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12)
용산의 옥션 건물에서 나서며 하늘을 바라보는 영의.
“크으~.”
이미 해가 저물고 어두워진 하늘이었지만, 영의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창창하고 밝아 보였다.
“보자…….”
그 자리에 서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려던 순간, 영의는 고개를 젓고는 바이크에 올라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음, 여기서는 누가 훔쳐볼 걱정도 없지.”
혹시나 누가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훔쳐볼세라, 공중으로 피난하면서까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영의.
[계좌 잔액: 1,702,374,300]
그의 휴대폰에 찍혀 있는 17억 원이라는 거금.
‘운이 좋았지. 아니…… 그 이전에, 그 쪼끄만 금화 하나 사려고 하나에 수천만 원에서 억까지 부르는 인간들이 있을 줄은…….’
영의가 일전에 만났던 가게의 사장, 철관에게 부탁하여 대리로 맡긴 경매에서 상당한 금액을 받은 금화였다.
사실 본래의 가치는 별로 없지만, 지구에 없던 형식과 제조 방식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건 각 대학별 게이트 연구 팀이 5천만 원에 하나씩 사 가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고…….
‘……거짓말처럼, 돈이 썩어나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저런 거에 환장한 건지 뒤로 갈수록 입찰이 치열해졌댔지…….’
철관의 말로는 마지막 5개에서 억 단위까지 올라갔다고 들었다.
도대체 저런 작은 금화를 왜 그렇게까지 열을 올려서 수집하려는 건지는 이해를 못 했지만, 영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뭐, 수수료를 안 받는다고 했으니 그걸로 된 거지.”
가게 사장, 철관은 영의와의 계약서에 수수료를 받겠다고 명시해 두었고, 실제로 받았다.
하지만, 그는 수수료만큼의 돈을 다시 영의에게 돌려주었다.
-예상 이상의 가격이 나왔어! 으하하, 수수료는 감사의 의미로 받아 둬!
철관은 이미 5개의 금화를 미리 매입해 뒀기에 가격을 더 올려서 팔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수수료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 수수료로 영의의 호감을 사려고 했고, 그 시도는 적절했다.
‘다음에도 뭐 하나 찾으면 그쪽 가서 팔아야겠다.’
나중에라도 금화 같은 걸 받는다면 거기서 팔 생각을 하며, 영의는 공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음…… 올 때가 됐는데.”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양새.
“휘요익!”
“아, 왔네. 잘 놀다 왔어?”
이내 영의에게 날아오는 뇌영.
옥션에서 본인 확인과 금액 수령을 하는 동안, 뇌영을 데리고 가면 눈에 띄니 날려 보낸 상태였었다.
주변 건물들의 옥상에서 아래를 구경하거나, 산 같은 곳에서 다른 새들을 구경하며 놀다 온 뇌영.
“휘이익!”
뇌영은 그래도 엄마…… 아니, 주인의 곁이 가장 좋다는 듯 영의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오늘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업무는 대충 끝내고?”
이 정도로 업무를 대충 하는 걸 보면 잘리고도 남았을 영의였지만, 어째선지 잘리지는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이 눈앞에 알림 창이 떴다.
[새로운 주문이 있습니다.]
“……알림아? 너니?”
[Alrim이 아니라고 알립니다.]
“……아, 예전에 받던 주문이구나. 요즘은 왜 안 시키나 했다.”
일전에 줄곧 받았던, 특급 배달 주문이었다.
“하아…… 귀찮은데.”
수중에 막대한 돈이 생겨서일까, 예전 같았으면 수수료에 눈이 돌아가서 일단 주행하면서 확인했을 주문을 귀찮다고 미루려는 영의.
“……아, 그래도 잘리기는 싫은데…….”
영의는 싫은 티를 내면서도, 주문을 확인했다.
그의 고용 당시, 일반적인 배달은 자유로 하기로 계약했었다. 몇 건을 뛰든, 아니면 뛰지 않든 관계없이.
하지만, 특급 배달만큼은 배달이 불가능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꼭 하는 것으로 계약을 맺었었다.
“보자……. 음?”
일단 내용을 확인해 보고 별문제 없으면 돈 좀 쥐여 주고 병찬이나 병민을 시키기로 한 영의.
“뭐야?”
그러나 내용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주문인: 비회원 주문입니다.]
종종 있는 경우다. 돈은 있지만 회원 가입이니 뭐니 잘 모르시는 어르신도 있으니까.
[주소지: 백광빌딩 2층 광명대출 사무실]
이건 뭔가 느낌이 제3금융…… 아니, 사채업자들 같은데 뭐…… 그 사람들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근데 왜 굳이 특급 배달을? 이 기능으로 한번 시켜 먹어 보고 싶었나?
[주문: 치킨 15마리(양념 5, 프라이드 5, 간장 5)]
“……단체 회식하나? 아니, 그보다 그 이전에 왜 회식을 이렇게……?”
영의는 의문스러움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주문을 받았다.
지방 맛집의 것을 포장해 달란 것도 아니고, 그냥 치킨 주문이다.
그리고 주소를 자세히 보니 인적이 좀 드물긴 해도 위험 지역도 아니다.
‘그냥 시켜 먹으면 될 텐데……?’
영의는 바이크를 몰고 주문에 등록되어 있는 치킨집을 향해 가면서 잠깐 의문스러워했으나, 그냥 무시했다.
“신기하다고 시켜 먹어 보는 인간들이, 초반에 몇 명 있었지…….”
스트리머나 아니면 개인적 호기심에, 수수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시간을 측정해 보는 그런 인물들이 있었다.
어쩌면 배달 광고에 적힌 대로 진짜 15분 안에 올까 하는 주제로 서로 싸우다가 한번 시켜 먹어 보잔 아이디어가 나온 걸지도?
그렇게 영의는 별다를 것 없는 일반적인 주문이겠지 싶은 심정으로 치킨의 배달을 하러 가고 있었다.
한편, 그 치킨을 시킨 인물들은…… 지금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철벅, 철벅-
대걸레를 물에 적셔 가며 바닥을 닦는 소녀.
소녀는 자기 키만 한 대걸레를 열심히 놀렸으나, 바닥의 얼룩은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에이, 나 안 해!”
탁!
바닥에 대걸레를 내던지고는 소파로 가서 털썩 주저앉는 소녀.
“……딱딱해.”
쿠션 부분은 스펀지로 된 건지 과하게 푹신했고, 스펀지가 무게로 인해 밑으로 내려앉자 딱딱한 나무가 느껴졌다.
“아~아! 왜 우리가 여길 청소해야 하는 건데! 귀찮아! 파렌하이트! 우리 여기 그냥 쓰면 안 돼?”
소녀가 떼를 쓰듯 그렇게 소리를 치자, 옆에서 책상을 밀며 공간을 만들고 있던 젊은 남성이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 사실, 제가 온건하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먼저 가서 다 박살 내 놓은 건 당신들 둘이잖아요? 제가 청소를 도와줄 때 빨리 끝내시죠.”
그리고 그 옆에서, 쪼그려 앉은 채 고무장갑을 끼고 바닥에 표백제를 뿌려 가며 핏자국을 닦는 덩치 큰 남자가 있었다.
“빨리 청소해라. 자기가 더럽힌 건 자기가 치우는 거다.”
“에이 씨, 그럼 아저씨가 다 치워! 아저씨가 다 죽인 거잖아!”
그 말에 덩치 큰 남자는 벌떡 일어섰다.
“우윽, 왜…… 왜? 맞잖아! 아저씨가 다 했잖아!”
“……그 소파, 핏자국 덜 닦았다.”
그렇게 말하며 마른걸레를 들고 다가오는 남자.
“으와아아?! 방금 전에 갈아입었는데!”
소녀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고,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핏자국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핏자국 같은 건 없었다.
“……없는데?”
“거짓말이다. 놀지 말라고 한 소리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조금 전 소녀가 바닥에 대충 문질러 둔 대걸레의 물 자국을 마른걸레로 닦아 내었다.
“이이이…… 나 안 해! 나 갈 거야! 나도 언니처럼 놀러 갈래!”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사무실의 밖으로 나가려 했다.
“에이, 그러면 안 되죠? 저도 이렇게 도와 드리고 있는데, 혼자만 나가시겠다고요? 우리가 쓸 곳이니 우리가 청소해야 하는 겁니다. 사실, 프린세스 씨가 그 피의 축제만 막았어도…….”
파렌하이트의 말에 소녀, 프린세스는 볼을 부풀렸다.
“우우우……! 치사하게 정론으로 밀고 나오다니! 알겠어! 하면 될 거 아니야, 청소! 뭐 하면 되는데?”
프린세스는 방금 전 내던졌던 대걸레를 다시 힘없게 집어 들더니, 뚱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아, 이제 슬슬 불을 밝혀 볼까요? 대충 닦을 만큼은 닦아 낸 것 같으니까.”
탁.
팅, 팅, 티디디디……팅.
전등을 켜는 소리가 들리고, 형광등이 몇 번 점멸하더니 사무실 내부를 비추기 시작했다.
낡은 형광등이 내부를 비추고 있는 사무실은, 불을 켜기 전의 광경과는 달리 나름 버젓한 사무실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디가 더러운데?”
“아, 핏자국의 청소 같은 건 권왕님께서 다 해 주셨습니다. 손재주가 좋으신 분이라 그런지 청소를 잘하시더라고요.”
파렌하이트의 말에 덩치 큰 남자, 권왕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칭찬 고맙다.”
“아하하! 이래서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파렌하이트가 웃을 때, 프린세스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내 말 들어! 이 정도로 깨끗한데 뭘 더 치우냐고!”
프린세스가 그렇게 소리치자, 거센 바람이 몰아쳐 사무실 내부의 집기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워, 워. 진정하세요. 겉보기엔 멀쩡해도, 사실 남아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불을 켠 거고요.”
사실 불이 꺼져 있어도 바깥에서 새어 들어오는 불빛과 그들의 눈으로 어지간한 시야는 확보가 됐지만, 불을 켜는 것만큼 잘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뭐 어딜 닦으란 건데?”
프린세스가 그래도 머리를 쓰는 담당이 하는 말이니 뭔가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파렌하이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파렌하이트는 창틀로 가더니, 창틀 부분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훑고는 손가락을 내밀어 보여 주었다.
“자, 보세요. 이렇게 더럽죠?”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는 파렌하이트를 보자, 프린세스는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그게 뭔 대수야! 나 갈 거야! 찾지 마! 흥!”
벌컥-
잔뜩 삐진 듯, 곧바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 프린세스.
쾅!
그리고 급하게 열린 만큼 급하게 닫히면서 큰 소리를 내는 문.
“……이, 일부러 세게 닫은 거 아니야! 바람 때문이야!”
문 너머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온 뒤, 뒤이어 다급히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 분명 성인인데도 저런 귀여운 면모가 있다니까요.”
“배고프다, 식사는 아직인가? 금방 온다고 들었는데.”
배가 고픈 것인지, 말이 길어지는 권왕.
파렌하이트는 시계를 보며 대충 시간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흐음…… 한 10분 전에 시켰으니까, 아직 멀었을 것 같은데요.”
“이럴 줄 알았으면 배달 같은 거 안 시키고 대충 모자 쓰고 가게에 갔을 거다.”
그렇게 3분 정도 더 기다렸을까, 권왕은 더 이상 참기가 힘들다는 듯 고무장갑을 벗어 던졌다.
“배가 고프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만 같은 기세.
“……진정하세요, 일반 가게에 가도 이만큼은 걸립니다. 그리고…… 설마 15마리나 시켜 놨는데 벌써 오겠어요?”
그러나 설마가 사람을 잡아 버렸다.
똑똑.
“치킨 시키셨죠?”
오셨다. 치느님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른 속도로.
“벌써 왔다.”
“……벌써 오네?”
파렌하이트는 당황하여 아까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소지품, 그중에서도 지갑들을 다급히 뒤지기 시작했다.
“내, 내가 얼마어치를 시켰더라……? 어어…… 그보다, 달러로는 얼마지? 이거 경비 처리 되나?”
너무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온 배달에, 파렌하이트는 자신의 카드까지 꺼내 들며 당황하고 있었다.