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18)
체육관에서 집으로 장소를 옮긴 지연과 영의 형제.
그리고 지연은 영의와의 수업 이후, 갑자기 과하게 친절해진 두 사람의 행동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과자 더 먹을래? 많이 있는데…….”
과자를 한 개나 두 개 정도 건네주며 하는 말이면 모를까, 그게 박스 단위로 변하면 과자를 좋아하는 사람도 받기 부담스러워진다.
“아, 아뇨. 쌤…… 그렇게 많이는…….”
“한창 외모에 신경 쓸 10대한테 뭘 그렇게 과자를 권하냐?”
“아, 그런가?”
“그래, 밥을 잘 먹여야지! 내가 백숙을 진짜 잘하는 집을 알고 있는데, 요즘 배달 시스템이 좋아서 지방에 있는 것도 배달해 준다고!”
영웅이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을 들었고, 영의가 그걸 제지했다.
“……왜? 집에서 해 먹이게?”
“그 배달 내가 하는 거야. 내가 가서 사 올게.”
영의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지연이 다급히 영의의 옷자락을 잡았다.
“쌔, 쌤! 괜찮아요! 안 먹어도 돼요!”
“걱정 마, 내 바이크면 부산도 10분이면 왕복 가능해. 형, 거기 주소가 어디라고?”
영웅은 영의의 질문에 기억을 되살리려고 했다.
“강원도 어디였는데…….”
“저, 저 닭 싫어해요! 특히나 백숙은 더!”
집에 밥이 없으면 언제나 치킨을 시켜 먹고 간식은 닭강정을 가장 좋아하는 지연이었지만, 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어…… 음…….”
‘휴, 다행이다. 그래도 싫어하는 걸 먹이시진 않겠지…….’
“형, 그럼 소고기로 하자. 내가 횡성으로 가서 한 근…… 아니, 부위별로 사 올게.”
“소고기? 돼지고기도 좋은데.”
역시나 형제답게 의외의 호흡을 보여 주는 둘.
“제, 제가 고기를 안 좋아해서!”
하지만 영의는 눈치가 없었지, 기억력이 나쁜 건 아니어서 지연과의 첫 만남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지난번에 돈가스는 잘 먹던데?”
“……쌤, 솔직히 말해도 돼요?”
“……뭐를?”
“쌤, 지금 혹시 저 동정하거나…… 그러시는 거예요?”
지연은 방금 전 부모님이 이혼하셨다는 말 이후로 갑자기 변한 그들의 태도를 모를 리 없었다.
다만 선생님이고, 또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행동이기에 그냥 넘어갔을 뿐.
“어? 어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영의는 그렇다고 해도 문제고, 아니라고 해도 문제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냥,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 주세요. 제가 뭐 꼬마 애일 때 이혼하신 것도 아니고, 아빠도 돈은 잘 버셔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랐으니까요.”
잘 버는 수준이 아니라 엄청 잘 버는 수준이었지만, 지연은 적당히 대답하였다.
“……알았어. 그보다, 밥은 먹고 갈 거지?”
영의는 그래도 아직 뭔가 아쉬운지 뭐라도 해 주려고 하였다.
“어…… 네.”
부족함 없이 컸고, 또 스스로도 불행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지연.
하지만 그녀도 가족 간의 화목함에 대한 약간의 부러움은 있었다.
지금까지 집이나 단군 길드의 훈련장에서도 할 수 있는 단련만 하였으나, 매번 체육관에 온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늘 친절하게 맞아 주는 언니 같은 수연과 그 가족들은 딸을 맞이하듯 늘 웃으며 반겨 주었다.
물론, 정권은 VIP 회원이기에 더욱 친절했던 감이 있었지만.
비록 화려한 식탁은 아니고, 또 극상의 맛도 아니었지만 영의네 가족과의 식사는 그녀가 지금까지 먹어 왔던 그 어떤 식사보다 좋았다.
“흠…… 갈비찜 정도는……?”
“갈비찜은 어때……?”
말끝을 흐리며 지연의 눈치를 보는 영웅과 영의.
둘은 설마 이것까지 거절하진 않겠지……? 라는 눈빛으로 지연을 보았다.
“그 정도는, 먹을……게요.”
“좋아. 마침 오늘 저녁이 갈비찜이었거든.”
이제 대략적인 문제가 해결됐다는 듯, 영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과자를 집어 먹었다.
“수연이가 좋아하지 않나?”
“그래서 오늘 저녁인 거지.”
“아아, 그렇지. 참.”
“수연이는 아직도 방에 있나?”
“아마도 그럴걸?”
영웅과 영의는 예전처럼 대해 달란 지연의 부탁을 매우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어, 그럼…… 제가 가서 불러볼까요?”
“뭐, 됐어. 조금 있으면 점심때니까 알아서 나오겠지.”
“그런가요……?”
“그래, 너도 과자나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어. 지가 배고프면 알아서 나올 거야.”
자연스럽게 영의의 옆에 앉아 지연은 과자를 하나씩 집어 먹었다.
그리고 그들의 집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 양복을 입은 한 남성이 체육관과 집 쪽을 감시하고 있었다.
“……길드장님, 따님분의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건지, 휴대폰에 대고 말하는 남성.
-그래?! 어디로 가던가? 설마 남친인가? 영화관인가? 아니면, 카페?
“어…… 아뇨, 체육관이던데…….”
양복을 입은 남자의 대답에 소란스럽던 휴대폰 너머가 조용해졌다.
-체육관…… 체육관……. 혹시, 특이점은 없나?
“음…… 체육관 자체는 동네에 있을 법한 낡고 이것저것 가르치는 흔한 곳입니다. 그리고, 관장이나 직원들이랑 상당히 친한 모양입니다.”
-……친해?
“예, 관장의 집으로 보이는 곳에서 과자를…… 드시고 계시는데요.”
전화 너머의 상대는 단군 길드의 마스터, 전황준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영의네 집을 감시하고 있는 인물은 그의 비서인 서강진이었다.
-서 비서, 혹시…… 뭐 수상한 건 없나? 예를 들면 PT해 준답시고 지연이의 몸을 과하게 만진다거나, 아니면…… 그런 거!
황준이 다소 과할 정도로 말을 했으나, 하루 이틀 겪는 일이 아닌 듯 서 비서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뭐,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잘생기긴 했는데…… 그런 쪽의 접촉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우리 딸이 예쁘지가 않단 말인가?
“……아뇨, 체육관 내부는 잘 보이지 않아서 확인은 못 했지만…… 아까 창문이 열렸을 때 본 바로는 별문제가 없……. 아!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서 비서의 말에 황준은 뭔가 건수가 하나 있구나! 싶어서 무릎을 탁 쳤다.
-뭔가?! 내 딸에게 손을 댄 거라면……!
“아…… 그건 아니고, 새를 키우더라고요. 그것도 맹금류 같아 보이는 걸. 그리고 따님께서 그 새를 되게 좋아하셨습니다.”
-……새?
“네,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단 도심지에서 보일 만한 건 아니었습니다.”
-흐음…… 서 비서, 혹시 그런 거 구할 수 있는 곳 아나?
황준의 말에 강준이 또 뭔가 귀찮은걸 시키겠구나…… 싶어 한숨을 쉬려던 순간, 그의 앞으로 무언가가 덮쳐들었다.
“알아보겠……. 어? 어어?? 잠깐……!”
-서 비서?! 서 비서!
“휘요오!”
“으아아아!”
뚝.
그렇게 전화가 끊겨 버렸고, 황준은 꺼진 전화를 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마 일하기 싫다고 이렇게 끊은 거 아니지?”
자신의 비서를 믿었기에,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들린 의문의 소리가 신경 쓰였다.
영의네 집.
톡톡.
창문 쪽에서 소리가 나 돌아보니, 뇌영이 부리로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휘요옥!”
뇌영을 보자 반갑다는 듯 쳐다보는 지연과 영의 형제, 그리고 방금 전 배고픔에 어쩔 수 없이 방 밖으로 나온 수연.
“어, 뇌영이다.”
“뇌영아~ 안녕!”
“휘익!”
반갑게 인사하며 창문을 열어 주러 간 지연.
“……응?”
지연은 뇌영의 부리 쪽에 붙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쌤, 얘 혹시 쥐 같은 거 잡아먹어요? 부리에 털 같은 게 있는데…….”
“뭐? 아니, 이상할 것도 없긴 한데…… 근데 걔는 잘 안 할 텐데? 어디 보자.”
사냥을 가기보다는 영의가 주는 밥을 더 좋아하는 뇌영.
요즘은 또 차에 맛이 들렸는지 뇌기와 베키가 선물로 준 차만 먹던 뇌영인데…….
‘이번엔 뭐에 맛이 들린 거야?’
영의가 가까이 가서 뇌영의 입에 붙은 털을 확인해 보자, 야생동물의 것이라기엔 상당히 길이가 길고 가늘었다.
“……사람 머리카락 아니야? 너, 사람이라도 공격했어?”
“휘욕! 삑! 휘이익! 휘야아악!”
날갯짓과 다리까지 들어가며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려 하는 뇌영.
‘귀엽다…….’
‘아무리 똑똑해도 말을 모르면…….’
“……뭐라는 거야? 뭐가 있었다는 건 알겠는데…….”
영의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자, 뇌영은 처음부터 찬찬히 보여 주기로 했다.
“휘익!”
날개로 영의와 가족들을 가리키는 뇌영.
“그래, 우리.”
“휘약!”
그런 다음 날개 한쪽을 들어 눈 위를 가렸다.
“……본다고? 우리가 봐? 아니면, 우리를 봐?”
“삐익!”
그러고 나서 날갯짓을 마구하며 뭔가를 쪼는 시늉을 하는 뇌영.
“그리고 공격……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뇌영은 자신의 주인이 제대로 말을 알아들을 거라 기대했다.
-저번에도 알아들었으니까, 이번에도 알아듣겠지?
“우리가 보는 게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화풀이하고 온 거라고?”
“……휘야악!”
뇌영은 짜증이 났는지, 크게 한번 울고는 다시 바깥으로 날아갔다.
“…….”
“……아, 새 말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영의는 알림이가 제발 새 말도 통역해 줄 수 있는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자 쓰는 무림인들 말이나 베키나 일라이저 영감님 말도 다 번역해 주면서, 왜 새 말은 번역을 안 해 주니……?’
[Alrim은 언어에 대한 도움은 드리지만 동물은 언어를 쓰지 않으니 불가능하다고 알립니다.]
한편, 느닷없이 새한테 습격을 당해 머리카락을 뜯긴 서 비서.
“으으…… 갑자기 무슨 새가…….”
그는 빨리 이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그의 휴대폰으로 줌을 당겨 집 쪽의 사진을 찍었다.
영웅과 영의, 지연이 함께 찍힌 사진을 확인한 뒤, 그 사진을 자신의 상사인 황준에게 전송하고 자리를 떴다.
띠링-
“오.”
방금 전 갑자기 연락이 끊겨 걱정하고 있던 황준.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 비서에게 연락이 다시 오자 안심하고 문자의 내용을 확인했다.
“……최 교관? 왜 지연이랑?”
그리고 그의 휴대폰에 도착한 사진에는, 최근 영입하고는 딸을 감시…… 아니, 보호하기 위해 한 학기 동안 아카데미에 파견을 보낼 예정인 길드 교관, 영웅이 있었다.
* * *
어두운 방 안, 제법 많은 수의 남자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 전부 내일 투입되는 건가?”
“그렇겠지. 그보다, 유명한 놈들은 제법 모였네? 저쪽은 천재 털이범 교광용, 저쪽은 또 범죄자 애들이고…….”
모인 사람의 수가 많다 보니, 서로를 알아보는 인물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 방에 있는 문이 열렸다.
덜컹-
“이야, 다들 잘 모여 계셨네요. 싸움 같은 건 안 하셨을 거라 믿습니다.”
한 남자가 들어오자, 약간 웅성이던 그들은 침묵했다.
“음, 좋아요 좋아. 역시 계획을 설명할 땐 조용해야 제맛이죠. 자, 그럼 앞을 봅시다 여러분!”
존댓말을 습관처럼 하는 이 남자는 파렌하이트였다.
그가 자신의 손에 들린 작은 리모컨을 누르자, 어두운 방 안에 빛이 비치며 벽면에 슬라이드 쇼가 나타났다.
“자…… 여길 보시면, 은행털이로 시작을 할 겁니다! 9시 반쯤 됐을 때 이제 막 사람들이 은행 업무를 볼 타이밍쯤에 시작을 할 건데…… 중요한 건 인질극이죠.”
파렌하이트의 설명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걱정은 마세요. 저희는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도, 보수는 잘 지급합니다. 저기 있는 동네 은행…… 아, 그래도 크기는 제법 됩니다? 여기 하나 털어서 인원수로 나누는 거보다는 많은 돈을 드릴 겁니다.”
파렌하이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인물들의 눈빛이 비장해졌다.
“사실 중요한 건 시간 끌기랑 이목 집중이죠. 10시 반까지만 버텨 주시고, 더 길어도 좋습니다. 그러고 나선 항복이나 도주나…… 아무거나 선택하세요.”
그러고는 다음 슬라이드로 넘기는 파렌하이트.
“그다음! 오늘 밤부터 사전 준비를 시작할 계획이 있습니다. 시 외곽과 내부에 있는 모든 게이트에서 끌어모은 괴수를 유인할 작전이요.”
레이저를 쏘며 동그라미를 그리고, 대략적 동선도 표시해 주는 파렌하이트.
“밤중에는 출입 관리가 철저하지만, 그건 제가 해결했으니 안심하고 지정된 시간에 가서 작업을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뒤의 것은 각자 나눠 드린 표를 참고하세요!”
파렌하이트는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 작전을 설명하였다.
정석대로 진행할 플랜 A,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플랜 B, 장비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플랜 C…… K까지 이어지는 계획들은 보는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자, 그럼 대략적인 플랜은 이야기했고! 혹시 모를 백업과 보조분들은 당일 날 배부해 드리는 장비를 가지고 각 지점에서 대기해 주시다가 저격이나 공작을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질문?”
쓸데없이 과할 정도로 자세하고 많았던 계획 덕분에 질문하고 싶어도 어느 부분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인원들.
파렌하이트는 그들의 침묵을 질문이 필요 없단 뜻으로 받아들였다.
‘좋아! 역시 내 계획은 완벽하군. 질문도 필요 없을 정도라니.’
파렌하이트는 대학 교수님들 같은 생각을 하며 방을 나갔다.
내일 실행할 작전은 계획이 어긋나는 일이 없을 거라 기대하며.
* * *
울창한 숲속, 수많은 동물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서로 몸을 기대고 있다.
사자, 소, 토끼, 말, 원숭이…….
도저히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조합이었지만, 그들은 추위라는 공통적인 적 앞에서 하나로 뭉친 듯했다.
그리고 그 동물들 틈새에, 동물이 아닌 하나의 형체가 함께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