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13)
배달지와 가장 가까운 치킨집에 도착한 영의.
“2층 5번 테이블 반 마리에 생맥 두 개요!”
“15마리 배달은? 준비됐어?”
“아직요! 3분 정도!”
어수선하고 또 시끄러운 치킨집의 내부.
위잉-
자동문이 열리고, 영의가 치킨집에 들어서자 여느 치킨집과는 다르게 상당히 넓고 또 복잡했다.
“……맛집인가 보네.”
내부를 둘러보자 테이블이 거의 다 차 있었고, 가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배달부들도 몇 명 보였다.
‘뭐, 그래도 이만큼 장사가 잘되니까 15마리 정도는 금방 튀겨 주겠지…….’
영의는 안으로 들어가 카운터로 다가갔다.
“저기, 아까 배달…….”
영의가 15마리 주문 들어온 게 있냐고 물어보려 했을 때, 직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 네! 잠시만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이분들 계산 좀 하고요!”
장사가 잘되어도 문제인 건지, 가게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없어 보였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계산을 마친 뒤 손님에게 인사를 한 직원이 영의를 돌아보았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아, 아까 15마리 배달 주문이 있었을 텐데…….”
영의의 말에 직원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게 진동 벨을 주었다.
“네! 밖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준비되면 알려 드릴게요!”
“……네.”
카페도 아니고 무슨 진동 벨을 주는 건지 의문이었지만, 오히려 이게 더 나은 방식이 아닌가 생각하며 진동 벨을 가지고 바깥으로 나갔다.
“아, 조금 싸늘하네…….”
계절상 곧 봄이었지만, 어째선지 찬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바깥 날씨.
‘……뇌영이는 안 추우려나.’
털 달린 짐승의 추위를 인간이 걱정하는 모습이 조금 우스울 수도 있었지만, 부모의 마음 비슷한 게 있어서인지 뇌영을 걱정하는 영의.
“저기요?”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영의에게 말을 걸었다.
“네?”
옆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영의처럼 배달을 기다리는 듯한 배달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저요?”
“네. 마정석 바이크 타는 거 보면…… 각성자 팀인가 봐요?”
가게 앞에 모여 있는 배달부들은 대부분 일반 바이크를 타고 다니는 민간인들로 보였다.
전국 대부분의 배달을 각성자들만이 감당하긴 힘들었기에, 도심지나 낮 시간의 배달은 대부분 민간인들이 맡아서 한다.
그리고 눈앞의 인물들은 대부분 그런 간단한 배달 업무를 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어…… 그렇죠.”
팀장이란 말은 하지 않고, 대답해 주는 영의.
가게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럽네요. 저희는 한 건 해도 얼마 안 나오는데…… 각성자들은 막 몇만 원씩도 받는다면서요? 제일 비싼 건 한 15만 원 나오고.”
‘그 15만원이 접니다…….’
“뭐…… 그렇죠, 대신 그만큼 위험하니까요. 저도 얼마 전에 배달하다가 매드독 마주친 적도 있고…….”
지연을 구해 줄 때 마주친 적도 있고, 그 이전에도 몇 번 도시에서 숨어 사는 괴수들을 마주친 적이 있다.
숨어 다닐 만큼 강하지 않은 녀석들이라 다 잡아 죽였을 뿐.
“아…… 뭐, 그건 그렇죠. 하아…… 하다못해 배달에도 재능이 없어서…….”
한 명이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겠는가.
“……힘내세요.”
영의는 차마 뭐라고 할 말이 없어 그저 위로만 건넸다.
“이거도 보이시죠? 배달하는 사람들 다 가게밖에 세워 두는 거. 원래는 안 그랬는데, 손님들이 불편해한다고 다 밖으로 보내더라고요. 가뜩이나 추운데…….”
남자의 불만에 다른 이들도 동조하는 듯, 침묵을 유지했다.
“…….”
영의는 그 사람들에게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뭐라고 말하든, 기만으로 들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 혹시 어디 배달 가세요? 각성자들은 되게 먼 거리도 배달한다던데.”
남자의 질문에 영의는 주소를 떠올려 보려 했다.
“여기 옆 동네에 백광빌딩 2층이요. 무슨 대출 사무실 같던데.”
영의의 대답에 그 자리엔 순식간에 적막만이 가득해졌다.
“……?”
“거기, 진짜 현역 조폭들이 있는 곳인데…….”
“아니, 그보다 왜……? 민간인이 못 가는 곳도 아닌데?”
이내 배달부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부우웅.
그리고 그때, 진동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거야?”
배달 주문은 대부분 진동으로 알려 주는지, 모두가 자신의 진동 벨을 확인하였으나 아무도 없었다.
“……제 거네요.”
영의는 자신의 손에서 울리는 진동 벨을 들고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로 다가가자, 큰 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다.
“15마리…… 주문, 맞으시죠?”
의외로 대량 주문이 있는 모양인지, 큰 박스에 잘 담겨서 나온 치킨들.
“……네.”
“그럼, 결제 부탁드릴게요.”
영의는 이내 회사 카드를 꺼내 치킨값을 결제하였다.
그에게 왔던 주문은 현장 결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가 결제를 해서 가져가야 했던 것.
물론, 영수증은 잘 챙겼다.
나중에 정산 때 제출해야 할 자료였으니까.
그렇게 큰 박스를 들고 나가는 영의.
“……이걸 어떻게 실어야 하나……?”
문제는 자신이 양팔로 껴안듯이 들어야 하는 큰 박스.
‘……다음에 바이크를 살 때 큰 걸 사는 것도 고려해 봐야겠네.’
영의는 어쩔 수 없이 박스를 앞에 두고, 상체와 한쪽 팔로 고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불편하게 박스를 옮겨 하늘로 낮게 날아오르는 영의.
가까운 곳이니 적당한 높이로 날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아래에서 영의가 날아올라 가는 것을 쳐다보는 다른 민간인 배달부들.
“……처음엔 각성자 배달부라고 해서 일찍 내준 줄 알았는데, 대량 주문이었네.”
“아, 대량 주문이면 인정이지……. 나 같아도 먼저 주겠다.”
그들은 처음 영의를 보고 약간의 질투와 시기심을 품었다.
자신들과 같은 일을 하면서 보수는 더 받아 가고, 또 장비도 더 좋은 걸 쓰지 않는가.
그리고 방금 전 대기하던 사람들보다 빠르게 음식을 받아 가는 모습을 보고 잠깐 차별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영의가 들고 나오는 큰 박스와 배달 주소지를 보고는, 그들은 납득했다.
“깡패 사무실에서 시킨 대량 주문이면…… 갖다 줘야지.”
“그러는 게 현명하지…….”
그렇게 그들은 치킨을 기다리며 가게 앞에서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다.
잠시 뒤, 목적지에 도착한 영의.
그는 조금 낡았지만 외관은 이상하게 깨끗한 건물들이 많은 거리로 들어섰다.
‘……의외로 건물 관리는 잘하나 보네? 깨끗한데?’
방금 전 이곳에서 난장판을 만든 4인…… 아니, 한 명은 안 했으니 3인조가 뒷정리를 잘해서 깨끗한 것이었다.
“오, 여긴가.”
[광명 대출]
딱 봐도 느낌이 오는 듯한 간판이 문 옆의 벽에 붙어 있었다.
똑똑.
영의는 박스를 내려놓고는 문을 두드렸다.
“치킨 시키셨죠?”
그렇게 말하고 잠깐 뒤, 실내에서 약간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뭘 하고 있었길래…….’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영의는 잠깐 호기심이 일었으나 열어 보지는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내,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를 쓸어 올리며 지갑을 꺼내는 한 동양인 남성.
‘……중국인? 아니야, 한국인일 수도 있지. 생긴 거로 차별하진 말자.’
“얼마죠?”
‘아, 한국인이구나.’
영의는 그렇게 나름의 안심을 하며, 영수증을 쳐다보았다.
“어…… 45만 원이요.”
15마리나 시킨 데다가 영의가 배달하는 수수료까지 붙었으니, 제법 되는 액수가 나왔다.
“……잠깐만요.”
이내 남자가 돈을 세기 시작했고, 그 틈에 영의는 조폭들은 사무실을 어떻게 꾸미나 싶어서 잠깐 안을 쳐다보았다.
깔끔히 닦인 바닥과 단정하게 배치된 가구들, 그리고…… 덩치 큰 아저씨 하나?!
‘……맞구나, 조폭. 저런 어깨면…… 한 2인자? 아니, 큰형님인가? 와…… 권왕 영감님보다 클 것 같은데?’
그가 지금껏 봤던 인물 중에 제일 덩치가 큰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영의는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럼 이 마른 남자는…… 돈을 내는 걸로 봐서 한 3인자? 그것도 머리 쓰는 담당으로.’
1인자가 머리 쓰는 담당으로 3인자를 앉혀 둔다.
그리고 제일 잘 싸우는 사람을 2인자로 삼는다.
4인자와 5인자는 3인자와 그 자리를 도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머리를 쓰는 사람이라 이겨 봤자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2인자도 3인자를 굳이 견제하지 않을 거다.
‘어차피 머리 쓰는 담당을 앉혀 놓은 데다가 두뇌 담당 한 명은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머릿속으로 이미 느와르물 한 편이 나와 버린 영의.
“여기요.”
그리고 그 순간, 돈을 다 센 젊은 남자의 말에 영의는 정신을 차렸다.
“아, 네. 맛있게 드세요!”
영의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 치킨 박스를 건네준 뒤 건물의 바깥으로 나왔다.
‘보자, 그러면 3인자는 3인자의 위치가 있으니까 부하들을 마음대로 부릴 거고, 2인자도 도움 정도는 받겠지.’
아까 써 내려가던 느와르물을 계속 머릿속으로 써 내려가면서…….
그리고 사무실 안.
“자, 권왕님. 식사가 왔습니다.”
치킨 박스를 탁자 위에 내려놓는 파렌하이트.
그런데 줄곧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권왕은 어째선지 침묵하고 있었다.
“……? 왜 그러시죠? 치킨이 싫으신가?”
파렌하이트는 그렇게 말하며 미국에서 작전을 했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 그땐 다 먹은 통만 천장까지 닿았었는데……?’
할아버지가 인자하게 웃는 치킨 가게를 반쯤 털어 버렸던 그의 식성을 떠올린 파렌하이트.
“저, 권왕님? 주무시나요?”
파렌하이트가 웃으면서 그렇게 물었을 때, 덩치 큰 남자, 호출명 권왕은 중후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강한 남자였다.”
“……네? 누가요?”
“방금 전, 문 앞에 있다가 간 남자.”
권왕의 말에 파렌하이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강하다고요? 그럴 리가. 배달이나 하면서 사는 사람인데요?”
파렌하이트는 머리를 쓰는 담당이니만큼 식견도 넓고 지식도 많았다.
그리고 그는 한국에 대해 생각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 강자였다면 저렇게 배달을 하는 게 아니라 각성자답게 길드에 들어가 활동했을 것이다.
“……하긴, 너는 모르겠지. 강자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그 말, 설득력이 없는 건 아시죠? 당신한테서 느낌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늘 반대로 일이 터졌단 말입니다.”
파렌하이트는 권왕을 쳐다보며 팔짱을 꼈다.
“미국에서의 도심추격전 기억나십니까? 그때 좌회전하다가 느낌이 안 좋다면서 우회전해서 주 방위군을 마주쳤잖습니까!”
물론 그 정도에 당할 그들이 아니었지만, 파렌하이트가 짜 놓았던 도주 경로를 벗어나게 되면서 계획이 좀 틀어졌었다.
“……그땐 미안했다. 사과하지. 하지만 이번엔…….”
“아아, 됐습니다. 빨리 식사나 하세요. 저도 자러 가고 싶으니까. 계획을 짜느라 잠을 얼마나 못 잤는지 아십니까?”
파렌하이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눈을 권왕과 직접 마주쳤다.
다크서클이 깔려 있고 약간 붉어진 그의 눈.
“……미안하다.”
“그러니까 빨리 식사나 하시죠. 저도 우리 공주님만 찾아서 여기 데려다 놓고 호텔로 갈 거니까.”
권왕은 치킨 박스에 손을 갖다 대려다가 파렌하이트가 했던 말을 듣고는 움찔했다.
방금 뭐라고?
“……호텔?”
“네, 전 거기서 잘 겁니다.”
“여기가 우리 작전 본부가 아니었나? 아직 위조 신분은 안 나왔을 텐데?”
권왕은 들었던 내용과 다른 말에 당황했다.
분명히 이번 작전 동안 쓸 건물은 여기였는데? 잠도 여기서 잔다고 들었었는데?
“아, 전 위조 신분이 이미 있었거든요. 미리 만들어 둔 게 많아서. 저는 여기 여행 온 홍콩인 관광객, 제이미 호입니다.”
“……치사하다. 나라고 여기가 좋은 줄 아나. 나도 잠자리가 편할수록 좋은 인간이다.”
파렌하이트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권왕.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있는 소파를 다 동원해도 그의 침대로 쓰기엔 애매했다.
“……그래서 제가 매트리스 하나…… 아니, 세 개나 구해다 드렸잖습니까?”
공기를 채워서 쓰는 에어 매트이긴 했지만, 세 개 정도면 그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나도 침대가 좋다는 걸 아는 사람이란 말이다.”
“아니, 그러면 진작에 위조 신분 좀 많이 만들어 두시지 그랬습니까? 그리고, 눈에 띄는 덩치라서 더더욱 위조 신분이 필요한 몸이시면서…….”
덩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권왕은 침묵했다.
지금껏 활동을 하면서, 그의 덩치 때문에 이목을 끌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알겠다.”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돈 없는 공주님이 아마 길거리를 헤매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파렌하이트는 청소를 안 하고 바깥으로 도망친 프린세스를 찾으러 가기 위해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돈 있을 거다.”
“……네?”
하지만 뒤에서 들린 권왕의 말에, 파렌하이트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돈이…… 있다고? 그럼 찾을 범위가 늘어나는데?
그보다 그 이전에…….
“돈이 어디서 난 겁니까?! 저처럼 정식 절차를 밟고 관광객으로 온 게 아니라 환전도 못 했을 텐데!”
“아아, 아까 여기에 있던 잔챙이들을 죽일 때 책상 아래의 금고를 따서 슬쩍하더군.”
권왕의 말에 파렌하이트는 다급히 책상으로 달려가 살펴보았다.
“……하하…….”
톱으로 잘라 낸 듯, 깔끔하게 잘려 나간 금고의 문과 안에 쌓여 있는 현금과 서류들.
그리고 잘 정리되어 있던 현금 다발의 일부가 비어 있었다.
“내가 왜 지갑만 뒤졌는데……. 증거가 남으면 안 됐는데……. 금고를……. 아, 내 계획이 또 어긋나 버려…….”
파렌하이트는 머리를 감싸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음, 매우 맛있다.”
그리고, 권왕은 소파에 앉아 치킨을 뼈째로 씹어서 삼키며 감탄하고 있었다.
“아아아…… 계획이이이…….”
“왜 맨날 계획, 계획거리나? 무조건 맞는 계획 같은 건 없다.”
“그 계획을 만들고 상황을 최대한 계획에 맞게끔 짜는 게 제 역할이고, 의무입니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임무를 끝내고 떠날 때 여긴 불 지릅시다.”
파렌하이트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사무실 바깥으로 나갔다.
“……맛있다!”
치킨을 맛있게 먹고 있는 권왕을 뒤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