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14)
파렌하이트는 스트레스를 받고 권왕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 때, 아까 뛰쳐나온 프린세스는 어떻게 됐을까?
‘……맛있겠다…….’
프린세스는 시내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배고픈데……. 히잉, 돈을 너무 많이 들고 나왔어…….’
지금 그녀의 주머니에는 방금 전 사채업자 사무실의 금고에서 털어 온 누런색의 지폐 다발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 상식 따위 모른다는 듯 행동하는 그녀도, 눈에 띄지 않기 위한 교육은 받았다.
특히 파렌하이트한테…….
-잘 들으세요, 작전 중에는 제가 최대한 지원을 할 겁니다! 하지만, 대기할 때나 은밀해야 할 때는 절대로 눈에 띄지 마세요! 특히나 당신들 둘 말입니다! 외모가 너무 눈에 띄어요!
‘……현금 다발을 들고 다니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겠지.’
이 나라에서 물건의 시세들이 어떤진 몰라도, 돈놀이하는 녀석들이니 제일 고액권을 비축해 둔 게 틀림없었다.
‘으우우…… 그냥 안에 있을걸. 그럼 그 녀석이 알아서 해결해 줬을 텐데.’
하지만 큰소리를 치고 나와 버렸으니 바로 들어가기엔 조금 체면이 살지 않았다.
저녁도 굶고, 돈이 있지만 쓸 수 없는 상황인 그녀.
잘만 생각해 보면 주머니에서 한 장만 빼서 쓰면 된단 생각을 할 수 있었겠지만, 배도 고프고 섣부르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으우우…….”
이내 발걸음을 멈추려던 그 순간, 주위에서 그녀를 보고 사람들이 뭐라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머, 저기 봐. 되게 예쁘다.”
“정말이네, 외국 애 같은데…….”
프린세스는 사람들이 조금씩 자신을 주목하기 시작하자 혼란스러워졌다.
‘안 돼, 왜 갑자기 날 보는 거야……?!’
이내 누군가가 카메라를 꺼내 들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능력을 끌어 올릴 뻔했으나 참았다.
-제발, 부탁이니까 소란만 일으키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이번 작전 지역과 한참이나 떨어진 곳을 거점으로 삼은 이유를 아신다면 제발!
파렌하이트의 간곡한 부탁…… 같은 협박이 있었기에, 프린세스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도, 도망가야 해!’
그리고 이내 다급히 뛰기 시작하는 그녀.
“……아, 갔다.”
프린세스가 갑자기 달려서 사라지자, 그녀를 보던 몇몇 행인들은 약간 의문을 가지면서도 이내 관심을 껐다.
예쁘장한 외국인 소녀가 일행도 없이 시내에 버젓이 돌아다니길래 잠깐 신기했지만, 눈앞에서 사라지자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 시선의 대상이 됐던 프린세스는 그렇지 못했다.
‘윽, 아직도 사람이 많은데?’
잠깐 달려서 방금 전의 장소는 빠져나왔지만, 그래도 행인들이 많았기에 그녀는 계속 빠르게 이동했다.
조금이라도 멈춘다면 다시 주목을 받을 것만 같았기에.
‘이번에도 잔소리 듣기는 싫다고……!’
그렇게 달리던 프린세스는 어느 한 어두운 골목에서 멈췄다.
밝은 거리와 거리 사이에 이런 어두운 골목이 있다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번화가와 번화가 사이로 난 작은 골목이었다.
지름길로 종종 쓰이는 그런 골목 말이다.
“……여기가, 어디지?”
하지만 초행인 프린세스에게 그 골목은 미궁과도 같았다.
“어어…… 분명히 난 밝은 곳에서 왔는데……?”
앞도 밝고, 뒤도 밝고, 심지어 옆도 밝다.
‘……난 한국어 못 읽는단 말이야……!’
그리고 외모에서 드러나듯이, 그녀는 한국인이 아니었다.
의사소통이야 번역기로 가능했지만, 글자는 몰랐던 프린세스.
그녀는 심지어 휴대폰도 사무실에 두고 왔다.
“아아, 어떡하지……?”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프린세스는 일단 왔던 길을 되돌아가 보기로 했다.
“……어디서 왔더라?”
하지만 그녀는 길치였다.
봤던 건물이 봤던 건물 같고, 이정표로 삼을 물건도 확 알아볼 만한 게 아닌 아무거나 잡아 버리는 그런 길치 말이다.
-좋아, 진정하고! 주변에 뭐가 보입니까? 눈에 띄는 거!
-눈에 띄는 거? 어어…… 전봇대랑, 나무랑…… 보도블록!
-……특징적인 거 없나요? 무슨 건물이라거나, 지하철역 같은 거.
-어어, 있어!
-네, 말해 보세요! 그겁니다!
-눈앞에 어어엄청 비싼 차가 지나갔어! 특징적이지?
-……하아, 그냥 저희가 신호탄을 쏘겠습니다. 그거 보고 날아오세요 그냥.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을 정도로!
프린세스는 일단 밝은 곳으로 향했다.
‘으으, 너무 홧김에 달려 나왔나……?’
그렇게 골목 밖으로 나오자, 그녀의 눈앞에는 밝고 큰 건물이 보였다.
“우와…….”
저 정도로 큰 건물이면 파렌하이트한테 대충 말해도 알아서 찾아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그녀.
하지만 그녀는 휴대폰을 놔두고 왔다는 사실도 까먹고 있었다.
“응? 너 여기서 뭐 해?”
그리고 그때, 익숙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언니……!”
프린세스의 앞에 나타난 구세주.
그것은 그녀의 동료이자, 아까 놀러 가겠다고 하며 남성의 시체를 없애 주고 갔던 여성이었다.
쇼핑을 즐겁게 하고 온 모양인지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는 여성.
“아니, 여기서 뭐 하냐니깐?”
여성의 질문을 듣지도 못한 듯, 프린세스는 여성에게 안겨서 달라붙었다.
길을 잃었던 상황에 얼굴을 아는 사람을 만나자,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는 프린세스.
“흐어어엉…… 나 길 잃어써……!”
프린세스의 말에 여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 길치가 또……. 휴대폰은?”
“몰라아아…….”
안긴 채로 고개를 젓는 프린세스.
“돈은?”
“이써어…….”
“……있어?”
“응, 있어…….”
의외로 돈은 있다는 말에 여성은 놀랐다.
“얼마나 있는데?”
‘그 재수 없는 놈이 용돈으로 쓰라고 좀 줬겠지……. 한 5만 원 정도 줬으려나?’
여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프린세스에게 물었고, 프린세스는 주머니에서 현찰 다발을 꺼내 보여 주었다.
“여기…….”
“……?!”
노란색이 가득한 현금 다발이 세 개.
‘5만 원은 맞는데, 수가 좀 많다……?’
“너, 넣어 놔! 눈에 띄게 하지 말고.”
“으응.”
여성의 말에 프린세스는 현금 다발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하아…… 그래, 이렇게 된 거 쇼핑이나 하자! 마침 백화점도 앞이고!”
여성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프린세스의 어깨를 잡았다.
“너도 그 우중충하고 어두운 사무실에서 자기 싫지? 오늘 나랑 같이 호텔이나 갈래?”
“어?! 정말로?”
프린세스는 여성의 말에 화색을 띠었다.
“그래, 밥은? 먹었어?”
“아니, 아직!”
“그럼 백화점 식당가에서 먹자. 나도 저녁 안 먹었거든.”
“우와, 언니 멋져!”
그렇게 프린세스의 손을 잡고 백화점으로 들어서는 여성.
‘……아싸, 공돈 생겼다.’
“아, 맞다. 언니는 그거 뭐야? 그, 그으…… 부를 때 이름!”
“응? 나? 음…… 무슨 브랜드로 했더라…….”
권왕 하나만 고집하는 권왕, 한 이름을 몇 년 동안 쓰는 파렌하이트, 그리고 감명 깊게 본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프린세스.
그들의 호출명은 그렇게 만들어졌으나, 여성의 것은 달랐다.
최근에 샀던 명품 브랜드로 정했던 그녀.
“음…… 이번엔, 에르메스일걸?”
“응, 알겠어! 에르메스 언니!”
“……그냥 언니나 하다못해 에르 언니로 해.”
사실, 프린세스가 겉모습만 어려 보이지 실제로는 그녀가 더 나이가 많았다.
“뭐 먹을래?”
“나 고기!”
“……그러니까 무슨 고기?”
“고기!”
“…….”
한편, 그 백화점에는 영의도 있었다.
“……저기요?”
“아, 네. 뭘 도와 드릴까요?”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점원을 부르는 영의.
“혹시 이거 두 제품 차이를 알 수 있나요?”
영의가 손으로 가리키는 것은 손목 보호대의 형태를 한 각성자 장비였다.
“아, 왼쪽은 요즘 잘나가는 물건인데 성능이…….”
미소를 유지한 채 친절히 설명을 하는 점원.
‘……들어도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격은요?”
“왼쪽은 4천만 원, 오른쪽은 5천만 원입니다.”
“……성능은 비슷하지 않나요?”
방금 전 들었던 설명의 뜻은 이해하지 못해도, 내용은 대강 들었던 영의.
그리고 그 두 개의 설명은 겹치는 부분이 많았었다.
“아, 그게…… 이쪽 모델은 속성을 좀 많이 타서…….”
“어떤 속성이죠?”
“네, 이건 거의 다 적용되는 범용성이 있는 모델이고…….”
비싼 쪽은 비싼 만큼, 대부분의 속성을 잘 타는 듯했다.
“이건…… 아무래도 뇌 속성이나…… 화 속성에 특화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옆의 것보다 수치는 더 높게 나옵니다.”
“……의외로 가격 책정이 특이하네요?”
일부 속성 한정이라고는 하나 더 높은 스펙이 싸다니, 참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뭐, 그렇죠. 아무래도 제작자의 성향을 따라가다 보니…….”
각성자들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뉘지만, 강화와 속성 계열을 제외한 보조 계열은 무수히 많았다.
그리고 보조의 제작 쪽에 재능을 지닌 인물들도 어느 정도의 속성 적성은 있었으니, 거기에 따라 제작물의 성향도 조금씩 달라진다는 설명.
“크흠, 그래서…… 어느 쪽으로 하실 건가요?”
그 설명을 듣고, 영의는 둘 다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둘 다 주세요.”
‘뇌 속성인 건 지연이 주고, 이건 수연이 줘야겠다.’
첫 제자이다 보니 뭔가를 해 주고 싶었던 영의.
마침 수연의 입학 기념 선물을 사러 온 김에 지연에게도 하나 해 주기로 했다.
‘……만져 보니까, 안에 뇌기를 좀 넣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방금 전 두 개를 비교할 때, 싼 쪽이 뭔가 조금 더 좋은 느낌이 들었다.
더 정성을 쏟았다거나, 더 잘 만들었다의 느낌이 아닌…….
‘사용자를 테스트해 보려는 듯한, 그런 느낌?’
뭔가 숨겨진 기능을 넣어 놓은 듯한, 제작자의 장난기인지 도전 정신인지 모를 느낌이 있었다.
“저기요.”
“아, 네. 포장이요? 다 했습니다!”
점원은 둘 중에 고민하다 둘 다 사 버리는 통 큰 손님을 만났기에 미소가 더 환해져 있었다.
“아니…… 그, 이거 제작자에 대해서 알 수 있나 싶어서요.”
영의는 4천만 원짜리 보호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 그건……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정식으로 판매하는 제품이니 일련번호 조회를 해 보시면…….”
“……여기선 안 되나요?”
“죄송합니다. 저희는 판매 담당이라…….”
용산의 옥션 쪽이었으면 가능했을지 모른다.
거기는 생산자가 직접 판매도 하고, 생산자와의 커넥션도 해 주기 때문에.
하지만 여기는 판매만 하는 백화점. 환불이나 교환이면 모를까, 생산자의 정보를 아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네, 알겠습니다.”
이내 영의는 쇼핑백을 들고는 돌아서서 나왔다.
‘……아, 헬멧 사야지.’
그러고는 또 다른 방어용구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였다면 이런 곳에서 사지 않았겠지만, 일단 눈으로 보고 생각만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 헬멧이…… 아. 여긴가.”
그리고 이내 스포츠용품 쪽으로 오자, 바이크와 헬멧 등을 파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대규모 백화점이야. 각성자에서 일반인 물품까지 다 파니까 아예 바이크도 팔아 버리네.’
영의는 백화점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음…… 응?”
그리고 매장의 입구로 왔을 때, 상당히 신기한 광경이 보였다.
“아, 언니이이…… 밥은?”
“조금만 기다려. 이것만 좀 보고.”
“그게 30분이니까 그렇지~!”
한 젊은 여성이 헬멧들을 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딱히 신기할 게 아니었다.
누구든 취미는 다양한 법이니까.
하지만, 누가 봐도 한국인 같아 보이는 여성에게 매달려서 언니라고 부르고 있는 게 외국인 소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늘 신기한 사람 많이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