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21)
오전 10시 15분.
탁! 타탕!
총을 쏘는 듯한, 공기의 파열음.
타타탁! 탕!
작게는 천을 휘두르며 발생한 속도에서부터, 크게는 번개가 칠 때 그 열에 공기가 달궈져 팽창하는 속도까지.
의외로 일상에도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소리이지만…….
충분히 빨라야만 가능한 그 소리는 지금, 두 사람의 주먹에서 나오고 있었다.
“으하하하하!”
신이 난다는 듯, 크게 웃으면서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권왕.
“젠장, 덩치는 산만 한데 왜 저리 민첩해?!”
온몸에서 뇌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그런 권왕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견제하는 영의.
권왕의 주먹에서 나오는 파열음과 영의의 뇌기에서 나오는 파열음은 어느덧 아카데미의 입학식장에도 들리고 있었다.
“……언니, 뭔가 이상한 소리 안 들려요? 약간 딱딱거리는 듯한…….”
“음, 들리긴 하는데…… 어디서 누가 장난치는 거거나 아니면 공사 같은 게 아닐까?”
물론, 어지간해선 강당 안에서 울리는 스피커 소리에 알아채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일반인에 비하면 신체 조건이 월등히 좋은 각성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입학식에 집중하는 바람에 작은 소리 정도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수연과 지연은 황준의 부재에 입학식에 집중할 여건이 아니었기에 그 소리 또한 감지해 낼 수 있었던 것.
그러나 그녀들도 파열음을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고 넘기려 했다.
“자, 이번 학기엔 특별히 교관 역으로 외부에서 초청을 한…….”
콰앙!
하지만 사회자가 진행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강당의 문을 세차게 열고 들어왔다.
“큰일입니다! 지금! 이쪽으로! 대량의 괴수가!”
갑작스럽게 달려 들어온 남자의 외침에 사람들은 잠시 웅성거렸다.
“괴수? 갑자기?”
“그보다, 어지간하면 처리되지 않나? 여긴 그래도 각성자 아카데미인데…….”
“대량이라니, 어느 정도길래?”
“도망가야 하나?”
남자를 보며 모두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그 말에 의혹이 든 한 각성자 아이가 자신의 능력으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 소년은 보조 계열 중에서도 원거리 관측에 해당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내 정말로 새카맣게 몰려오는 괴수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진짜 오는데?!”
“뭐?”
“뭐라는 거야, 여기서 뭘 어떻게 알고…….”
몇몇 사람들이 소년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했지만…….
“나 쟤 알아. 2km 바깥에 있는 것도 코앞처럼 본다고 했는데…….”
눈치 없는 다른 아이의 말에, 조금씩 웅성거림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온다고? 괴수들이? 여기로?”
“경비 인력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 이전에! 경찰은?”
이내 불안감과 공포, 그리고 혼란이 천천히 사람들 사이에 독처럼 퍼지기 시작하자 사회자가 급하게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여, 여러분! 진정하세요! 여긴 도심지 주변이고, 각성자 협회와도 멀리 있지 않으니 금방 지원이 올 겁니다!”
강당은 각성자들이 사용하는 시설이니만큼, 튼튼함에 중점을 두고 지어졌다.
“문은 전부 강화 재질이고, 충격에도 충분히 버티게 만들었으니 문을 닫고 바깥에 연락을 하면…….”
유리문이나 약한 재질의 문이나 벽들은 거의 없었고, 창문도 모두 상층과 옥상 부분에 위치해 있어 출입문만 잘 닫고 버티면 충분히 농성이 가능했으나…….
세상 어디에나 객관적 사실이나 타인의 말보다 자신의 말과 생각만을 믿는 인간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뚫리면? 우린 여기 갇혀서 죽는 거라고! 난 나갈 거야!”
한 남자가 그렇게 소리치고 다급히 출입문 쪽으로 달리자,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보다 한 명 두 명씩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여, 여기서 먼저 도망치면 되는 거잖아!”
“정부는 뭐 하는 거야, 세금을 받아먹고 있으면 저런 걸 막아 줘야지!”
평상시라면 충분히 대처가 되었을 문제였으나 사전 계획이 너무 철저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워진 강당의 내부에서 탈출하려는 사람과 안에서 버티려는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며, 이도 저도 못하게 되었다.
강당의 바깥, 아카데미로 들어오는 진입로 쪽에서는 아스팔트가 폭발하듯 튀어 오르고 있었다.
쾅-
“흐하하하하!”
신명 나게 웃으면서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날려 버리고 있는 권왕.
“으엇! 차!”
그리고 권왕의 공격들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면서 뇌기를 쏘아 대고 있는 영의.
빠지지직!
-키에에엑!
-아오오옥!
영의가 쏘아 보낸 뇌기는 권왕을 지나쳐 저 멀리에서 다가오고 있는 괴수 무리들에게 적중해 많은 괴수를 쓰러트렸다.
하지만 이내 그 몸을 넘어 타고 짓밟으며 달려오는 괴수들을 보자, 영의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대체 뭐 얼마나 있는 거야?”
[아까 알려 드린 대로, 많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분위기 좀 보고 나와 줄래?’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개체명: 분위기가 감지될 경우 안내를 하겠습니다.]
‘……됐다, 내가 너하고 뭔 말을 하겠냐. 그보다, 그냥 저 괴수 떼를 상대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은데, 눈앞의 이 덩치는…….’
물론 싸워 보면서 뇌기로 견제하며 공격을 해 보긴 했다.
하지만, 강화 계열 중에서도 상당한 능력자인지 생물로서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전격에도 멀쩡하게 버텨 내며 주먹을 날려 오는 권왕.
‘그래도, 무림에 있던 영감님들보다는 기세가 덜한 걸 보니 상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눈앞의 사내에게서는 독고휘나 혁련무강에게서 느껴진 절대적 강자의 기세는 물론이고, 다른 노고수들에게서 느낀 위압감 같은 게 없었다.
‘아니, 어쩌면 영감님들이 나한테 진심으로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던 걸지도…….’
하지만 확실히 무림의 경험이 도움이 되긴 했다.
눈앞의 사내는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갈성천이 사용한 대력강체술로 키워진 몸보다는 작았다.
그리고 주먹의 기세는 매섭고 닿는 것마다 부서지고 있었지만 원거리의 무언가를 날려 버리는 흉악함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침착하게! 피할 것만 피하면서 괴수부터 정리한다!’
영의는 권왕을 상대하며 뇌기를 조금씩 따로 빼내어 뇌신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이 남자.’
권왕은 영의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수없는 전장과 싸움터를 전전해 온 권왕이었고, 매번 그를 마주하고 긴장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총알을 몸으로 받아 내고, 차량을 맨손으로 뒤집는 인간 전차가 살의를 가지고 달려올 때, 그 누구도 냉정함과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침착할 수 있지? 아니, 감정의 동요를 다스리거나 가라앉힌 게 아니다……. 오히려, 어디서 봤다는 듯한…… 익숙하다는 듯한 느낌……?’
순간적으로 어디서 자신과 싸워 봤던가 싶었던 생각까지 했지만, 이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싸운 상대 중에 이런 자는 없었다. 그리고, 만난 적이 있는 상대라면 기억을 할……. 음?!’
과거에 싸웠던 상대들에 대해 떠올리려다가, 문득 눈앞의 사내와 가장 비슷했던 기척을 가진 존재가 떠올랐다.
“……설마, 치킨을 가져다준 남자인가.”
불과 며칠 전 사채업자들의 사무실을 점거하고 거기서 식사를 주문했을 때 그걸 가져다준 의문의 강자.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음식이나 배달하고 사는 건가! 힘을 가졌다면 그에 맞는 삶을 살아라!”
권왕은 그렇게 소리치며 영의를 향해 어깨로 들이받으려는 듯 몸을 날렸다.
영의는 권왕이 주먹을 날리다가 혼자 고개를 젓더니, 이내 뭔가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화를 내며 달려들자 당황했다.
“뭐, 뭔데?! 갑자기 왜?”
싸움 중간엔 어떤 기습을 하든, 의표를 찌르는 공격이 들어오는 건 이상하지 않다.
느릿하게 주먹을 날리다 갑자기 빠르게 날린다고 비겁하다고 소리치면 소리친 사람이 이상하니까.
갑자기 달려드는 건 이상하지 않다. 전략의 변경 정도로 봐도 되겠지.
하지만 갑자기 화를 낸다고? 왜? 대체 왜??
영의는 그 사실에 당황하면서도 뇌전보로 뒤로 물러났다.
뇌룡보가 속도나 공중 이동의 면에서도 좋지만, 큰 사전 동작이나 움직임 없이 이동하기엔 뇌전보가 좋았다.
그리고 그때, 갑작스럽게 강당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뭐지?”
권왕의 움직임은 뇌기로 감지하면서 잠깐 고개를 돌려 강당 쪽을 바라보자, 거기서 몇 명인가의 사람들이 다급히 뛰어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괴수들이 다가오는 걸 알아낸 건가……. 하지만 대체 왜 나오는 거지?”
강당 안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그였기에 대체 왜 사람들이 빠져나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괴수가 다가온다는 걸 알았다면 여러 방향에서 오는 것도 알았을 텐데, 대체 왜 대피를 하는 거지?
대피라는 것도 도망갈 방향이 있을 때나 도움이 되는 법이다.
영의는 이제 육안으로 확실히 보일 정도로 다가온 괴수 무리들과 권왕을 번갈아 쳐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괜히 영웅 놀음 해 보겠다고 나섰나? 가족들부터 대피시키고 안에 상황을 알릴걸…….’
냉정히 생각해 보면 미리 눈치챈 만큼 빠르게 대피를 권고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가진 힘을 과신한 건지 아니면 젊은 날의 치기인지 괜히 직접 막아 보겠다고 나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뭐.”
영의는 온몸의 뇌기를 최대치로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한편, 강도 사건이 벌어진 은행 앞.
“아아, 너희는 완전히 포위됐다! 순순히 항복하고 나오거나 아니면 조금 아프게 맞고 항복하거나 선택해라!”
지원에 불려온 각성자 중 한 명이 메가폰을 들고 은행을 향해 외쳤다.
“저, 강도들한테 그렇게 말하시는 건 조금…….”
경관 중 한 명이 그 옆으로 다가가서 충고하듯이 말하자, 각성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센스가 별로였나? 그럼 다시 말하지.”
“아, 아! 너희는 완전히 포위됐으니 뒷감당이 두렵다면 순순히 인질들을 보내 주고 투항해라!”
범인을 자극하는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자극을 하는 듯한 느낌이 된 것 같지만…….
“……그 얘기가 아닙니다만, 뭐 주변 분위기를 보면 말하지 않아도 그런 상황이니 넘어가죠.”
솔직히 지금 메가폰으로 하는 말보다, 주위를 둘러싼 광경을 보는 쪽이 더 효과가 클 것 같았다.
헬기도 있었고, 방탄 장비와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특공대가 진입 대기를 하고 있었고, 건너편 도로에까지 경찰이 빼곡했다.
그리고 가장 큰 압박감은 제복과 장비를 입은 경찰들 사이에 평상복 차림으로 서 있는 각성자들.
“빨리 끝내고 가면 안 되나? 입학식 하다가 끌려왔는데.”
단군 길드의 길드장, 황준이 약간 투덜대듯 말했다.
물론 사람 목숨이 걸려 있으니 급하고, 또 과한 것이 부족한 것보단 낫다는 걸 알기에 여기에 오긴 했지만 이정도 규모면 경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범인들 측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
기동대장 박 경정은 황준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닙니다, 하하. 그보다…… 살면서 은행털이는 영화로밖에 못 봐서 그런데…… 실제로도 이렇게 인질만 잡고 농성합니까? 협상 없이?”
황준의 질문에 박 경정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도 직접 출동은 처음입니다만, 전례에 따르면 대부분은 과한 조건이긴 해도 협상을 제시해 왔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강도들은 안 하고 있군요.”
어째서인지를 강조하며 말을 하는 박 경정.
그는 지금 이 범인들이 홧김에 총질이라도 한번 해 줬으면 싶었다.
그렇다면 위급하다는 판단하에 곧바로 각성자들과 특공대의 돌입을 명령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용의주도하게도, 녀석들은 얌전하게 은행에서 농성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황준의 측근인 서 비서가 황준에게 다가왔다.
“길드장님, 지금 아카데미 쪽에…….”
황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이는 서 비서.
“……뭐야? 괴수 무리? 왜? 아니지, 지금 바로…….”
박 경정은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는, 무슨 일인지 대략적으로 윤곽이 잡혔다.
‘은행 강도는…… 미끼다. 아카데미 쪽으로 뭔가를 할 동안 경찰들과 각성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미끼야. 그래서 나보고 시간을 끌라고 하고, 각성자들을 부르라고 한 거다. 안에 있는 강도들도 비슷한 지시를 받은 거겠지.’
하지만, 그는 진상을 밝힐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진실을 밝혀 버려서 각성자들이 갑자기 자리를 뜨게 되면, 강도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놔둬도 각성자들은 아카데미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황준은 자리를 비우려 했다.
“저기, 기동대장 양반. 내가 진짜 미안한데…… 지금 상황이 심상치가 않은 것 같아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황준의 말에 박 경정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