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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76화 (76/325)

#제76화 (2)

아카데미 습격 사건에 대한 것은 TV 뉴스에서만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각종 매체들, 인터넷 방송 플랫폼, 이런저런 사이트에서까지 그것을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다.

[이번 아카데미 습격 사건은 한국에 대한 테러다? - 나라 근심 나눔 채널]

[아카데미 습격, 그 범인 중 하나는 국제적 빌런이다? - 명이의 각성자 TV]

-아니 한국에 뭐 할 게 있다고 테러를…….

-그것보다…… 감히…… 애들 있는 악카데미를……. 이눔……들…….

-근데 저때 막은 사람 있지 않음?

-정부에서 찾아도 안 나오고 있다는데?

동영상 사이트에도 올라오고…….

[얘들아 이번에 테러 일으킨 범인 중에 하나인 그 덩치 큰 놈 알아보니까 거물급 범죄자인데 왜 굳이 한국 온 거?]

몇몇 사이트에 이런 게시 글이 생기기도 했다.

-ㄹㅇ…… 미국에서도 깽판 치고 유유히 도망쳤는데 왜 한국에서 난리 치다 없어졌냐…….

-맞는 말이지. 국제적 범죄자가 왜 한국 와서 저랬던 거지? 아카데미에 난리를 칠 거면 본인이 가면 될걸. 미국에서 탱크 몸으로 부수고 돌격하는 영상 보면 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영상’에 나온 사람 아님?

-그 영상? 그게 뭔데?

-아 이걸 아직 모르네ㅋㅋ 아싸인가ㅋㅋㅋ

-알면 이러고 있지를 않지. 말해 봐. 뭔데?

-검색만 하면 나오니까 찾아봐. ‘아카데미 은색 헬멧’ 이거만 쳐도 나옴.

어느 쪽이든, 댓글들이 공통적으로 집중하는 주제가 하나 있었다.

‘대체 저때 있던 은색 헬멧은 누구인가?’

그리고 영의네 집, 체육관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하지만 잠겨 있는 문과는 달리, 체육관 안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화질이 별로 좋지 않고 연신 초점이 흔들리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콰앙!

쿠-웅!

모두가 노트북에 시선을 집중한 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은색 헬멧을 쓴 사람과 덩치 큰 누군가의 싸움 장면이 나오고 있었고, 촬영 여건이 별로 안 좋았는지 화면이 흔들리고 있었다.

번쩍!

섬광과 함께 화면이 흰색으로 변했고, 소리와 영상 모두가 끊어졌다.

“……끝이야?”

영의의 아버지, 정권이 노트북을 계속 쳐다보며 말했다.

마치 여기서 더 있어야 하는데 일부러 이것만 보여 주는 게 아니냐는 듯이.

“네. 끝이에요.”

정권의 말에 대답해 주는 노트북의 주인이자 영의의 제자 겸 체육관 회원, 지연.

“진짜로? 더 없고?”

정권은 끈질기게 물었고, 눈살을 찌푸릴 만도 했지만 지연은 차분히 대답해 주었다.

“네……. 현장 조사 결과로는 어디로 이동한 흔적은 사람 한 명의 흔적밖에 없었대요.”

“으음…….”

지연의 말에 정권은 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지연의 대답에 의문이 든 화연이 물었다.

“지연아,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 어제 일어난 일인데?”

지금 뉴스를 봐도 조사 결과나 자세한 사건 경위 같은 건 제대로 발표가 나지 않았고, 인터넷에서도 제대로 정리된 결과는 없었다.

그런 고급 정보를 어떻게 눈앞의 지연이 알겠나?

“어, 그게…….”

아무리 국내 길드가 나름 잘 지낸다고 해도 경쟁 업체이긴 한데, 화연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잠깐 고민하는 지연.

하지만 그런 지연의 사정을 눈치챈 건지, 수연이 눈치 빠르게 대신 대답해 주었다.

“지연이네 아버님이 그쪽으로 일하셔서 그래요.”

수연이 도와주자 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어어, 네.”

“흐음…….”

그래도 약간 의구심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짓는 화연.

하지만 그 모든 분위기는 한 명의 외침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래서 결국 영의는 어디로 간 건데?! 내 아들은!”

반쯤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모습으로 외치는 어머니 희정.

“엄마…….”

“어머니…….”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모두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현장에는 바이크가 옆에 있었고, 영상에 나온 큰 덩치의 남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체감될 만큼 흉악한 몸을 지녔다.

그런 상대와 맞서 싸우고 마지막 순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누가 봐도 부정적인 생각밖에 안 들 상황이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모든걸 쏟아붓고 장렬히 산화한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듯이.

그때, 그나마 알고 지낸 시간이 길지 않아 조금 냉정할 수 있었던 지연이 의외의 정보를 말했다.

“그…… 좋은 소식이라고 해야 할진 잘 모르겠지만, 특이한 사항이 있어요.”

“특이한 사항?”

지연은 노트북을 조작하여 영상의 마지막 순간, 섬광이 발생하기 직전의 장면에서 멈추었다.

“네. 이때 섬광이 발생하기 전에는 분명 새 같은 게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번개 치는 소리와 함께 섬광이 사라지자 새도 같이 없어졌다고 해요.”

보통이라면 지나가는 까치나 까마귀정도라고 생각하겠지만, 영의와 연관된 새라고 하면 틀림없이 뇌영을 칭하는 것 이리라.

즉, 뇌영이 함께 있었는데 섬광이 발생하고 뇌영과 영의가 함께 사라졌다면…….

“어딘가에 있기는 하단 건데…… 뭔가 사정이 있어서 못 오고 있나?”

둘째, 영환이 영의가 살아는 있지만 당장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네. 그리고 어디론가 이동한 흔적이 없다는 것도 결국은 걸어서 사라진 거니까……. 쌤은 하늘을 날 수 있으시잖아요?”

지연이 태연스레 말하자, 그 자리의 모두가 의문을 표했다.

“……난다고?”

“날 수 있어?”

“아, 그러고 보니…….”

일전에 지연에게 뇌전보를 가르치고, 뇌룡보까지 가르치려다가 지연의 센스 부족으로 인해 뇌룡보는 가르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뇌룡보의 시연에 함께 있었던 것이 영웅.

“그럼 현장에 바이크가 남아 있는 이유도 설명이 되겠네.”

지연은 영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추측을 제시했다.

“네. 어떤 연유에서 마지막 충돌 후에 도주를 택한 게 아닐까요……? 바이크는 시동을 걸어야 하니까 시간이 걸려서 포기하고 다리로 도주한 거면…….”

지연의 말을 화연이 이어받아 마무리했다.

“……그러면 선배는 마지막 일격을 날리고 상대의 상태를 확인할 여유도 없이 곧바로 뒤돌아서 도망쳤고, 멀리 가서 기절해 있거나…… 아니면 치료받느라 여기 못 오고 있나?”

“아마 기절해 있을 거다. 영상에서 크게 외상 입은 건 없었고, 치료를 받고 있었으면 전화라도 했겠지.”

정권은 영의의 생존 가능성을 의외로 높게 보고, 나름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 보여도 각성자니까 튼튼하고, 맨바닥에서 자도 멀쩡하다. 이건 옛날에 술 먹고 아침에 들어왔을 때 확인한 거니까 확실해. 아마 탈진으로 기절한 것 같은데…… 늦어도 이틀이면 오겠지.”

정권의 말에도 내심 걱정이 된 건지, 화연이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그래도, 실종 신고라도 하는 게…….”

화연이 혹시 모르니 신고라도 해두는 게 어떤가 말하려 했지만, 정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해봤지. 72시간은 지나야 가능하다더구나.”

“……네.”

어지간해선 아카데미의 주변을 찾아보겠지만, 하필 영의는 그들 주변에서 속도에선 따를 자가 없는 인물 중 하나였다.

1분이면 수도권을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니, 그들로서는 수색할 방도가 없었다.

화연이나 지연이 각자의 길드 인원을 푼다면 모르겠지만, 그랬다가는 은색 헬멧의 남자가 누군지 알게 되지 않는가.

“……뭐, 그래도 자랑스럽네. 저만큼이나 컸으니까.”

정권은 일시 정지된 노트북의 모니터를 보며 살짝 웃어 보였다.

거기에는 충돌 직전의 상태인 영의와 정체불명의 거한이 화면에 나와 있었다.

* * *

눈을 따갑게 하는 강렬한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온다.

나뭇잎은 산들바람에 휘날려 가지를 흔들었고, 가지가 움직이며 나무에 위태롭게 붙어 있던 작은 열매를 그만 떨어트리고 말았다.

탁!

“어…… 으윽…….”

아래로 떨어지던 열매는 부드럽고 푹신한 흙과 나뭇잎이 뒤덮인 바닥이 아닌, 누군가의 머리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아래에 있던 남자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으…… 어어…… 음…….”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리겠는지 멍한 표정으로 좌우를 둘러보는 남자.

작은 열매였으니 뇌진탕을 일으킨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긴……?”

어느 정도 정신이 들었는지, 남자는 어느 정도 맑아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숲……?”

잠깐 둘러보았지만, 왼쪽에도 나무. 오른쪽에도 나무. 뒤, 앞, 심지어 당장 위에도 나무가 있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남자는 자신이 이곳에 어떻게 온 건지도, 이곳에 본인이 왔던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카데미는……? 그 큰 놈은……?”

남자가 의문스레 무언가를 중얼거리다가 문득 무언가가 생각나는 듯했다.

“그래, 분명히 마지막으로 모든 걸 다 걸고 패황권을 날렸는데…….”

그리고 그때, 숲속에서 무언가가 남자를 향해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휘이요오!”

“앗.”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무언가는 이내 퍼덕거리더니 속도를 낮추고 남자의 어깨 위에 안착했다.

“……뇌영이니? 좀 큰 것 같다?”

“휘요옥!”

남자의 어깨 위에 안착한 것은 크기가 사람의 상체만 한 큰 새였다.

마치 맹금류와도 같은 겉모습에,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매라고 착각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니? 그보다, 네가 날 여기로 데려온 거야?”

남자의 물음에, 뇌영이라 불린 새는 말귀를 알아먹는 듯 여러 번 울었다.

“휘익! 휘약!”

그렇게 뇌영이 무언가를 설명하듯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수풀을 헤치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식물을 엮어 만든 옷과 다 해지고 상처 난 가죽을 몸에 두른 한 남자였다.

“그래. 깨어났구나. 인간의 아이야.”

갑작스럽게 들려온 낯선 이의 목소리에, 남자는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음? 누구지?”

“너의 친구가 말해 주기를, 너의 이름은 영의라고 들었다. 정신을 차렸고 몸도 건강한 것 같군.”

영의의 물음에도, 의문의 남자는 대답해 주지 않고 자신의 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건강해졌다면 이제 가도록 하여라. 자연은 인간을 반기지 않으니. 아니, 인간도 자연 속에 있기를 싫어하던가?”

의문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뒤로 돌아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니, 잠깐! 이봐!”

영의는 다급히 숲속으로 사라지는 남자를 멈춰 세우려 했으나, 몸에 힘이 별로 들어가지 않았다.

“으윽…… 큭…….”

“휘익!”

급하게 일어서서 남자를 잡으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털썩 주저앉는 영의.

그리고 그런 영의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뇌영.

영의는 주저앉으며 바닥에 손을 짚다가, 문득 마지막 순간에 들었던 음성이 다시 머릿속에 들리는 듯했다.

[이동 수단, 뇌영…… 이동 위치는…… 여기로. 지금은 이른 것 같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알림이의 음성과 비슷했지만 훨씬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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