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16)
오전 8시.
해가 떴어도 아직 지평선 언저리 쪽에 더 가까울 시간.
지연은 그렇게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다녀올게요~.”
집 문을 열며, 집 안에 대고 외치는 지연.
“그래, 몸조심하고…… 내일 입학식이니까 너무 늦지 말고.”
거실에서 신문을 보던 남자가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네, 네.”
텅!
띠릭-
문이 닫히고, 전자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후우, 대체 어디를 가는 건지…….”
그리고 방금 전, 애지중지 아끼는 딸을 웃으면서 보내 주었으나 문이 닫히자 바로 한숨을 쉬는 지연의 아버지.
단군 길드의 마스터, 전황준이었다.
“……어딜 저렇게 다니는 거지?”
물론 종종 운동이나 훈련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딸이었다.
하지만, 요 근래 들어 너무 규칙적이고 또 자주 밖으로 나가는 딸.
‘……조깅 같은 거 말고는 대부분 훈련장에서 했는데…….’
심지어 한번은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들어온 적도 있었다.
어디 가서 무슨 일을 당할 만큼 어리숙하거나 약하지도 않은 지연이었지만, 황준의 눈에는 아직도 불안해 보였다.
“으음…….”
팍!
이내 신문을 거칠게 접고는, 휴대폰을 집어 드는 황준.
그는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에, 여보세요?
연결음이 제법 이어지다, 잠이 덜 깬 듯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 교관? 날세.”
-아, 네! 길드장님. 어쩐 일로…….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혹시 오늘 시간 되는가?”
황준은 최근 그의 길드로 스카우트해 온 한 명의 남자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어, 오늘……이요? 오늘은 조금…….
하지만 거절의 의사를 밝히는 남자.
“뭐? 아니, 왜인가?”
-그게…… 가족 행사가 있어서……. 제 동생이 내일 아카데미 입학이라, 가족들이 모이라고…….
“흐음…… 뭐, 알겠네. 쉬는데 방해해서 미안하군.”
황준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왕이면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을 시키고 싶었는데……. 뭐, 얼굴을 알면 오히려 협조를 해 줄 수도 있으려나……?”
그렇게 그는 그의 비서에게 연락을 넣었다.
최근 딸의 동향에 대해서 조금만 조사해 달라는, 아버지로서는 조금 꺼림칙한 부탁이었다.
한편, 영의의 본가라고 할 수 있는 부모님의 집.
“우와, 맛있겠다!”
“다 먹지 마.”
지금 수연은 영의가 사 온 과자 중, 특이하게 생긴 한 과자를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망치로 깨어야만 먹을 수 있을 만큼 단단한 독일의 과자, 슈니발렌이었다.
빠지직. 빠각.
하지만 그 단단한 슈니발렌을 맨손의 악력으로 부숴서 하나씩 집어 먹고 있는 영의.
“나 주려고 사 온 거 아니야?”
수연은 영의가 부순 조각을 하나씩 집어 먹으면서 다른 상자들도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거 하나만 먹으라고.”
“다 먹을 수 있는데?”
“너만 입이냐? 응?”
수연의 입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서 누르는 영의.
“므으! 으으브!”
마치 오리처럼 입 부분이 주욱 튀어나오는 수연.
그녀는 당연히 저항하려 했지만 방금 전 슈니발렌도 부수던 영의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탁! 탁!
이내 항복이라는 듯, 영의의 팔을 두 번 탁탁 치는 수연.
“하나만 먹는 거다. 알겠지?”
끄덕끄덕-
수연은 영의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본 영의가 입을 잡은 손을 풀어 주었다.
“푸하…… 오빠, 힘 더 세진 거 같은데……?”
“……뭐, 그럴 수 있지. 그럼 열어만 볼게!”
수연은 옆에 있는 과자 상자를 열고는, 안의 내용물을 보고 놀랐다.
“우와, 이거 비싼 거 아냐? 잠깐…….”
그러고는 영의가 가져온 다른 상자들도 살펴보기 시작하는 그녀.
“이것도, 이것도……. 무슨 일이래? 선물 고르는 센스는 할아버지 같던 오빠가 이런 걸 다 골라서 사 오고?”
“……할아버지라니, 그건 좀 심한데.”
“근데 맞잖아? 옛날에 화연 언니 생일 때도 글러브랑 손목 보호대 선물해 줬고, 초등학생 때는 반 친구 생일 때 아령 선물하고…….”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걸 선물하는 태도가 마치 할아버지 같다며 지적하는 수연.
영의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으음…….”
“그래서, 누가 도와준 거야?”
당연히 영의가 골라 왔을 리는 없었다.
물론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사 왔으면 그중에 괜찮은 게 하나쯤 있었겠지만, 영의가 사 온 건 인기도 있고 비싼 것들.
평소에 영의가 소비하는 습관을 생각해 보면 무조건 싼 게 섞였을 텐데, 없는 걸 보니 누군가의 추천이나 인터넷 글을 보고 사 온 것 같았다.
“……백화점에서 만난 여자가 도와줬어.”
영의는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잠깐 만나서 도움을 받고, 대시도 받았지만 그 이상으로 진행은 안 했기에 죄책감은 없었던 영의.
“뭐?!”
하지만 수연은 다르게 받아들인 듯했다.
곧바로 오빠인 영의의 멱살을 잡는 수연.
“말해, 그 여자…… 예뻤어?”
“……어느 정도는.”
“몇 살 정도로 보였어?”
“25살이라던데? 자기 입으로.”
“화연 언니는 어쩌고?! 더 어린 여자가 좋다 이거야?”
“아니, 갑자기 화연이가 왜 나와……?”
“아오, 진짜!”
지금 추궁하는 건 자신인데 영의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순순히 털어놓는 걸 보자 오히려 더 짜증이 난 듯, 수연은 영의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그 여자가 뭐라디? 여친 있냐고 물어? 아니면, 자기랑 같이 밥이라도 먹재?”
“……주말에 시간 있냐고 묻던데? 그리고, 여친 있냐고도 하더라.”
어차피 별로 관심도 없고, 도망치듯 나오긴 했지만 금방 헤어졌기에 영의는 계속 솔직하게 말했다.
“와, 나! 그래서? 뭐라고 했어?”
“그 여자 동생이 와서 잠깐 고개 돌린 사이에 도망쳤는데?”
수연은 방금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되물었다.
“……뭐?”
“도망쳤다고. 아, 그래도 계산은 해 주고 왔어.”
영의는 그 말을 하며 자신은 죄가 없다는 듯 태평한 표정으로 수연을 쳐다보았다.
“……하아, 이 오빠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얼마 전에 언니를 만났을 때의 반응과 태도를 보면 아직 마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고자인지, 아니면 마음을 접은 건지 모르겠는 오빠는…… 그 시간에 다른 여자한테 대시나 받고 있다.
근데 그걸 차 버려? 아니, 도망친 거면 찬 거도 아니지.
“오빠……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아니, 그럴 리가.”
‘기능(?)이 정상적이면 제발 뭘 해 보란 말이야! 스님도 아니고!’
수연은 거기까지 가자 이젠 아예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하아, 그럼 왜 화연 언니를 그냥 두는 거야? 다른 남자가 채 가면 어쩌려고? 응? 좀, 마음이 없으면 정리를 하고! 마음이 아직 있으면 주말에 데이트라도 하고!”
지켜보던 수연이 얼마나 답답하면 이렇게 소리를 치겠나.
“주말에 할 건데?”
“……그건 또 언제 약속 잡은 건데?”
‘아니, 그런 약속이 있었으면서 처음 보는 여자 나이까지 알아낸 거야?’
영의가 한 건 하나도 없었다.
전부 처음 만났던 여자, 에르메스가 스스로 알려 준 나이에 말도 그녀가 먼저 걸었지만 수연에게는 영의가 처음 보는 여자와 무언가가 있을 뻔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지난번에 화연이가 체육관 왔을 때 약속 잡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넌 그때 없었겠다.”
수연은 그 시점에서 그냥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하아, 난 방에 들어갈게……. 나중에 불러.”
그러고는 과자 상자를 들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수연.
영의는 그렇게 닫힌 방문을 보면서 아까 부쉈던 슈니발렌 조각을 하나씩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집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체육관 문을 열러 간 아버지나 장을 보러 가신 어머니가 오신 줄로만 알고 고개를 돌렸던 영의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과 마주치게 되었다.
“……형?”
“오, 뭐야. 영의네? 아버지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그의 큰형.
최영웅이었다.
영의보다 우람한 덩치에 햇볕에 잘 그을린 갈색 피부를 가지고 있는 영웅.
“체육관에 계시지. 그보다, 왜 온 거야? 요즘 취직해서 바쁘다며?”
최근 어딘가에 교관인가 트레이너인가 뭔가로 취직했다는 소리만 들었지 직접 볼 줄은 몰랐던 영의.
“아니, 수연이가 입학한다길래…… 아버지가 오라고 하시더라고. 너한텐 그런 소리 안 하시디?”
“……모르겠는데? 난 오늘 아침부터 여기 있어서.”
수년 만에 만났지만, 그동안의 안부 같은 건 묻지도 않는 그들 두 형제.
“그럼, 작은형은?”
“어? 걔도 오지 않을까? 근데 걘 직장인이잖아. 저녁쯤에 오겠지. 이거 나도 먹어도 되냐?”
신발을 대충 벗고 들어와 영의가 먹는 과자를 하나 집어 먹는 영웅.
“아, 맞네. 그보다, 난 가깝게 살고 금방 올 수 있으니까 안 부른 건가?”
“몰라. 야, 이거 맛있다. 더 없냐?”
“다 먹지 마. 선물용도 있는 거야.”
영의의 말에 영웅은 의문이 들었다.
“선물? 뭐, 누구 주려고?”
“있어, 내 제자.”
영의가 제자가 있다는 말에 영웅은 깜짝 놀랐다.
“네가 제자가 있어? 뭔데? 오토바이 타는 재주라도 가르치는 거야?”
“아니, 각성자인데……. 그보다, 아버지가 내 얘기 안 했어?”
“……무슨 얘기?”
“……아무튼, 있어 그런 게. 나중에 얘기해 줄게. 두 번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지연이 빨리 체육관으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각, 우리들의 친근한 파렌하이트와 그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서, 어제 여기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요?”
그들의 작전 본부로 사용될 사무실에 모여 있는 4인조.
파렌하이트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응!”
“뭐야, 설마 내가 진짜 여기서 잘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다. 수련하고 있었다.”
그들 셋의 제멋대로이면서도 쓸데없이 쾌활한 대답에, 파렌하이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만약 어제 이곳과 관계된 누가 들어오기라도 했다면? 그래서 이상함을 알아챘다면? 우리 계획이 틀어지는 겁니다!”
“아, 거 맨날 짜증 나게 떽떽거리고 말이야. 그 계획 조금 틀어지면 살림살이에 문제 생겨?”
“이히히, 살림살이래.”
“그게 뭐가 웃겨!”
본인이 한 말에 나온 반응임에도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쏘아붙인 뒤, 팔짱을 끼며 소파에 몸을 파묻는 에르메스.
‘빨리 끝내고 다시 그 백화점이나 돌아다녀 봐야지…….’
“……네, 뭐. 그럼 작전 설명을…… 하겠습니다.”
파렌하이트는 짜증 나고 성깔 있어도 일할 때만큼은 확실하게 해 주는 팀원들이니 참고 넘어갔다.
“1단계인 경찰 시선 분산은 제가 전적으로 담당합니다. 2단계와 3단계도 제가 준비는 해 뒀지만, 나머진 여러분이 해 주셔야 합니다.”
파렌하이트는 그렇게 말하며 상공에서 찍은 듯한 위성사진을 보여 주었다.
“우와, 여기 신기하다! 놀이공원이야?”
“……거기가 우리의 2단계 작전 지역입니다.”
프린세스가 제법 넓은 부지를 가진 한 건물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파렌하이트가 정정해 주었다.
“1단계로 은행털이범들이 난리를 치면, 경찰들이 거기에 집중할 겁니다. 그리고 2단계로 정신 간섭이나 테이밍이 특기인 각성자들을 구해 뒀으니, 괴수들을 몰고 여기로 갈 겁니다.”
“그보다, 여기가 내가 가야 하는 곳인가?”
“네, 이곳이 바로 당신이 비상시에 출동해야 하는 곳입니다. 절대! 먼저 가지 마세요! 그냥 일이 틀어지면 제가 신호를 보낼 테니 그때 가시는 겁니다!”
파렌하이트는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듯이, 여러 번 강조하면서 말했다.
“근데, 3단계는?”
“아, 좋은 질문입니다. 3단계는 여기, 서울 구치소입니다.”
파렌하이트의 말에 모두가 의문을 표시했다.
“……구치소? 왜 거기야? 우린 무슨 각성자 협회라도 터는 줄 알았는데?”
“맞다. 그 정도가 아니면 우리 넷이 모일 이유가 없다.”
그들은 파렌하이트의 계획에 따라 움직인 적이 많기 때문에, 그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의 계획에서 1단계나 2단계는 뭐가 나오든 신기할 게 없다. 어차피 시선 돌리기용이니까.
하지만 본격적인 목적지가 3단계부터인데…… 갑자기 구치소라고?
“아아, 협회 쪽도 동시에 양동을 일으킬 겁니다. 2단계에서 괴수들이 밖에서 전멸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권왕께서는 협회로 쳐들어가 난동을 부려 주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구치소에 있는 사람 하나 빼내겠다고…… 이 짓을 하겠다고?”
에르메스의 말에, 파렌하이트는 손뼉을 짝 하고 쳤다.
“Exactly! 정확합니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일도 아니고, 겨우 사람 하나 빼내는데 그 정도는 심한 거 아냐?”
파렌하이트는 검지를 세워 좌우로 까딱이며 말했다.
“으음, 아니죠. 누구도 우리가 목표물을 빼냈다는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됩니다. 중범죄자면 그냥 구치소 습격을 하면 되지만, 경범죄로 잡혀 있는 인물이라서요.”
“……경범죄자 하나 꺼내겠다고 이 짓을? 차라리 변호사를 불러 미친놈아!”
에르메스는 겨우 경범죄자 한 명 꺼내 보겠다고 은행털이에 시설 습격을 동원한다니, 미친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게…… 아, 설명은 작전이 끝나고 해 드리겠습니다. 혹시나 작전 중에 기밀이 누설되면 안 되니까요. 늘 그랬듯, 계획에만 따라 주세요.”
“응!”
“하아…….”
“그러니까…… 2단계에 각성자 협회로 돌격하라, 이건가?”
권왕은 2단계에 돌입해야 하는지 3단계에 돌입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냥 제가 가라고 할 때 가시면 됩니다.”
“알겠다. 늘 그랬듯, 대기하지.”
그리고 그들이 펼쳐 둔 위성사진에는 이런저런 필기가 되어 있었고, 2단계라고 써진 곳의 건물은 이런 이름이었다.
[한국 각성자 아카데미]
[작전일 1020부터 입학식으로 인해 각계층의 고위 인사와 고위 각성자들 참여함.]
[습격 시행 시 상당수의 각성자 병력이 빠질 것으로 추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