피워 올리지 않고 있었고, 약간 식은 듯했다.
하지만 칼로 썰어 내자 단면에서 김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그만큼 온기를 지닌 육즙이 흘러나와 식은 스테이크를 다시 데워 주고 있었다.
“……왜, 식욕이 없나? 하긴, 자네와 그 친구는 제법 오래 알고 지냈지. 아니, 어쩌면 방금 전까지 죽음을 생각하고 있어서 입맛이 없을 수도? 하하.”
파드레는 말을 하는 내내 누군가의 죽음을 통보하는 일에 익숙하다는 듯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음, 자네가 짰으니 불안하진 않지만 혹시 모르니 물어보겠네. 탈출 루트는?”
“……남쪽 해안, 새벽 시간대에 낚싯배로 위장한 뒤 일본으로 밀항할 예정입니다.”
“중국이 더 가깝고 편할 텐데? 아, 그래. 자네들은 중국에 좋은 감정이 없었지? 하하, 태어난 나라를 혐오한다니. 기묘하지 않나?”
파드레는 그렇게 말하며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당신도……. 아니, 아닙니다. 사연 없는 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파렌하이트는 파드레에게 뭔가 반박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 가뜩이나 상처 입은 이들끼리 싸우는 것도 영 좋은 생각은 아니지. 그리고 나는 이 나라를 좀 둘러보다 가겠네. 젊은 시절에, 신세를 좀 졌으니까.”
“……네, 그러시죠.”
파렌하이트는 스테이크를 빠르게 썰어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번엔 실패하지 않겠습니다.”
“알겠네. 그리고- 음, 아니네.”
파드레는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그 자리에서 스테이크를 천천히 썰기 시작했다.
그 시각, 남해 연안의 한 낚시터.
해상에 패널로 조립된 간단한 숙소 겸 낚시터들을 띄워 놓고 낚시용품을 대여하거나 팔기도 하는 곳이다.
지금은 영업을 하고 있지 않아 빈 건물이었으나, 그 안에 누군가가 있었다.
“후욱…… 훅…….”
안에서는 거대한 덩치를 지닌 사내가 평상 위에 몸을 눕힌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사내의 몸 이곳저곳에는 불에 덴 듯한 화상 자국이 여기저기 있어 남자가 부상을 입었음을 짐작게 했다.
몸에는 부상이 가득했지만, 사내는 당장 바깥에 나가 도움을 청할 형편이 안 되는지 몸을 뒤척이면서도 바깥으로 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사내는 부상 입은 자신의 몸 상태나 도망자인 현 처지에 대해선 관심 없었다.
다만, 얼마 전 겪은 일만이 계속 그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있었을 뿐.
도심지 주변.
바로 앞에 온몸 가득하게 눈이 부신 스파크를 튀기며 달려드는 사내가 있다.
사내는 머리에 헬멧을 쓰고 있었고, 그 은색의 표면은 매우 매끄러워 자신의 표정이 비쳤다.
누가 봐도 희열이 가득한, 즐거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의 얼굴.
자신의 주먹과 눈앞의 섬광이 맞닿고, 순간적으로 세상이 밝게 물들었다.
권왕을 자처하며, 언제나 주먹과 몸으로 싸우는 것에선 패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늘 강자를 찾아 나섰고, 그들과 싸워 자신의 가치와 자존감을 드높였다.
그 자신의 과거에서는 자존감을 찾기 힘들었기에.
어릴 적, 네팔에 아버지 없이 태어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외모만큼은 동년배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타고난 체격과 힘은 이름 모를 부친에게 물려받은 듯 친구들과 달랐다.
어머니는 언제나 성인보다 많이 먹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들의 식비와 옷값을 대느라 힘들게 일했다.
물론, 소년도 그런 어머니의 고생을 알아서 몸을 쓰는 허드렛일들을 하며 자신의 식비를 충당했다.
그렇게 성인이 되었을 때, 소년은 네팔의 구르카 용병에 지원했다.
학문과 체력 등을 모두 시험하는 제법 까다로운 시험이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막 게이트가 생겨나던 시절이라, 통제를 위한 군인이 많이 필요해졌기에 신체 능력이 좋았던 그는 금방 합격했다.
합격했을 때 그는 어머니를 얼싸안고 기뻐했었다.
큰 사치는 못 부리더라도, 적어도 옛날처럼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될 만큼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가진 것이라곤 몸과 힘뿐이었던 그는 그 성공마저도 막혔다.
한 임무에서 그는 그의 나라와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 물론 그의 어머니도.
-세상이 우리를 반기질 않으면, 우리도 우리 나름의 길을 찾아가야지. 그리고…… 복수를 하는 거다.
……한때는 적이었지만, 지금은 친구로 지내는 남자의 말에 따랐다. 그땐 그게 유일한 방법처럼 보였으니까.
세상은 힘을 가진 개인을 억압하지만, 뒷세계로 들어가면 오히려 권장을 받는다.
그들의 권좌에 눈독만 들이지 않는다면 힘을 가진 자는 존중받고, 경배받으며 언제나 그들에게 유용하게 쓰였으니까.
애초에 자신도 머리를 굴리거나 권력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오히려 시키는 대로 일만 처리해 주면 나머지는 편의를 봐주니 좋았다.
범죄란 사실은 알았지만…… 자신도 처음에는 바르게 살아 보려 노력했다.
그 노력을 이용하고 짓밟은 게 세상이었을 뿐.
그렇게 하루하루 강자와의 싸움만을 유일한 여흥으로 살아오던 그였지만, 진짜 목숨의 위협은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당장, 눈앞의 사내도 자신의 주먹을 맞고는 날아가고 있지 않은가.
손에 무언가 부러지는 감촉이 여러 번 들린 걸 보면, 사지 중에 하나는 확실히 못 쓰게 됐다.
하지만, 날아가는 사내의 헬멧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에 담긴 감정은…… 경악과 당황. 그리고 공포였다.
지금까지 나의 힘 앞에 무릎 꿇던 수많은 이들이 짓던 표정을…… 내가 짓고 있다고?
잠깐 충격을 받아 정신이 멍해졌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는 자신에게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진 사내가 있었고, 세상은 적막했다.
멀리서 무언가 작은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신경 쓰이진 않았다.
냄새……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에서 피 맛이 느껴짐과 동시에, 온몸에 격통이 밀려왔다.
“흐어……어억?”
일반적 격통과는 달리, 자각하자마자 온몸을 내달리는 통증의 신호 탓에 비명마저도 힘 빠지는 공기 소리가 났다.
화상은 자주 입어 봤고, 하다못해 번개도 몸으로 맞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격통은 그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온몸의 혈관에 쇳물을 흘리는 듯 뜨거웠고, 그 쇳물에 전기마저 흘리는 듯, 뜨거움과 찌르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밀려드는 고통에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내려다보며 숨을 골랐다.
“후욱…… 훅…….”
힘겹게 고통을 인내하는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단 하나.
-저놈을 죽여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강자와의 목숨 건 싸움이니 뭐니 한 건 다 허세고 말장난이라는 듯, 살의가 솟구쳤다.
너무 강했기에, 지금껏 패배를 몰랐기에 그에게 다가온 위협에 더 크게 반응했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몸의 격통? 급격히 분출되기 시작한 아드레날린이 몸을 움직일 수는 있게 해주었다.
행동의 장애? 엄청난 속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동에 문제는 없다.
다만, 정말로 간단한 문제였지만…… 해결을 할 수 없었다.
상대가 없는데, 어떻게 죽일 수가 있겠는가?
바닥을 잠깐 본 그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문득 아까 주변을 맴돌던 새도 함께 사라졌다는 걸 눈치챘지만, 그 정도 크기의 새가 사람을 데리고 날아갈 순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뭐지……?”
가짜였다고 하기엔 몸에 느껴지는 고통이 너무 생생했고, 그렇다고 스스로 사라졌다기엔 아무런 흔적이 없다.
그러나…… 더 이상 생각을 이어 가기 힘들었다.
신호탄도 보았고, 어디선가 자신을 공격하던 놈도 있었으니 이 자리에 있어 봐야 좋을 건 없었다.
권왕은 그렇게, 마음속의 패배를 되새기며 자리를 힘겹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